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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들을 생각하지 않고 봤다면, <엑스맨: 최후의 전쟁>을 그런대로 재미있게 봤을 것 같다. 호쾌한 액션도 있었고, 새로운 엑스맨 ‘섀도우 캣’을 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하지만 속편은, 결국 전작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브라이언 싱어의 전작들이 워낙 뛰어났다. 브라이언 싱어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으면서도 차별받고 따돌림받아야 하는 엑스맨의 고뇌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자비에는 단순한 평화주의자가 아니고, 매그니토 역시 단순한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그들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자비에와 매그니토의 균형, 서로 싸우면서도 침투하여 하나의 궁극을 향해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곧 엑스맨의 분열된 자아였다. 브라이언 싱어는 <배트맨>의 팀 버튼, <스파이더 맨>의 샘 레이미와 함께 슈퍼히어로영화의 걸작을 창조한 감독이다.
<엑스맨…>에는 고뇌가 없다. 딱히 고뇌가 없다 해도, 크게 나무랄 일이
[B딱하게 보기] 재능의 차이를 탓할 수는 없지, <엑스맨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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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학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었다. 몇년 만에 본 친구들의 입에서 먼지 쌓인 이야기들이 터져 나왔다. 다섯 친구 중 셋 정도 결혼한 그룹의 여자들끼리 수다를 떨다보면 어느 틈에 유부녀 대 무부녀로 갈리게 된다. 유부녀가 다수일 경우, 대화의 주도권은 그녀들이 선취한다. 반지 하나를 보고도 ‘예쁘네?’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녀들은 뭐든 구체적이다. 플라티늄이네, 백금이네, 하던 반지 이야기를 드리블해가던 그녀들은 마침내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 혹은 남편 이야기로 골인한다. 오, 많은 시간이 흘렀어. 무부녀들은 침묵에 빠진 채 유부녀들과의 간격을 시간으로 환산해 재고 있다.
예전에는 그런 수다들이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누가 어디서 옷을 30% 할인해서 샀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싸게 먹는 방법이든, 내겐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일상적이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은 자극을 주지 못했다. 늘 식탁 한구석을 차지하는 김치처럼 식상했으니까. 스무살 무렵, 내게는 브라질의
[이창] 인생 안으로 부정합이 걸어들어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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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의 행복설계사는 떡잎부터 달랐던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여튼 필자는 소싯적 <마징가> <짱가> <날아라 태극호> <독수리 5형제> 등등의 각종 TV 만화영화를 보며 상당량의 투덜을 일삼았다. 왜냐. 그것은, 막판까지 거의 이길 듯 이길 듯 약을 올리다가, 단 한방에 역전을 허용함으로써 참패당하기를 매번 반복하는 나쁜 놈쪽의 역전패 행각 때문이었다.
필자의 투덜의 원인은 그러나, 단순히 패배 그 자체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럼 뭐냐. 위 만화영화들을 보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아시겠지만, 나쁜 놈들은 매회 새로운 전략과 병기를 개발하여 착한 편에 대항하는 고도의 진취성과 혁신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최후의 승리는 항시, 한두 종류의 로봇만을 이용, 매회 똑같이 반복되는 단조로운 공격 패턴만 고수하는 나태함과 매너리즘을 자랑하는 착한 편의 것이었다. 그나마 그것도, ‘비너스의 부상을 목격한 마징가가 갑자기 듣도 보도 못한 초인적 괴력
투덜군, <엑스맨: 최후의 전쟁>에 반복된 편파적 승부에 분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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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자들> <죽음의 리오> <심플맨>을 하나로 묶는 건 젊은이들의 춤장면이다. 인생의 한 절정을 구가하는 청춘은 그 환희를 춤으로 표현할 권리가 있다. 하나, 세 영화에서의 춤은 현실의 쓴맛이 묻어나는 것이어서 활력이 아닌 억압된 광기가 분출한다. 여기에 영화 한편을 더한다. 필립 가렐의 <평범한 연인들>이다. 더 킹크스의 <This Time Tomorrow>에 맞춰 춤추는 댄디한 모습의 일군의 젊은이들은 사실 68혁명의 패잔병들이다. 가렐은 그들에게서 혁명이 남긴 상처를 읽는다. 옆친구에게 “<혁명전야>를 봤냐”고 묻는 여자는 문득 스크린으로 얼굴을 돌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라는 이름을 말한다. 동지의 배신을 느낀 가렐이 비수를 날리는 순간이다. 가렐은 <몽상가들>의 주인공이자 자신의 아들인 루이 가렐을 다시 68혁명의 시간으로 끌고 가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화염병과 바리케이드의 밤이 카메라의
[해외 타이틀] 68청춘들의 환멸의 아리아, <평범한 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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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저메키스는 ‘속편은 전편과 같으면서도 달라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브라이언 싱어는 <엑스맨> 1편을 제의받았을 때 “만화가 원작이라고? 내가 왜 그걸 해야 돼?”라고 반문했을 정도로 회의적이었지만 <엑스맨2>를 전편보다 더욱 돋보이는 속편으로 승화시켰다. <엑스맨 2>의 가치는 차별과 소외 등 전편에서 제시된 여러 주제를 그대로 유지한 동시에 더 깊이있게 확장시켰다는 점. 이는 제작 전반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예를 들어 엑스맨 복장이나 매그니토의 의상은 전편의 디자인을 좀더 세련되고 착용하기 편하게 수정했으며, 거의 모든 옷에 문자 ‘X’를 활용한 도안을 넣었다. 온몸을 분장해야 하는 미스틱이나 새로 등장한 나이트크롤러는 분장 시간을 줄이면서도 좀더 위화감을 줄일 수 있는 개량이 시도되었다. 세트의 경우 실물보다 더욱 실물다운 백악관 집무실이나 댐 내부의 비밀 기지 등이 추가되었으며 규모도 커져 전편보다 훨씬 넓은 영화적 공간을 제공
[서플먼트] 전편과 같으면서도 다른 속편, <엑스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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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하지만 감동적인 이야기. 다리 부상을 이겨내고 경기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더 가슴 찡한 것은 결과에 상관없이 아이의 꿈이 깨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가족의 배려가 아닐까? 소박한 영화 탓인지 생각 외로 부가영상이 부실한 편인데, 영화 제작과정의 에피소드를 담은 존 개틴스 감독의 음성해설과 예고편이 전부다. 그의 해설을 통해서 원래는 주인공이 여자아이가 아닌 남자아이였으나, <맨 온 파이어>의 다코타 패닝을 보고 순식간에 마음을 바꾼 일화들을 들을 수 있다.
애마 소녀 다코타 패닝, <드리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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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한량 카사노바의 전설적인 엽색 행각보다는 그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 영화. 그 무엇보다 베니스의 풍광이 아름다웠기 때문인지, DVD 타이틀에 수록된 제작다큐멘터리에서는 아름다운 베니스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데, 심지어 베니스의 명소 챕터까지 마련해 도시를 소개한다. 더불어 촬영 당시의 애로사항, 뜻밖의 특수효과 장면들을 살펴볼 수 있고,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시대극 의상 제작에서는 캐릭터의 성격에 따른 의상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를 빠질 수 없다.
그는 만인의 연인이었다, <카사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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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무작정 뻔뻔하게 웃긴 짐 캐리는 없는 것 같다. 77년 제인 폰다와 조지 시갈이 주연한 동명 작품을 ‘엔론 스캔들’과 엮어서 리메이크한 <뻔뻔한 딕 & 제인>에서 짐 캐리는 <디제스터>의 테아 레오니와 짝을 이뤄 미국사회를 조롱한다. 특히 비열한 CEO로 분한 알렉 볼드윈의 비틀린 코미디 연기는 압권. 부록으로는 감독과 공동작가가 진행하는 코멘터리가 지루함 속에서도 건질 만하다. 마을 세트를 통째로 지은 일화 등 황당한 영화 뒷이야기와 어처구니없는 농담을 들려준다.
뻔뻔하지만 냉철한 짐 캐리, <뻔뻔한 딕 & 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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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 많기로 소문난 스티브 마틴은 간혹 글도 쓰는 모양이다. <쇼핑 걸>은 마틴이 쓴 중편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그의 내레이션이 앞뒤로 흘러나오는 한시적인 사랑 이야기 <쇼핑 걸>은 유명 중년 남자가 꿈꾸는 게으른 판타지 혹은 실제 경험담으로 보인다. 백화점의 복잡한 동선을 좇던 카메라가 베버리힐스의 귀부인들만 방문하는 고급 드레스 코너에 멈추면 그 앞에 한 여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다(사진). 드레스에 어울릴 최고급 장갑을 파는 미라벨은 화가를 꿈꾸지만 학비 대출금을 갚기에 빠듯한 평범한 도시인이다. 그녀에게 두 남자가 나타난다. 제레미는 변변찮은 직업에 변변찮은 외모를 가진 또래 남자다. 돈이 없는 그가 매번 구차하게 구니 미라벨의 마음을 뺏기는 애초에 글렀다. 그에 비해 레이는 부유한데다 근사한 매너까지 갖춘 중년남자다. 파티에 가자며 알마니 드레스를 맞춰주는 그로 인해 미라벨의 마음이 흔들린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무표정한 얼굴로 혼자
사랑도 쇼핑이 되나요, <쇼핑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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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에 <CBS>에서 <See It Now>를 진행한 에드워드 R. 머로는 이후 방송인들이 어김없이 그와 비교당해야 했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다. <굿 나잇 앤 굿 럭>은 머로의 경력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인 조셉 매카시와의 일전을 다룬 작품이다. 그런데 영화는 차갑고 정교할 뿐 열기가 없다. 영화의 시작점인 1953년 10월은 매카시가 스스로 무너져내리기 얼마 전인 게 사실이고, 그래서 양심의 대변자로서 TV의 진정한 역할을 숙고하던 머로보다 담배를 물고 ‘굿 나잇 앤 굿 럭’이라는 쿨한 멘트를 날리며 시청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가 잔상으로 더 머문다. 그것은 의식있는 연예인이 진행하는 한편의 부산한 쇼를 본 느낌에 가깝다. 악몽 같은 현실에 저항하다 생사를 넘나든 사람들을 수없이 목격한 우리로서는 머로와 매카시의 대결을 방송과 정치라는 두 권력의 다툼 이상으로 대할 수 없는 노릇이다. <굿 나잇 앤 굿 럭>은 1950년대에 작금의
한심한 TV를 향한 조지 클루니의 충고, <굿 나잇 앤 굿 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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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 감독의 신작 <거룩한 계보>가 촬영현장을 공개하며 실체를 드러냈다. 타고난 재담꾼이자 현실을 뒤트는 코미디의 대가인 장진 감독의 이 여섯 번째 장편영화는 여러 면에서 큰 변화를 느끼게 한다. 조직폭력배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조폭영화’라는 점에서부터 거친 남성들의 세계를 굵직한 스타일로 담아낸다는 면, 10여명의 캐릭터를 동시에 두드러지게 보여준다는 사실 등 <거룩한 계보>는 기왕의 장진 영화와는 다른 면모를 많이 갖추고 있다. 장진 감독과 두 주연배우 정재영, 정준호의 어깨너머로 <거룩한 계보>의 정체를 들여다봤다.
조직을 위해 큰일을 치른 남자가 감옥에 들어간다. 얼마 뒤 조직의 보스는 그를 배신하고, 분노에 떨던 남자는 복수를 위해 탈옥을 감행한다. 같은 조직원이자 절친한 친구는 남자와의 우정과 조직에 대한 충성 사이에서 갈등하고, 마침내 보스를 찾아온 그와 맞닥뜨리게 된다. 이 단순하고 전형적인 이야기가 장진 감독의 새 영화 <
<거룩한 계보> 촬영현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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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장르 단편영화 본선 진출작
엉뚱하지만 정교하게, 웃음을 터뜨리다
독특한 감성의 가족영화, <아버지 어금니 꽉 깨무세요>
최원석/ 16mm/ 22분30초/ 2006년
예로부터 가족은 애증의 대상이다. 그러나 장편이든 단편이든, 영화 속에서 가족의 갈등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일전을 앞둔 상대에게 맞을 각오를 하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말을, 태연스럽게 아버지에게 던지고 있는 이 영화는 좀 다르다. 동네 사람 모두가 피하는 돌아온 탕아, 무배는 이제 막 감옥에서 출소했다. 그를 고발하고 보험금을 타낸 그의 가족에게 무배의 귀환이 반가울 리 없다. 그런데 이 가족, 좀 이상하다. 아들의 복수를 피하기 위해 치매를 가장한 아버지도 대단하지만, 그런 아버지를 향한 일말의 애틋함도 없이 생삼겹살을 먹이거나, 교통사고 사기에 이용하려는 아들의 행태도 가관이다. 인정사정 보지 않는 이들의 대결은 연신 낯설고 날선 웃음을 선사하는데, 실제로는 어떻든지 간에 어쨌
제5회 미쟝센단편영화제 [3] - 추천작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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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드라마 장르 단편영화 본선 진출작
비정한 세상을 향해, 지독하게 혹은 나직하게
미묘한 페이스에 담긴 정서, <낫시리아>
이유림/ digi-beta/ 27분/ 2006년
늘 교정지와 씨름해야 하는 이혼녀 윤희는, 묵직하고 말없는 그 모습이 포클레인과 똑 닮은 포클레인 기사로부터 이라크의 낫시리아로 함께 떠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한여름엔 50도가 넘고, 온통 사막뿐이라는 그곳. 그러나 윤희에게는 엄마의 관심에 목마른 아들이 있고, 그런 아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며 채근하는 전남편도 신경 쓰인다. 추상적 의미를 다루는 여자는 뭔가를 만들어내는 남자가 왠지 끌리지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 윤희는 오랫동안 매달렸던 회사 일에서 가깝던 후배의 배신을 맛보고, 남자의 마지막 전화를 끝내 놓치며, 심지어 아들을 잃어버릴 뻔한다. 아들은 돌아오고, 일상은 시작되지만 하늘을 향해 뻗는 포클레인의 팔처럼 한껏 고개를 쳐드는 것은 쉽지 않다. 사뭇 밝아 보이는 윤희의 마지
제5회 미쟝센단편영화제 [2] - 추천작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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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를 통해 업그레이드된 단편영화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축제, 미쟝센단편영화제가 다섯 번째를 맞이했다. 오는 6월29일부터 7월4일까지 CGV용산에서 진행되는 이번 행사는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비정성시(사회드라마), 사랑을 위한 짧은 필름(멜로드라마), 절대악몽(공포판타지), 희극지왕(코미디), 4만번의 구타(액션스릴러)라는 부문별 명칭도 이제는 익숙하다. 올해 처음으로 눈에 띄는 이름이 있긴 하지만 송해성, 정지우, 박흥식, 박진표, 박찬욱, 류승완, 장준환, 박광현, 김성수, 오승욱 등 장르별로 2명씩 포진한 심사위원단의 화려한 명단 역시 눈에 익다. 그러나 점점 까다로워지는 관객의 눈높이 탓인지 올해 본선 진출작들의 면면은 한결 묵직하다. 유럽의 공포와 판타지를 모은 해외초청부문 ‘유러피안 나이트메어’, 노인들의 성과 사랑을 조명한 작품을 상영하는 ‘실버 멜로’, 5분 내외의 짧은 러닝타임으로 승부한 진정한 단편을 조명한 ‘5! 단편’ 등 초청섹션도 눈길을 끈다.
제5회 미쟝센단편영화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