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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죽었다? 문학의 위기는 새롭지 않은 화두다.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매번 비장하게 강조되는 위기론은 다매체 환경 속에서 책의 입지가 축소되어가는 일차적인 현상 외에도 문학 자체의 존재방식이 변화하고 있음에 기인한다. 과거 70~80년대 지적·도덕적 발언대 역할을 하며 현실사회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문학의 권위는 90년대 이후 사실상 그 힘을 잃었다. 자아와 일상의 탐구에 시선을 돌린 90년대 작가들의 미학적 성과와는 별도로, 문학의 위상과 역할을 둘러싼 비관적 목소리는 점차 높아졌고 이는 최근 “근대문학의 종언”(가라타니 고진)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선언으로도 이어지기도 했다.
2000년대 한국 문학의 새로운 조류를 형성하고 있는 신진 작가들의 출현은 어쩌면 그래서 더욱 고무적이다. 김중혁(<펭귄뉴스>), 이기호(<최순덕 성령충만기>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박형서(<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 &
[한국 소설의 젊은 작가들] 김중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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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t Buy My Love> 유이/ 소니BMG 발매
지난 2월에 개봉한 영화 <태양의 노래>는 영화 자체보다도 여주인공 유이의 음악이 더 화제가 되었던 소박한 일본 멜로다. 영화는 태양빛을 볼 수 없는 색소성 건피증으로 인해 해질 녘부터 동틀 녘까지만 바깥세상을 접할 수 있는 16살짜리 소녀의 이야기다. 소녀는 밤이 되면 기타를 들고 광장에 나가 자작곡한 노래들을 부르곤 한다. 또래 소녀들의 마음을 아련하게 만드는 이 멜로영화에서 유이는 실제로 자신이 작사·작곡한 노래들을 직접 기타를 안고 불렀다. 이 영화의 삽입곡 3곡으로 구성된 싱글은 이제 갓 스무살 문턱에 들어선 가수의 어쿠스틱한 감성이 나이답지 않게 뛰어난 재능에 바탕해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완성도 높은 멜로디 라인을 그리는 록발라드 테마 <Good-bye Days>, 후렴구 멜로디가 상쾌하게 반복되는 <Skyline>, 성숙한 기타 솔로 라인을 들려주는 <It’s
스무살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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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 지음/ 학고재 펴냄
<남한산성>은 3년 만에 만나는 김훈의 장편소설이다. 김훈은 병자호란를 버티어 치욕으로 목숨을 부지한 조선의 어느 겨울을 남한산성에서 살핀다. 이 책의 ‘일러두기’는 “이 책은 소설이며, 오로지 소설로만 읽혀야 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실명으로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묘사는 그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될 수 없다”고 미리 못박고 시작한다. <난중일기>를 바탕으로 전장의 복판에서 살고 싸우고 고뇌했던 이순신의 시점에서 기술했던 <칼의 노래>와 달리, <남한산성>은 겨울바람처럼 매서운 눈으로 남한산성에 모여드는 자들을 살펴 글로 옮긴다. 채 2개월을 넘기지 않은 병자호란의 고요한 전장, 말(言)이 들끓는 성 안과 말(馬)이 먼지를 일으키는 성 밖의 모습은 역사책으로 다 말할 수 없는 서늘한 생생함을 떠올리게 한다.
인조는 강화로 발걸음하다 남한산성에 기거하기 시작한다. 정묘호란으로부터 1
병자호란, 그 치욕의 봄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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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즈>의 일본인 역할 맡은 한국인,
제임스 기선 리를 둘러싼 공방
<히어로즈>
캐치온 매주 월·화 오전 10시
캐치온 플러스매주 월·화 오후 10시10분
이제 미국 드라마(미드) 열풍과 관련해 ‘미국 드라마계에서 한국계 배우들 맹활약’ 운운하면서 <로스트>에서의 비중있는 역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김윤진을 언급하는 것은 아주 식상한 일이 되어버렸다. <배틀스타 갈락티카>에서 인간의 아이를 낳고 인간을 돕는 사일런(일종의 로봇)을 연기하고 있는 그레이스 박에 대해 자세히 언급해야 그나마 식상한 느낌이 덜 들 정도다. 미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그만큼 미드에서 활약 중인 한국인 배우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 중이고 한국에서도 얼마 전부터 방영을 시작하며 화제가 되고 있는 미드 <히어로즈>(HEROES)에도 한국계 배우가 한명 출연 중
[이철민의 미드나잇] 우리가 보고 있답니다, 기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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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4월29일(일) 오후 2시20분
관습과 그에 맞서는 개인의 욕망 혹은 역사와 개인의 관계를 다루는 데 주력해왔던 루이 말. <알라모의 총성>은 부조리한 현실을 다룬다는 점에서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 텍사스의 알라모항으로 베트남 이주민들이 모여든다.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들은 새로운 터전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다. 마을의 터줏대감인 윌리는 이들에게 새우잡이 배를 임대해주고 그들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한다. 그 와중에 재정난에 시달리며 어선을 압류당한 마을 주민들은 베트남 이주민들의 존재에 위협을 느낀다.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겼다는 박탈감, 그리고 빼앗은 주체가 뿌리없이 떠도는 ‘이주민’이라는 사실은 주민들의 호전성을 키운다. 그들은 총을 들고 온갖 인종차별적인 공격을 서슴지 않으며 베트남 이주민들을 마을에서 몰아내기 위해 간교한 음모를 꾸민다. 힘없는 이주민들은 결국 버텨내지 못하고 마을을 떠나지만, 딘은 굴
이주노동자라는 복잡한 함수, <알라모의 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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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할퀴고 몸을 부수는 통속극,
SBS <내 남자의 여자>와 MBC <케세라세라>
피만 튀기지 않았지 이 정도면 전쟁이다.
상대의 아픈 곳을 찌르는 가시 돋친 말이 챙챙 충돌하고, 온몸을 던진 육탄 공격도 퍽퍽 소리를 낸다.
TV 앞에서 하품을 터뜨리며 DVD를 보는 것도 아니건만 리모컨의 빨리감기(FF) 버튼을 눌러보고 싶어지는 나른한 봄의 드라마 세계에서 잔혹한 멜로 두편이 진득한 집중을 유도하고 있다. SBS 월화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와 MBC 주말극 <케세라세라>가 바로 염통을 쫄깃하게 조이는 말의 배틀과 ‘아휴, 많이 아프겠다’ 싶은 몸의 부딪침으로 신경을 자극하고 있는 두 메뉴. 전자는 김희애·배종옥·김상중 등을 내세운 중년의 불륜담이고, 후자는 에릭·정유미·이규한·윤지혜 등이 나오는 청춘남녀의 사각 러브스토리다. 외피는 눈곱만큼도 새로울 게 없다. 그런데 근사한 이층집, 현대식 고급 오피스텔 등 먹
통속극의 발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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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레슬링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 복면 레슬러 만화는 어린이 잡지의 인기 메뉴 중 하나였다. 한 남자가 고아원 아이들을 돕고자 복면을 쓰고 레슬링 무대에 선다는 만화는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는데, 복면이 벗겨지면 레슬러는 이상하게도 힘을 잃거나 큰 수치심을 느끼곤 했다. 이런 만화에 영향을 준 것이 멕시코의 복면 레슬링을 일컫는 ‘루차 리브레’라는 사실, 그리고 낮에는 신부였다가 밤엔 고아를 위해 레슬러로 활동하는 멕시코 남자 이야기 등을 들은 건 한참 뒤의 일이다. 멕시코에서 국민적인 인기를 얻은 루차 리브레가 영화의 소재로 사용되었음은 물론이다. 그중에서 ‘산토’라는 인물이 (간혹 ‘푸른 악마’와 짝을 이뤄) 악당이나 괴물에 대항해 싸우는 영화는 수십편이나 제작됐을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나쵸 리브레>는 <산토 시리즈>(사진1)의 팬을 자처하는 제레드 헤스가 만든 작품으로, 그는 원작에서 범죄스릴러와 판타지의 요소를 없앤 대신 그 자리를 착한
제레드 헤스와 잭 블랙의 포복절도 레슬링 한판, <나쵸 리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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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호주영화제가 서울과 부산에서 열린다. 주한호주대사관이 개최하는 이 영화제는 4월24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5월4일부터 11일까지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각각 열릴 예정이다. 상영작은 장편 10편과 단편 14편 등 총 24편. 장편 상영에서는 범죄물, 코미디, 가족물, 멜로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의 극영화를 접할 수 있고, 단편 상영에서는 2005년 아카데미 최우수 단편애니메이션 후보에 올랐던 박세종 감독의 <축 생일>(2004)과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호평받은 <13번 병동>(2003) 등을 포함한 5편의 애니메이션도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영화제의 상영작들은 대부분 2002~2005년 사이의 작품들이다. 히스 레저, 나오미 왓츠, 올랜도 블룸, 토니 콜레트, 샘 닐, 제프리 러시, 휴고 위빙, 존 굿맨 등 영미권 배우들이 보여주는 동시대 호주영화와 호주의 일상을 소박하게나마 경험토록 해줄 기회가 될 것이다(문의: 주한호주대사관 02-20
영화로 만나는 호주의 일상과 풍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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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 닌자거북, 무적의 용사들!” 90년대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을 즐겨봤다면 누구나 닌자거북이를 기억할 것이다. 미국에선 ‘10대 돌연변이 닌자거북’(TMNT: Teenage Mutant Ninja Turtles)으로 불리는 그들은 거북 특유의 기질을 발휘하며 장수했고 2007년 옛 인기를 되찾으려는 듯 다시금 스크린 공략에 나섰다. <닌자거북이 TMNT> 개봉을 맞아 준비한 닌자거북이의 모든 것.
1. 80년대를 장악한 거북들
1983년. 케빈 이스트먼과 피터 레어드는 여느 때처럼 새로운 만화 캐릭터를 창조하고자 아이디어를 쥐어짜고 있었다. “그때 나는 복면을 쓴 거북을 스케치했다. 피터가 하나를 더 그렸고 또 하나를 첨가했다. ‘닌자거북이라 부르는 게 어때?’ 피터가 대답했다. ‘10대 돌연변이 닌자거북은 어때?’” 2년 뒤 만화로 출간된 <TMNT>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80년대를 후끈 달아오르게 한 작품으로 회자된다. “거북이어서 행복해”라는
[알고 봅시다] 발가락 2개, 비만체형, 15살의 돌연변이들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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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작전 중 동료를 잃고 은퇴한 저격수 스웨거(마크 월버그)는 정부 관계자인 존슨 대령(대니 글로버)으로부터 대통령 암살 음모를 막아달라는 제의를 받는다. 범행이 일어날 장소를 돌아다니며 가능한 암살 방식을 모조리 연구한 저격수는 수집한 정보를 존슨 대령에게 전해주지만, 대통령을 방문한 에티오피아 주교가 암살의 대상이 되고 총상을 입은 조격수는 오히려 암살범으로 몰린다. 이제 저격수는 뒤쫓는 FBI에게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는 동시에 존슨 대령 일당의 음모를 폭로해야만 한다.
여기서 에티오피아 학살과 의회의 음모론에 뭔 의미가 있을까. 음험한 미국 정부의 시스템을 소재로 끌어오긴 했지만 <더블타겟>에서 정치적 의중을 읽어내려는 노력은 표적을 잘못 겨냥한 것이다. 안톤 후쿠아 감독은 의회의 음모 집단을 거의 만화적으로 보일 만큼 관습적인 악(惡) 자체로 그려낸다. 대신 그는 관객의 기대만큼 열심히 액션의 쾌락을 안고 달음박질치는 데 최선을 다한다. 고비마다 로케이션
액션의 쾌락 <더블타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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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를 사는 슈퍼히어로라면 매스미디어와 가까워야 한다. 슈퍼맨 클라크 켄트(브랜든 라우스)는 지구상에 벌어지는 사건들을 가장 빠르게 접하기 위해 기자가 됐고, 프리랜서 사진기자인 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는 금전적 보상을 위해 스파이더 맨으로 변한 자신의 활약상을 찍어 판다. 두 사람 모두 변신 뒤엔 대도시의 하늘을 자유롭게 활강하며 악당들을 물리치는 영웅이지만, 일터에선 순종적인 성품에다 업무에서도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않는 평균적인 직장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우아한 콧날에 고귀한 미소까지 갖춘 30대 조각미남과 눈밑의 통통한 애교살이 사랑스런 몸짱 미소년, 이들의 직딩생활을 전격 비교해보자.
1. 고용 형태 및 업무 환경
클라크 켄트: 일간지 <데일리 플래닛> 기자. 설정상 클라크가 기자를 직업으로 택한 또 다른 주요 이유는 외근을 가장해 사건사고 현장에 나갈 수 있기 때문인데, 실제 신문사에서 슈퍼맨처럼 보고도 없이 무단으로 직장을 이탈하는 간 큰
[VS] 기자여야 슈퍼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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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차이나에서 태어났으나 자신은 프랑스인이라고 믿는 남자와, 베를린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자랐으나 자바섬이 자신의 고향이라고 여기는 여자. 과거의 상처와 기억을 애써 지우려, 새로운 곳에서 삶을 꾸려가는 남녀는 프랑스 파리에서 20일 밤을 함께 지낸다. <20일 밤, 그리고 비오는 하루>는 이들이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며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 파리의 아파트를 처분하려고 집을 방문한 여자는 위층에 살고 있는 남자와 마주치고 섹스와 대화가 섞인 시간 속에서 스스로의 과거를 돌아본다. 기억 속 전쟁과 화산 폭발의 이미지를 경유한 여정은 원점을 향하고, 두 남녀는 자바섬에 도착한다. 다소 도식적인 틀 속에서 진행되는 이야기가 진부하며, 그 의미도 사색의 여유가 공허하게 느껴질 만큼 깊지 않다.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을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
상처를 치유하는 섹스 <20일 밤, 그리고 비오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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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를 사랑하는 어린 죄수. 김기덕 감독의 신작 <숨>에서 강인형이 연기한 캐릭터에는 이름도, 감옥에 오기까지의 사연도 없다. 그저 아내와 자식을 죽이고 감옥에 갇힌 장진(장첸)을 미친 듯이 사랑한다는 식의 추상적인 설명밖에는. 그럼에도 야수처럼 웅크린 장진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던 어린 죄수는 설득력있게 형상화됐고 김기덕 감독은 “강인형의 연기력이 출중해 작은 역할이었던 어린 죄수의 비중을 키웠다”고 호평했다. “그건 그냥 칭찬하려고 하신 말씀이고 분량은 거의 비슷했다. 실제로는 이성애자이기 때문에 사형수 남자를 사랑한다는 설정에 있어 작위적인 느낌이 안 들게끔 노력했다. 사랑하는 사람, 연인이라고 상상하면서 연기했다. 감독님도 그런 걸 원하셨던 것 같다. 겉핥기식으로 꾸며내는 것보다는.” 그러나 상상에 상상을 거듭한들 대사없이 표정과 눈빛만으로 심경을 토로하기에는 분명 어려움이 있었다. 자신이 연기한 감정이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 외에도 김기덕 감독을 둘
장첸을 사랑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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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아에서 한국까지.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크리스티앙 바소가 서울에 발을 내디뎠다. 이창동 감독의 신작 <밀양>에 음악을 입히기 위해서였다. 한밤이 한낮으로 돌변하는 시차도, 불편하기 그지없을 언어 차이도 그에겐 큰 어려움이 아니었던 것일까. 이창동 감독과의 작업을 “마술 같은 과정”이라 표현한 바소는 그러나, 인간의 힘을 넘어선 만남의 순리를 이해한 눈치였다. 이번 서울행 역시 애초 우연에 우연이 덧붙여진 기묘한 인연에서 시작했다. 이창동 감독이 부에노스아이레스영화제에 초청받지 않았다면, 그곳 자원봉사자에게 바소의 앨범을 선물받지 않았다면, 혹여 그렇더라도 수록곡들, 특히 ‘이방인’이라는 제목의 <크리올료>(Criollo)에 귀기울이지 않았다면, 아니, <밀양>의 음악작업을 제안하는 메일을 바소가 무신경한 클릭 한번으로 삭제했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었을 일이었다.
“이번 작업은 운명에 감사해야 할 기회다. 연락처 하나 모르는 상황에서 내 웹페
이방인 트로트 선율의 매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