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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여름 극장가의 승자가 될 수 있을까. 1761만명의 관객이 선택한 역대 한국영화 흥행 1위 <명량>(2013)의 속편 <한산: 용의 출현>(이하 <한산>)이 7월27일 드디어 스크린의 바다를 향해 출항, 개봉 1일차 38만 관객을 동원하며 순항 중이다. ‘이순신 삼부작’의 두 번째 영화 <한산>은 1592년 임진왜란 발발 후 조선의 운명을 바꾼 한산대첩을 재조명한다. 이미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이순신 장군의 또 다른 면모를 조명한 이 영화는 전작의 아쉬움을 영리하게 보완한, 단점이 잘 보이지 않는 수작이다. <씨네21>에서는 김한민 감독의 속 깊은 인터뷰를 시작으로 <한산>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전한다. VFX를 맡은 정성진, 정철민 VFX 슈퍼바이저는 한산 앞바다에 배를 띄우지 않고도 전장을 고스란히 재현할 수 있었던 비밀을 공개한다. 권유진 의상감독은 당대 시대상의 세밀한 고증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한층
다시, 운명의 파도에 오르다 '한산: 용의 출현'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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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표정한 주인공은 외출할 때마다 밝게 웃는 얼굴의 가죽을 뒤집어쓴다. 6분 분량의 단편애니메이션 <각질>은 타인의 요구에 맞춘 ‘나’와 본연의 ‘나’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는 현대인의 모습을 잘 드러낸다. 제75회 칸영화제 단편경쟁 부문에 초청받고 제46회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학생경쟁 부문 대상인 크리스털상을 수상한 문수진 감독과 나와 나 사이의 숨은 간극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 졸업작품으로 칸영화제에 초청받았다.
= 졸업작은 나를 사회에 알리는 첫 번째 작품이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를 담고 싶어서 당시 가장 자주 생각하던 페르소나를 소재로 삼았다. 한때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싶은 마음에 그들이 좋아하는 ‘나’에 자신을 맞추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순간이 반복되니 나를 돌아봐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더라. 본래 ‘나’와 사람들이 바라는 ‘나’, 그 간극을 말하고자 했다.
- 보통 페르소나라고 하면 가면을 먼저 떠올리는데 각질을
‘각질’ 문수진 감독 “본연의 나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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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히만 아일랜드>는 영화감독인 크리스(비키 크립스)와 토니(팀 로스) 커플이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포뢰섬으로 떠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를 보며 포뢰섬에 대한 감독의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한때 매년 포뢰섬에 들러 작업하기도 한 것으로 아는데, 섬의 풍경에서 어떤 매력을 느끼나.
= 잉마르 베리만의 존재가 묻어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아마도 베리만은 영화계 모두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일 터, 내 영화 인생에서도 늘 동행해온 존재다. 베리만의 삶과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 건 10년 전부터이고, 그러면서 포뢰섬에도 강하게 이끌렸다. 포뢰섬은 베리만이 자신의 대표작을 몇편 찍었을 뿐만 아니라 말년을 보낸 장소이다. 말하자면 포뢰섬은 베리만과 관련된 예술적 진실성을 드러내 보이는 궁극의 장소인 셈이다. 포뢰섬에서 촬영된 베리만의 영화는 대부분 흑백이고 악몽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내가 섬을 방문했을 때 느낀 건, 포뢰섬은 색깔이 있는 섬이
'베르히만 아일랜드' 미아 한센뢰베 감독 "예술적 진실성을 품은 궁극의 장소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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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한편이 플랫폼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KT 그룹의 계열사 SKYTV가 올해 4월 출범시킨 ENA는 채널 번호를 알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해야만 하는 변방의 케이블 채널이었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시청률이 1회 0.9%(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에서 9회 15.8%로 치솟으면서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강력한 킬러 콘텐츠의 등장은 소비 패턴의 변화와 편성의 벽마저 뛰어넘었다. 전 연령층 대상 여론을 살필 수 있는 한국갤럽 2022년 7월 한국인이 좋아하는 TV프로그램 설문에서는 지상파와 비지상파를 통틀어 역대 드라마 중 최고 수치로 1위를 차지했다(이는 <SKY 캐슬>이나 <도깨비>도 뛰어넘은 수치다). 온라인 세상의 반응은 더욱 열렬하다. 아직 일부 국가에서만 시청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넷플릭스 글로벌 차트에서 2주 연속 비영어 TV부문 1위를 차지하는 등 해외 시장에서의 기세도 심상치 않다.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 채널의 규모를 뛰어넘는 신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제작한 이상백 에이스토리 대표 "스타 캐스팅보다 대본에 집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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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 글로벌 기업의 사옥에 강연차 다녀왔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디지털화, 자동화, 원격화 등의 기술은 전세계인의 지지를 받으며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인간을 배제할 수 있는 기술 진보를 온 인류가 지지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 난리통에 살아남은 조직들간에는 더욱 치열한 경쟁 구도가 펼쳐졌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이 살아남을 방법은 빠른 학습 능력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조직은 이를 위해 끊임없이 의식과도 같은 모임을 만들어 구성원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단련시키려 애쓴다. 나의 강연도 바로 그런 ‘리추얼’의 일환이었다.
그간 리추얼은 대부분 구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특정한 메시지를 다 함께 경청하고 속내를 털어놓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번 강연에서 나를 기다린 것은 대형 강의실을 가득 메운 직원들이 아닌, 사방이 막힌 사내 스튜디오와 표정 식별이 불가능한 2천명이 모인 채팅 창이었다. 이제는 감염의 우려 때문만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채워진 말풍선 200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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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위한 아이>는 현우석의 스크린 첫 주연작이다. “<보건교사 안은영> 때는 그 많은 대사를 어떻게 외우고 준비했는지 되새겨봤는데 잘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소리를 더 내보라, 딕션에 더 신경써보라’고 들었던 피드백이 생각났다. 펜을 물고 대사 연습을 하고 발성 영상도 찾아보며 훈련했다. <아이를 위한 아이>를 촬영할 때 감독님이 나보고 딕션이 좋다고 칭찬해주셨는데 그 말을 들으면서 연습한 덕이구나 싶어 기분이 좋았다.” 보육원 퇴소를 앞둔 도윤 앞에 얼굴도 기억에 없는 아버지가 나타난다. ‘다 너를 위한 일’이라며 일방적으로 한 가족 안에 밀어넣어진 도윤은 찜찜한 기분과 상처 입은 기억,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뒤섞여 혼란스럽다. 상처 많은 도윤에게서 모난 반항심보다는 우직하고 미더운 심성이 먼저 느껴지는 까닭은 현우석이 도윤을 “정말 마음이 따뜻한 친구”라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남겨진 사람의 마음에 공감할 줄 아는 도윤이었기 때문에 그의 뜻밖
[WHO ARE YOU] '아이를 위한 아이' 배우 현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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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맞이한 런던의 유명 레스토랑. 총괄 셰프 앤디(스티븐 그레이엄)는 오늘 하루가 무탈하게 지나가길 바란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 달리 아침부터 위생관리관의 급습으로 지난해보다 두 단계나 낮은 점수를 받게 되고, 직원간에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불만은 곧 터질 듯 아슬아슬하다. 하필이면 일년 중 가장 바쁜 크리스마스에 까다로운 미식 평론가가 찾아와 앤디를 당황하게 하더니 무례한 태도의 손님은 홀서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보일링 포인트>는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원 테이크로 이루어져 있다. 바쁜 연휴를 보내는, 보통의 레스토랑 주방에서 벌어질 법한 평범한 풍경 속에서 역동성이 느껴지는 이유기도 하다. 러닝타임 95분 동안 단 한번도 끊지 않고 레스토랑의 숨 가쁜 상황을 보여주면서 마치 관객이 그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셰프와 서버, 매니저와 손님 등 다양한 인물에 초점을 맞춰나가며 관객의 시선이 따라가야 할 길을 친절히 안내한다.
한정된 공간
[리뷰] 90분 동안 누구도 끊을 수 없는 끓는점 '보일링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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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상황에 직면한 항공기가 더이상 정상적인 운항이 불가능하여, 무조건적인 착륙을 요청하는 비상사태를 뜻하는 항공 용어.” 제목의 의미부터 명료하게 풀어낸 후 즉시 본론에 들어가는 <비상선언>은 주인공들의 즐거운 한때를 묘사하거나 빌런의 정체를 추적하는 재난영화의 공식에는 관심이 없다. 다짜고짜 사람들이 많이 타는 노선을 물으며 등장부터 수상쩍은 진석(임시완)을 일찌감치 노출시킨 뒤 무작위하게 선택된 생화학 테러의 대상자들을 점묘하듯 보여준다. 딸의 아토피를 치료하기 위해 비행공포증을 감수한 재혁(이병헌), 과거 재혁과 인연이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부기장 현수(김남길), 언제나 침착함을 잃지 않는 베테랑 사무장 희진(김소진) 등이 하와이행 KI501 항공편에 차례로 탑승한다. 지상에서는 비행기 테러 예고 영상의 진위 여부를 놓고 경찰들이 수사에 나선다. 본능적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한 형사팀장 인호(송강호)는 용의자가 친구들과 하와이 여행을 떠난 아내와 같은 비행기에
[리뷰] 더 좋은 영화가 될 수 있는 더 나은 선택을 상상하게 한다 '비상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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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의 작은 섬 포뢰는 시네아스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장소다. 20세기의 거장 잉마르 베리만이 태어나고 여생을 보낸 곳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베리만을 선망하는 영화감독 커플인 크리스(비키 크립스)와 토니(팀 로스)는 각자의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포뢰섬을 방문한다. 두 사람이 머무는 곳에는 베리만의 존재감이 진득하게 닿아 있다. 숙소 옆에는 베리만 영화를 35mm 필름으로 관람할 수 있는 작은 상영관이 있고, 두 사람이 쓰는 침실은 베리만의 <결혼의 풍경>에 등장했던 바로 그 방이다. 창작의 영감을 종용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는 완전한 풍경을 바라보며 크리스는 아름다움과 동시에 미묘한 압박감을 느낀다. “너무 평온하고 완벽해서 숨이 다 막혀.” 반면 토니는 자신의 작업을 순탄하게 해내며 크리스에게 위안이 되지 못한다. 결국 크리스는 정해진 길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섬을 배회하면서 미처 쓰지 못했던 시나리오의 빈자리를 완성하려 하고, 그녀가 써내려가는 이야기는 ‘
[리뷰] 흰색과 미색의 차이. 그 엷은 틈새에서 발견한 영화의 가능성 '베르히만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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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이어 <비상선언>으로 마주한 이병헌은 힘을 빼고 뉘앙스를 찾는 데 통달한 베테랑 같다. <남한산성>의 최명길, <남산의 부장들>의 김규평을 연기할 때와 같이 극적으로 우아하게 다듬은 마스크는 잠시 벗어둔 채, 그는 멋있기보다는 차라리 누추한 순간이 더 많은 보통의 초상을 스크린에 옮긴다. “말투나 걸음걸이, 시선의 디테일들이 만드는 차이가 모여서 영화가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할 때 설득력을 만든다”는 그의 원칙은 설정값이 극도로 제한된 기내 공간에 배우가 내내 붙잡혀 있는 동안에도 캐릭터의 개성이 활보할 통로를 뚫고 만다. <비상선언>의 재혁은 아토피를 앓는 딸과 함께 하와이로 떠나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는 아버지이며, 끔찍한 테러의 초입부터 상황을 주시하는 비상한 목격자다. 배우 이병헌은 점차 아수라장으로 변해가는 기내에서 평범한 줄로만 알았던 남자의 비범한 과거를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비상선언’ 배우 이병헌, “디테일의 설득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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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의 얼굴은 그 자체로 한국 사회이자 소시민을 보여주는 메타포다. 관객 역시 동시대 한국을 다룬 영화에 송강호가 나올 때 그 지점을 기대한다. <비상선언>의 인호는 비행기 테러범을 쫓는 형사팀장이자 비행기에 탄 아내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내던지는 남편으로서 관객이 가장 이입하며 볼 수 있는 캐릭터다. 여기에 송강호가 주로 표현해왔던 부성애 대신 부부애가 두드러지고, 현장에 개입하지 못하는 단절감이 극적인 감정을 끌어낸다는 점에서 또 다른 평범성을 완성시킨다.
- 한재림 감독과 세 작품을 함께했다. (장편영화 주연 기준으로) 5편을 함께한 김지운 감독과 4편을 함께한 봉준호 감독에는 못 미치지만 박찬욱 감독과는 타이 기록이다. (웃음) <우아한 세계> 때도 시놉시스만 보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들었는데, 감독에 대한 신뢰가 상당한 것 같다.
= 정확히는 시놉시스가 아니라 밥 먹으면서 줄거리를 들은 게 전부였다. 한창 <괴물>을 찍고 있을 때 만났는
‘비상선언’ 배우 송강호, “재난 앞의 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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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와 이병헌이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 22년 만에 <씨네21> 표지에 함께 등장했다(<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때는 송강호, 이병헌, 정우성 3종 개인 커버로 제작됐다.-편집자). 역설적이게도 항공 재난 영화 <비상선언>에서 두 배우는 거의 마주치지 않는다. 지상의 송강호가 비행기 테러를 막으려고 애쓰는 사이, 상공에서 생화학 테러의 대상자가 된 이병헌은 착륙을 시도한다.
흥미로운 것은 두 배우가 <비상선언>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오묘하게 상대를 닮아 있다는 점이다. 한국영화에서 송강호는 가장 보통의 얼굴로 원치 않는 사건에 휘말리며 당혹스러워한다. 많은 작품에서 그는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그의 행동을 추동하는 가장 강력한 인자는 부성애였다. 반면 <비상선언>의 인호는 테러범과 같은 비행기를 탄 아내를 구하기 위해 형사로서 더욱 분투하는 남자다. 모처럼 송강호를 가족애가 아닌 로맨스의 주체로 내세운
평범해서 더 특별한 : ‘비상선언’ 배우 이병헌,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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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오경필 중사 역의 송강호와 남한군 이수혁 병장 역의 이병헌이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처음 맞닥뜨리는 신.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촬영이 한창인 2000년 3월 충남 서천의 한 갈대밭이다. 이후 한국영화의 대표 얼굴이 된 두 배우는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거쳐 <비상선언>에서 다시 만난다. 이번에는 파국적인 결말 없이 명백하게 같은 편이다.
[ARCHIVE] 결정적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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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00일가량 남은 요즘, 한국지리 1등급을 위한 확실한 선택은 ‘문쌤’, 문상훈 선생님의 강의다. 궁중대 풍수지리학과를 졸업하고 정인학원 일타강사로 활약 중인 문쌤은 수업 시간이 되면 종이컵을 들고 칠판 앞에 서서 열정과 타성이 버무러진 톤으로 외친다. “얘들아 잠 좀 깨자~.” “조용히 해~.” “수업 시작할 거야~.” 가끔 눈이 시리도록 화려한 트로피컬 컬러의 칼라 티셔츠로 멋을 내보지만 학생들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침식과 주상절리에 치중하느라 수능 전날까지 진도가 밀려 있다는 항의도 받지만, 문쌤의 진정한 가르침은 한국지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쇼미더머니> 출연 경험을 바탕으로 깨달은 악마의 편집에 안 당하는 방법, 명절날 세뱃돈 네배로 받아내는 방법 등 이기상 선생님조차 가르쳐주지 못한 인생 실전 노하우가 애제자들을 위한 문쌤의 특별한 지혜다. 단, 웬만한 일은 웃어넘기는 문쌤도 ‘꼰대’라는 말 앞에선 흥분하니 조심하자. “
[최지은의 논픽션 다이어리] 유튜브 채널 ‘빠더너스’ - ‘한국지리 일타강사 문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