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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극장가의 보이지 않는 승자는 거미도 아니고 해적도 아닌 남장여자였다. 지난 5월3일 개봉한 <쉬즈 더 맨>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십이야>를 원작으로 한 작품. <스텝 업>으로 주목받은 채닝 테이텀이 등장한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지만 개봉 4주째를 맞은 지금까지 박스오피스 10위권 내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개봉 첫주부터 4만명에 달하는 관객을 동원하며 10위로 진입한 <쉬즈 더 맨>은 둘쨋주에는 7만명, 셋쨋주에는 10만명으로 관객 수를 늘려가더니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가 개봉한 5월 넷쨋주까지 12만명에 달하는 관객을 동원, 급기야 10위에서 7위로 올라섰다. 당초 전국 5만 명 정도의 흥행을 예상했던 수입사 데이지엔터테인먼트도 기대 이상의 결과에 놀라는 눈치. <스파이더맨 3>와 <캐리비안의 해적…>의 흥행이 예상된 결과였다면, 진정한 반전의 승자는 분명 <쉬즈
[쟁점] 관객 맞춤형 극장 브랜드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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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져: 죽은자들의 경고>는 홍콩의 형제 감독 대니 팡과 옥사이드 팡(<디 아이> <디 아이2>)의 첫 할리우드 진출작이다. 샘 레이미(<스파이더 맨> 시리즈) 감독이 <주온>의 시미즈 다카시 감독과 만든 <그루지>에 이어 두 번째로 제작한 호러영화로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다. <링> <그루지>를 잇는 아시아 출신 할리우드 호러영화로 개봉 첫주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지만, 그 다음주 바로 10위로 밀려나며 잊혀진 영화이기도 하다.
팡 브러더스는 낯익은 공포영화의 코드를 충실히 활용한다. 이야기의 무대는 참극의 비밀을 간직한 미국 외딴 벌판의 농가, 주인공은 도시에서 밀려나 시골에서 새 출발을 하려는 일가족이다. 새 보금자리에서 아이들은 알 수 없는 공포에 계속 노출되고, 어른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 문제아 출신의 10대 여주인공은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부모 때문에 고립감을 느끼고, 어
장면 장면의 공포감 등골이 서늘 <메신저: 죽은 자들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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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을 사랑하는 소심한 괴물 슈렉(마이크 마이어스)이 헤어나오기 힘든 늪 속으로 자꾸 빠져든다. 1편에서 차지한 공주의 사랑과 2편에서 공주의 가족에게 인정받은 사랑이 거꾸로 그의 발목을 수렁으로 인도한다. 개구리 왕이 돼버린 피오나 공주의 아버지는 슈렉에게 왕위를 물려받으라는 유언을 남긴다. 짝퉁 할리우드인 ‘겁나먼 왕국’을 다스린다는 건 자유로운 패러디의 영혼 슈렉에게 끔찍한 고문이다. 화려한 옷치장부터가 고통이며 거대한 소동의 원인이 된다. 슈렉에게 다행스러운 건 피오나의 먼 친척 아티(저스틴 팀버레이크)를 찾아 대신 왕위를 물려주면 된다는 것이다. 슈렉의 인기를 능가할 지경에 이른 동키(에디 머피)와 장화 신은 고양이(안토니오 반데라스)와 함께 아티를 데려오는 모험이 시작된다.
또 하나의 수렁은 피오나(카메론 디아즈)가 베이비 슈렉을 낳을 예정이라는 점이다. 통제 불가능한 아기를 다스린다는 것 역시 슈렉에겐 악몽이다. 아티 같은 타협책이 있을 리 없으니 계속 악몽에 시달리거
슈렉의 훈계극 <슈렉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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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병을 앓다 목숨까지 잃은 총각의 상여가 황진이의 집 앞에 머물 때다. 혼례를 위해 준비했던 아름다운 치마를 관 위에 손수 덮어주는 데 예서 멈추지 않는다. 황진이는 모여든 사람들에게 더이상 고고한 양반집 규수로 살아가지 않겠다고 생생한 육성으로 고한다. 그런데 기생 명월으로 재탄생하겠다는 이 선언의 타이밍 후보는 좀더 있었다. 가령, 파혼당한 뒤 출생의 비밀과 성인군자로 위장하는 데 성공했던 ‘색마’ 아버지의 정체를 동시에 알고 분노에 차서 아버지의 족자를 집어던질 때라든지, 기생이 되기로 작정한 뒤 신분이 달랐던 놈(유지태)과 처음으로 몸의 정분을 나눌 때는 어땠을까.
배치가 바뀌었다면 환골탈태의 선언적 의미도 좀더 달라졌을 것이다. 아버지와 관련한 신이었다면, 권세있는 수컷의 위선을 작파해보겠다는 쪽으로 기울어 읽힐 것이고, 놈과 관련한 신이었다면, 계급의 위계를 나름대로 무너뜨리고 살겠다는 독한 작정으로 보일 것이다. 상사병 상여장면에 문뜩 끼어든 황진이의 선언에는 이런
생략과 과잉이 충돌하는 불균질의 드라마 <황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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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8일 월요일 새벽 칸영화제 수상결과를 기다렸다. 월드컵 경기도 아니고 올림픽 금메달을 놓고 다투는 것도 아니건만 <밀양>이 상을 받을 것 같다는 소식을 접한 뒤로 궁금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여우주연상을 받았다는 결과를 접하자 휴우~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우울했던 영화계가 오랜만에 힘을 낼 수 있는 낭보였다. 어떻게 보면 영화를 놓고 1등, 2등을 논한다는 게 우스운 일이라 수상에 흥분하는 내가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했다는 말을 떠올리며 그런 자신을 합리화했다. “영화는 상과 관계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젊은 나에게는 그 상이 필요했습니다. 그건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격려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상은 영화가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영화를 만들면서, 같은 동네에 살면서 서로 격려하는 것입니다.”
<밀양>의 전도연에 대한 칭찬은 차고 넘치게 많으니 더 보태지 않아도 좋을 듯싶다. 대
[편집장이 독자에게] 전도연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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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기 전에> 레이날도 아레나스 지음/ 이룸 펴냄
1990년 12월, 쿠바의 하층민으로 태어나 작가이자 동성애자이자 반체제 인사로 살았던 레이날도 아레나스는 뉴욕에서 스스로 생을 마쳤다. 에이즈 말기로 생사를 넘나들던 나날은 그렇게 끝났다. 아레나스가 쓴 자서전 <해가 지기 전에>의 서문은 같은 해 8월에 쓰여졌다. 1990년은 록 허드슨이 죽은 뒤였고 프레디 머큐리가 죽기 전으로 에이즈에 대한 인식은 미미했다. 아레나스에게 에이즈는 “걸리면 노년을 거치지 않고 생을 마감한다”는 병 정도였다. 거의 모든 인간에 대한 보복을 담은 마지막 소설을 마무리할 때가 되자 그는 “나의 종말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이 책의 서문 말미에 적어 넣는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 아레나스는 기억하는 첫 번째 ‘맛’의 기억, 두살 때의 그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 외부세계를 인식하기 시작한 첫 번째 순간부터의 삶을 새로 쓰기 시작한다.
줄리안 슈나벨 감독이 연출한 &
어느 게이 작가의 투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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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Moon> 엘리엇 스미스/ EMI 발매
단골 바가 있다. 일주일에 두어번 들르는, 종종 혼자 가서 술 한잔 앞에 두고 책을 읽어도 아무렇지 않은 그런 술집 말이다, 라는 말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엘리엇 스미스에 한해서라면. 몇년 전, 그러니까 2003년 가을 그는 자기 심장에 칼을 박아 넣었다. 이 뉴스가 충격적이었던 것은 (다양한 의미에서) 90년대를 상징하던 젊은 음악가가 자살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마지막 순간을 위해 선택한 것이 ‘스테이크용 칼’이었다는 점 때문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아마도) 가장 대중적인 곡일 그의 <Between the Bars>를 들으면, 그래서 항상 별로 예리하지도 않았을 낡은 레스토랑 칼이 떠오른다. 그것은 다소 우습기도 하면서 소름 끼치는 상상이다. 어쨌든, 그의 신작이 발매되었다. 놀랍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이 앨범은 여전히 잘 팔린다. 1995년과 1997년 사이, 데뷔앨범 &l
지금은 없는 엘리엇 스미스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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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일요일 밤 12시5분
10여년 전 우연히, 한국영화나 드라마의 일본 내 성공 가능성을 다룬 TV다큐에서, 일본 영화업계 전문가가 ‘일본 시청자/관객에게 먹힐 만한 스타 배우’의 등장이 필수적인 요소라고 지목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특정한 스타 한 사람의 등장이 수용자가 느끼는 문화적 간극을 좁힐 수 있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그의 가설에 선뜻 동조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욘사마’의 출현과 함께 그 가설은 완벽히 입증되었고, 실제로 욘사마의 존재 자체가 전반적인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일본 내 확산에 엄청나게 기여하게 되었음은 더이상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의 사실이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현재 국내에서 그 세력을 ‘태풍급’으로 확산하고 있는 이른바 ‘미드 열풍’ 역시 그와 비슷한 상황을 거쳐왔다는 사실이다. 애초 미드 열풍은 여성 시청자들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 국내 TV드라마에 실증을 낸 20, 30대 남성들 사이에서 <24>가 큰
[이철민의 미드나잇] 드라마, 역사를 만나 살아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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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세계 영화사의 ‘새로운 물결’에 발맞추어 동유럽 국가에서도 영화의 르네상스가 시작된다. 특히 이 시기는 체코영화의 부흥기라고 할 만한데, 당대 프라하 영화학교 출신 감독들(밀로스 포먼, 이리 멘젤, 베라 히틸로바, 야로밀 이레스 등)의 활약이 두드러진 때다. 이들은 스탈린주의의 억압에 맞서 다양한 형식적 실험과 비판의식을 담은 작품들을 만들어내며 세계 영화사에 강렬한 흐름을 새기지만, 1968년 소련의 체코 침공으로 각지로 흩어진다. EBS <세계의 명화>는 6월 한달 동안, 60년대 체코의 영화들을 한자리에 모아 방송할 예정인데, 그 두 번째 순서로 체코의 대표적인 여성 감독 베라 히틸로바의 <데이지>가 소개된다.
2006년 <대책없는 인생>이라는 작품을 선보이며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베라 히틸로바는 도발적인 형식과 내용으로 여성과 사회에 대해 발언하는 감독이다. 그녀의 두 번째 영화인 <데이지>(1967)
베라 히틸로바의 즐거운 조롱, <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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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이 15%만 넘겨도 “아, 이제 됐다” 하며 시청자의 무심한 시선을 뛰어넘어 ‘서바이벌’했음을 안도하는 요즘의 드라마 세상에서 방송 2주 만에 30%대를 위협하는 상승곡선을 그린 SBS 수목 드라마 <쩐의 전쟁>(이향희 극본, 장태유 연출)은 일단 신바람의 휘파람을 불어도 괜찮을 것이다. 아직 초반부를 관통 중인 이 드라마를 두고 성공요인을 두루두루 거론하는 것은 성급하겠지만 박신양이라는 이상한 ‘자석’은 짚고 넘어가야 할 듯싶다. ‘박신양의, 박신양에 의한, 박신양을 위한’ 드라마라고 땅땅땅 도장을 내려치는 것은 ‘오버’다 싶어도 한 연기자의 존재감이 처음부터 이토록 강력하게 작품 전반을 장악한 경우는 드물어 보이기 때문이다.
사채업과 ‘쩐’ 얘기를 정면에서 다룬 최초의 사례이고, 동명의 만화을 원작으로 삼은 이 드라마에서 박신양은 ‘금나라’라는 놀림 많이 받았을 이름을 가졌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그는 서울대학교 출신의 증권사 애널리스트로 사채업계 대모의 손녀와
박신양의 자력(磁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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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튬 플레이(costume play)의 준말인 ‘코스프레’가 우리나라에서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 무렵이다. 코스프레가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 여기에 관심이나 취미가 없는 사람의 지식 수준에서 이야기하면 그것은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캐릭터로 분장하고 노는 일’이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캐릭터는 흔히 현실보다도 판타지와 상상에 기반을 둔다. 말하자면 코스프레 문화가 갖는 리얼리티는 모방의 대상이 되는 세계를 얼마나 제대로 과장해 표현하는가에 있는 셈이다. 국내에서 제법 자리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화가 여전히 잘 이해받지 못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 클 것이다.
지난 주말인 5월26일과 27일, 서울 대치동에서 전국 규모의 코스프레 대회가 열렸다. 제11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과 청강문화산업대학이 공동주최한 이 행사에는 90여팀의 코스튬 플레이어(코스프레어)들이 참여했다. 그들은 여름을 앞당기는 따가운 햇볕에 아랑곳하지 않고, 거창하고 화려한
마법의 옷을 입고 피키 피키 피키! SiCaf 코스프레 대회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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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영화를 멀뚱히 보기만 하신다구요?
사실, 영화는 배워서 남 주기 아깝기 그지 없는 보물들이 가득한 곳이라구욧!
영화 속에서 배워보는 다양한 지식과 상식, 그리고 어김없는 재미!
영화로 학습하는 무비 지식 발전소, [배워서 남주나]!
이번 강의는 [한국영화, 이런 장면 꼭 있다]를 얘기합니다~
동영상을 보시려면 <동영상보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배워서 남주나] 한국영화, 이런 장면 꼭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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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알면 바꿀 수 있을까. 원하는 대로 미래를 바꾸면 큰 시야로 보는 인생이 더 나아질까. <넥스트>는 2분 정도 앞의 미래를 볼 수 있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겨우 2분 미리 안다고 뭐가 달라질까 할 수도 있지만, 극중 크리스(니콜라스 케이지)는 도박에서 돈을 쉽게 따거나 경찰이 체포하러 올 것을 내다보고 미리 피하거나, 심지어 총알을 미리 피할 수도 있다. 게다가 사랑하는 여자와 관련돼 있으면 2분이 아니라 더 앞의 미래도 볼 수 있다. 크리스는 미리 ‘본’ 미래에 따라 현재를 바꾼다. 그래서 그는 행복해질까? <넥스트>를 보면, 미래를 볼 줄 아는 크리스라고 해서 더 나은 미래를 선택할 수 있으리라는 낙관을 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사랑하는 여자와 만난다고 해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2분 뒤에 올 정부기관 사람에게서 당장 도망친다 해서 더 나은 삶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해봐도 예측이 끝난 시점 이후의 미래를 정확히 알
[칼럼있수다] 미래를 안다 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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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1일 개봉하는 영화 <검은집> 앞에는 항상 ‘싸이코패스 공포스릴러’란 수식어가 붙는다. 어림짐작으로 사이코패스가 위험인물이란 건 알겠는데, 정확히 사이코패스는 어떤 존재일까? 이에 대한 가장 정확한 대답을 <검은집>의 메인카피가 들려준다. ‘표정이 없다. 동정심이 없다. 고통을 모른다.’ <검은집>에서 사이코패스는 보험사정인 전준오(황정민)가 보험 가입자의 집을 방문했다가 만난 남자 박충배(강신일)다. 전준오는 문제의 그 집에서 목매달아 죽은 7살짜리 남자아이를 발견하는데, 아이의 아버지 박충배는 전혀 동요하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그는 전준오의 눈치를 살피며, 보험금을 지급받기 위해 자해하는 짓까지 서슴치 않는다. 한국 공포영화에서 사이코패스를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검은집>이 처음. 그러나 할리우드에서는 일찍이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박사가 사이코패스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사이코패스(psychopath)는 ‘성격
[배워봅시다] 마음이 없는 존재, 사이코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