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 근처에 위치한 옛날 금광을 뚫다가 몇 백만년이 된 미생물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곧 북핵 생각이 났다. 대만 출신 연구자를 중심으로 한 연구팀은 3000m 깊이에서 오직 천연 방사능과 반응한 물과 광물에 의해 생산된 무기물을 토대로 최소 300만년에서 최대 2500만년 동안 거의 완전히 폐쇄된 공간에서 살아왔던 세균의 자율적 공동체를 발견했다. 즉, 햇볕을 비롯한 모든 외부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해온 생물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미생물들은 오래전에 지상 동종미생물로부터 분리되어 극히 한정된 환경에서 자가 영양의 삶을 유지해왔다는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연구자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자기만의 조용한 세상에서 햇빛과 세상의 시끄러움 속으로 옮겨지지 않고 지질학적 조건만 유지되었다면, 미생물들은 무한하게 그 어둠 속에서 살 수 있었을 거라고 한다. 비유하자면 왠지 우리가 지금 한반도에서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연상시킨다.
인간에 의해서 핵분열이 발명되었을 때만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인간의 핵심
-
“괴담은 깜짝 공포일 뿐, 공포 소설이 아니다”
-공포 문학의 매력은 어디에 있는가.
=공포 소설의 매력은 현실과 환상의 두 영역을 절묘하게 넘나들 수 있다는 데서 찾는다. 이를테면 환상이라는 갑옷에 몸을 숨기고 현실의 금기에 대항하거나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논리를 뛰어넘는 상상력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이 공포 소설의 강점이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고전 <지킬 박사와 하이드> <프랑켄슈타인> <드라큘라> 등은 환상과 현실의 금기의 절묘한 어울림으로 공포 소설의 장점을 극대화한 걸작들이다. 공포 소설에서는 상상하는 모든 것들이 가능하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에게 그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없다.
-책을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역시 공포다. 흔히 공포 문학을 테러 문학이라 한다. 즉 공포 문학은 글을 읽는 독자를 긴장에 빠트리고 가슴을 졸이게 만들 수 있는 충격과 의외성이 있어야 한다. 다행히 세상에는 그런 이야
한국의 공포문학과 공포영화의 미래 [2]
-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할리우드 영화로는 16주만에 영화통합전산망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다. 메릴 스트립과 앤 해서웨이가 출연하는 이 영화는 주말 사흘동안 전국에서 26만4천여명(영화통합전산망 집계)을 동원하며 외화로는 어렵사리 1위를 차지했다. 배급사인 이십세기폭스코리아에 따르면 239개 스크린에서 개봉한 <악마는…>은 10월29일까지 47만8950명을 기록하고 있다. <악마는…>과 치열한 경쟁을 펼친 장진 감독의 <거룩한 계보>는 29일까지 서울 30만5948명, 전국 121만6309명(이상 배급사 집계)을 동원하며 비수기 속에서도 순항을 펼치고 있다.
가족영화를 지향하는 <마음이…>는 배급사 집계로 주말 이틀동안 전국 28만명을 동원했고 29일까지 40명 가까운 관객을 끌어들였다. 이 영화는 서울 외 지역의 관람객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특징을 보였다. 일반적인 한국영화의 경우 서울과 지방의 비율이 1:3인데 비해 &l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정상 돌풍
-
첫 데일리였다. 올해 부산영화제 데일리 취재팀 막내로 합류하게 되면서, 선배들의 엄포성 멘트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너무 힘들어서 사무실 공기가 싸늘할 것이다”라는 말부터 “정말 지옥 같다”는 말까지. 솔직히 시작도 하기 전부터 겁이 났다. 물론 올해 전주영화제 데일리를 만들었던 경험이 있지만, 그때는 어디까지나 편집을 담당한 것이었으니까. 첫 데일리 취재, 그것도 부산영화제라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다. 부산 내려가기 전날 심하게 잠을 설쳤다. 줄잡아 2시간 정도 잠을 잤을까. 가는 열차 안에서 눈을 붙여야지, 하는 마음으로 KTX에 올랐다. 일찌감치 잠을 잘 태세를 취하고 있는데, 옆자리에 한 외국인 남자가 자리를 잡았다. 눈이 부시다며 블라인드를 내려달라고 부탁하던 그는 내가 영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때부터 나에게 말을 붙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3시간 동안 끊임없이 이어졌다. 부산역에 도착하는 순간, 모든 사물이 흐릿해 보였다. 마음
[오픈칼럼] 부산의 기억
-
-
올해 봄 런던에선 <아웃 원>을 포함한 자크 리베트 영화들이 상영되는 특별한 기회가 있었는데, BFI는 이를 기념하여 <파리는 우리의 것>과 <셀리느와 줄리, 배타러 가다>를 DVD로 출시했다. <파리는 우리의 것>은 클로드 샤브롤의 <미남 세르쥬>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에 들어가면서 첫 누벨바그 작품이 될 뻔한 영화였으나 여러 사정으로 몇년이 소요되다 1960년이 지나서야 개봉될 수 있었다(영화 속에서 셰익스피어의 <페리클레스>를 제작하려 애쓰는 연출가의 모습은 리베트의 그것과 다름 아니다). <400번의 구타>와 <네 멋대로 해라>가 지나간 자리에 등장한 리베트의 데뷔작은 혁명적인 누벨바그 영화들에 비해 다소 전통적인 외양을 지녔다. <파리는 우리의 것>은 죽음의 향기를 내뿜는 팜므파탈과 정치적 망명을 택한 미국인 작가, 자살한 스페인 음악가, 죽음이 예고된 젊은 연출가 사이에서 죽은
[해외 타이틀] 그들은 왜 파리를 소유할 수 없었나 <파리는 우리의 것>
-
<호텔 르완다>는 1994년 르완다에서 벌어진 대학살 현장에서 1268명의 목숨을 구한 호텔 지배인의 이야기다. 끔찍한 상황을 목격하던 우리는 학살의 주범인 후투족 자치군이 쫓겨났다는 마지막 문구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살아남은 자들은 르완다 밖의 사람들이 그날을 기억해주길 원한다. 그런데 장 뤽 고다르가 1964년작 <국외자들>에서 이미 언급했던 바- 톱으로 잘린 다리와 강에 떠오른 2만명의 시체- 르완다 학살은 비단 1994년에만 벌어진 게 아니며, 후투족과 투치족의 갈등 관계의 이면에는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강대국의 야심이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잊으면 안 된다. 한 사람의 희생이 수많은 사람을 살려낸 이야기가 감동을 주는 건 분명하지만 <호텔 르완다>가 아프리카의 정치 상황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부분은 지적되어 마땅하다. DVD는 시리도록 선명한 영상과 마음을 울리는 소리가 인상적이며 부록 또한 훌륭하다. 영화의 실제 인물인 폴 루세사바기
영화의 실제 인물이 진행하는 음성해설, <호텔 르완다: 특별판>
-
밤, 선희와 하룻밤을 보내던 중래는 술에 취해 모텔 문을 두드리는 문숙 때문에 놀란다. 새벽, 문숙을 피해 옆의 빈방으로 넘어가 선희를 보낸 중래는 문 앞에서 자고 있는 문숙에게로 돌아온다. 보기 드물게 괴상한 이 장면은 거의 신화적 풍경을 연출하는데, 쾌락의 정원에서 노닐다 귀환한 탕자는 ‘사람을 넘지 못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그의 죄의식은 지옥 유황불의 형벌이 아니라 ‘육체에 취해 이성이 잠잘 동안 괴물이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서 기인한다. 극중 감독은 자신이 그런 나쁜 이미지와 싸우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게 홍상수의 것이든 보통 남자의 것이든 고백이란 고심 끝에 어렵게 나오는 법이다. 어색한 상황을 묘한 자연스러움으로 넘어가던 홍상수의 영화가 <해변의 여인>에선 어딘가 쥐어짜는 듯한 건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 결과 <해변의 여인>이 여자의 영화로 완성된 건 아이러니다. 지옥을 두려워하는 남자를 비웃듯 여자는 지옥이 지루한 곳이라
홍상수 영화에서 승리한 여신을 발견하다, <해변의 여인>
-
첫 소설을 내고 가장 기분 나빴던 말은 ‘무라카미 류 같네?’ 하는 말이었다. 그 말이 마치 ‘합성이네?’라는 리플처럼 무책임하게 들렸다. 바나나만 읽은 사람은 바나나만 보이고 가오리만 읽은 사람은 가오리만 보인다. 그들은 어차피 다른 책을 읽어도 바나나와 가오리 독자의 시선으로밖에 작품을 평가할 수 없다. 일본 청과물 시장의 감수성이 위에서 장까지 그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들의 독서법은 합성주의다. 그들은 세탁기에 흰 빨래와 청바지를 함께 넣고 마구 돌려버리듯이 ‘이 작가’와 ‘저 작가’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쉽게 말해 자신의 빈약한 독서소비 실태를 들키지 않도록 ‘이 작가’를 가장 안전한 ‘저 작가’의 카테고리에 슬쩍 편입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평소 독서를 게을리하거나, 오독하는 사람들이 주로 저지르는 범죄다.
하지만 더 멍청한 독서법은 편식주의다. 편식주의자들은 유오성이다. 한놈만 팬다. 왜 한놈만 패는가? 간단하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인데다가 지성인이라면 책은 한달에
[이창] 우리 시대의 멍청한 독서법
-
생각해보면 나의 직장 초년 생활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드리아와 어느 정도 비슷했던 것 같다. 내 첫 직장은 잡지를 만드는 곳이었다. 첫 출근을 하면서 ‘고종석 같은’ 운운하며 멋진 글쟁이가 되겠다는 어설픈 야심을 가까운 친구들에게 떠들어댔다. 비서직이 아니라 기자로 출발했으니 앤드리아보다는 조금 더 쾌적한 출발이었다.
그러나 세상사가 내 뜻대로만 되는 게 아니어서 1년 반 뒤 나는 ‘뜻하지 않던’ 여성지에서 일을 하게 됐다. 언제 펑크낼지 모르는 모델과 스타일리스트 섭외에 전전긍긍하고, 내가 진행해서 찍어온 화보 사진의 필름을 들여다보며 미란다 프리슬리처럼 입을 오므리는 데스크 앞에서 전전긍긍하고, ‘그게 그거’처럼 보이는 열여섯쌍의 귀걸이 사진 프린트에 써야 하는 열여섯개의 사진설명에 ‘모던 앤 심플’밖에는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전전긍긍했다. 항상 내 머릿속에는 ‘왜 번듯한 4년제 대학을 나온 내가 이런 일을 해야 하지?’라는 불만이 가득 차 있었다.
투덜양,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며 직장 생활을 되돌아보다
-
지금도 그날 오후가 기억난다. 녀석은 바지춤에 손을 집어넣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뭐야? 그게.” 모든 게 낯설었던 새학기 첫날, 붙임성도 별로 없던 내가 먼저 말을 걸었던 건 순전히 녀석이 보고 있던 잡지 덕이었다. “응, 퀸. 한국에 올지도 모른대.” 오디오는커녕 워크맨도 없던 나는 녀석이 하는 말이 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퀸이든 송골매든 내겐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특히 녀석이 보고 있던 <월간 팝송>은 중학생의 눈에 시에나 마드레의 황금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날 이후 학교를 파하고 집에 가는 길엔 항상 녀석이 있었다. 그게 아니라 내가 졸졸 따라갔던가, 기억이 분명치 않지만 아무튼 우리는 친구가 됐고 나는 녀석의 추종자가 됨과 동시에 퀸의 열혈팬을 자처하게 됐다. 녀석은 퀸의 음반을 녹음해줬고 나는 녀석이 모아둔 <월간 팝송>을 숙독하며 말상대가 되기에 부끄럽지 않도록 성의를 보였다. 선민의식에 불타 있던 우리에게 마이클
[편집장이 독자에게] 팬이 된다는 것
-
한 시간짜리 테이프 500개, 녹취와 분류에만 1년
더디나마 변화는 있었다. 별도의 자격 시험을 거치면 이들도 일반 사립대학에 입학할 수 있고, 공립대 역시 총장의 재량에 따라 가능하다. 예전엔 불가능했던 일본의 각종 선수권대회에도 공식참가가 가능해졌다. 이 학교 역기부가 처음 전국대회 진출했을 때 우리 학생이 세운 전국 신기록은 공인기록을 인정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러나 당연한 걸 좋아졌다 말하려니 역시나 민망하다. 여전히 전국대회에 참가하더라도 다른 일본학교와 달리 숙박, 교통비는 지원받지 못한다. 외국인의 공립대 입학을 금지하는 법률에 대해 외국인학교가 항의했을 때 일본 정부는 미국 및 유럽계 학교에 대해서만 이를 허용했고, 이후 중국 및 대만계까지 입학을 허락할 때까지 전체 외국인학교의 60%에 달하는 조선학교는 여전히 노골적인 배제의 대상이었다고 김명준 감독은 말한다. 미움은, 우리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김명준 감독의 카메라가 담은 아
다큐멘터리 <우리 학교>가 탄생하기까지 [2]
-
진심은 마음을 움직이고, 편견을 거둔 이해는 새롭고 넓은 세계를 보여준다. 다큐멘터리가 지닌 힘은 그런 것이다. 10월27일 시작한 인디다큐페스티발 2006의 개막작 <우리 학교>는 힘있는 다큐멘터리다. 너무 예뻐서 오히려 슬픈 재일 조선학교의 일상을 담은 이 영화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얼핏 두서없는 듯하지만 누구보다 조리있는 수사를 구사하며, 영화 속 그들의 삶을 넘어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올해 부산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에서 상영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운파상을 공동 수상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촬영감독 출신 김명준 감독은 유명을 달리한 아내를 통해 시작된 인연을, 의심없는 진심으로 이어나간 끝에 <우리 학교>를 완성했다. 수상 소식을 동포에게 전할 수 있어 기쁘다는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신의 영화가 아니라 영화 속 친구들을 이야기했다. 길고 깊은 사연을 풀어내느라 때때로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행복한 미소는 변함없었다. 행복한 눈물과 절절한 미소의 진
다큐멘터리 <우리 학교>가 탄생하기까지 [1]
-
몰입의 쾌감을 선사한 뒤늦은 ‘카메오 데뷔’
기구한 카메오 출연사, <음란서생>의 심산
<비트> <태양은 없다>의 심산 작가는 <음란서생>으로 데뷔작을 데뷔작이라 부르지 못하는 한을 씻었다. 그는 <비트>에 차승재 싸이더스 FNH 대표와 함께 야구장에서 술마시고 주정 섞인 응원을 하는 아저씨로 출연했지만, 무엇이 문제였는지 편집 과정에서 모두 잘려나갔다. 그 다음 영화인 <라이방>에선 목소리와 뒤통수만 나왔고, 대사까지 있었던 차기작 또한 기구했다. “<음란서생>의 김대우 감독이 단편영화를 만들었는데, 여관에 애인을 데리고 와서 들어가느니 마느니 씩씩거리며 싸우는 아저씨를 맡았다. 그런데 감독이 영화를 아무한테도 안 보여주는 거야. 연습으로 찍은 거라 보여주기 싫다면서(웃음)” 주인공의 옆방에 들어 “무지하게 시끄러운 섹스를 하는” 연기를 목소리만으로 해낸 고난도 촬영이었지만 심산 작가의 진정한 데뷔는 2
영화인 카메오 9인의 촬영 에피소드 [3]
-
‘놀러갔다가’ 캐스팅, 긴급 투입 배우의 자존심
연출작보다 출연작이 더 많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모두들, 괜찮아요?>의 김태용
감독이십니까 배우십니까. 김태용 감독은 연출작보다 출연작이 더 많은 감독 혹은 출연작보다 연출작이 많은 배우다. 이송희일 감독의 <동백아가씨>에서 짙은 쌍꺼풀 훈남 연기로 만천하의 동성 관객을 혼절시키며 화려하게 영화계에 데뷔한 김태용 감독. 그의 최근작은 공히 영화감독 역을 맡았던 민규동 감독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과 남선호 감독의 <모두들, 괜찮아요?>다. 먼저 출연한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배우들의 “오디션 따라갔다가 캐스팅됐어요”에 버금가는) “촬영장에 놀러갔다가 캐스팅된 경우”다. 그런데 이게 참 쉽지가 않은 노릇이었다. 김태용 감독의 역할은 원래 대사도 없는 단역이었는데 배우가 대사도 없이 뭐 하냐는 닦달이 배우 주현에게서 마구 쏟아졌
영화인 카메오 9인의 촬영 에피소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