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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편의 ‘외계인’ 영화를 연달아 보고 낯선 존재를 다루는 영화의 방법을 생각해봤다.
최동훈의 영화에서 흥미롭게 생각하는 순간은 쌍둥이라는 설정에 관한 연출자의 일관된 관심이 드러날 때다. <범죄의 재구성>의 쌍둥이 형제와 <암살>의 안옥윤과 쌍둥이 언니 미츠코, <전우치>에서는 쌍둥이로 표현되는 대신 전생에 마주친 여인과 똑같이 생긴 현대의 인물 서인경이 등장한다. 이런 영화적 분신(分身)들을 최동훈은 적극적으로 배치해왔다. 똑같은 외모를 가진 쌍둥이의 출현은 목격자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정체를 숨기는 속임수를 만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정반대의 삶에 던져진 인물들의 운명적 소용돌이를 영화에 도입하는 기제로 쓰인다. <암살>의 주요한 분기점이 되는 장면에서 안옥윤은 암살 대상인 친일파 아버지가 미츠코를 살해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거울이 깨져버리자, 건조한 임무의 수행자이던 안옥윤에게 멜로드라마적 정념의 복수자라는 면모가 덧붙는다. 안옥
김병규 평론가의 '외계+인' 1부와 '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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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바람이 많이 불던 날 <태양은 없다>(1998)의 두 배우 정우성, 이정재를 잠수교에서 만났다.
영화 속 공간은 변했지만 도철(정우성)과 홍기(이정재)는 당시의 모습으로 걷기 시작했다.
[ARCHIVE] 잠수교에서의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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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더이상 로맨스를 추구하지 않는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더이상 운명적인 짝을 만나 연애하다 결혼에 골인하여 평생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살아가는 꿈을 꾸지 않게 됐다.’(270쪽)
<로맨스라는 환상-사랑과 모험의 서사>는 일단 로맨스가 불가능한 현실 인식을 기반으로 논의를 출발시킨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TV드라마 안에서조차 로맨스를 기대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욕망을 추구하기 때문에 로맨스가 환상의 영역으로 분리된다. 하지만 ‘판타지’를 기반으로 한 영화 <귀여운 여인>류의 로맨스나 운명적 사랑의 자리를 ‘친밀성’이 대체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니까 길 가다 우연히 교통사고처럼 마주치는 운명적 사랑을 사람들은 ‘비현실적’이라 믿지 않고, 대신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소꿉친구 로맨스가 더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주지했다시피 운명적 사랑이 인기가 없다고 해서 로맨스 장르 자체가 힘을 잃은 것은 아니다. 특히
씨네21 추천 도서 - <로맨스라는 환상 - 사랑과 모험의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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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어요?” 직장 다니는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했을 때 대답은 모두 달랐다. “아니, 절대.” “당연하지. 안 그런 사람도 있나?” 그렇지만 회사 때문에 울어본 적 있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은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회사라는 말에는 직장이 속한 건물 안, 내가 일하고 있는 근무시간대, 거기서 만난 사람 등등이 포함되어 있다. 취직의 관문을 넘어서 삶의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직장이다. 프리랜서가 아니라면 거기서 나와 다른 사람들과 부딪치고 같이 일하며 관계를 배우기도, 불합리한 권력에 분통을 터트리기도, 월급이 입금되었다는 문자에 잠시 숨을 고르기도 한다.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 한국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것은, 이렇게나 무수한 직장인의 하루하루를 채집해 모두가 겪을 법한 일로 묶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2019년 첫 출간 후 10만부 판매 기념으로 출간된 이번 소설집은 이것을 읽고 힘을 얻었던 선배가 후배에게 ‘너도 한번 읽어봐’라며 새
씨네21 추천 도서 - <일의 기쁨과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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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도 다 신의 뜻으로 일어난 것이고, 그것을 이겨낸 너의 삶에는 이전과는 다른 깨우침이 남고 내면은 깊어질 것이다, 류의 교훈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기왕이면 불행을 겪지 않고 상처도 없이 살아간다면 인생이 더 쾌적하고 행복하지 않겠는가. 불행을 겪어야만 얻어지는 깨우침이라면, 그냥 모르고 살아도 좋을 것 같다. ‘영혼의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의 생각은 다르다. <연금술사>와 <순례자> 등을 읽은 파울로 코엘료의 팬이라면 그가 지향하는 삶의 방식이 내면의 수련에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다섯번째 산>은 코엘료가 산티아고 순례 여행 이후 얻은 깨달음으로 쓴 작품으로 1998년 한국에 소개된 바 있다. 문학동네에서 새로 출간된 이 소설은 포르투갈어 원전을 번역해 구판의 오류를 바로잡고 문장을 세련되게 다듬었다. <다섯번째 산>은 성경에 등장하는 예언자 엘리야의 이야기를 코엘료가 가지를 덧붙여 창작한 소설이다. 엘리야는 예언자의 역할을 하다
씨네21 추천 도서 - <다섯번째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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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을 극장에서 보고 각본집을 산 독자라면, 각본집 표지에 실린 ‘산해경’ 속 문장부터 놓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동쪽으로 이백오십 리를 가면 기름산이 있는데… 이 산의 봉우리는 깊이 감추어져,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다.” 기름산에 산다는 구더기가 떨어져 죽으면 터진 머리에서 황금색 파리 떼가 날아오른다니, 기름 바른 듯 미끄럽다는 비금봉에서 떨어져 죽은 기도수와 그 눈의 시점에서 잡은 묘한 화면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이어 각본집 표지를 넘기면, 서래의 집 벽지였던 붉고 푸른 산이 인쇄된 검푸른 종이가 나온다. 영화 속 화려한 벽지와 정갈한 부엌 소품이 놓인 장면이 다시 환기된다.
독자로서 각본집을 읽으며 관객으로서 영화를 본 기억을 떠올리는 체험은 풍요롭다. 경찰서에서 서래가 해준을 향해 미소를 보낸 순간, 각본집에는 ‘해준, 잠시 눈이 부시다’라고 쓰여 있다. 이어 둘이 스시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착착 정리하는 장면은, ‘둘은 손
씨네21 추천 도서 - <헤어질 결심 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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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근무하던 형사 핀은 몇달 전 벌어진 살인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고향에서 일어났다는 이유로 그곳으로 파견을 간다. 고향은 스코틀랜드 북서쪽 섬들을 지칭하는 헤브리디스 제도에서도 가장 북쪽에 자리한 루이스섬의 마을 크로보스트. 그곳 낡은 보트 창고에서 시신 한구가 발견되었는데, 죽은 사람은 핀이 유년 시절 알고 지낸 사이다.
18년 전 도망치듯 고향을 떠났던 핀은, 강풍에 차가운 파도가 해변을 때리고 구름이 어둠을 몰고 다니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유년 시절을 회상한다. “바다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었지만 많은 것을 앗아가기도 했다”라는 핀의 표현처럼 물에 빠져 죽은 사람, 어선 전복으로 변을 당한 사람 등 거친 자연 속 사고가 끊이지 않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핀은 쓴맛 가득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학교 입학 전까지 게일어 말고 영어를 배우지 못해 창피했던 기억, 골목대장 노릇을 하는 양아치 녀석들에게 맞을 뻔했던 사건, 한 소녀를 두고 단짝 친구와 경쟁하던 일
씨네21 추천 도서 - <블랙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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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하우스_피터 메이 지음
헤어질 결심 각본_정서경, 박찬욱 지음
다섯번째 산_파울로 코엘료 지음
일의 기쁨과 슬픔_장류진 지음
로맨스라는 환상 - 사랑과 모험의 서사_이정옥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8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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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영화 <화양연화>(2000)
양조위, 장만옥 두 사람의 감정만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영화가 끝나 있었다.
영화 <타이타닉>(1998)
나랑 비슷한 나이의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번을 반복해서 보아도 여전히 재미있는 최고의 영화.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2)
여전히 내 동심이 영화 언저리에 남아 있다.
영화 <너는 여기에 없었다>(2018)
모든 게 좋았지만 배경음악이 주는 기괴한 분위기가 러닝타임 동안 긴장감을 불어넣어주었다.
영화 <캔디>(2006)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지만 히스 레저의 대단한 연기가 깊은 울림을 주었다.
[LIST] 배우 박진영의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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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판이 된 사건사고: 우드스톡 1999>
넷플릭스
여름,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 그중에서도 1969년 8월 뉴욕에서 펼쳐진 우드스톡 페스티벌은 물리적인 규모로나 역사적인 의미로나 인류사의 가장 거대한 축제였다. 그리고 1999년 여름, 우드스톡 페스티벌이 다시 열린다. 하지만 30년이라는 간극만큼 축제의 성패 역시 갈렸다. 평화와 사랑이란 이름의 우드스톡은 온데간데없이 99년의 우드스톡이 온갖 폭력과 혐오의 중심지로 탈선한 탓이다. <난장판이 된 사건사고: 우드스톡 1999>는 이런 우드스톡의 절망적 전환을 시대의 변화에 빗대 설명한 다큐멘터리다. 약 30만명이 운집했던 축제의 열기를 생생하게 담아낸 자료화면 속엔 방화, 마약, 성폭력, 약탈 등 갖은 범죄가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축제에 참가했던 기획자, 관중의 인터뷰도 3일간의 세기말 아포칼립스를 되새긴다.
<씨 비스트>
넷플릭스
오랫동안 인간들은 거대 해양 생물종인 씨 비스트를
[리뷰 스트리밍] '난장판이 된 사건사고: 우드스톡 1999'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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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 감독 댄 트랙턴버그 / 출연 앰버 미드선더, 데인 딜리에그로, 다코타 비버스 / 플레이지수 ▶▶▶
원주민 소녀 나루(앰버 미드선더)는 용맹한 전사를 꿈꾼다. 아무도 나루에게 큰 기대를 갖거나 응원하지 않지만 그는 매일 다른 남성 전사들과 함께 숲으로 나가 사냥을 한다. 잘하는 게 많은데 왜 사냥을 하냐는 엄마의 물음에 나루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다들 내가 못할 거라 생각하니까.” 사냥은 나루의 꿈이자 동시에 자신을 증명하는 일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루는 마을 부근에서 미심쩍은 현상을 발견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의 흔적이 곳곳에 남은 것이다. 모두 사자의 공격이라고 넘겨짚지만 오직 나루만이 이상 존재를 감지한다. 그리고 외계 포식자 프레데터(데인 딜리에그로)를 본 유일한 목격자가 된다.
<프레데터> 시리즈는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무자비하게 사냥하는 외계 포식자와의 전투를 다룬다. 프레데터의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가면이나 고도의 기술력을
[리뷰 스트리밍] '프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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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극장가의 여름은 불볕더위도 녹일 수 없는 한파가 계속되는 분위기다.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조치가 풀리고 엔터테인먼트 시설 이용이 정상화되면서 다시 활기를 띨 것이라 기대한 것과 달리 2022년의 여름은 이례적으로 성수기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조용하다. 그런 가운데 관객의 발길을 잡아끄는 영화들이 있다. 주이룽 주연의 휴먼 드라마 <인생대사>는 6월 말에 개봉해 꾸준히 입소문을 타면서 누적 박스오피스 3340억원으로 저력을 보이는 중이고, 최근에는 거의 유일하게 여름 시즌을 책임지고 있는 상업영화 <독행월구>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특히 SF와 코미디 장르를 결합한 <독행월구>는 중국 코미디영화의 명가인 카이신마화에서 기획, 제작했으며 원작은 조석 작가의 웹툰 <문유>로 알려졌다. 개봉 12일째 박스오피스 3860억원을 넘기며 꽁꽁 얼어붙은 중국 극장가를 구할지 기대를 모은다.
반면 극장가의 한파에도 아랑곳없이 지난 7월 말부터
[베이징] 중국 청년영화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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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콘텐츠란 무엇인가? 사실 오리지널이라는 표현은 10년 전에는 없던 말이다. 넷플릭스가 <하우스 오브 카드>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과 같은 독점 콘텐츠를 확보하면서 오리지널이라는 표현을 붙인 것이 시작이었다. 콘텐츠를 가지지 못한 플랫폼들이 이 작품은 우리가 수급을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제작에 참여 혹은 판권을 독점으로 확보한 것이라는 마케팅 용어를 만든 것이라고 보면 된다. 넷플릭스가 미국 안에서 성공한 후 글로벌 진출을 꾀할 때, 콘텐츠를 공급하던 방송사, 영화사들이 ‘타도 넷플릭스’를 외치면서 콘텐츠 구매 단가를 상승시키고 장기간 확보를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제작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었다.
<기묘한 이야기> <킹덤> <오징어 게임>처럼 세계적으로 성공한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나오면서 후발 OTT 주자들도 플랫폼 내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를 울며 겨자 먹기로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원
[김조한의 OTT 인사이트] 방송사가 아닌 OTT가 살아남는 법은? '기묘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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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가 폐관 위기를 면했다. CJ CGV는 8월16일로 예정됐던 영업 종료 계획을 거두고 향후 2년간 운영을 계속 이어가기로 8월11일 최종 결정했다. CJ CGV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관객수가 감소한 데다 명동에 자리한 탓에 임대료가 비싸 영업 종료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황재현 CJ CGV 커뮤니케이션팀 팀장은 “팬데믹 기간 동안 극장을 운영할수록 오히려 상황이 더 어려워졌다. 다행히 임대인이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의 상황을 배려해 임대료를 조정하고 2년간 계약을 연장해주어 운영을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는 5관 모두 예술영화 전용 상영관이다. 명동역을 아트하우스의 성지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영화관 설립이 추진됐지만 예상과 달리 일반관 대비 좌석판매율이 저조했다. 올 3월 코로나19의 사회적 거리두기 기준이 완화되고 나서도 명동 상권의 회복이 더뎌 극장의 좌석판매율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이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2년간 더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