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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사육 2007>의 무대는 일본이 아닌 홍콩이다. 사진작가인 케니(토니 호)는 남편과의 첫 데이트를 회상하며 홍콩을 찾은 일본인 유미(사카가미 가오리)와 충동적인 하룻밤을 보낸다. 하지만 옷만 입고 나면 ‘도로남’이 될 거라 생각했던 케니와 달리 유미는 끈질기게 그에게 집착하고 급기야 그를 어느 저택으로 유인해 감금한다. 그녀의 완전한 사육은 가혹하다. 유미는 도망가려는 케니를 기절시키고 발가락을 자르다 못해, 그를 찾으러 온 애인 니키(보니 로이)까지 난도질하기에 이른다.
<완전한 사육 2007>은 <Love Education>이란 원제를 가진 이 영화의 ‘그럴싸한’ 한국 제목이다. 마쓰다 미치코의 실화 소설 <여자고교생유괴사육사건>을 영화화한 다른 <완전한 사육> 시리즈의 연장선상에서 보기보다는 <위험한 정사>나 <미져리> 등과 비교하는 것이 훨씬 수월할 것이다. 남자와의 하룻밤 이후 그를 파멸
충동적인 발기는 패가망신 <완전한 사육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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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고든의 북한 관련 다큐멘터리들은 정치적 고려없이 연출되었지만, 교묘한 거리감각을 보여준다. 축구광 대니얼 고든은 1966년 영국월드컵 8강 신화를 보여주었던 북한 축구팀에 대한 애정어린 헌사인 <천리마 축구단>(2002)을 통해 서방인 최초로 북한에서 영화를 찍었고, 이어 북한의 매스게임을 소재로 한 <어떤 나라>(2004)를 연출했다. 월북 미군의 삶을 추적한 <푸른눈의 평양시민>(2006)은 대니얼 고든의 세 번째 북한 관련 작품이다. 그의 다큐멘터리가 영리하게 노린 바는 명확했다. 이념적, 정치적으로 무고해 보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수많은 경계들을 허물 수 있다는 것. 미치도록 흐뭇한 영화인 <천리마 축구단>과 집단적, 이념적 색채가 강렬한 매스게임을 그 소재로 한 <어떤 나라>에 등장한 북한은 지구상에 최후로 남아 있는 전체주의의 낯선 이미지들을 지닌 외계(外界)이자 이질적인 타자성의 국가였다. 그러나 너무도 빈번한
독특한 이력의 월북 군인의 삶 <푸른눈의 평양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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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상한 남자친구 현중(이기우)과 사랑을 나누는 가인(윤진서)은 유복한 가정의 행복한 여고생. 그러나 어느 날 작은고모가 큰고모를 병실에서 잔혹하게 살해하는 일을 목격한 뒤 기이한 일들이 꼬리를 물고 발생한다. 우등생인 급우가 양호실에서 죽이려 들고, 담임선생님도 급작스레 가인을 공격한다. 충격에 휩싸인 가인에게, 아버지를 죽였다는 소문이 있는 전학생 석민(박기웅)이 다가와 “아무도 믿지 않으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긴다.
강경옥의 원작 만화를 영화화한 오기환 감독의 <두사람이다>는 대단히 흥미롭고 풍부한 착점을 지녔다. 마음속 작은 살의와 의심이 만들어내는 비극을 공포영화적으로 다루려는 모티브는 가족과 연인이라는 가장 안온한 울타리 안에서 섬뜩한 실체를 드러내며 ‘관계의 지옥’을 그려내려 한다. 대부분의 공포영화들이 홀로 남겨진 자가 겪는 끔찍한 일들을 묘사하는 데 비해, 두 사람이 남게 되었을 때 발생하는 소름 끼치는 사건들을 다룬다는 점에
관계의 지옥 <두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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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외계인들에게 실험당하고 풀려난 세명의 남자가 외계인 하나를 생포한다. 함께 납치된 적이 있던 오스틴(애덤 코프먼)의 집에 일행이 들이닥치자, 오스틴과 함께 있던 여자친구(미스티 로자스)는 이에 항의한다. 해묵은 트라우마가 네명 사이에서 터져나오는 사이, 외계인은 사슬에서 풀려나 집 안 어딘가에 숨고, 외계인의 습격으로 한명씩 죽어간다.
<얼터드>는 ‘피해의식’에 빠진 사람들의 심리영화에 가깝다. 흥미를 끄는 것은 주인공들이 말없이 전제하는 규율인데, ‘첫째, 외계인의 눈을 보아서도 그를 만져서도 안 된다. 둘째, 그를 죽이는 것은 짐승이 인간에게 하는 짓처럼 무모하다. 셋째, 우리를 포위하고 있으므로 집 바깥을 나가야 소용없다’로 요약된다. 이 원칙들을 누가 어떻게 허물어뜨리는가에 주목하는 것은 재밌는 관람 포인트가 될 것이다.
<얼터드>는 에두아르도 산체스 감독의 화제작 <블레어 윗치>의 연장선상에 있다. 전작이 마녀 전설을 따라
공포를 즐기려고 ‘노력’하는 영화 <얼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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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예지원의 크리스마스 이브는 호사다마(好事多魔, 좋은 일에 탈도 많다)의 모범이다.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소식이 시내 전광판으로 울려퍼지는 가운데 서로 섞이기 어려운 네명의 사내가 청혼 반지를 품고 예지원 집으로 약속한 듯 들이닥친다. 넷 중 하나를 택하라는 사지선다의 요구 앞에 예지원은 답안 기입을 기피하는데, 아껴 먹으려는 그 봉들이 차례로, 말릴 틈 없이 요절난다. 예지원이 죽인 것일 수도 있고, 스스로 죽어나간 것일 수도 있다. 원작인 프랑스영화 <형사에겐 디저트가 없다>의 형사가 여주인공에게 “살인과 사고사의 차이가 뭘까요?”라고 묻는 것처럼, 쌓인 주검의 책임소재를 따지자면 알쏭달쏭이다. 스타 여배우의 집에서, 여배우의 소품들로 연쇄살인, 아니 연쇄죽음이 벌어졌으니 파란만장할 사단이 벌어진 건 분명하다.
예지원이 주검 하나를 수습하려들면 또 하나의 주검이 생겨난다. 계단으로 연결된 복층 주택이긴 하나 제한된 공간에서 다른 사내들 모르게 주검을 감추는 동
유쾌한 예지원스러운 자세 <죽어도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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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납치 사건 때문에 탈레반은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이름이 되었다. 2006년 베를린영화제의 감독상인 은곰상을 수상한 마이클 윈터보텀과 매트 화이트크로스의 작품 <관타나모로 가는 길>은 끝없는 전쟁에 놓인 아프가니스탄에서 뜻하지 않게 정치적 희생양이 된 네 청년의 여정을 따라간다. 1984년에 만들어진 데이비드 린의 <인도로 가는 길>이 지배국의 눈으로 식민주의의 비인도주의적 태도를 비판하는 낭만적인 길을 걸었다면, 이 영화는 정반대의 출발선상에서 정치적, 민족적 약자들이 세계 정치의 권력구도 안에서 인권을 유린당하는 현장을 처절하게 고발하는 고통스러운 ‘길’을 스크린으로 끌어들인다. 마이클 윈터보텀 감독은 이미 2002년작인 <인 디스 월드>를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난민캠프에서 태어나 오로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국으로 향했던 자말이라는 소년의 이야기를 세미다큐 형식으로 만든 바 있다. ‘로드무비’라는 이름이 너무나 낭만적으로 들릴 만
세계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고발 <관타나모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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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용 장편’이라는 개념을 이만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경우가 또 있을까? 영화 <심슨가족, 더 무비>와 원작 TV시리즈의 결정적 차이라곤 약 4배로 늘어난 에피소드의 길이와 와이드스크린 비율로 넓어진 화면 너비가 전부다. <심슨가족, 더 무비>는 캐릭터와 사건의 성격, 표현 수위, 농담 색깔은 물론, 오락성과 완성도마저 TV시리즈 <심슨네 가족들>의 평균치다. 요람 격인 폭스사를 놀려먹는 버릇까지 그대로다. 스크린 하단에 방송 예고가 흐르면 “그래요, 폭스는 영화 상영 중에도 채널 광고를 하죠”라는 자막이 뜬다. 뒤집어 말해, 매트 그뢰닝과 제임스 L. 브룩스를 비롯한 <심슨네 가족들>의 창조자들은 텔레비전 우주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마음껏 해보지 못한 작업이 별로 없었던 듯하다. 극장용 영화로서 <심슨가족, 더 무비>가 구가하는 자유는 주로 공간적 여유다. 관객은 브라운관에서 익힌 스프링필드 시가지를 파노라마, 360도 등의
호머의 오디세이 <심슨가족, 더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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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를 갔다 와보니 난리가 났다. 1주일 자리를 비웠는데 사태를 파악하느라 그간 있었던 일들을 뒤쫓다보니 1년은 비운 느낌이 들었다. <디 워> 논란에 대해 내가 쓴 글에 달린 댓글은 편집장이 된 이래 처음 맛보는 흥분을 안겨줬다. 이렇게 많은 댓글은 경험해보지 못한 터라 나를 비판하는 글인데도 이런 관심 황송하다, 싶었다. 결정적으로 휴가 때문에 <100분 토론>을 놓쳤는데 인터넷에 오른 기사와 댓글을 살펴보니 <무릎팍도사>를 뛰어넘는 올해 최고의 토크쇼였던 모양이다. <디 워>가 그냥 한편의 영화가 아니라 사회현상이 되고 있다고 했던 예측이 들어맞은 셈이다. 물론 그간 <디 워> 논란만 화제가 된 건 아니었다. 남북이 정상회담을 한다는 놀라운 뉴스가 있었고 한국이 별안간 아열대기후로 둔갑했으며 학력 위조 사례가 연이어 적발되고 있었다. 오랜만에 ‘다이내믹 코리아’의 활기를 느끼면서 이것이야말로 내가 이 땅을 벗어났을 때 맛
[편집장이 독자에게] <디 워> 논란 2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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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제이슨 본을 연기하는 맷 데이먼을 당신이 처음 봤을 때, 이 둘 사이에 존재했던 공통점을 하나만 대라면 뭐라고 하겠는가. 나올 수 있는 답변 중 하나는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곳에 있는 것 같은 사람. 스파이로서의 기억을 잃은 뒤 자신을 고용했던 시스템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당해 끊임없이 도망다니는 제이슨 본은, 프로페셔널하고 완벽해야 할 이 직업에 걸맞지 않게 불안해 보이고, 쉽게 나약함이 보인다. 그리고 배우 맷 데이먼의 인상은 통상 할리우드 스파이액션물의 히어로라고 했을 때 연상되는 모습을 벗어나 있다. 2002년, (그때까지도 여전히 <굿 윌 헌팅>(1997)의 꼬리표를 달고 있던) 맷 데이먼 주연의 스파이액션물은 할리우드 업계 관계자들의 기대를 전혀 받지 못했다. 이 해에 맷 데이먼은 20년지기인 벤 애플렉과 손을 맞붙잡고 노심초사를 했는데, 애플렉은 <썸 오브 올 피어스>라는 블록버스터 액션물 개봉을 눈앞에 두고 있었고
[맷 데이먼] 긍정의 힘을 믿는 현실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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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데브라 윙거는 영화계를 떠난 걸까. 로잔나 아퀘트의 질문에 데브라 윙거 대신 마사 플림튼이 답했다. “최소한 남자배우들에게는 옵션이라는 게 있기나 하지. 캐릭터 연기라는 옵션 말이야.” 2002년작 <데브라 윙거를 찾아서>는 80년대 전성기를 보낸 연기도 잘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여배우들이 왜 갑자기 영화계에서 사라져버렸는지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다. 멜라니 그리피스, 대릴 한나, 사만다 마티스, 로라 던 같은 여배우들이 증언하는 것은 30, 40대 여배우를 위한 역할마저 모조리 새로운 20대 여배우들에게 돌려보내는 할리우드의 처녀애호증이다. 하지만 미셸 파이퍼는 거기에 없었다. 아마도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거나, 혹은 애들을 키우느라 정신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돌아보면 80, 90년대의 파이퍼는 보기 드문 괴물이었다. <스카페이스>(1983)와 <이스트윅의 악녀들>(1987)의 파이퍼는 알 파치노와 잭 니콜슨의 카리스마에 기죽지 않는 거의 유
세월을 유희하는 불멸의 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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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내내 하루 24시간 일하겠다는 영화사가 있다. 이름부터 24/7 픽쳐스다. 요즘 같은 불황의 시기에 하루 꼬박 일하겠다는 각오가 가당키나 한 일인가. 하지만 지난해 말 제작사를 차린 진원석 대표의 설명을 듣다보면, 하루 24시간 일을 하겠다가 아니라 하루 24시간 일을 해야 한다. 연세대 불어불문학과를 중퇴한 뒤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에서 영화를 전공한 진 대표는 미라 소비노, 금성무, 김혜수 등이 출연한 데뷔작 <투 타이어드 투 다이>(1998)로 선댄스영화제에 입성하는 등 화제를 모았다. 2년 전 신작 <엑스펫츠> 제작을 위해 긴 뉴욕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들어온 그에게 감독에만 머물지 않고 “한국영화의 마지막 블루오션은 해외”라며 글로벌 프로젝트 전문 제작사를 차린 이유를 물었다.
-24/7 픽쳐스라. 회사 이름이 독특하다.
=그렇게 지어놓으니까 삶이 그렇게 바뀐다. 매일 24시간, 1주일 내내 뛰어야 할 것만 같다. 얼마 전까지 미국의
“한국의 재능과 할리우드의 시스템을 결합할 프로듀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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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처음 안 것은 우리가 아니었고 그가 처음 사랑에 빠진 것은 우리가 아닌 그들이었다. 우리가 그들을 애증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동안 그는 그들의 마음을 열고, 맨 얼굴을 봤다. 우리에겐, 아무리 해도 닿을 수 없는 북한이나, 그 북한에 대해 무려 세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든 대니얼 고든이나, 생소하긴 매한가지다. 1966년 영국월드컵 당시 이탈리아를 누른 북한대표팀의 과거와 오늘을 보여준 <천리마 축구단>을 만들 당시, 그는 그저 불가능에 도전하는 광적인 축구팬일 뿐이었다. 매스게임에 임하는 두 소녀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어떤 나라>는 거대한 조직 안의 개인이 궁금했을 뿐이란다. 서양인 최초로 북한 당국의 절대적인 협조 속에서 그 누구도 담지 못했던 북한의 모습을 담았던 이 다큐멘터리스트는, 자신의 영화가 정치적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한사코 부인한다. 1960년대 38선을 넘어 북으로 향한 미군 병사 네명 중 한명인 제임스 드레스녹의 현재를 궁금해할 때도, 논쟁
“개인과 개인이라면, 미국인과 이라크인이라도 잘 지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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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터드>는 <블레어 윗치 프로젝트>의 감독 중 한명인 에두아르도 산체스가 8년 만에 만든 신작 SF호러영화다. 은근히 신기한 사실은 한국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는 거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극장개봉 없이 DVD로만 출시된 작품인데다 알아볼 만한 스타가 등장하지도 않는 저예산 호러영화가 ‘<블레어 윗치>의 충격이 돌아왔다’는 공소시효 만료된 광고문구로 극장에 걸리는 것은 한국이 저예산 호러영화의 의외로 사려 깊은 시장이기 때문일까. 그건 농담이고, 어쨌거나 <얼터드>는 감독의 전작보다는 나이트 샤말란의 <싸인>에 큰 빚을 지고 있는 꽤 볼 만한 저예산 호러영화다. 8년 만에 고개를 끄덕일 만한 신작을 들고 온 감독 에두아르도 산체스의 소사.
1 <블레어 윗치 프로젝트>의 시작
1998년, 인터넷 세상이 다큐멘터리 영화 한편에 휩쓸렸다. 마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세명의 영화과 학생이 실
[알고 봅시다] <블레어 위치>로 대형사고 낸 그 감독의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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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리턴> 마… 마취가 풀리고 있어!
[정훈이 만화] <리턴> 마… 마취가 풀리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