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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싶을 때, <헤어질 결심 각본집>의 온라인 서점 링크에 달린 댓글들을 보곤 한다. ‘헤친자’(<헤어질 결심>에 미친 자)들이 영화 속 대사를 패러디해 경쟁적으로 남겨둔 댓글이다. “한국에서는 영화를 봤다는 이유로 각본집 사기를 중단합니까?” “나왔구나, 마침내.” “해준씨, 그 각본집 장바구니에 넣어요.” “통장 잔고가 각본집 사는 일을 방해할 수는 없습니다” 등등. 물론 스토리보드북이라고 다르지 않다. 각본집에 이어 스토리보드북까지 책으로 출간되는 경우는 드물다.
해당 영화의 팬들이 구매할 수 있게 특별 판매용 굿즈로 제작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서로 출간되어 각본집이 전체 도서 베스트셀러에까지 오르는 경우는 더욱 이례적이다. 영화 <헤어질 결심>이 시각화되는 과정을 짚어가면 영상 전에 스토리보드가 있고 그 이전이 각본이다. 영화가 끝난 후 서래의 해변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관객이 더듬더듬 영화의 출발이 된 각본집을 찾아 읽고 그 설계도인 스토리
씨네21 추천도서 - <헤어질 결심 스토리보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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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참혹함 앞에서 글자는 눈앞에서 허물어내리고 시조차도 다 무슨 의미인가 싶을 때, 시집을 닫으며 마지막 문장을 어루만진다. “저는 이것을 시로 쓸 수 없었습니다, 라고 시가 써질 때 이해가 넘쳐흐르고 있다 당신과 내 인생 바깥으로.”(조용우, <어려운 시>)
문학과지성사가 해마다 젊은 시인들의 시를 묶어 내는 <시 보다> 시리즈의 2022년 출간작에는 신이인, 임유영, 안태운, 임지은, 윤은성, 조용우, 윤혜지 7명 시인의 시가 실렸다. 이 시들은 2021년 문지문학상 시 부문의 후보작들이었고 <시 보다 2022>에는 기존 발표작 4편과 함께 신작 시 2편, 시인들의 산문이 수록되었다. 젊은 시인들의 최근작을 읽으며 이들이 보는 현재의 세상을 더불어 본다. 시인의 눈에 세계는, 지금은, 한국은 밤을 헤매듯 가혹하고 조금은 다정하고 얼마쯤은 서글프다. 연약한 마음을 가진 내가 그보다 더 약한 사람들과 어깨를 기대고 함께 걷고, 술을 마시고 외로
씨네21 추천도서 - <시 보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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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욘더>의 원작 소설 <굿바이, 욘더>의 개정판이 출간됐다. <굿바이, 욘더>의 줄거리는 그리스신화 속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사랑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아내 에우리디케가 우연히 독사에 물려 죽자, 오르페우스는 괴로워하다 직접 지하 세계로 내려가기로 결심한다. <굿바이, 욘더> 또한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 이후를 그리워하는 남자 김홀이 주인공이다. 죽은 아내가 꿈에서라도 잠깐 함께 있어준다면 뭐든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아내가 돌아온다. 정확히 말하면 아내가 죽기 전 아내의 기억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인공지능 아바타가 홀에게 연락한 것이다. 가상현실용 고글을 쓰고 아바타의 세계로 입장하면, 아내와 똑같은 아바타와 대화하고 추억을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이 아바타의 세계 너머에 뭔가 엄청난 세계가 있는 것 같다. 불멸을 향한 인류의 새로운 꿈이 투영된 세계가 있다는 추측 속에, 홀은 진짜 아내를 만나
씨네21 추천도서 - <굿바이, 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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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일기’는 단구나 동요 같은 간결한 형식에 계절의 변화와 감미를 담은 기록이라고 저자는 소개하고 있다. 계절 순서에 따라 배치되어 있으나 순서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읽어달라는 안내에 따라, 북쪽 찬 공기가 불쑥 내려오곤 하는 요즘의 쌀쌀함에 어울리게 4부 가을 일기로 가본다. “매미 소리 잦아들고/ 귀뚜라미 울면” (<입추>)을 읽으며 맞아, 가을이 시작하면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가 달라지지, 라고 고개를 끄덕여본다. 또 공기도 어느새 습기 없이 차갑다. “빨래가 잘 마른다… 바구니 속에/ 웅크린 고양이/ 코끝이 차다.”(<처서>) <가을볕>이라는 제목의 시는 창문으로 햇빛이 따뜻하게 떨어지는 바닥 공간을 찾아 잠든 고양이 그림과 함께 “고양이는 신통해/ 따뜻한 이부자리를/ 잘도 찾아낸다” 하고 다정하게 읊조린다. 홍옥, 가을장마, 도토리, 솔방울 같은 가을의 단어들이 포근하게 다가온다. 곧 다가올 겨울맞이를 위해 1부 겨울 일기로 가면, “군고구마
씨네21 추천도서 - <서릿길을 셔벗셔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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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릿길을 셔벗셔벗_싱고 지음
굿바이, 욘더_김장환 지음
시 보다 2022_신이인, 안태운, 윤은성, 윤혜지, 임유영, 임지은, 조용우 지음
헤어질 결심 스토리보드북_이윤호, 박찬욱 지음
나주에 대하여_김화진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1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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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결혼전야>와 <복길잡화점>
우리가 흔히 듣고 볼 수 있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 다. 어찌 보면 뻔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내 삶의 뿌리가 되는 가족의 소중 함을 느낄 수 있다. 너무 재밌게 본 작품들이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아들의 순수함을 지켜 주려는 부성애가 돋보이고, 긍정적인 태도와 유머가 어떻게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지 잘 드러나 있다. 깊은 울림을 주는 따뜻한 영화다.
우효의 <민들레>
요즘 자주 듣는 곡이다. 사랑의 여러 형태에 관해 논한 곡인데 가사와 멜로디가 마치 민들레처럼 살포시 와닿는 느낌이라 편안하고 좋다.
드라마 <작은 아씨들>
자매애가 강한 여성 캐릭터들이 작품 전체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전개가 매력적이다.
드라마 <슈룹>
유쾌함과 긴장감 넘치는 전개로 모성애를 풀어내는 점이
[LIST] 배우 진선규가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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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크 쉘터>
시리즈온, 왓챠, 웨이브, 티빙
지금이야 할리우드의 대표 배우 중 한명으로 우뚝 섰지만 한동안 무명으로 지냈던 제시카 채스테인은 2011년부터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테런스 맬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로 관객의 호기심을 산 그는 같은 해 제프 니콜스의 <테이크 쉘터>에서 커티스(마이클 섀넌)의 아내 사만다로 등장해 또 한번 선연한 존재감을 알렸다. 커티스는 성실한 노동자이자 책임감 강한 가장이다. 가족을 지극히 아끼는 그는 어느 날부터 폭풍이 닥치는 불길한 악몽에 시달리고, 점차 극도의 불안감에 잠식된다. 급기야 폭풍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보호해줄 방공호를 짓겠다며 무리한 일을 벌이는 커티스. 그는 과연 창세기의 노아일까, 아니면 묵시록 속 스러져가는 조촐한 개인에 불과할까. 영화는 불분명하게 배치된 현실과 환상을 통해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노련하게 조작한다.
<투 러버스>
시리즈온, 왓챠, 웨이브, 티
[OTT 추천작] ‘테이크 쉘터’ ‘투 러버스’ ‘언커플드’ ‘더 브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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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심리학자 박지선 교수와 코미디언 장도연이 함께하는 SBS <지선씨네마인드>는 팟캐스트 <이수정·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과 JTBC <방구석 1열>의 매력을 합쳐놓은 것 같은 프로그램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유튜브 채널에서 도준우 PD의 진행으로 뜨거운 반응을 얻은 시즌1에 이어 TV로 옮겨와 시즌2를 순항 중인 이 방송에서 우선 인상적인 것은 깔끔한 출연자 구성이다. 범죄와 영화, 즉 인간과 사회와 예술을 두루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흔히 그래왔듯 남성 출연자를 굳이 더해 머릿수를 늘린 것이 아니라 이 자리에 딱 맞는 두 여성에게만 마이크를 건넨 뚝심 혹은 자신감이 눈에 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진지하게 범죄사건을 분석할 때와 달리 영화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냉철한 가운데 위트를 잃지 않는 박지선 교수, 농담과 엉뚱한 말을 좋아하면서도 결코 ‘선’을 넘지 않는 장도연은 셜록과 왓슨 못지않은 콤비다. &
[최지은의 논픽션 다이어리] ‘지선씨네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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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 감독 토비아스 린드홈 / 각본 크리스틴 윌슨 케인스 / 출연 제시카 채스테인, 에디 레드메인 / 플레이지수 ▶▶▷
미국 뉴저지. 파크필드 기념병원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에이미(제시카 채스테인)는 밤 교대 근무를 서는 고된 일상 속에서도 생기를 잃지 않는 간호사다. 홀로 두딸을 양육하는 그는 일과 가정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데, 현재 가장 큰 근심은 오랫동안 앓고 있는 심근병증이다. 환자를 돌볼 때조차 수시로 닥치는 통증은 죽음의 공포를 실감하게 만들지만 아직 건강보험이 없는 그는 유급휴가를 얻기 위해 4개월은 더 일해야 한다. 하루하루 지쳐갈 때쯤 새로운 동료 찰리(에디 레드메인)를 맞게 되고, 우연히 에이미의 상황을 알게 된 찰리는 위기 때마다 적극적으로 돕는다. 그렇게 서로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게 된 둘. 어느 날, 에이미의 담당 환자인 애나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그 원인이 이중 처방된 인슐린 때문임이 밝혀지면서 병원은 경찰 조사를 받게 된다. 경
[OTT 추천작] 넷플릭스 ‘그 남자, 좋은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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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원고를 기다리다 지친 편집장의 마음도 금세 유쾌하게 돌려 세웠던, 작가 본인은 몰라도 독자들만큼은 제대로 웃겼던, 때로는 영화 바깥에서 세상의 슬픔과 함께했던 정훈이 만화의 순간들을 추억하며.
64호 <전설의 고향>(1996)
‘바캉스 간다’의 기원은 ‘박광수 간다’? 정훈이 만화의 엉뚱함과 뻔뻔함에 모두 웃으며 이마를 짚게 한 연재 초창기의 인기작.
126호 <스타워즈>(1997)
1997년, <스타워즈> 20주년을 맞아 리마스터링판이 재개봉하자 정훈 작가는 16:9 화면비까지 재현해가며 <스타워즈> 시리즈의 미학과 주요 반전까지(!) 한눈에 간추리는 친절한 해설사 역할을 도맡았다.
706호 ‘분향’ (2009)
많은 이들이 잊을 수 없는 단 한편의 정훈이 만화로 ‘영화가 없는’ 정훈이 만화를 꼽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어두운 방 안에서 남기남이 홀로 향을 피우고 술을 따르며 눈물 흘린다.
[정훈 작가 추모 기획③] 정훈이 만화 베스트 오브 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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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남기남은 친구를 보고 그린 건데 내 실물을 본 사람들이 다 나를 닮았다고 하더라. 남기남 디자인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바뀌었다. 아마 25년 동안 나랑 서로 닮아간게 아닌가 싶다.
▶ 2021년, ‘1995년부터 2020년까지, 정훈이 만화로 돌아보는 한국영화’
영화를 정해놓고 작업한 적은 거의 없다. 이번주 개봉작, 다음주 개봉작까지 늘 살펴보고 오래 생각을 굴린다. 요즘은 영화 유튜브가 많으니까 정보를 얻기는 더 쉬운데 영화 정보를 너무 많이 접하면 영화에 얽매여 어느 순간부터는 많이 찾아보지 않으려고 한다. 엔딩을 모르고 그렸는데 공교롭게도 스포일러가 된 적도 있다. 그 뒤로는 아예 엉뚱하게 그리게 된 거지. 단편영화나 예술영화를 많이 못 다룬 게 아쉽다.
▶ 2020년, ‘정훈이 만화 연재 종료, 작가 인터뷰’
나는 생활 관찰과 경험이 먼저고 그걸 담는 틀로 영화를 끌어온다. 특정 영화를 패러디하려는 의도로 출발하진 않는다.
▶ 2005년, ‘10년을
[정훈 작가 추모 기획②] ‘씨네21’이 기록한 정훈의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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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의 정훈 작가 2022년 11월5일 별세
정훈 작가가 남긴 만화와 말, 그리고 삶에 대하여
‘정훈이 만화’의 정훈 작가가 2022년 11월5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50살. 정훈 작가는 1995년 <씨네21> 15호에 <포레스트 검프> 패러디 만화를 그린 것을 시작으로 2020년 1286호 <레벨16> 편에서 마지막 인사를 남기기까지, 약 25년간 잡지의 인장을 그려넣는 이였다. 많은 독자들이 그로 인해 책의 마지막 장부터 펼쳤다. 고인은 2021년 12월 급성 백혈병을 진단받은 후에도 자신의 만화와 닮은 명랑과 낙관을 유지해 대구 계명대학 동산병원에서 ‘훈이 아저씨’라 불리는 인기 스타였고, 투병 생활을 만화로 옮긴 <슬기로운 환자생활>도 구상 중이었다. 너무 이른 작별임에도 아내 권정화씨는 기자에게 당부했다. “결코 비극적이거나 슬픈 죽음이 아니었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진심을 다해 즐겁게 보냈다.”
고장 수리 중.’
[정훈 작가 추모 기획①] 당신과 함께 25년을 웃고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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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그렇지만, 미국은 스트리밍 전쟁 중이다. 그 전쟁에서 독자적인 길을 가는 것처럼 보였던 유튜브의 행보가 최근 남다르다. 유튜브는 일찌감치 그들의 유료 서비스인 ‘유튜브 프리미엄’(YouTube Premium)에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을 중단하고 이 전쟁에서 발을 빼는 것처럼 보였다. 최근 유튜브 쇼츠에 집중하며 숏폼 콘텐츠와 그들의 고유 영역인 크리에이터 기반의 유튜브 플랫폼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지난 4월 ‘Movies & TV’ 섹션을 열면서 영화, 드라마를 구매하거나 광고를 통해 프리미엄 영화,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서비스를 오픈하더니 11월1일 OTT 서비스의 콘텐츠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들고 그 콘텐츠를 구매하거나 OTT에 가입할 수 있게 하는 ‘프라임타임 채널’(PrimeTime Channels)을 오픈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넷플릭스, 디즈니+는 없지만 콘텐츠가 많은 파라마운트+, 쇼타임, 스타즈 등 주요 OTT 서비스 등 30개 서비
[김조한의 OTT 인사이트] 모든 길은 유튜브로 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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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의 독립영화를 결산하는 서울독립영화제가 12월1일부터 개최된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도 영화 창작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에는 총 1547편의 작품이 출품되어 역다 최다 편수를 기록했다.
‘사랑의 기호’라는 슬로건을 안고 김태일, 주로미 감독의 신작 <또 바람이 분다>를 개막작으로 선정했다. <또 바람이 분다>는 ‘민중의 세계사’ 프로젝트로, 10년 동안 전세계를 떠돈 두 감독의 종합판 다큐멘터리다. 올해의 초청 프로그램으로는 ‘뉴웨이브 이후 대만영화의 기수들’을 주제로 2010년 전후 만들어진 동시대 대만영화 8편을 선보인다. 독립영화 복원활용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아카이브전에는 ‘도시의 얼굴, 이방인의 시선’이라는 주제로 유하의 <시인 구보씨의 하루>(1990), 장길수의 <환상의 벽>(1980) 등 다섯편의 독립 단편을 복원해 소개한다. 서울독립영화제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은 ‘배우 프로젝트-60초
한해의 마무리는 독립영화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