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디오 스타>를 뒤늦게 보았다. 사람들은 이 영화가 인간의 정서를 울리는 가장 인간적인 영화라고 평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 인간은 남자-인간이다. 올해 들어 남자 배우 둘을 내세워 남자들의 관계를 다룬 영화들은 많았다. 거기에는 반드시 폭력과 배신과 야망과 의리가 있고 결국에는 비극이 있다. 처음에는 관계의 순수성을 보여주고 결말로 갈수록 그 관계가 사회 혹은 비열한 욕망과 마주치며 어떻게 무너져내리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들 말이다. 그런데 <라디오 스타>는 두 남자를 주인공으로 앞세우지만 다른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에는 끈끈한 의리가 있지만 배신이나 폭력 같은 건 없다. 그 의리는 피로 맹세한 수컷 특유의 그것이 아니라, 칭얼거리고 받아주고 토라지고 위로해주는 내밀한 우정에 가깝다. 그것은 사회나 욕망 때문에 부서지는 관계가 아니라, 외부의 장애물로 인해 더욱 견고해지는 관계다. <라디오 스타>는 남자들을 전면에 내세운 이전 영화들과 적어
남자들만의 예쁜 유토피아, <라디오 스타>
-
강건한 사회주의자인 켄 로치는 그러나 열광자라기보다 냉담자에 가깝다. 그는 이상에의 열광 뒤에 감춰진 현실의 차가움, 적과의 뜨거운 대치가 끝나고 찾아오는 내적 분열과 혼란과 공허의 냉혹한 난제를 잘 알고 있다. 내 생각에 그 차가움을 견디는 그의 이념이 영구혁명론의 트로츠키즘이다. 영국의 보수적 일간지 <더 타임스>는 켄 로치를 나치의 프로파간다 영화를 만든 레니 리펜슈탈에 비유했지만 그건 부당하다. 켄 로치는 증오의 정치학에 호소하거나 나/우리를 이상화하지 않는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 켄 로치의 이상적 자아처럼 보이는 사회주의자 단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싸우는 상대를 알기란 쉽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에게 원하는 걸 알기는 어렵다.”
켄 로치의 영화는 부연설명이 필요할지언정 해석이 필요하진 않다. 그건 그가 원하는 것이다. 그는 모호성의 수사학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의 영화를 가장 잘 말하는 방식은 이야기꾼이 되어 그의 영화를 구연(口演)하는
켄 로치의 가장 슬픈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
일본 로봇 애니메이션의 걸작 ‘건담’의 OVA(오리지널 비디오 애니메이션)를 TV로 만난다. 애니메이션 전문 영화채널 <애니박스>는 오는 11월 셋째주부터 방영되는 <건담 0080 주머니속 전쟁>을 시작으로, <건담 0083 스타더스트 메모리>, <건담0083 지온의 잔광>, <건담 08 MS 소대> 등 걸작 건담 OVA 시리즈를 차례로 방영할 예정이다. 이번에 방영될 OVA 시리즈들은 단편의 형식을 띄고있기 때문에 건담 마니아가 아닌 일반 시청자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들. 애니박스는 OVA와 연계된 극장판 건담 시리즈 <밀러스 리포트>(Miller's Report), <라스트 리조트>(Last Resort)>까지 차후로 편성할 계획이다. 자세한 문의는 애니박스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건담을 TV로 만난다
-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 안고 자면 포근하고 베고 자면 편안한 덩치있는 녀석으로. 지나가는 말투로 오랜 숙원을 꺼내놓자 주변에서 하나같이 잔소리를 늘어놨다. 쉽게 말하면, 네가 어떻게 애완동물을 관리하겠냐는 거였다. 내게는 그 사람들의 입에서 생략된 말이 더 크게 들려왔다. 이렇게 정신없는 네가, 네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네가, 바쁠 땐 세끼 밥조차 잊는 네가, 네 방 청소도 안 하고 사는 네가, 새벽까지 회사에 눌러앉기 일쑤인 네가 등등.
얼마 전 단짝 친구가 집으로 가는 길에 토끼를 샀다고 했다. 까만 놈과 하얀 놈, 이렇게 두 마리인데 아주 귀엽고 예쁘단다. 지난주 회사로 가는 버스 안에서 문득 생각나 전화를 걸었는데 하얀 놈은 건강하지만 까만 놈은 죽었다는 비보가 들려왔다. 아무렇지 않은 듯한 친구의 목소리에 조금 충격을 받았다. 전화를 끊고 다시 차창 밖을 보고 있으려니 친구가 토끼의 시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궁금한 동시에 소름이 돋았다.
역시 두려운 것은 의무다.
[칼럼있수다] 함께한다는 것 혹은 책임진다는 것
-
-
<어느 멋진 순간>의 맥스(러셀 크로)는 런던 증권가에서 일하는 비지니스맨이다. 삼촌 헨리가 프로방스의 와인농장과 저택을 유산으로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맥스는 그길로 프랑스 여행에 나선다. ‘프로방스’(Provence)라는 이름은 흔히 야트막한 초목이 펼쳐진 아름다운 산등성이와 뛰노는 양떼들, 목동, 수줍은 소녀 등을 떠올리게 한다. 만화영화를 즐겨본 이들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하이디가 뛰노는 알프스 산맥이 독일령인데 반해, 프로방스는 부슈 뒤 론, 바르, 바스잘프, 보클뤼즈, 알프 마리팀 등이 포함된 프랑스 남동부를 가리키는 옛 지명이다.
원래 로마의 영토였던 프로방스는 동쪽으로는 알프스와 이탈리아, 서쪽으로는 론강, 남쪽으로는 지중해와 맞닿아 있다. 이같은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이곳에는 비옥한 토양부터 소택지까지 다양한 지형이 동시에 존재한다. 알프스, 모르, 에스테렐 같은 산맥과 접하는 등 유난히 산이 많아 이곳 주민들은
[배워봅시다] 소탈한 낭만의 공간, 프로방스
-
<광식이 동생 광태>의 광태
광식(김주혁)과 광태(봉태규)는 사이 좋은 형제건만 그들의 연애사는 극과 극이다. 대학 시절 짝사랑했던 윤경(이요원)에게 고백조차 못했던 광식과 달리 광태는 수많은 여자들을 섭렵한 선수 중의 선수. S라인이 돋보이는 경재(김아중)를 만난 뒤 그녀와의 연애에 돌입하지만 이번만큼은 쉽게 풀리지 않을 조짐이 보인다. 우연이 사랑으로 번져가던 중 몸만을 노렸던 광태가 사랑을 깨닫는 과정이 세심히 그려진다. 김주혁과 봉태규가 부모 없이 살아가는 형제로 등장, 소심한 연애와 대담한 연애를 각각 선보인다.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의 동현
엄마가 세상을 떠난 지 17년째. 동철동(백윤식)-동현(봉태규) 부자는 극심한 애정 결핍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미미(이혜영)라는 예쁜 이혼녀가 근처로 이사오자 다짜고짜 작업에 들어간 두 남자, 아빠고 아들이고 없이 저돌적으로 들이댄다. 한 여자를 둘러싼 부자의 다툼은 악의마저 불러오고 화가
[VS] 사랑의 포로, 봉태규!
-
수억명의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잘난 것도 죄라면 죄. 후천적인 노력이야 ‘인간승리’니 칭찬받아야 마땅한 일이지만, ‘신은 평등하다’는 명제에 의구심이 들 만큼 조물주의 편애를 듬뿍 받고 태어난 듯한 존재들을 볼 때면, 삶의 의욕이 꺾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발악이란 끝없이 그 대상을 갈구하거나, 아님 시기와 질투로 헐뜯기. 이러한 행위가 ①특정 다수의 공동체에서 ②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③발없는 소문으로 승화될 만한 꼬투리를 잡았을 때, 생기는 것이 바로 스캔들이다. 스캔들이 무르익기 위해서는 그중 ③번 조건의 영향력이 절대적인데, 대중의 호기심을 강력하게 자극하는 섹스 스캔들이야말로 스캔들의 지존. 그래서 꼽아봤다. 신이 내린 완벽한 외모와 몸매를 가지고,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으로 가족을, 동네를, 학교를,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는 스캔들 메이커들. 누가 누가 있을까?
5위는 <LA 컨피덴셜>의 린(킴 베이싱어). L
[Rank by Me] 경국지색, 스캔들 메이커
-
3. 그 배우가 아니네~
<엑스맨> <맨 인 블랙> <에이리언>의 공통점은? 속편 성공의 둘째 기준, 즉 같은 배우가 출연했다는 것이다. 관객은 감독보다 배우에 더 민감하다. 키아누 리브스, 엘리야 우드, 대니얼 래드클리프가 빠진 <매트릭스>나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시리즈를 상상이나 해보았는가? 키아누 리브스와 박중훈이 하차해 김 빠진 맥주나 다름없었던 <스피드2>와 <투캅스3>에 관객이 등을 돌린 이유다. 김 빠진 맥주는 만취한 손님에게나 팔아야 한다. 정신 멀쩡한데다가 여자친구 팔짱까지 끼고 스크린을 응시할 평균적인 관객이 바라보는 건 산드라가 아니라 키아누다(키아누와 결별한 산드라는 더더욱 아니다).
예외 <양들의 침묵>을 본 사람들은 렉터 박사(앤서니 홉킨스)만 기억하지 않는다. 스탈링 요원(조디 포스터)이 없었다면 렉터 박사의 존재도 그렇게 강하게 각인되지 않았을
속편의 패망 공식과 예외 사례들 [2]
-
세상엔 수많은 징크스가 있다. 손톱을 자르지 않아야 시험을 잘 본다든가, 녹음실에서 귀신을 봐야 음반이 대박난다거나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편만한 속편 없다’는 것보다 더 정확한 징크스가 또 있을까? 속편이라 함은 전편에 이어진 이야기를 뜻한다. <캐리비안의 해적> <매트릭스> <반지의 제왕> <스타워즈> 시리즈처럼 ‘다음 이 시간에’ 작전을 써서 영화가 새로 나올 때마다 기억력 테스트를 하게 만드는 게 속편이 할 일이다. 그런데 전편과 인과구조나 내용이 전혀 달라 과연 속편이 맞는지 의심되는 영화들이 있었고 더 말할 것도 없이 흥행과 비평에서 참패했다. <그루지2>의 개봉과 <마파도2> <동갑내기 과외하기2> <흡혈형사 나도열2>의 제작 소식만 듣고도 실패의 어두운 그림자를 느낀 관객도 있을 것이다. <데스티네이션>에서 어떻게 해도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처럼 속편은 언제나 망하게 돼
속편의 패망 공식과 예외 사례들 [1]
-
남자로 크기 위해 조폭으로 변신하다
“꽃미남은 부담스럽고 그냥 멋있는 놈이 되고 싶었다.” 조한선의 고백에도 고개를 내젓는 건 순전히 출연작 때문이다. 카메라폰 세례를 받는 학교짱 반해원(<늑대의 유혹>), 연인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던 전직 바람둥이 민수(<연리지>) 모두 순도 100% 꽃미남이 아니던가. 멋진 마스크의 소유자답게 조한선의 출발점은 서글서글한 성격의 동명 대학생(시트콤 <논스톱3>)이었다. 별다른 고민이 없어 보이던 유유자적한 청춘은 여고생들의 비명을 음악 삼아 스크린에 이식됐다. 순정만화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불량학생 반해원은 서늘한 미남자 정태성(강동원)과 더불어 흥행돌풍을 일궈냈고 조한선은 성공적으로 스크린에 안착하는 듯했다. 병든 여인을 사랑하는 민수(<연리지>)는 쉽게 예측 가능한 선택이다. ‘지우히메’ 최지우와 동반출연했음에도, 한층 길어진 머리를 드리운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은, 그러나 사랑을 지키는 데도
거친 두 남자의 스크린 성장 본능 [2] - 조한선
-
워너가 싸이월드와 손잡았다. 워너브러더스 홈비디오 코리아는 11월 7일 SK커뮤니케이션즈와 디지털 컨텐츠 유통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체결로 “워너브러더스의 영화 및 드라마는 내년 1월부터 SK 커뮤니케이션즈의 싸이월드와 네이트닷컴를 통해 유료 다운로드 서비스될 계획”이라고 한다. 이번 계약은 지난 11월 2일 MBC와 공동으로 합법적인 영화·드라마 다운로드 서비스 사이트 다운타운을 개설한 워너브러더스가 스트리밍 중심의 영화시장을 유료 다운로드 서비스 중심으로 재편을 꾀하는 행보로 보인다. 네이트닷컴이 내년부터 국내 포탈 중 최초로 영화다운로드 서비스를 시작하면 네이버, 다음을 비롯한 거대포탈들도 이러한 움직임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싸이’에서도 영화 다운받는다
-
진구와 조한선의 공통분모는? 고집스레 꽉 다문 입술과 담백한 눈매 정도? 이번 가을, 맹렬하게 성장 중인 두 남자의 교집합은 어느 때보다 눈에 띈다. <비열한 거리> <아이스케키>의 연이은 도착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던 진구는 2006년의 마지막을 장식할 최신작 <사랑따윈 필요없어>의 개봉을 기다리는 상태. 애정에 굶주린 남녀의 사랑담인 <사랑따윈 필요없어>에서 진구는 김주혁이 연기하는 ‘넘버 원 호스트’의 추종자 미키를 향해 갑작스레 방향을 틀었다. “쬐끄만 기집애 하나 땜에 맛이 갔구나, 완전히. 아주 환장을 하셨어! 돌았어? 여기 나타나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씨발. 죽고 싶지 않으면 정신 좀 차려!” 사랑에 비틀거리는 줄리앙을 향해 울먹이는 미키는 또 어떤 감흥을 일으킬까?
복수에도, 연민에도 뜨겁게 반응하는 이 남자는 시트콤 <논스톱3>로 이름을 알린 쿨한 조한선과 확연히 다른 느낌이라고? 소녀의 주먹질에도 강제로 입을
거친 두 남자의 스크린 성장 본능 [1] - 진구
-
당신들… 왜 나를 사랑하지 않아…!
이름 지수 국적 한국 나이와 성별 30대 여성 직업 없음 비고 <얼굴없는 미녀>는 <분홍신>을 신는다
‘경계선 장애’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정신증에 계속 시달리는 건 아닌데, 어느 순간 현실적 사고에 이상을 보이면서, 충동적인 행동을 하거나 감정 조절을 못하게 되는 정신장애죠. 이를테면 이런 경우를 봅시다. A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심하게 애정을 받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사근사근하고 친절하게 대하죠. 자신이 할 일이 아닌데도 나서서 도와주겠다고 하거나, 정도에 넘치는 관심과 친절을 베풀기도 합니다. 더 많은 관심을 받으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하죠. 그러다 상황이 꼬였다고 합시다. A의 과도한 친절에 사람들이 부담을 느꼈거나, A가 나서서 한 일이 잘못되거나, 거짓말이 들통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A는 모두가 자신을 욕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현실이 실제로 그런지와는 별개로요). 예민해진 A는
애정결핍이 뭇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 [2]
-
여러분 하이룽~ 방가방가! 정신과 전문의 한니발 렉터예요. 여러분의 쫀득쫀득하고 유쾌한 정신건강을 위해 강연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밥도 먹다 말고 달려온 참입니다. 뭘 먹었는지는 묻지마세요. 프라이버시라는 게 있으니까요. 뭐, 제가 기벽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병적 심리 분야에선 전문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걍 믿으세요.
오늘 강의 주제는 ‘애정결핍에서 비롯된 병리적 증상에 대한 사례 연구’입니다. 8개 케이스를 통해 애정결핍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살펴볼 거예요. 강의 전에 한 가지 확실히 해두고 싶은 게 있는데, ‘애정결핍’은 말 그대로 ‘애정이 결핍된 상태’를 말하는 것일 뿐 그 자체로는 절대 병이 아니라는 겁니다. 다만 여러 환경적 요인이나 개인적 특성으로 인해 애정결핍이, 경미하거나 심각한 병적 상상 및 행동을 유발하는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거죠. 물론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애정결핍이 병으로 발전됐다고 말할 수만도 없는 일입니다. 육체의 병이 그렇듯, 마음의 병도
애정결핍이 뭇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