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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둘이 영화를 보러 가는 경우는 드물다. 다른 전시회나 공연장도 마찬가지다. 찜질방도 남자 둘은 찾기 어렵다. 함께 여행을 하거나 공원을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는 경우는 더욱 보기 어렵다. 여자 둘은 이보다 한결 유연하다. 두 여자가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함께 가는 건 일상적이다. 왜 그런가? 혹자는 남성은 원래 목적 지향적이고 여성은 관계 지향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면 남성이 둘이 있는 이 세상의 모든 풍경은 유사해야 한다. 과연 그런가? 와인 한병을 시켜놓고 서넛 시간을 노닥거리는 파리의 두 남자. 그들에겐 술은 대화의 안주이다. 반면 같은 시간을 버티려면 최소한 소주 두어병을 비워야 하는 서울의 두 남자. 그들에게 대화는 술안주이다. 분명 차이가 있다.
‘남자 둘’의 관계는 한 사회의 사적 소통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적 성격이 있다. 남녀관계는 성적 관심, 여자 둘의 관계는 피지배자의 연대감이 개입한다. 하지만 원래가 경쟁적이라는 ‘남자 둘’의 관계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남자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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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가 프리 종목 연기를 펼치기 직전, 한국의 해설자는 “잘 싸워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잘 싸우긴 뭘 잘 싸워. 누가 들으면 아사다 마오랑 머리채 붙잡고 얼음판 레슬링이라도 하는 줄 알겠네. 항전의 부르짖음이 해설로 깔리는 동안 김연아는 멋지게 경기를 마무리했고, 두번이나 넘어졌는데도 싱글벙글이었다. ‘금메달을 못 받아서 조국과 엄마에게 죄송스럽다’는 양 오만상 찌푸리던 80년대 구국의 스포츠 전사들처럼 울지도 않았다. 동메달을 목에 걸고는 신나게 미소지었다. 다음날 한국의 매체들이 커다란 활자로 박아놓은 제목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아쉬운 3위. 김연아는 나이 서른 더 먹은 그들보다 훨씬 명석했다. 인터뷰에서 “성인 무대 첫해였던 이번 시즌은 만족스럽다. 한국 피겨 사상 세계선수권대회 첫 메달 입상은 의미있다”며 자신의 공적을 치하한 김연아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냐는 스포츠 기자의 어리석은 질문에 똑 부러지게 응수했다. “생각없다. 일단 몸이 정상이어야 한다. 새로운
[오픈칼럼] 신인류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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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500번의 마감 중 1번일 뿐이야
주간지에서 일한 지 최소한 5년, 한해에 대략 50주는 마감을 했으니, 50에 5를 곱하면 250번은 기사 마감을 했다는 과학적 통계가 나온다. 여기에 1주에 2개의 기사를 쓴 적도 많으니 대략 마감이 400번은 될 터이다. 이것은 무엇에 쓰는 통계인고 하니, 힘겨운 마감을 위한 마취약이다. 이번주엔 정말로 원고를 ‘빵구’내는 사고를 치겠군, 긴박한 불안이 밀려들었던 어느 수요일, 그분은 원고를 단숨에 쓰는 기적을 주시진 않아도 구원 같은 깨달음을 주셨다. 아니, 내가 오늘 이토록 괴로워하는 마감도 무려 400번 중에 ‘겨우’ 1번일 뿐이잖아. 갑자기 용기가 백배해 자판을 치는 손가락에 힘이 붙었다. 이렇게 써도 되는 것일까, 또다시 망설임이 손목을 잡을 때면, ‘다음에’ 잘 쓰면 되지 뭐. 또다시 주사를 찾았다. 그렇게 휘청거리는 손가락을 질질 끌면서 그래도 마감을 해왔다. 알다시피, 다음은 여전히 다음으로 남아 있다. 이렇게 불안이 언제나
[이창] 마감전선 이상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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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맨 리턴즈>가 강철맨을 신화적 영웅으로 부활시키려고 했다면, 그 시즌의 또 다른 슈퍼맨 영화는 우리가 유치한 환상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할리우드 랜드>는 화려하게 성장한, 50년대 TV에서 슈퍼맨을 형상화했던 배우 조지 리브스의 머리에 총알이 박히는 것으로 그 베일을 벗기고자 한다.
앨런 쿨터(드라마 <소프라노스>와 <섹스 & 시티>의 베테랑)가 연출하고, 폴 번봄이 각본을 쓴 <할리우드 랜드>는 분명한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애를 쓴다. 우아하게 자기 만족적인 벤 애플렉은 불운한 리브스에 잘 맞는다. 영화의 진중한 의도는 마치 다소 고르지 못한 <시민 케인>처럼 비슷한 구도로 암시된다. 리브스의 삶을 다루는 장면들은 루이스 시모(에이드리언 브로디)가 담당하는 리브스의 사인 규명과 번갈아가며 나타난다.
시모는 불가사의한 기회주의자다. 리브스는 절박한 향락주의자다. 그는 쓸 만한 연락처를 찾기
[영화읽기] 영화는 진실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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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극락도 살인사건>이라는 모범적인 제목과 ‘미스터리 추리극’이라는 (다소 쓸데없는) 캐치프레이즈를 달고 있는 영화라면 당연히 장르적인 검증을 받아야 한다. 최종 결과가 전형적인 장르물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다고 해도 태생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단 이 작품이 추리물이라는 건 분명하니 그건 넘어가자. 그렇다면 이 작품은 무슨 추리물일까? 한번 선배들을 살펴보자.
가장 먼저 언급되어야 할 건 메리 셀레스트(19세기에 선원 전원이 사라진 채 표류한 배의 이름) 미스터리다. 물론 메리 셀레스트 사건은 실화지만 오래전부터 이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수많은 작품들이 나왔으니 하나의 소장르라고 해도 될 듯하다. <극락도 살인사건>에서는 선원들이 모두 사라진 배를 17명의 주민들이 사라진 섬으로 옮겨놓고 있는데, 메리 셀레스트 미스터리로 본다면 솔직히 실망스럽다. 이 장르의 최대 장점인 호기심 당기는 미스터리를 전혀 부여하지 못하고 있기
[영화읽기] <극락도 살인사건> 신토불이 호러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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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대 중반을 넘어서니 왕자님을 만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엔딩, 그 너머의 쪽박 깨지는 소리만 들려온다. 회사에서 잘리고, 이혼을 하는 건 여기에 끼지도 못한다. 누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더라, 누구는 배우자가 진 빚더미 탓에 외국으로 야반도주했다더라, 거기에 이제는 아이의 불치병이나 장애까지 끼어드는 지경이다. 이래저래 심란한 말만 듣고 칙칙한 일만 되풀이되는 상황에서 우리팀 팀장은 “<우아한 세계>나 한번 더 봐야겠어”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그러시겠지. 왜 아니겠나. “우리는 다들 끌어안고 울고 싶”은 밥벌이의 전사들이 아닌가.
인생 참 뜻대로 안 돌아간다. 암흑계의 대부가 되겠다는 거창한 야심을 품은 것도 아닌데 후줄근한 밥줄 하나 건사하기 힘들다. 집에 오면 아이가 달려나와 볼에 뽀뽀하며 “아빠 힘내세요” 노래를 불러주기를 기대한 것도 아닌데 애는 차라리 아빠가 죽었으면 좋겠단다. 지금 누구 때문에 더러운 꼴 보며 이 생활하는데 아내는 집을 나가서 이
[투덜군 투덜양] 하나도 안 우아한 인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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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윈터(힐러리 스왱크)는 종교적인 기적의 허상을 파헤치는 과학자. 한때는 그녀도 신의 부름에 영혼을 불사르는 목자였으나 선교활동 중 어린 딸과 남편이 광신도들에게 살해당하자 종교를 버리고 과학을 신앙으로 모시게 된 것이다. 어느 날 루이지애나주 시골 마을 헤이븐에서 더그 블랙웰(<원초적 본능2>의 데이비드 모리세이)이라는 근사한 사내가 무시무시한 초자연적 현상을 조사해달라며 찾아온다. 헤이븐의 강물은 핏물처럼 검붉게 물들고 개구리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고 소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어간다. 이 모든 것은 성서의 출애굽기에서 신이 유대인을 억압하는 이집트에 내렸던 10가지 재앙과 똑 닮아 있다. 독실한 기독교도인 마을 주민들은 12살짜리 금발소녀 로렌(안나소피아 롭)이 사탄의 원흉이라고 믿지만, 캐서린은 모든 재앙에는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앙은 계속된다. 이가 들끓기 시작하고 독종(毒腫)이 사람들을 쓰러뜨리자 캐서린의 믿음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귀가 잘 안 맞는 오컬트 액션영화 <리핑 10개의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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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없는 섹스, 섹스없는 사랑 혹은 ‘섹스 위드 러브’, 이 세개의 길 중에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의 대가를 담담히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를테면 사랑없는 섹스에 따르는 공허감이나 섹스없는 사랑에 따르는 지루함 혹은 ‘섹스 위드 러브’에 따르는 책임감 따위의 것들을 감당할 수 있는가의 문제. 물론 대부분 ‘섹스 위드 러브’를 가장 이상적인 길로 여기지만, 그 어떤 길을 선택하든 짜릿한 포만감 뒤에는 피로와 고통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섹스 위드 러브>는 너무도 지리멸렬한 일상이 되어버린 동시에 여전히 온몸과 마음의 촉수를 건드리는 사랑과 섹스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의 중심은 네 커플의 일상에 맞춰져 있다. 이들은 초등학교 자녀들의 성교육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자신들의 성생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이들 각각의 모습은 사랑과 섹스에 관한 전형적인 표본들이다. 사랑하는 배우자를 두고도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맺거나 상대방과 원활
사랑과 섹스에 대한 이야기 <섹스 위드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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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내레이션이 들린다. “바보같이 행복하고 안전한 일본, 공허하고 지루한 일본, 졸리지만 잠 안 오는 일본.” 주인공 신(오다기리 조)은 대학 캠퍼스 잔디밭을 괴성을 지르며 가로지른다. 그의 얼굴은 질식사 직전이다. 우리에겐 <자살클럽>(2001)과 <기묘한 서커스>(2005)로 알려진 소노 시온 감독의 <헤저드>가 도입부에서 설정한 상황이다.
그의 작품들이 대항하고자 하는 적은 ‘적이 없는’ 일본의 현실, 무겁게 내리누르는 ‘안정과 규격’인 듯하다. 하지만 ‘生의 자각’을 위해 이번에 그가 사용한 방법은 공포나 엽기와는 거리가 멀다. 순진하고 유약한 전형적인 일본 젊은이가 다소 독특한(‘헤저드’한) 훈련과정을 거쳐 야심과 뚝심을 갖춘 청년으로 귀환한다는 성장영화의 현대 버전이라고 할까. 일본에서의 삶에 질려 무작정 뉴욕에 도착한 신은 리(제이 웨스트), 다케다(후카미 모토키)와 한패가 되어 갱 놀음을 한다. 다양한 범죄 행위가 청춘의 치기어
성장영화의 현대 버전 <헤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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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057년. 태양이 죽어간다. 인류의 마지막 희망은 핵탄두로 태양을 재점화하는 것. 8명의 다국적 승무원이 우주선 이카루스 2호에 탄두를 싣고 태양으로 나아간다. 가히 ‘하드 SF’적 상상력으로 시작하지만 <선샤인>은 그리 섬세한 장르영화가 아니다. 대니 보일과 알렉스 갤런드 콤비는 <미션 투 마스>의 브라이언 드 팔마처럼 NASA의 기술자문을 얻는 대신 자신들의 환상을 위한 우주항모를 건설했다. 인공 중력실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카루스 2호를 채운 것은 식물로 가득한 산소방과 가상현실 체험실, 거대한 유리창이 달린 태양 관측실의 스타일리시한 외양이다. 하긴 누가 인류의 존망을 건 항모의 이름에 태양빛으로 날개가 녹아 추락해버린 남자의 이름을 붙이겠는가.
망자의 이름을 달고 항해를 계속하던 우주선은 7년 전 같은 임무를 지니고 떠났다가 실종된 이카루스 1호와 마주친다. 대원들은 랑데부를 위해 궤도를 수정하던 중 치명적인 실수를 일으킨다. 좋은 장
뉴에이지 태양교 <선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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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의 지상과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가’이다. 그것도 그냥 죽는 게 아니라 아름답게 죽어야 한다. 잠깐 피었다 우수수 져버리는 벚꽃은 오랫동안 사무라이의 죽음의 미학을 상징해온 꽃이다. ‘꽃보다도 더’라는 원제의 <하나>(はなよりもなほ)는 벚꽃에 덧씌워진 이런 죽음의 미의식에 의문을 던진다. 사무라이의 존재의의가 없어진 역사의 격변기를 배경으로 한 유쾌한 사극 <하나>는 벚꽃의 미를 다른 각도에서 조명함으로써 현대 일본에 여전히 도사린 미시마 유키오적 비장미를 전복하려 한다.
에도막부 말기, 지방 검술사범의 아들 소자 에몬(오카다 준이치)은 아버지의 원수를 찾아 에도에 상경한다. 달동네에서 근근이 연명하며 원수를 찾아다닌 지도 벌써 3년째. 하지만 어쩐지 그는 복수에 별로 적극적이지 않다. 이웃은 “자네처럼 심약한 사람은 복수가 어울리지 않아”라고 충고하고, 소자 자신도 복수보다 아름다운 과부 오사에(미야자와 리에)와 그 아
따뜻한 소극(笑劇)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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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조재현)는 송화(오정해)를 가슴 한켠에 보석처럼 품고 있다. 그 동호가 불쑥 나타난 여인 단심(오승은)의 입술에 속절없이 쓰러진다. <천년학>의 마디가 또 하나 생겨나는 순간이다. 창극단 스타 단심이 알맞게 팜므파탈적이어서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다.
예서 그쳤다면 단심이라는 캐릭터가 송화의 또 다른 분신처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또 배우 오승은이 시사회 무대인사에서 “배우로서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여자로서 정말 많은 걸 느꼈다”고 심상치 않게 말했을 리 없다. 단심의, 오승은의 살짝 말려올라가는 입꼬리는 관능적인 동시에 서글픔을 머금는다. 촉촉한 눈빛도 이중의 사연을 담고 있다. 송화가 인고의 꼬리를 붙잡고 세상을 버티지만 가진 것도 못 가진 것도 없이 스러지는 여인이라면, 단심은 욕망의 미덕으로 세상을 누리다가 버릴 것도 줄 것도 없이 꼬꾸라지는 여인이다. 그들은 왼쪽과 오른쪽을 대칭처럼 이루는 서로의 분신이다. 슬플 때 울지 않고, 기쁠 때 웃지 않는 표정
영화로 통하는 다른 문을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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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영화나 드라마가 장애인을 다루는 방식은 두 가지였다. 그들의 처지를 동정하면서 사회를 비판하거나 인간승리의 드라마로 만들어내거나. <파란자전거>는 장애인을 소재로 내세우면서도 두 가지 방법을 모두 피하려 한 영화다. 물론, 이 영화 또한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불편한 ‘시선’을 줄곧 지적하지만 좀더 관심을 기울이는 쪽은 가족을 중심으로 한 장애인의 주변 인물들이다. 또 뭔가 극적인 사건을 통해서가 아니라 잔잔한 일상 속에서 장애인의 문제를 직시하려 한다는 점도 장애인에 대한 새로운 접근으로 보인다.
한손에 의수를 끼고 살아야 하는 장애인 동규(양진우)는 스물여덟을 맞은 지금, 여러 위기에 동시에 직면해 있다. 여자친구인 유리(박효주)의 부모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동규를 사위로 맞이하는 것을 꺼리고, 동규의 일터인 동물원은 폐쇄 위기에 놓여 있다. 게다가 어릴 적부터 그를 독려해줬던 아버지(오광록)마저 병원에 누워 있는 형편이다. “내가 좋아하는 건 하
장애인의 주변인물 이야기 <파란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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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에리세도 3편밖에 없어요, 나보다 나이는 많지만.” 칸영화제에서 상영돼 주목받은 작품 <불꽃축제> 이후 20년, 대만을 배경으로 촬영한 다큐멘터리 <여행하는 파오차프> 이후 10년. 야나기마치 미쓰오 감독은 기나긴 세월을 큰 폭으로 잘라내듯 영화를 만들어왔다. 2006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뒤, 이번에 정식으로 국내 개봉하는 영화 <카뮈 따윈 몰라>도 이미 2년 전의 작품이다.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1976년 폭주족에 대한 다큐멘터리 <굿, 스피드 유! 블랙 엠퍼러>를 발표한 그가, 지난 34년간 완성한 작품은 겨우 8편이다. 영화 작업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됐던 80년대를 지나, 이제 “기운빠진 50대가 됐다”고 고백하는 야나기마치 감독. 그에게 작품 사이 길게 비어진 시간들을 묻는 건, 늦지만 너무도 당연한 인사였다.
법학도의 꿈을 꾸고 고향인 이바라기현을 떠난 그는 도쿄 와세다대학에 입학했다. 전공은 물론
까뮈 따윈 이해해주세요, <카뮈 따윈 몰라>의 야나기마치 미쓰오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