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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은 똑같다. 축소 모형, 부분 모형세트, 그린스크린과 블루스크린을 준비한 다음 배우를 갖다놓고 이렇게저렇게 찍어서 CG와 합성한다. <킹콩>의 프로덕션 노트도 그 익숙한 테크놀로지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나 그 안에서 피터 잭슨의 <킹콩>에 대한 비전을 엿볼 수 있다면 동어반복을 조금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반지의 제왕>을 통해 교훈을 얻었다. 판타지란 리얼리즘을 통해 구현됐을 때 가장 뛰어난 이야기가 된다는 사실 말이다. 관객과 캐릭터 모두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충실히 믿을 수 있을 때 가장 좋은 판타지영화가 된다.” 이 노트가 잭슨이 말한 ‘리얼리즘’의 한 도구로서 프로덕션을 이해하게 하는 작은 가이드북이길 바란다.
1. 뉴욕시
수증기 만들려고 땅 파고 배수관 묻고
<킹콩>의 오프닝 시퀀스가 감탄을 주는 이유 중 하나는 1930년대 뉴욕에 관한 디테일 때문이다. 빽빽한 자동차들과 뉴욕 시민을 보여주는 데 이어 다양한
피터 잭슨의 걸작 <킹콩> [3] - 프로덕션 과정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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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vs 부녀
피터 잭슨의 <킹콩>이 종의 경계를 벗어난 로맨스를 구현해내는 방식은 아예 로맨스를 벗어버리는 것이다. 33년작과 76년작은 ‘미녀와 야수’의 성적인 서브텍스트를 잔뜩 지니고 있었다. 33년작에서 콩은 대로우의 옷을 하나하나 벗겨서 냄새를 맡고, 76년작의 콩은 제시카 랭을 폭포수에 목욕시킨 다음 다분히 변태적인 눈초리(콩의 탈을 뒤집어쓴 특수분장가 릭 베이커의 눈초리)로 몸매를 감상한다. 하지만 피터 잭슨의 <킹콩>은 대로우과 콩 관계에 숨어 있는 성적인 함의를 피해간다. 잭 블랙의 표현에 따르면 “여배우를 자기 크기로 확대해서 범하고 싶어하는 발정난 젊은 숫고릴라” 같았던 이전의 콩과는 달리, 잭슨의 콩은 지치고 외로운 늙은이에 가깝다. 이빨은 빠지거나 삭아서 비뚤비뚤하고, 털은 바래서 헝클어져 있으며, 온몸에 상처자국이 가득한데다 뱃살은 애처롭게 출렁인다. 종족의 마지막 생존자(영화는 거대한 고릴라들의 뼈무덤을 종종 보여준다)인 그는 온갖
피터 잭슨의 걸작 <킹콩>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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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강추위가 이어지는 요즘 같은 때에는 이국적인 남국의 낙원으로 훌쩍 떠나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뉴욕 센트럴파크 동물원에 사는 네 마리 동물들 역시 인간이길 원했는지 스스로를 뉴요커라 칭하면서 야생의 마다가스카로 모험을 떠난다.
픽사의 아성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한 드림웍스의 최신 3D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는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다루면서도 본질적으론 <프렌즈>나 <사인펠드>같은 시추에이션 코미디를 지향한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쏟아내는 속사포 같은 말투가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어도 기발한 상황과 화려한 영상과 맞물려 독특한 재미를 자아낸다. <토요일 밤의 열기>나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의 테마곡이 절묘하게 쓰인 패러디들도 기가 막히다.
영상은 3D 디지털 애니메이션으로서 기대했던 만큼의 퀄리티를 보여준다.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깨끗하고 선명한 영상과 화려한 발색을 자랑한다. 야간 장면에서의 디테일
<마다가스카> 펭귄들의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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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이 빠지고, 눈이 튀어나오고, 심장이 멈추는 서사시. 어렵사리 시사회에 초대받은 팬들의 환호가 아니다. 이는 평소 모질게 쓴소리 잘하기로 유명한 <롤링 스톤>의 평론가 피터 트래버스가 보여준 호들갑이다. 과연 피터 잭슨의 <킹콩>은 비평가 양반들의 노쇠하고 차가운 심장에 9살짜리 어린아이의 박동을 되돌려놓는 영화적 경험에 다름 아니다. 피터 잭슨의 아내이자 프로듀서인 프란 월시가 술기운을 빌려 <뉴스위크> 기자에게 털어놓았던 “다른 감독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완전히(Fucking) 자포자기할 것”이라는 호언에서 거만함보다는 충만한 자신감을 읽어낼 수 있는 연유도 그 때문이리라. 순수한 오락으로서 스펙터클의 진경을 보여주는 <킹콩>의 전모를 살펴보고, 각각의 주요 시퀀스가 만들어진 과정을 통해 피터 잭슨의 비전을 살펴본다.
나는 세상의 꼭대기에 앉아 있다네. 영화가 시작되면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 오를 콩의 운명을 예감하듯 유성영화 <
피터 잭슨의 걸작 <킹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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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을 켤 때마다 보고 싶은 영화가 딱딱 나와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케이블TV의 영화전문 채널이 이런 컨셉이겠지만, 이른바 ‘아트영화’를 즐기는 시네필들에겐 그저 그런 상업영화나 들이대는 의미 없는 공간일 뿐이다. 세상에 아트영화만 24시간 틀어대는 공간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내 나중에 성공하면 시네마테크나 아트영화 케이블TV를 꼭 세운다.” 지금까지 만나 본 많은 시네필들이 항상 취중에 펼치는 공상의 나래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기는 그들의 면면을 볼 때 요원할 듯하다. 대신 오늘도 한국 씨네필들은 저작권의 감시를 피해가며 파일공유 사이트를 뒤지거나 아니면 아마존 같은 외국 사이트의 휘황찬란한 DVD 섹션에서 통한의 구입버튼을 클릭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20여년 전 미국 LA에서는 공상 속에서만 가능할 것 같았던 ‘아트영화’ 전문 케이블TV가 실제로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돈도 벌었단다. 이름하여 ‘Z 채널’. 잔 카사베츠의 다큐멘터리 <Z 채널-거대한 강
[해외 타이틀] <지 채널: 거대한 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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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얼 서스펙트>에 참여한 존 오트먼은 뛰어난 작곡가이자 편집자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주로 브라이언 싱어 감독과 함께 작업해 온 그는 <캠퍼스 레전드 2> 등으로 메가폰을 잡기도 하는 등 ‘다재다능’이라는 말의 의미를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인재. DVD에 실린 음성해설 역시 작곡가이자 편집자라는 독특한 위치에서 제작 과정을 분석하였기 때문에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영화를 바라볼 수 있어 흥미롭다. 그가 지적하는 작업 과정의 대표적인 고민거리는 저예산이기 때문에 충분한 양의 촬영분을 얻을 수 없었다는 것. 더욱이 버벌 킨트(케빈 스페이시)의 취조 장면과 같은 경우엔 촬영 때 실수로 필름이 오염돼 일부 컷을 확대하여 붙여넣어야 했다. 또한 <스타 트랙2>에서 한정된 세트로 우주선 전체를 보여준 효과를 상기하여 클라이맥스의 배 시퀀스나 주인공 일행의 강탈 장면에서는 하나의 장면을 여러 개로 분해한 뒤 적절히 활용하여 원래보다 훨씬 다양한 화면과 확장된 공
[코멘터리] <유주얼 서스펙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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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고전기의 장르 중 화려하고 거대한 시네마스코프 시대에도 생명력을 잃지 않은 건 뮤지컬이다. <오클라호마> <왕과 나> <지지> <남태평양> <메리 포핀스> <마이 페어 레이디> 등은 엄청난 상업적 성공은 물론 아카데미 무대를 휩쓸었다. <시민 케인>과 <위대한 앰버슨가>를 편집했으며, 감독으로서 호러, 누아르, SF, 드라마 장르의 매혹적인 작품을 만들던 로버트 와이즈도 1960년대에 이르러 두편의 뮤지컬을 연출한다. 살아남은 장인인 와이즈에게 뮤지컬은 필연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의 팬들은 1950년 전후의 작품을 더 사랑할지 모르지만,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 수상과 함께 경이적인 흥행을 기록한 <사운드 오브 뮤직>과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분명 와이즈 경력의 정점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미국 개봉 40주년을 맞아 DVD가 새로 출시됐다.
[명예의 전당] <사운드 오브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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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나무숲에 얽힌 봉애와 정순의 사연, 그 사연을 그대로 안고 살아가는 정순의 딸 화연과 그녀를 사랑하는 인서의 이야기를 그린 멜로영화. 스릴러 전문 감독으로 활약하던 유상욱 감독의 감성적인 멜로영화 <종려나무숲>은 세 여인의 각기 다른 사랑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DVD 타이틀은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되며, 유상욱 감독과 김유미, 조은숙의 음성해설, 인터뷰, 메이킹필름, 시사회 현장 영상을 제공한다. 아름다운 거제도 풍광을 감상할 수 있을 만큼 화질은 좋은 편이다.
사랑은 그리움의 숲이 되었네, <종려나무숲 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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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중이떠중이를을 끌어모아 드라마틱한 승리를 거머쥐는 스포츠영화들은 판박이처럼 비슷한 구석이 많다. <롱기스트 야드> 역시 다르지 않다. 교도소 안의 꼴통 죄수들을 훈련시켜 교도관들과의 풋볼 게임에서 이기는 뻔한 구성이지만, 사회의 루저들이 주류에 속한 이들을 제압하는 것은 늘 짜릿한 쾌감이 있다. DVD 타이틀의 음향은 영화가 지닌 흥겨움과 넘치는 남성적 에너지를 뛰어나게 표현한다. 스페셜피처로는 넬리와 스눕 도기 독 등 힙합 아티스트들이 참여한 뮤직비디오를 수록.
교도소 미식축구 구경하세요, <롱기스트 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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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가 된 루마니아의 한 수도원 지하 동굴을 조사하던 탐사대와 이들을 위협하는 괴물과의 혈투를 그린 B급 액션호러. 흡혈귀들의 고향 루마니아라는 지리적 특성을 기반으로, 동굴 속 괴물과 흡혈귀를 연결하는 아이디어와 우직할 정도로 밀어붙이는 액션이 볼 만하다. DVD 타이틀의 음향은 뛰어난 서라운드 효과로 동굴의 공간감을 잘 살리고 있다. 스페셜피처는 동굴 세트 제작 내용을 담은 ‘세트 제작과정’과 ‘케이브 속으로’란 이름으로 제공되는 실제 동굴 탐사에 관한 영상이 볼 만하다.
어둠 속 괴물들과의 서바이벌 액션, <케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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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이 온라인을 지향하는 시대에, 포털사이트 엠파스는 거꾸로 오프라인의 정서를 지향한다. 메인 사이트를 찾을 때마다, 따뜻함이나 친근함 같은, 인터넷과 무관해 보이는 단어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유저들이 좀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매일 얼굴을 바꾸는 스킨은, 이제 엠파스의 새로운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구글 등의 해외 사이트에서 특별한 날에 로고를 바꾸는 등의 시도를 선보인 바 있지만, 매일 혹은 며칠에 한번 특별한 행사나 절기 등을 일깨워주는 등 지속적인 변화를 보여준 사이트는 국내외를 통틀어 엠파스가 처음이다. 엠파스가 지난 3월부터 11월 사이에 선보인 스킨 중에서 30종을 선별, 특별제작한 ‘오프라인’ 스킨들로 다시 보는 <엠파스 매일 새로운 따뜻한 인터넷 세상전>을 12월 한달간 열고 있다.
이제까지 엠파스가 선보인 스킨들은 100여 가지로 다종다양하다. 절기와 기념일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단순한 캘린더 기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날씨와 생활
스킨 구경 오세요, <엠파스 매일 새로운 따뜻한 인터넷 세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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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돌아왔다. 1980년대를 마이클 잭슨과 양분한 한 시대의 슈퍼스타이자 20세기 팝 역사에서 가장 성공한 여가수인 마돈나가 돌아온 것이다. 33곡의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5종의 앨범 차트 1위, 2억 장의 음반 판매고 같은 숫자들은 마돈나의 성공을 일면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지난 22년간, 그녀는 언제나 찬반 논란을 자처하는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가식적이고 보수적인 통념을 정면돌파해왔다. ‘섹스 심벌’과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성’이란 두 가지 아이콘은 그녀가 매스미디어의 속성을 꿰뚫은 명민한 전략가이자 관리자란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 중 일부에 불과하다.
아직도 마돈나에 반감을 갖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를 역할 모델로 삼는 소녀들과 후배 여성 뮤지션들, 그리고 그녀의 지략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수는 계속 늘고 있다. 오히려 그녀의 음악적 재능은 현란한 음악 외적 이슈에 한참 가려져 있었는데, 이마저도 <Ray of Light>(199
무도장을 위한 ‘진실 혹은 대담’, 마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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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 기술이 빼어나서라고? 전혀…. 사실 황우석 교수팀이 성공했던 건 난자의 충분한 공급 때문이야. 미국이라고 기술이 떨어지겠어? 걔들 윤리규정이 엄격해서 제대로 실험을 진척시키지 못해서 그렇지. 결코 젓가락 기술 같은 게 뛰어나서가 아니야.”
MBC PD수첩 사건이 벌어지기 5개월 전쯤 한 대학교수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황 교수의 경쟁력을 분석하면서 그 강점으로 한국에서 사실상 생명공학에 대한 윤리규정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 따라서 난자의 공급에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관점을 엿볼 수 있었다.
그 얼마 뒤 또 다른 지인으로부터 들은 평가는 이와 다르지만 기조는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사실 그 정도는 별것 아니에요. 누구든지 시간이 지나면 할 수 있는 거예요. 오히려 문제는 그 이후 사람의 난치병에 적용하는 기술이지요. 그 분야에서는 좀 그렇지 않나요, 그 팀이?”
그 업적이랄까 평가를 우리 일반시민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대단히 낮게,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황우석과 그 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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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갓길 터키의 지방도시 파묵칼레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만난 지 5분도 안 돼 “내 딸이 되어 함께 살지 않겠니?”라고 물었다. “아내도 자식도 없는 내 인생에도, 문젯거리 하나쯤은 필요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누군가의 문젯거리가 되는 것엔 늘 자신있는 나는, 떠나는 내 손을 잡고 놓지 않는 마지막 장난에 못 이기는 척 넘어가고 싶었다. 터키에서 만난 모든 이들처럼, 나도 그 순간 낯선 길 위에 서고 싶었던 모양이다. 터키에서 이집트까지 여행한다는 씩씩한 한국인 자매, 여행길에서 만나 동행 중이라는 이탈리아 청년과 호주 아저씨, 지칠 줄 모르는 기세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인사를 건네던 일본 아가씨…. 그곳에선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배낭여행객들이 야간버스를 타고 오가며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물론 알고 있다. 그 할아버지는 받아들여질 리 없는 농담을 던졌을 뿐이다. 누군가의 실없는 농담에도 울컥 마음이 흔들리지만, 새로운 인연에 대한 설렘은 그로 인해 놓치게 될지 모르는 인연
[오픈칼럼] 인연을 챙기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