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짐 캐리가 일련의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다듬어온 고유의 페르소나는 영화라고 하는 픽션 속에 구축된 또 다른 픽션과의 관계를 통해 정의되는 경향이 있다. 편의상 여기서 전자의 것을 일차적 픽션, 후자의 것을 이차적 픽션이라고 해두자. 결론을 앞서 말해두자면 자신의 영화 속에서 짐 캐리는 많은 경우 ‘이차적 픽션의 수인(囚人)’으로 등장한다. 상업적인 코미디물인 <에이스 벤츄라> 같은 작품이건 좀더 진지하고 반성적 자의식이 두드러진 <맨 온 더 문> 같은 작품이건 마찬가지다. 물론 미셸 공드리-찰리 카우프만의 필모그래피 내에서 <이터널 선샤인>을 살펴보고 위치짓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겠지만, 짐 캐리라는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가로질러가며 그의 페르소나를 꼼꼼히 살펴보다보면 <이터널 선샤인>이 왜 (독창적이라기보다는) ‘영리한’ 영화라 불릴 수 있는 작품인지가 명확히 드러난다.
이차적 픽션=현실적 픽션의 경우
짐 캐리의 영화들은 각각의 작
탐정과 의뢰인이 같은 기이한 추리소설, <이터널 선샤인>
-
2002년에 만들어진 <시티 오브 갓>은 브라질의 빈민촌 ‘시티 오브 갓’을 무대로 폭력과 범죄의 아수라를 한 소년의 시선으로 묘사한, <펄프 픽션>과 <좋은 친구들>을 뒤섞어놓은 듯한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씌어진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 타란티노도 울고 갈 가공할 만한 폭력 묘사와 거리에서 직접 캐스팅한 어린 연기자들이 벌이는 생생한 연기, 그리고 뮤직비디오풍의 현란한 영상과 잘 짜여진 이야기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흥행에도 성공했고, 찬반논란 속에서도 높은 비평적 주목을 받았다.
흥미로운 건 <시티 오브 갓>을 두고 그 견해를 경청하고픈 국내 평자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엇갈렸다는 점이다. 이런 일은 간혹 있어왔지만, 이번에는 ‘현실’이란 의제를 두고 극단적으로 갈린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한 평자는 “폭력을 성찰한다는 구실 아래의 폭력 묘사도 폭력을 소비하는 역설”이라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평자는 “참혹한
간교한 유혹의 기술, <시티 오브 갓>
-
[정훈이 만화] <플라이트 플랜> 생활의 미스테리
[정훈이 만화] <플라이트 플랜> 생활의 미스테리
-
1978년에 나온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서양은 동양을 만들어냈다>라는 제목의 책이 프랑스에서 재간행되었다. 제목이 의미하는 것은 매우 명확하다. 사이드가 보기에 강단학자(대학교수들), 예술가, 여행자 등은 동양을 지리적 지역으로 고려하기보다 신비하고, 야릇하며, 특히 가능한 한 가장 낯설게 만들려고 해야만 하는 연구 주제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이어, 자신들이 만들어낸 ‘동양’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뿐이라고 믿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로 만들었다. 이 책은 “동양은 하나의 직업이다”라는 벤자민 디스레일리의 글을 인용하면서 시작된다. 이 말은 영화비평에서의 오리엔탈리즘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 중 몇몇에게 동양은 또한 하나의 직업인 것이 사실이다. 오리엔탈리스트 비평가의 전략은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1. 발견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기. 우선, ‘발견’의 문제와 이 단어의 엄청난 모호성이 제기된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즉, 한 나라
[외신기자클럽] 오리엔탈리스트 비평가의 전략 (+불어 원문)
-
-
인도의 대중영화가 변하고 있다. 그간 인도에는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예닐곱곡에 달하는 노래와 춤, 해피엔딩을 갖춘 대중영화와 샤티야지트 레이로부터 이어지는 리얼리즘 계열의 아트하우스영화, 두 종류의 영화만이 존재했다. 그러나 올해 뭄바이의 극장가에는 제3의 길을 선택한 영화들의 선전이 돋보였다. 해피엔딩을 보장하지 않는 이 영화들은 대중영화보다는 현실적이고, 아트하우스영화보다는 신랄하다. 이런 영화 중 올해 처음으로 대중적 성공을 거둔 <3페이지>는 이상성욕과 마약으로 점철된 뭄바이 상류층을 통렬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최근 일반적인 발리우드영화와 달리 복잡한 구성을 지닌 자신의 B급영화가 손쉽게 제작·투자자를 구하게 된 것에 대해 한 감독은 “5년 전만 해도 제작자를 찾지 못했을 것”이라며 달라진 현실을 반겼다.
이러한 변화는 1997년 이후 인도에 멀티플렉스가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입장료가 1.15달러인 일반 극장과 달리 멀티플렉스의 입장료는 평균 2.25달
발리우드 지각변동
-
세계 최대의 영화마켓인 아메리칸필름마켓(AFM)이 흔들리고 있다. <버라이어티>는 지난 11월13일치 기사를 통해 AFM이 커다란 변화의 물결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먼저, 지난 11월2일부터 9일까지 캘리포니아 샌타모니카 로스 호텔에서 개최된 올해 AFM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아시아권 영화의 거래가 미국권 영화의 거래를 압도했다는 사실이다.
올해 AFM에서 최고가 판매기록을 세운 작품들은 모두 아시아영화들이다. 중국 감독 펑샤오강의 신작 <향연>(Banquet)이 일본의 가가 커뮤니케이션에 500만달러라는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었고, IHQ가 제작한 한국영화 <파랑주의보>는 일본의 도시바에 370만달러에 팔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비아시아권 거래로서는 로베르토 베니니의 신작 <호랑이와 눈>이 100만달러에 판매된 것을 제외하고는 가시적인 성과가 거의 없었다. AFM 참가자들의 말에 따르면 마켓에 나온 대부분의 미국영화들이 재고정리
영화마켓인 아메리칸필름마켓(AFM)은 지금 노란불
-
영화 테크놀로지의 선구자 조지 루카스 감독이 <할리우드 리포터>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영화산업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혁신적인 생각을 밝혀 눈길을 끌고 있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최근 해적판이 판을 치고 극장수입은 감소하는 등 급변하는 영화계의 미래를 예측하기에 조지 루카스만큼 적합한 인물이 없다고 소개하면서 11월18일자에 인터뷰를 실었다.
루카스 감독은 “극장에서 상영중인 영화를 집에서 볼 수 있는 날이 곧 올 것이다. 이것만이 해적판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페이-퍼-뷰(Pay-per-view, 유료TV)’를 홈엔터테인먼트산업의 대세라고 강조하면서 아이튠(iTune)과 같은 유료 다운로드 시장이 산업구조를 뒤바꿔놓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에 “DVD는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2달러만 있으면 집에서 좋은 화질로 볼 수 있는데 무엇하러 밖에 나가 DVD를 사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또 그는 할리우드 영화의 엄청난 제작비에
조지 루카스가 전망하는 영화산업의 미래
-
“탑건이 HAL(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을 만났다”. <스텔스>를 연출한 롭 코헨 감독의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스텔스>는 전투기들의 화려한 공중전에 인간과 기계의 갈등을 버무려놓은 영화다. 보통 그런 식의 짬뽕 영화들이 그렇듯 작품성에 있어 후한 점수를 주긴 힘들지만 미래형 전투기들의 눈부신 액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환상적이다. <분노의 질주>에서 극한의 자동차 스피드를 보여줬던 롭 코헨 감독작답게 초음속의 아찔한 영상이 숨 돌릴 틈 없이 펼쳐진다.
미해군의 최신예 전투기 탤론의 파일럿으로 분한 할리우드의 신성 제시카 비엘과 아카데미상 수상자 제이미 폭스의 연기도 볼거리 중 하나. 국내 개봉 당시 국민감정을 고려해 후반부의 북한 관련 영상들을 삭제한 채 공개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이번 DVD판은 그 부분을 고스란히 담은 ‘무삭제판’이다. 북한 땅에 추락한 동료를 구하는 과정에서 미군들에 의해 북한군 초소가 쑥대밭이 되는 장면
<스텔스 SE> 초음속 액션의 종착지는 북한
-
잘 만들어진 한편의 드라마는 많은 것을 남긴다. 건강하면서도 엄격한 도덕률에 얽매이지 않고, 감동과 흥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가벼운 자극에 호소하지 않는 드라마는 그 자체로 뜻 깊고 잔잔한 묵상에 잠기게 한다.
19일 막을 내린 문화방송 <베스트극장> ‘태릉선수촌’이 그랬다. 6개월만에 돌아온 <베스트극장>이 이룬 꿈이었기에, 갈팡질팡 방황하는 문화방송이 가야할 길을 잘 보여준 미래였기에 충분히 반가웠다. 시청자들이 이에 합당한 호응을 보여준 것 또한, 그래서였다.
신선한 소재의 개성과 보편적 공감을 자아내는 이야기가 앞길을 텄다. 비인기 종목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의 애환 어린 일상은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만했고, 그들이 땀과 눈물로 일궈가는 일과 사랑은 깊은 공감을 선사했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소재의 특수성과 공감을 부르는 이야기의 보편성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드라마의 성공 요건이, 남달랐던 것이다.
작가와 연출자의 면면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점칠 수 있었
‘베스트극장’ 색다른 빛으로 돌아오다
-
‘짝퉁’ 두 남녀의 ‘진짜’ 사랑찾기
2년 전 폭스TV 리얼리티쇼 모티브 삼아
2003년 미국에서는 폭스티브이가 제작한 <백만장자와 결혼하기>라는 리얼리티쇼가 화제가 됐었다. ‘가난한 남자가 백만장자를 가장해 자신의 배필을 찾는다’는 내용의 이 오락 쇼는 국내 한 케이블 방송사를 통해 우리나라에도 소개됐다.
에스비에스가 이 리얼리티쇼를 모티브로 삼은 드라마를 방송한다. 주말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후속으로 26일부터 시작되는 <백만장자와 결혼하기>(극본 김이영, 연출 강신효)가 그 드라마. <백만장자와 결혼하기>는 중학교 동창인 평범한 남녀가 우연히 ‘백만장자’ 리얼리티쇼에 출연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다루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김영훈은 가난한데다 머리도 나쁘지만 인물 하나는 잘생긴 꽃미남이다. 마음씨도 착하다. 이런 영훈에게 방송국에서 텔레비전 리얼리티쇼에 나와 가짜 백만장자 노릇을 해달라는 제안이 온다.
SBS 새 주말드라마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26일 시작
-
이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올해 하이퍼텍 나다는 영화제 상영작을 제외하고, 다큐멘터리를 무려 4편이나 단독 개봉했다. 류미례 감독의 <엄마>를 비롯해 대니얼 고든 감독의 <어떤 나라>와 <천리마 축구단>, 그리고 페이크다큐멘터리인 <목두기 비디오>까지. 12월에는 다큐 <꿈꾸는 카메라>까지 개봉 대기 중이다. 2003년 <영매-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 2004년 <송환>의 장기상영과 흥행에서 얻은 자신감이 올 한해 ‘다큐 인 나다’라는 특별기획 프로그램으로 이어진 것이다. “국내 다큐 관객을 늘려보겠다”는 뜻에서 시작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큐에 대한 집중적인 애정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이겠다”는 의지와도 관련있다. 동숭의 정유정씨는 “내부적으로 감독전에 대한 회의가 있다”고 말한다. 이미 한 차례씩 선보인 적 있는 유명 감독들의 작품을 묶어내는 것만으로는 관객을 잡아끌지 못한다는 것이다. 얼마
작은 영화가 사는 법 [2]
-
[올드독의 TV감상실] 올드독이 TV보다가 울컥했던 사연
[올드독의 TV감상실] 올드독이 TV보다가 울컥했던 사연
-
프린트 400벌은 우스운 시대다. 프린트 제작에만 1억원 넘게 들이는 영화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모든게 와이드 릴리즈 때문이다. 멀티플렉스가 주도한 스크린 확장 기세도 당분간 속도를 멈출 것 같지 않다. 2004년까지 파악된 전국 스크린 수는 무려 1451개다. 5년 전 6만5659명이었던 스크린당 인구 수가 지난해에는 3만3483명까지 줄어들었다. 100개 이상의 스크린에서 개봉하는 대개의 상업영화들은 개봉을 앞두고 스크린을 하나라도 더 늘리기 위해서 안간힘이다. 반면, 예술·저예산 등 이른바 작은 영화들은 단관 혹은 소규모 상영관에서 장기 상영 기간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이다. 이들 영화를 보기 위해선 눈 씻고, 극장을 찾아야 한다. 때론 중소 배급사에 맡겨 50개 이상의 스크린을 확보하고, 많게는 억대 광고비를 지출하기도 하지만, 결과는 대개 참패로 이어진다. 간혹 멀티플렉스에 입성하기도 하지만 좌석점유율 미달이라는 판정과 함께 일주일을 채 버티지 못하고 밀려난다. 현재로선
작은 영화가 사는 법 [1]
-
대표적인 이탈리아 공포 영화 <서스피리아>의 세 번째 작품인 <제3의 마녀(Third Mother)>가 제작될 전망이다.
이 같은 사실은 최근 개최된 튜린 영화제에서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과 그의 동생이자 프로듀서인 클라우디오가 직접 밝힌 것으로, 아르젠토의 작품과 이탈리아 공포 영화의 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을 것으로 예상된다.
<제3의 마녀>는 소위 ‘세 명의 마녀’ 3부작의 마지막 영화로서 그 첫 편에 해당하는 <서스피리아>(1977년)는 마녀들의 본거지인 독일의 무용 학교를, 후속편인 <인페르노>(1980년)는 ‘세 명의 마녀’라는 책에 관해 조사하는 한 시인이 겪게 되는 끔찍한 사건을 다루었다. 제2편으로부터 무려 25년이 지나 제작에 들어가는 <제3의 마녀>는 3부작의 완결편으로서 아르젠토를 유명하게 만든 ‘살인 미학’의 결정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각본은 미국 출신의 애덤 기어래쉬와 제이스 앤더슨이
다리오 아르젠토, <서스피리아> 3편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