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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회장에서 춤추는 젊은 군인들을 보며 검은 상복을 입은 엉덩이를 흔드는 스칼렛을 보고 어떻게 반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어렸을 때 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아직도 내게 그의 엉덩이를 먼저 떠올리게 하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신밧드와 함께 사막을 가로지르는 파라 공주를 보는 순간 난 새로운 연인을 만났다. 사막의 뜨거운 햇살과 모래 바람을 가득 담은 화사한 노란 톤의 풍경, 그 속에서 아라비아 풍의 의상 위로 살짝 드러나는 도톰한 젖무덤을 가진 그는 현실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환상의 여인이었다. 러시아에서 온 파란 눈의 매력적인 스파이를 본 순간 이번에는 그가 나의 연인이 되었다.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트리플 엑스는 그 나이의 내가 가질 수 있는 모든 판타지의 총합이었다. 이집트의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오리엔트 특급 열차의 한 객실에서, 그림 같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는 바다 속에서 나는 줄곧 그를 따라다녔고, 그와 함께 하는 모험
[스크린속의 나의 연인] <아비정전> 장국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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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개봉하는 <달콤, 살벌한 연인>(손재곤 감독)은 <연애의 목적>이나 <광식이 동생 광태>를 잇는, 개성있고 참신한 로맨틱코미디다. 두 영화보다 유머감각과 독특함은 한 수 위다. 아래층 위층에 살면서 성격도 배경도 정반대인 남녀의 만남은 로맨틱코미디의 공식을 따라가는 것같지만 영화는 여기에 연쇄살인이라는 ‘난데없는’ 요소를 끌어온다. 이 난데없음이 드라마를 억지로 몰고갈 위험이 다분한데 오히려 두 요소가 부닥쳐 내는 불협화음을 이야기의 힘으로, 발칙하고 깜찍한 웃음으로 형질전환시킨다.
소심함의 카리스마= 서른살이 넘도록 연애 한번 못해봤으면서 그 이유를 연애의 상투성에 대한 혐오때문이라고 자위하던 대학강사 황대우. 그러나 뒤늦게 빠진 첫연애에 정신 못차리고 친구에게 “너도 키스할 때 입에다 혀집어넣고 그래? ”라고 속없는 자랑을 한다. 대사보다 지극히 ‘대학강사스럽게’ 말하는 태도가 더 웃긴다. 황대우를 연기한 박용우는 이처럼 영화 내내 어처구니
<달콤, 살벌한 연인> 주연배우 박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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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개봉하는 <빨간모자의 진실>(감독 코리 에드워즈)이 국내에서 개봉되는 외국 극장용 애니메이션 최초로 100% 더빙판으로 상영된다. 자막판 없이 150여개 스크린 모두 더빙판을 상영하기로 한 것이다. 한국 관객들이 전통적으로 극장에서만큼은 더빙 보다 자막을 선호해왔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뜻밖의 결정이다. 하지만 그 ‘뜻밖’의 ‘안팎’을 살펴보면 관객들의 기호와 영화판의 추세를 반영한 자연스런 선택처럼 보이기도 한다.
<빨간모자의 진실> 수입사인 쇼박스는 개봉 형식을 확정하기 전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통해 설문조사를 벌였다. 2분 가량의 더빙판과 자막판 예고편을 공개한 뒤 1만2540명의 네티즌에게 선호도를 조사했더니, 1만129명의 참가자가 더빙판을 지지했다. 자막판을 지지한 응답자는 2411명에 불과했다. 더빙판 지지가 80%를 넘었으니, 100% 더빙판 상영도 무리는 아니다.
예비 관객들이 더빙판을 지지한 가장 큰 이유는 강혜정(빨간모자), 김수미
[팝콘&콜라] 빨간모자의 진실 더빙 100%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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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쉬>는 올해 오스카의 가장 커다란 이변이었다. 리안이 감독상을 수상하러 연단에 오르는 순간, 사람들은 <브로크백 마운틴>이 당연히 작품상을 가져가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폴 해기스의 호기있는 데뷔작에 주목했던 미국 내 비평가들은 <크래쉬>의 수상을 그리 이변이라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다. 인종적 균열을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어놓는 휘발성 문제로 인식하는 미국인에게 온갖 인종과 계급과 마음이 충돌하는 <크래쉬>는 지금 가장 고통스러운 미국의 초상이었을 테니 말이다.
폴 해기스는 이미 1988년에 미니시리즈 <30대>(Thirtysomething)로 두개의 에미상을 거머쥔 TV계의 귀재였다. 그가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오던 TV를 떠난 것은 지난 2004년. 권투 매니저가 쓴 단편소설 하나를 장편으로 개작하겠다는 우직한 꿈 때문이었다. 캐스팅이 완료되고도 영화화가 지연되자 해기스는 각본을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보냈고, &
<크래쉬>로 오스카 작품상 수상한 폴 해기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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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냄새 밴 일상을 반듯하게 닦아내는 주부이면서 동시에 가녀린 흰 목덜미를 드러내고 흰 치마를 하늘거리는 판타지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철없는 가족을 생활로 이끄느라 악다구니를 퍼부으면서도, 피아노 앞에 앉아 남자들을 구원의 여인에 대한 환상으로 취하게 할 수 있을까. 이런 이율배반적인 연기가 가능한 한줌의 배우를 떠올리면, 어슴푸레 잔향으로 떠오르는 배우가 있다. 이따금 연극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곤 하던 김호정이 긴 휴지부를 마치고 영화 <모두들, 괜찮아요?> <피터팬의 공식>으로 안부를 물어왔다. <꽃피는 봄이 오면> 이후 오랜만의 봄나들이다. 10년 동안 감독 지망생인 남편을 거둬먹이는 악바리 무용학원장(<모두들, 괜찮아요?>)이면서 동시에 밑바닥까지 내려간 고등학생에게 구원의 여인으로 다가온 음악교사(<피터팬의 공식>)로서 말이다.
-2001년 <나비>로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상받은 이후 그리고 2004년
<모두들, 괜찮아요?> <피터팬의 공식>의 김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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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국 온 지 3일 됐어요.” 최지우를 한국에서 본 건 꽤 오랜만이었다. 그녀는 지난 4개월간 <TBS> 드라마 <윤무곡-론도>의 촬영을 위해 일본에 가 있었다. 2004년 일본에서 히트한 드라마 <겨울연가> 덕분이다. 슬픈 사랑에 눈물 흘리며 아름답게 미소짓는 극중 인물 유진은 일본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했고, 그녀는 어느새 그들의 ‘지우히메’가 되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녀의 이미지는 다소 심심했던 게 사실이다. 드라마 <천국의 계단>의 정서는 유진의 연장선 같았고, <피아노 치는 대통령>의 교사 역할도 그저 그랬다. 이제 그녀의 연기는 재미없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2006년 4월, 또 다른 멜로영화 <연리지>가 찾아왔다. 죽음을 앞둔 시한부 인생의 사랑 이야기다. ‘또 눈물멜로야’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치던 순간, 그녀의 항의가 들려왔다.
“이번 영화는 눈물샘만 자극하는 최루성 멜로가 아니에요. 혜원은 매우
유진을 넘어, 지우히메를 넘어, <연리지>의 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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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경계 위에 무엇이 있을까. 임권택 감독은 95번째 작품 <축제>를 통해 이 궁극의 물음에 대한 답을 던진다. 명망있는 작가 이준섭은 치매를 앓아온 시골 노모의 부음에 고향을 찾는다. 장례식이 진행되면서 87살 노모가 남겨준 사랑과 삶의 지혜에 준섭의 가족간의 갈등은 서서히 풀린다. “사는 일이 곧 한을 쌓는 일이며 한을 쌓는 것이 곧 사는 일이다”란 작가 이청준의 말이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부록은 예고편, 오리지널 포스터, 스틸 사진 모음으로 단순하다.
한평생 살다 죽는다는 것은,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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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네마스코프 방식, 창작애니메이션이란 명성과 함께 1955년 개봉 이후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클래식 애니메이션 <레이디와 트램프>가 플래티넘 에디션으로 출시되었다. DVD 타이틀은 월트 디즈니가 실제 자란 곳 마르셀린이 어떻게 영화배경으로 그려졌는지부터 캐릭터 탄생과 제작과정, 삭제장면 등을 부록으로 담아 디즈니 애니메이션 세계를 첫걸음부터 안내한다. 이중 삭제된 스토리보드를 재구성한 개가 인간을 애완동물로 키우는 ‘거꾸로 된 세상’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 거리를 준다.
개 한 마리 키우시죠? <레이디와 트램프 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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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당신 목소리가 들려요, 레슬리. 사망 3주기를 기념해 장국영 출연 작품들이 여러 편 DVD 타이틀로 출시된다. 메이킹 부록에서 장국영이 처음으로 일본 여배우랑 일해봤다고 말하는 <성월동화>는 국내 초콜릿 CF 배경음악으로 나온 그의 노래 <To YOU>처럼 달콤했던 배우 장국영을 떠오르게 한다. 부록은 감독과 배우들이 들려주는 제작현장에 관한 에피소드와 뮤직비디오로 다소 밋밋하나 장국영을 다시 본다는 감동을 주고 <Flame in My Heart> 등 올드팝의 선율이 가슴을 촉촉하게 한다.
언제나 그리운 장국영, <성월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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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 드 히미코>가 작은 기적을 이뤄냈다. 단관에서 다섯개 사이의 스크린을 오가며 상영된 <메종 드 히미코>는 현재 8만5천명을 동원했다. 스폰지하우스 단관에서 두달 동안 불러들인 관객만 3만4천명. 스폰지 조성규 대표는 “아직 좌석점유율은 꾸준하다. 현재 추세라면 10만명을 넘길 전망”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조 대표는 “장담할 수 없지만 앞으로 일본영화는 가급적 대규모로 개봉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검은 물 밑에서> <자토이치> <도쿄타워>를 와이드 릴리즈하며 일본영화에 대한 관객의 문화적 이질감을 실감했다. “지금도 문화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일본영화에 대한 선입견은 그대로”라고 조 대표는 말했다. “일본영화를 본 관객은 좋은 반응을 보인다. 다만 선입견으로 인해 애초에 보지 않겠다는 풍토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동아수출공사 김용진 실장은 말한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g
한국 영화시장의 일본영화 중간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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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캐스팅의 승리다. 강혜정, 김수미, 노홍철 등 특색있는 목소리의 연예인을 성우로 기용한 애니메이션 <빨간 모자의 진실>이 4월 둘째주 각 영화 예매 사이트의 예매순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4월 5일 현재, <빨간 모자의 진실>은 맥스무비, 예스24, 인터파크에서 40%가 넘는 예매율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2위와의 격차도 큰 편이다. <빨간 모자의 진실>의 뒤를 잇는 영화는 <달콤, 살벌한 연인>. 박용우, 최강희 주연의 이 영화는 티켓링크에서 근소한 차이로 <빨간 모자의 진실>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으며 다른 3개 사이트에선 2위를 달리고 있다. <오만과 편견> <청춘만화> <크래쉬> 등이 3위권을 형성하고 있으며 지난주 선두를 달렸던 <원초적 본능2>는 하위권으로 쳐진 상태다. 윤은혜 주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카리스마 탈출기>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빨간 모자의 진실> 예매 선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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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찾사>의 개그맨 문세윤과 ‘슈퍼 사이즈’로 알려진 래퍼 김용훈이 <천하장사 마돈나>에 뒤늦게 합류한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여자가 되고 싶은 뚱보 소년 동구가 성전환 수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씨름대회에 출전한다는 내용의 영화. 이들은 극중에서 동구의 씨름부 선배로 출연할 예정이다. 동구 역으로는 <웰컴 투 동막골>의 인민군 류덕환이 출연하고 있다. 8월 개봉 예정.
개그맨 문세윤, 래퍼 김용훈 <천하장사 마돈나> 캐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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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도 왜 이렇게 다 똑같은 거지.” 영화 속, 에디는 말한다. 그렇다. 뉴욕이건, 클리블랜드건, 플로리다건 그들에게는 다 똑같다. 뉴욕의 낡은 아파트나 클리블랜드의 눈 덮인 벌판이나 플로리다의 바람 부는 바닷가 모두 황량하긴 마찬가지다. 천국이라 알려진 아메리카 그러나 가난한 청춘에게는 그저 외롭고 고독한 땅.
짐 자무시의 대표작, 이제는 미국 인디영화의 고전이 된 <천국보다 낯선>은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쓸쓸한 유랑기이다. 한 여자가 헝가리를 떠나 미국에 온다. 뉴욕에서 두 남자를 만난다. 그녀가 떠난다. 이번에는 두 남자가 그 여자를 만나러 클리블랜드에 간다. 한 여자와 두 남자는 재회한다. 이들 셋은 함께 플로리다로 떠난다. 결국 이들은 각자의 길로 흩어진다. 두 남자가 도박이라는 우연의 게임에 돈을 걸듯, 여자가 우연하게 거액의 돈을 쥐게 되듯, 그들은 그렇게 매우 우연적으로 이별한다. 그런데 영화가 여기에 “신세계”, “일년 뒤”, “천국”이라는 제목
짐 자무시 영화미학의 시작, <천국보다 낯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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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작은 아씨들>인 주말연속극이 새롭게 선보인다. <애정의 조건> <장밋빛 인생>으로 시청자들의 눈물을 쏙 뺐던 문영남 작가가 딸 부잣집을 소재로 한 코미디드라마 <소문난 칠공주>로 새 단장하고 돌아왔다. 딸이라도 장교로 만들고 싶은 엄격한 군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덕칠(김혜선), 설칠(이태란), 미칠(최정원), 종칠(신지수) 등 ‘칠’자 돌림 네 자매가 만들어가는 사람 사는 얘기가 기본적 얼개다. 환경이나 세세한 성격은 다르지만 동생들을 아우르는 순종적이고 착한 첫째, 남자같이 씩씩한 둘째, 철없는 말괄량이 넷째 캐릭터는 <작은 아씨들>과 비슷하다. 다만 셋째가 공주과로 성격이 비뚤어졌고, 둘째와 이란성 쌍둥이(실제로는 아니다)라는 점이 다르다.
캐릭터의 이름을 보면 이 드라마가 ‘작정하고’ 웃기려 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칠자 돌림의 촌스러운 주인공 이름은 그렇다치더라도 모든 극중 이름이 연하남(설칠과 러브라인을 그
웃음보를 단 한국판 작은 아씨들, <소문난 칠공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