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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리브스는 1950년대 미국의 영웅이었다. 1951년부터 58년까지 방영된 TV시리즈 <슈퍼맨의 모험> 하나로 리브스는 18년간 무명에 가까웠던 배우 생활을 청산하고 단숨에 미국 모든 서민 가정과 아이들의 꿈이자 이상이 되었다.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91%까지 치솟았다. 소년들의 방에는 슈퍼맨 타이츠가 하나씩 구비되어 있었다. 8년간 리브스는 다른 영화들에 출연해서는 대중과 할리우드의 인정을 좀처럼 받지 못했다. 리브스는 <슈퍼맨의 모험> 첫 방영 무렵에 이미 MGM의 사업부장 에드거 매닉스의 아내이자 8살 연상인 토니 매닉스와 연인 관계를 지속 중이었는데, 할리우드의 모든 이가 알았지만 공식화된 적은 없는 이들의 관계는 1958년 중반 리브스가 젊은 배우지망생을 사귀면서 끝났다. 이듬해 6월16일 리브스는 자신의 침실에서 관자놀이에 총알이 박힌 채 발견됐다. 공식적으로 조지 리브스는 자살했다.
타살에 관한 의혹과 주장들에 여전히 제기되고 있는 조지 리브스
위험한 진실, 할리우드의 이면 <할리우드 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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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나 도쿄에서 2년째 자취 중인 청년 쇼(에이타)의 생활은 무기력하다. 이는 여자친구 아스카(시바사키 고우)도 확인하는 바다. “너랑 있으면 사는 게 재미없어. 아니 사는 게 싫어져.” 그러던 어느 날 쇼는 조그맣고 흰 상자를 든 아버지의 방문을 받는다. 상자 안에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고모 마츠코(나카타니 미키)의 유골이 들어 있다. 20대에 집을 나간 그녀는 53살에 이르러 아라카와 강변에서 맞아죽은 시체로 발견됐다. 아버지의 당부로 망자의 아파트를 정리하던 쇼는 고모의 유품과 지인들의 회고를 통해 명랑한 소녀가 ‘혐오스런 마츠코’라고 이웃에게 불리기까지 걸어온 가시밭길을 알게 된다.
성실한 고교 음악교사였던 20대의 마츠코. 그녀는 수학여행 도중 절도 사건이 일어나자 학생 류 요이치를 감싸려고 어리석은 판단을 내렸다가 누명을 쓴다. 비극의 주인공으로서 그녀가 가진 성격의 치명적 결함은 상대방을 일단 기쁘게 해주고 보자는 충동. 그리고 윽박지르면 마음에 없는 일을 해버리
삶의 달인 마츠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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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어떤 영화들은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스쳐지나간 그곳에 흘린 것은 없는지, 놓쳐버린 것은 없는지, 잊은 것은 없는지. 기억을 헤집으면 아스라이 떠오르는 잔상들이 쓰지 않던 감각을 일깨운다. 오즈 야스지로, 나루세 미키오, 허우샤오시엔, 에드워드 양 등 이런 영화의 대가들은 노스탤지어에 투항하는 법이 없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되 향수에 머물지 않고 후회와 탄식의 눈물을 자아내는 경지를 보면서 사람들은 ‘거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곤 한다. 임권택의 <천년학>은 그런 영화다. <씨네21> 27쪽을 할애한 이번 특집은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를 기념하는 의례적인 기사가 아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감독 임권택에 대한 예의 이전에 <천년학>이 걸작이기 때문이다.
<천년학>은 사연 많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도, 소리라는 사라진 예술에 관한 이야기로도, 인정사정 볼 것 없던 한국의 근대화에 대한 이
[편집장이 독자에게] 걸작 <천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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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프롤로그를 제외하면, <극락도 살인사건>을 여는 첫 번째 컷은 멀리서 바라본 극락도의 전경이다. 검은 파도를 겹겹이 두른 그 모습은 고집스럽게 입을 다문 누군가처럼 비밀스럽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소년탐정 김전일>(의 첫 번째 에피소드인 <오페라 극장 살인사건>) 등 밀실연쇄살인 추리물의 대표작들 역시 모두 등장인물이 외딴섬에 도착하면서 시작한다. 스무명을 넘지 않는 등장인물이 하나씩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고, 시체 수에 비례하듯 남은 이들의 갈등과 광기는 증폭되며, 인간의 추악한 욕망 혹은 본성이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섬이라는 물질적 공간은 심리적 공간이자 주제를 은유하는 공간으로 확장·변주된다. 제한된 공간 속 익숙한 얼굴들 중 누군가가 범인이라는 공포가, 눈앞에 펼쳐진 지옥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절박한 고립감이, 섬이라는 공간을 택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 제목이 자신이 속한 장르와 심지어 줄거리의 일부까지 명시하
순수한 장르적 쾌감 <극락도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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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2004년의 늦여름이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로프트> 촬영현장을 3일간 따라다니며 나카타니 미키와도 꽤 오랜 시간을 동행하게 됐다. 절정의 인기를 누리는 일본의 여배우란 다가서기 힘든 인종일 것이라 지레짐작한 탓에 말을 걸기가 쉽지 않았다. 유들유들한 척이라도 해볼까. 고민하는 사이 나카타니가 한국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능숙하지는 않으나 정갈한 한국어였다. 자연스레 화제가 <역도산>으로 흘러가자 나카타니가 반색하며 또박또박 찬사를 내뱉었다. “설경구야말로 진짜 배우. 괴물 같은 남자.”
그로부터 1년 뒤 나카타니 미키는 <역도산>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존경하는 괴물 설경구와의 협연이 얼마나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는지 인터뷰마다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하지만 <역도산>은 두 나라에서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놓지 못했고, (<로프트> 취재 당시 슬쩍 들었던 이야기에 따르자면) 톰 크루즈 주연의 <라스
진짜 배우!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나카타니 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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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여름 <불량공주 모모코>가 개봉했을 때, 다케모토 노바라의 원작 소설 <시모쓰마 이야기>를 먼저 읽었던 사람들은 정상적인 방법의 영화화가 가능하지 않으리라 예측했다. 하지만 중고 신인 나카시마 데쓰야는 CF의 순발력과 순정만화의 감성을 무기로 원작 소설의 달콤함을 어른의 성장영화로 치환해내는 재주를 부렸다. 다음에도 이런 식의 영화 만들기가 가능할까. 사람들이 묻는 사이 나카시마 데쓰야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들고 찾아왔고, 결점 가득한 여인의 비극을 초현실주의적인 손길로 감싸안으며 관객을 웃기고 울린다. 혹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영화적인 실험이 사라진 시대에 당도한 새로운 세대의 영화는 아닐까. 영화평론가 김봉석이 나카시마 데쓰야의 지난 궤적과 영화적인 힘을 짚어보았다. 절반의 몫을 해낸 괴물 같은 여배우 나카타니 미키를 돌아보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혐오스런’이라는 형용사는 그녀의 일생이 아
달콤하고 유쾌한 비극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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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간>이다. 그리고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다.
일찍이 기지촌과 매음굴, 군대와 절 등 한국사회의 주변부를 거침없이 내달리며 온갖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김기덕의 발걸음은 이제 물 한가운데 고립된 <섬>을 건너 <빈 집>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급기야 그의 영화적 공간은 서너평 남짓한 좁은 감방 안으로 축소된다.
10년 전 가을, 단풍 든 설악산에서 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던 연은 사형수 장진을 찾아가 얼마 남지 않은 그의 시간을 연장해주는 대신 자신의 행복했던 시간을 되돌려받고자 한다. 그들의 과거와 미래가 이렇게 엇갈리는 바, 그들은 좁은 면회실 안에서 처절하고 절박하게 욕망과 기억의 무화된 시간들을 복원해내고자 애쓴다. 이렇게 확장된 시간은 그동안 김기덕이 꾸준히 공간을 축소하고 지워내는 가운데 발견한 새로운 길의 모습이다. 따라서 그의 열네 번째 영화 <숨>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숨> 영화평 ④ 공간의 축소, 시간의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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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의 <숨>을 보고 시사회장 밖으로 빠져나오는데 <씨네21>의 정한석 기자가 물었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적이라기보다는 연극적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숨>의 스토리 라인은 비교적 간명했다. 한 여자가 있다. 남편의 외도에 상처받은 여자. 이 상처가 여인으로 하여금 유년 시절 익사 직전의 몽롱했던 5분간의 죽음의 기억을 되살린다. 외적 상처가 내적 죽음의식으로 치환되고, 그것이 다시 가족을 죽였으나 이제 자신이 죽을 처지에 있는 사형수에의 관심과 몰입으로 이끈다. 그리고 이어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여자의 사계 퍼포먼스는 시간을 압축하는데, 그것이 사형수의 입장에서는 상징적인 형태로 삶을 연장시키고 재생시키는 희생제의처럼 보였다. 사실 영화의 끝에서 그 사형수는 한 어린 죄수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재생하는 것은 사형수만이 아니다. 여자 역시 그랬다고 나는 생각했다.
앞에서 나는 이 영화가 연극
<숨> 영화평 ③ 초월자의 눈이 바라보는 완벽한 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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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의 영화를 거의 다 봤지만 볼 때마다 한편의 영화를 되풀이해서 보는 인상을 받는다. 그건 그가 아주 절실하게 하고 싶은 말이 있고, 집요하게 그 얘기를 하기 때문일 게다. 동시에 그 얘기가 세상에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일 게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방식으로 하기에 사람들은 좀체 그에게 귀를 내주지 않는 것일까?
내 개인적 경험을 얘기하면 이렇다. 나는 늘 김기덕이 자신과 동일시하는 인물들과 적으로 배치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는 도무지 따라갈 수 없는 위치에 자신의 진지를 구축한다. 계급적으로, 개인사적으로, 심리적으로, 웬만한 인간은 동일시가 불가능한 지점까지 달아난다. 거기서 그가 바라보는 세계, 즉 사회구조는 거대한 악의 구조물이고 나는 그 구조물의 일부로 자리매김된다. 다행인 건 이 악의 구조물과 맞서는 그의 전략이 사정거리 미달의 자살테러란 점이다. 그는 세계를 적으로 간주하지만 그 적에 대한 직접적 공격과 공격을 위한 연대에는 별 관심이 없다.
<숨> 영화평 ② 종교적 구원에서 사회적 연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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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남편의 외도를 알고 괴로워하고 있다. 하필이면 그 시간,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한 사형수의 기구한 운명이 흘러나온다. 송곳으로 목을 찔러 자살을 기도했던 남자는 죽지 못하고 목소리를 잃었다. 여자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사형수를 찾아가고, 감옥의 면회실에서 그들은 이제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김기덕은 이렇게 썼다. “증오가 들이마시는 숨이라면… 용서는 내쉬는 숨이다….” 아마도 <숨>에서 김기덕은 이 조화로운 세계를 꿈꿨을 것이다. 여자는 스스로 사계절이 되어 남자에게 총천연색의 삶을 선물한다. 남자는 자신의 존재 자체로 죽음이 되어 여자에게 두렵고도 매혹적인 죽음의 형상 혹은 열망을 선사한다. 여자의 송장 같던 마음과 남자의 송장 같던 삶에 욕망의 열기가 들어선다. 여자는 말을 하는 대신 노래를 부르고 남자는 육체의 언어로 화답한다. 현실의 언어가 부재하고 현실의 시간이 사라진 이 시공간은 하나의 완결된 세계가 된다. 그렇게 볼 때 이 세계는 더없이 아름답다. 그러
<숨> 영화평 ① 치유의 환상, 그 환상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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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의 입씨름을 뒤로하고 김기덕은 또 초연하게 영화를 만들었고 <숨>을 완성했다. 당초 알려진 것처럼 외도하는 남편을 둔 여자가 사형을 앞둔 죄수를 만나면서 시작되는 영화다. 그런데 그렇게만 말하고 지나치기에는 영화가 깊다. 언뜻 보면 유치해 보일 정도로 간결하지만 깊은 사유의 폭과 힘을 지닌 영화다. 들숨과 날숨의 그 열기를 정한석 기자가 미리 전한다. 그리고 영화평론가 남다은, 문화평론가 남재일, 문학평론가 이명원, 소설가 천명관 등이 쓴 영화평을 더해 <숨>의 여러 측면을 조망해본다.
김기덕의 영화에 관해 아직까지 덜 말해진 것을 말하는 것으로 혹은 이미 말해진 것에 관해 다르게 말하는 것으로 시작해보자. 그의 영화에서 대사가 줄어들고 있는 점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되어왔다. 그런데 그게 정작 그의 영화 구조를 이롭게 만드는 ‘어쩔 수 없는’ 최선이라는 점은 잘 거론되지 않는다. 그의 영화 속 대사는 종종 너무 직접적인 나머지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숭고함을 향한 숭고함, 김기덕 감독의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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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사무라이> たそがれ淸兵衛
<황혼이 사무라이>는 서민드라마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로 유명한 야마다 요지가 근래 완성한 사무라이 시대극 3부작의 첫편이다. 세편은 모두 후지사와 슈헤이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황혼의 사무라이> DVD의 메이킹 필름을 보면 감독의 원작 소설에 대한 강한 애착을 느낄 수 있다. 메이킹 필름(69분)은 일반적인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1부에선 원작의 배경인 야마가타현 쇼나이 지방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리고자 기울인 노력들을 보여준다. 각본의 머리말에 ‘쇼나이 지방에서 부는 바람, 변해가는 하늘빛, 멀리 보이는 산들의 모습, 또 조상들의 역사를 기리던 분위기에 큰 의미가 있다’라고 써놓은 야마다가 여러 촬영지를 거치면서도 다짐을 지키려고 애썼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배경 선택에 특별히 심혈을 기울인 네 장면- 장례식, 봄나물 캐기, 낚시, 성묘- 을 하나씩 소개한다. 2부와 3부에서는 대략 8개의 삭
[서플먼트] 연출에 대한 야마다 요지의 정성과 집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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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 Performance
도널드 캐멀과 친구 집단의 홈무비가 될 뻔한 <퍼포먼스>는 카메라맨으로 활동하던 니콜라스 뢰그가 참여하면서 영화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그러나 배급을 맡은 워너는 완성된 영화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2년 동안 창고에 처박혀 있다 1970년에 개봉한 <퍼포먼스>는 여지없는 재앙이었다. 전설의 시작은 그랬다. 히피 문화에 대한 본능적인 조소인 <퍼포먼스>는 포스트 우드스탁 시대의 공허와 히피 유토피아의 퇴락을 예언한 것이었고, 영화의 제작과 개봉 사이에 <기미 셀터>에 나온 믹 재거는 <퍼포먼스>의 악몽을 알타몬트의 비극으로 현실화했으며, 사람들은 영화를 설명하기 위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윌리엄 버로스의 이름을 들먹였다. 거기에 전대미문의 시도였던 음향·편집·조명·색채 그리고 폭력과 마약, 섹스의 대담한 노출이 한몫한 것은 물론이다. <경멸>의 패러디로 시작하는
[해외 타이틀] 포스트모던영화의 진정한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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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부 장관에서 영화인으로 돌아온 이창동 감독의 신작 <밀양>이 제작보고회를 가졌다. 11일 오전 11시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제작보고회는 야외무대에 마련된 <밀양>의 스틸전시회에 이어 제작과정이 담긴 미니다큐를 상영했다. 다큐 속에서 송강호는 "내 고향의 말인데도, 사투리에 감정을 담기가 어려웠다"고 술회했고, 전도연은 "이창동 감독과 송강호가 함께한다는 말에 처음으로 시나리오도 보지않고 선택한 영화"라고 말했다. 이어서 시작된 기자간담회에서 이창동 감독은 "뜨거운 마음으로 만들었다"는 말로 첫 인사를 대신했다.
문화관광부 장관직을 마무리한 후 처음으로 찍는 영화다. 어떤 소감인지.
이창동 | 공직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냈지만, 그건 나에게 크게 중요치 않다. 4년만에 영화를 만들다 보니 몸도 마음도 힘들었다. 오랫동안 쉬다가 그라운드에 나온 투수의 기분이었다. 영화를 만들때마다 매번 새로 만드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밀양&
이창동 감독의 복귀작 <밀양> 제작보고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