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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의 유치원 원장님은 노처녀 선생님들 사이에서 외롭게 떠 있는 섬이다. 험상궂은 얼굴 때문에 뜻하지 않게 화를 내는 것으로 오해받고 아이들에게는 두목님으로 불린다. 하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보다도 큰 사람이다. 타고난 섬세함과 본의 아닌 터프함을 지닌 원장의 성격은 목소리를 덧입힌 성우 설영범의 연기 덕에 더욱 구체화된다. <곰돌이 푸>의 감성적인 호랑이 티거와 <이상한 나라의 폴>에서 버섯돌이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대마왕 목소리기 모두 설영범의 것이라면 원장님의 야누스적인 목소리 역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유치원 원장은 여자분들이잖아요? 아이들을 엄마처럼 따뜻하게 감싸주는 이미지를 갖고 있고요. 짱구의 원장님은 거칠게 생긴 남자지만, 그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이에요. 남들이 듣기엔 내 목소리에도 그런 모습이 있었나봐요. (웃음)”
베테랑이란 말을 붙이기에도 부족한 경력 30년의 성우지만, 설영범은 원
<짱구는 못말려>의 유치원 원장, <곰돌이 푸>의 티거 목소리 설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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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지하철 안에서 졸고 있던 당신은 아마 정차역을 알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졸음을 쫓아냈을 것이다. 퇴근 뒤에는 집에 돌아와 <무한지대 큐!>를 보며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 주말에 찾을 맛집을 알아보기도 했을 것이고, 밤에는 <비타민>의 그녀 덕에 몸의 이상여부를 각성했을지도 모른다. 성우 강희선의 목소리는 이처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일종의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시청자의 궁금증을 대신 풀어주는 그녀의 목소리는 낭랑하면서도 또렷하고, 빠르면서도 정확하다. 하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쉴새없이 뿜어대는 내레이션이 힘에 부친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멘트도 많지만, 잡아죽일 듯이 질러대잖아요. (웃음)” 1년에 한번씩 새로 녹음하는 지하철 안내방송도 힘들긴 마찬가지. “같은 음으로 노래를 부르듯” 일정한 톤을 계속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매일 저녁 에너지 가득한 목소리로 시청자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고객이 원하니까
지하철 안내방송, 샤론 스톤 전담 목소리 강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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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도 무너졌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06년 한국영화산업 결산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국영화의 해외수출 규모는 2451만 달러였다. 2005년 대비 무려 68%가 급감한 수치. 아시아지역 수출이 최초로 감소했고, 그 원인은 6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일본시장의 위축이다. 유일하게 성장한 해외시장은 태국 뿐이다. 일본에서 개봉한 한국영화의 부진, 장기전략 부재와 함께 북미시장 공략이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점은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영진위에 따르면 한국영화 개봉작들의 평균제작비는 편당 40.2억원으로 집계됐다. 2003년 이후 안정된 듯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제작비 10억 원 미만의 저예산 영화가 증가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제작비 상승이 둔화된 것처럼 보일 뿐이다. 작년 제작비 10억 원 이상 영화 83편만을 놓고 살펴보면 평균제작비는 51.1억 원. 2005년 67편의 평균제작비 48.8억 원에서 2.3억 원이 추가됐다. 분야별로는 마케팅비가 2.9억원, 18.7% 증
2006년 한국영화 수출 68% 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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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 검색창에 제목만 쳐도 동영상과 자막이 한 묶음으로 뜨는 시대다. 한데 유독 ‘한국어 버전’을 찾는 이들의 목소리가 높아질 때가 있다. 원작만큼이나 더빙판에 관심이 몰리는 상황. 그 대표적인 사례가 현재 애니맥스에서 방영 중인 <허니와 클로버>다. 한국의 유명 성우들이 일제히 포진한 한국어판 <허니와 클로버>에서 기청감(旣聽感)을 절로 자아내는 목소리 중 하나는 하나모토 교수. 귀가 밝은 이라면 포착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유쾌한 콧소리는 짱구 아빠와, 정갈하게 떨어지는 어조는 <ER>의 닥터 그린과 꼭 빼닮았다는 것을. 이래도 감이 잘 오지 않는다면 <아기공룡 둘리>의 명곡 ‘라면과 구공탄’을 떠올려보시길. “후루룩짭짭 후루룩짭짭 맛좋은 라면~”을 열창했던 마이콜, 그가 바로 성우 오세홍이다.
“성우 일을 한 지 벌써 만으로 30년째예요.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죠. 솔직히 내가 성
<아기공룡 둘리>의 마이콜 목소리 오세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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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스톱> <궁s> 등 이름만 시즌제 드라마인 한국형 시즌제 드라마의 현실과 한계
만들 당시부터 시즌제를 표방했고, 연출자와 세트는 같다. 그리고 제목은 ‘비슷’하다. 이 드라마는 시즌제 드라마일까 아닐까. MBC <궁> 뒤에 ‘s’를 붙여 나온 MBC <궁s>는 한국에서 시즌제 드라마 만들기의 ‘애매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예정대로라면 <궁s>는 <궁 시즌2>가 돼야 했다. 그러나 <궁> 1년 뒤 등장한 <궁s>는 제목도, 캐스팅도, 심지어 제작사도 다른 작품이 됐다. 같은 건 <궁>의 제작사에서 나와 새로운 회사를 차린 <궁>의 제작진이 <궁s>도 만든다는 것뿐이다. 미국 기준에서 <궁s>는 잘 봐줘야 <CSI>와 <CSI: 뉴욕>의 관계처럼 같은 설정을 가지고 만든 스핀오프일 뿐이다. 그러나 <궁s>는 ‘한국적인’
스핀오프와 시즌제 드라마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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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 직딩 생활백서
<오피스>(The Office)
동서양을 불문한 진실 하나. 직장은 지옥이고 상사는 악마다(어머 정말?). <오피스>는 미 동부의 침울한 소도시 스크랜튼에 위치한 제지회사 직원들의 일상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시리즈다. 얼마나 현실적인고 하니, 아예 다큐멘터리팀이 직장인의 삶을 취재하기 위해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촬영을 한다는 컨셉이다. 이른바 모큐멘터리(Mockumentary)드라마라 일컬을 만한 이 같은 설정에서 제작진은 과도한 극적 양념을 제거한 채 캐릭터와 상황만으로 승부를 걸고, 볼품없는 보통 샐러리맨들의 숙맥 같은 삶은 금세 브레히트적 슬랩스틱과 블랙코미디로 변한다. <오피스>는 원래 영국 <BBC>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고 미국에서도 인기를 모았던 동명의 시리즈를 리메이크한 작품. 솔직히 말해 미국판 보스 스티브 가렐보다는 영국판 보스 리키 저비스가 훨씬 악질적으로 웃기지만, 두 버전 모두 기절할
당신에게 추천하고 싶은 미국 TV드라마 시리즈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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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의 <로마>부터 정정훈 촬영감독의 <24>까지
미국 드라마의 놀라운 변화는 영화에 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는 충무로 영화인들 역시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영화인 10명으로부터 자신이 좋아하고 지지하며 즐겨보는 미국 드라마와 그 이유에 관해 들어봤다.
영화는 불가능한 거대 서사의 힘
<로마>(Rome) SBS 목요일 밤 1시30분, DVD 출시
TV를 안 본 지 4년째 되는데, “요즘은 할리우드영화보다 미국 TV시리즈의 완성도가 좋다”는 프로듀서의 강압에 못 이겨 보게 됐다. 그런데 막상 DVD를 플레이한 뒤 그 자리에서 12부를 모두 볼 수밖에 없었다. 졸려 죽겠는데 다음 디스크를 넣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그게 <로마>였다. 우선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만들거나 역사적 사실을 조금씩 뒤트는 재미가 대단했다(이를테면 시저와 클레오파트라 사이에서 나온 아이의 비밀). 그리고 영화가 도무지 따라잡을 수
영화인 10인의 ‘나의 베스트 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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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브룩하이머, 지나 데이비스, 마이크 피기스 등… TV 방송국으로 몰려드는 인재들
성격파 배우 제임스 우즈의 2000년대는 우울했다. 기억에 남는 영화라고 해봐야 <겟 쇼티>의 지지부진한 속편 <쿨!>과 패러디영화 <무서운 영화3> 정도가 전부였다. 들어오는 대본이 점점 뜸해지는 건 참을 만했다. 그러나 대본들의 질이 갈수록 형편없어지는 건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우즈는 B급 비디오 직행 영화계의 수렁으로 발목을 잡아채는 할리우드를 벗어나 새롭게 시작할 장소를 환갑의 나이에야 발견할 수 있었다. 브라운관의 세계다. “지난 몇년간 영화 산업이 처한 끔찍한 상황을 지켜보며 비통해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TV는 달랐다. 내가 젊었을 때만 해도 할리우드 사람들은 TV를 멸시했다. 요즘은 TV를 켤 때마다 놀라울 정도로 흥미진진한 시리즈를 매주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우즈는 <CBS>의 새로운 법정드라마 <샤크>에 출연하기로
할리우드발 TV행 엑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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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TV드라마가 한국에서도 전성기를 맞고 있다. 공중파를 통해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드라마만 소개되던 과거에 비해 케이블TV의 활성화와 다양한 DVD의 출시 등에 따라 한국에서 ‘미드’(미국 드라마) 팬들이 급속히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열혈 미드 마니아인 불법 다운로드족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한국 시청자가 <CSI> <24> <위기의 주부들> <로스트> <그레이 아나토미> 같은 최신 미국 드라마에 열광하는 데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최근 들어 미국 TV드라마가 ‘혁명’이라는 단어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나날이 변화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드라마의 과거, 현재, 미래를 미국 현지에서 조망해본다. 아울러 ‘혁명’의 중요한 힘이 된 창조적인 인물들과 한국의 영화인들이 눈여겨보고 있는 미국 드라마를 알아봤다. 또 한국에 아직 공식적인 루트로 소개되지 않았으나 돌풍을 일으킬 여지가 있는 미국 드라마를 소개하고, 한국에서
미국 드라마, 황금시대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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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의 설렘을 기억하는 여우
“그림 좀 다시 보여줄래요?” 아무래도 걱정되나보다. 손예진은 사진기자에게 자신의 표정과 자세가 ‘얹혀질’ 애니메이션 장면을 재차 보여달라 한다. 하긴, 스튜디오에 거울 하나 세워놓고 “자, 이제 여우비로 변신해주세요”라는 난감한 주문을 천연덕스럽게 소화하는 일이 쉽진 않을 것이다. “합성이 될 최종 그림을 상상하면서 표정을 지어야 하니까 좀 힘들긴 하죠.” 이런 난처한 경험이 처음은 아니다. 촬영을 끝내고 난 뒤, 손예진은 <천년여우 여우비>(1월25일 개봉)의 캐릭터 스케치만을 보고서 10살배기 소녀와 100살 먹은 오미호(五尾狐)로 수시로 둔갑해 갖가지 기성(奇聲)을 흘려야 했던 때의 곤혹스러움부터 털어놓는다. 덧붙여 자신의 목소리가 진기한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던 순간의 설렘과 기쁨에 대해서도 슬쩍. 난생처음 목소리 연기를 하면서 느꼈다는 그의 감정들은,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요요들과 함께 인간세계에 뛰어든 뒤 사랑이라는 낯선 기류
애니메이션 <천년여우 여우비>의 ‘여우비’ 목소리 연기한 손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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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1월17일
장소 대한극장
이 영화
마야문명이 쇠락해가던 때, 전사의 아들로 자란 ‘표범 발’은 아내와 외아들을 두고 부족 동료들과 평화로이 살던 중 타 부족의 기습을 받는다. ‘표범 발’의 부족보다 앞선 문명을 가진 그들은 인근의 또다른 부족까지 공격해, 성인 남녀들을 끌어간다. ‘표범 발’과 그 부족원들은 가뭄과 역병으로 황폐해진 땅을 구원해달라는 그들의 제사에 바쳐질 제물. ‘표범 발’은 부족 땅에 숨겨두고 온 아내와 자식에게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죽음의 제단을 극적으로 탈출한다. 침략자 부족의 장수는 제 아들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 ‘표범 발’을 집요하게 뒤쫓는다.
100자평
<아포칼립토>는 원시부족의 사냥 장면으로 시작하여, 평화로운 부족이 (마야 문명권의) 지배족들에게 습격당하여, 납치되고 도주하는 장면들로 서사의 몸통을 이루고, 마지막에 서양인의 배가 해안선에 닿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주인공 부족의 원시적 삶과 전투, 그들이 굴비처
야만의 관점에서 바라본 야만의 문명 <아포칼립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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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예매 사이트 맥스무비가 선정한 네번째 ‘최고의 영화상’이 발표됐다. 1월 2일부터 17일까지 온라인 투표로 진행됐고 맥스무비와 채널CGV가 공동주최하는 ‘최고의 영화상’은 총 10개 부문에 걸친 수상작을 1월17일 발표했다. 작품상은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에 돌아갔고, 감독상은 <괴물>을 만든 봉준호 감독이 차지했다. 외국영화상은 조니 뎁이 열연한 <캐리비안의 해적-망자의 함>이 거머줬다. 국내 최대 영화예매 사이트답게 이번 영화상 투표에 참여한 네티즌은 42만 5613명에 이르렀다. 국내 영화담당 기자들과 외신기자 50명이 투표했고, 올해 처음 신설된 기자가 뽑은 신인상은 <천하장사 마돈나>의 류덕환이 수상했다.
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 시상식은 2월 6일에 열리고 투표에 참여한 네티즌이 직접 시상한다.
수상내역
-최고의 작품상 <라디오 스타>
-최고의 감독상 <괴물> 봉준호
-최고의 외국영화상 <
네티즌, <라디오 스타>와 봉준호를 선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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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동에 사주카페가 성업 중이라고 한다. 고객의 대부분이 대학교육을 받은 20~30대라고 한다. 점치는 성향은 대략 학력과 반비례하는 걸로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내가 아는 한 역술인에게 들은 얘기로는 한국에서 가장 점을 안 치는 부류는 농부들이다(어부나 광부도 마찬가지일 게다). 가장 점을 자주 보는 사람은 사업하는 사람들이다(정치가나 연예인도 여기 속하지 않을까?). 그에 따르면 점치는 성향과 관계가 있는 결정적 변수는 학력이 아니라 직업의 성격이다. 나는 이 경험적 통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농부가 점을 안 치는 건 점을 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농사는 절기에 따라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고, 노동의 성패는 자신의 성실성에 달려 있다. 변수가 있다면 돌발적인 기상 상황이다. 이 사태는 농부 개인의 힘으로 예방이 어렵다. 그래서 농부는 미래를 알고자 하는 대신 좋은 미래를 무작정 기원한다. 비를 달라고 기도하는 기우제는 일종의 기도이다. 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음악카페)-(사주카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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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했냐고 물어보면 딱히 할 말은 없다. 스물일곱 나이가 너무 아깝다고 버럭 화를 내던 친구도 있었으나 그저 자연스럽게 찾아왔다는 느낌. 가끔은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막막해 씩 웃어 보이곤 했다. 어느 순간 왜 하려는지조차 잊은 채 12월9일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린 듯도 하다. 한달여가 지난 지금은 “결혼하니까 어때?”라는 질문을 받는 순간에만 내가 기혼녀라는 사실을 가물가물한 기억의 저편에서 끄집어내곤 한다. 12월9일 이후 주위 사람들은 내가 화성인이라도 된 양 어색해하지만 현재의 내 생활은 스물일곱해 중에서 그나마 평온한 쪽에 속한달까.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혹은 가장 아름다운 신부.’ 이런 최상급의 단어들은 한번도 꿈꾼 적 없던 인생이었다. 천상에서 내려온 것 같은 순결한 웨딩드레스나 꿈결처럼 종이 울리는 아름다운 결혼식 따윈 내 바람과 멀었다. 가족과 직장 동료들 앞에서 사랑 운운하는 낯간지러운 선서를 해야 한다니 상상만 해도 괴로웠을 뿐. 사실 내가 꿈꿔왔
[오픈칼럼] 결혼의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