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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끝자락, 9월을 앞두고 새로이 온에어되는 CF도 별로 없어 소재의 빈곤함에 허덕이다 뭔가 ‘거리’를 찾으러 최근 CF들을 둘러보던 중 큰 웃음을 한번 터뜨리고 말았는데 ‘가마솥 밥 요구르트’ CF 때문이었다. 불륜 드라마나 영화의 클리셰를 고스란히 가져온 연출, 그리고 영어와 한국어를 오가는 ‘밥’이라는 말을 통한 반전. 이거 오랜만에 유쾌했다. 게다가 천연덕스러운 밥알 캐릭터와 요구르트 캐릭터의 풀어헤친 부적절한 만남을 통해 제품의 컨셉까지 아주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심의도 교묘히 피해가고, 똑똑하다!). 이런 백인 모델의 영어를 이용한 말장난은 현대 캐피탈의 광고로부터 출발해서 점점 발전하고 있는 듯하다.
근데 그러고 보니 최근 사이 유독 백인 모델이 등장하는 CF가 부쩍 늘어난 것 같다. 피어스 브로스넌이나 기네스 팰트로, 패리스 힐튼 같은 유명인이 아니라 무명이지만 백인인 모델 말이다. SKY나 모토로라 같은 휴대폰 CF들에서 특히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고
[도마 위의 CF] 버터 발라야 간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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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9월9일 오후 2시20분
<사과>는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딸이자, <칠판>의 감독인 사미라 마흐말바프가 18살 때 만든 데뷔작이다. 이 영화가 데뷔작이라는 사실도 놀랍지만, 십대 소녀의 손에서 탄생한 영화의 성숙한 정서 또한 놀라울 따름이다. 1998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대되었던 <사과>는 이란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바탕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사건 자체가 이미 영화보다 극적인 경우 문제는 사건을 얼마나 극적으로 재구성할 것인지가 아니라, 그 사건을 영화적으로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놓여 있다. 이를테면 사건을 다시 한번 직설적으로 반복하는 대신, 사건을 재구성 혹은 재해석함으로써 그 틈을 읽고 형상화하는 것. 사미라 마흐말바프의 시선에는 치밀한 기교는 없지만, 대상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영화 끝까지 지키고자 하는 신중함이 있다.
노인은 눈먼 아내와 어린 쌍둥이 딸들과 살고 있다. 그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돈을 벌러 밖
절망에 대한 사려깊은 시선,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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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연말 ‘2007년 10대 뉴스’ 목록에 들 확률이 높은 요즘의 거짓학력 들통 혹은 고백 사태는 참 오랫동안 신통방통하게 오류가 봉인돼왔다는 감탄을 주고 있지만 케이블 채널에 범람하는 ‘진짜인 체 구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그 거짓말을 잘도 들키고 있다.
tvN <독고영재의 현장르포 스캔들>, 코미디TV <조민기의 데미지> 등 페이크와 다큐라는 극과 극 성분을 결합한 이 오묘한 사례들은 저렴한 제작비로 화제성과 1% 이상의 시청률을 보장해주고 있는 케이블 채널의 효자 프로그램들. 한편 ‘가짜인 주제에 진짜처럼 행세한다’는 시청자 기만 혐의로 지겹도록 논란의 도마에 올라 얻어맞고 있는 단골 샌드백 품목이기도 하다. 그때마다 이들은 거짓학력 구설에 휘말린 유명인들이 그러하듯 ‘속인 적 없다’고 억울해한다. 스스로 진짜라고 말한 바 없으며, 방송을 시작하기 전 재연한 것임을 알리는가 하면 방송 중에도 밑으로 깔리는 깨알 같은 자막으로 성실 고지의 의무를 다하고
속이려면 제대로 속이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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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애는 <눈부신 날에> 현장에서 귀여움을 한몸에 받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유일한 아역배우이기도 했지만 현장에서 연기하는 자기도 추우면서 옷을 얇게 입은 스탭에게 ‘다음부턴 꼭 긴팔 챙겨 입으세요!’라며 일일이 챙겨주는 여배우로서의 면모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오디션에서 만나기 전부터 프로필 사진 속의 신애를 보고 마음을 굳혔다는 박광수 감독은 현장에서 신애에게 한없이 자상한 사람이었다. 신애에게 별도의 연기연습이나 대본 리딩 등을 요구하지 않고 자연스러운런 연기를 원했던 그는 ‘잘했다’는 그만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남발했고(?) 더불어 촬영 틈틈이 신애의 가장 좋은 놀이 친구가 되어주었다. 리허설이 따로 필요없었다.”
[숨은 스틸 찾기] <눈부신 날에> 아빠하고 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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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밖으로 조금만 고개를 내밀면 데이브 매킨과 닐 게이먼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다. 만화, 소설, 디자인, 광고, 게임과 기타 뉴미디어 분야에서 때론 같이 때론 따로 작업하던 두 사람의 합작품 <미러 마스크>는 팬들이 몇년 동안 목을 빼고 기다린 영화다. 성인용과 어린이용으로 구분되는 매킨과 게이먼의 작품들 중 <미러 마스크>는 후자에 해당한다. 스텔라는 부모가 운영하는 서커스단에서의 생활이 지루해진 십대 소녀인데, 어느 날 엄마가 병으로 쓰러지자 서커스단의 운영도 위기에 처한다. 슬픔에 잠든 소녀는 방에 그려놓은 낙서와 비슷한 모양의 기묘한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자기와 닮은 어둠의 왕국의 공주 때문에 그쪽 세계가 붕괴될 거란 얘기를 듣고 마법을 찾아 떠난다. 매킨과 게이먼의 걸작만화 <샌드맨>류의 영화를 기대한 사람에겐 심심할 법한 내용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동화를 킬킬거리며 보았을 어린이들은 뭐 어떠냐고 반문할 성싶다. 사실 <미
달콤한 환상여행, <미러 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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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배우는 많지만 자기만의 향기를 가진 배우는 그리 많지 않다. 다시 말해서 영화가 발견한 가장 큰 성취라고 할 수 있는 클로즈업을 견뎌낼 수 있는, 큰 스크린을 자신의 얼굴만으로 채울 수 있는 배우는 흔치 않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눈빛과 표정을 통해 드라마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배우, 그중 하나가 바로 이자벨 위페르다. 창백할 정도의 하얀 피부와 딱 떨어지는 정형미를 살짝 비켜나가는 그의 얼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어딘지 모를 불안감을 자아낸다. 그 불안감은 얼굴뿐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를 한마디로 형용할 수 없는 단어를 좀체로 찾아내기 힘들다는 데서 기인한다. 그것은 그가 끊임없이 자기 안에 빈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독특한 분위기로 인해 그는 모든 영화에서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로 변신하면서도 여전히 ‘이자벨 위페르’로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올 가을 하이퍼텍 나다의 ‘시네프랑스-이자벨 위페르 특별전’은 그의 대표작 가운데 주로 우리나라에서 개
이 치명적인 매혹, ‘시네프랑스-이자벨 위페르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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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와 관객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기획된 ‘다큐플러스 인 나다’ 두 번째 프러포즈가 준비되었다. 두달 간격으로 진행되는 다큐플러스 인 나다의 프로그램들은 매주 수요일 오후 8시20분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에서 상영된다. 9, 10월 프로그램의 컨셉은 ‘경계에 선 다큐멘터리’로, 다큐멘터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드는 영화들이 마련되었다. 이 영화들을 보면 극영화는 ‘허구’이고 다큐멘터리는 ‘사실’이라는 이분법의 한계효용이 점점 낮아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다큐의 형식을 차용한 극영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두 형식인 다큐와 애니메이션의 결합, 다큐와 픽션의 혼재 등 다양한 방식으로 다큐는 재창조되고 있다. ‘페이크다큐’ 형식을 차용한 <목두기 비디오>는 인터넷으로 상영되었을 때, 네티즌이 실화인 줄 착각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몰카 화면에서 귀신의 형상과 목소리가 발견되자 그를 추적하는 내용을 담은 이 영화는 촬영이나 편집 등에서 텔레비전 추적 프로그램 유의 형식을 그대로 따
다큐멘터리, 형식의 한계를 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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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에 자리하게 될 ‘문화 플래닛 상상마당’의 개관영화제가 9월7일부터 19일까지 열린다. “대단한 단편영화제”라는 이름을 내건 이번 영화제에서는 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국내에서 발표된 단편영화들을 상영한다. 최근 한국 단편영화계의 화제작들뿐만 아니라, 현재 충무로에서 활동 중인 감독들의 단편영화들, 그리고 클레르몽 페랑 영화제를 비롯해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해외 우수작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다. 영화제는 감독들 각각의 작품들, 주제별 단편영화들, 해외 단편영화들, 음악과 관련된 작품들 등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다수의 영화제에서 이미 여러 차례 소개된 작품들부터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지만 막상 볼 기회가 없었던 작품들, 생소한 제목의 싱싱한 작품들까지 다양하다.
가장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되는 부문은 아무래도 현재 활발하게 장편 작업을 하고 있는 감독들의 흔적이다. 김태용, 민규동 콤비가 탄생시킨 <열일곱>(박은경 감독도 참여), <창백한 푸른
온갖 단편영화들 다 모였네, “대단한 단편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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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두 번째인 ‘2007 CJ중국영화제’가 최신 중국영화 10편을 선보인다. 지난해 주제가 ‘중국 영화사 100년 짚어보기’였다면, 올해는 ‘중국영화의 신경향’을 주제로 잡았다. 중국의 광전총국과 영화진흥위원회가 주최하는 공식적인 한·중 문화교류 행사이기도 하며 장르에 따라 ‘사랑’, ‘위트’, ‘낭만’, 세개의 섹션으로 나뉘어져 있다. 영화 선정 기준은 “중국에서 곧 개봉을 앞둔 최신작이거나 중국 극장가에서 최대 이변을 기록한 다양한 장르의 최신 영화”라고 한다. 거의 젊은 감독들의 작품이며 신세대 사랑방식, 개방적인 성문화, 신구세대의 갈등 등을 다루었다. 다음은 이번 영화제에서 주목할만한 4편, 개막작 <공원>과 폐막작 <말 등 위의 법정>, 그리고 각각 ‘사랑’, ‘위트’ 섹션 작품인 <상하이의 밤>과 <크레이지 스톤>의 프리뷰. 이번 영화제는 9월5일부터 6일까지 부산 CGV동래에서, 9월7일부터 10일까지 서울 CGV용산에서
이것이 중국의 현재다, CJ중국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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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고 다니냐?”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가 빛낸 명대사지만, 사실 나문희는 그 이전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질문을 표정으로 물어왔다. 영화 <열혈남아>의 김점심, 드라마 <굿바이 솔로>의 미영 할머니는 아예 식당을 꾸리면서 가슴이 허한 젊은이들의 입에 밥 한 숟갈을 떠먹인 여자들이었고, <거침없이 하이킥>의 나문희 여사는 먹는 것을 인생 제일의 행복으로 여기는 ‘식신’이었다. 그녀의 첫 영화 주연작인 <권순분여사 납치사건>에서도 나문희는 300여개의 국밥제조비법을 지닌 국밥집 사장으로 등장한다. 만일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국밥집 체인사업을 연다면 김수미의 게장사업 이후로 최고의 대박을 내지 않을까? 국밥집을 찾는 손님들은 맛에서 만족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녀의 손맛에서 위로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하하하. 그런데 사실 나는 요리를 잘하는 편이 아니에요. 평소에는 가장 친한 영감이나 조금 챙겨서 줄 정도지 뭐. 우리 애
[나문희] “나는 사실 매우 틀림없는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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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6일, 애덤 샌들러가 주연한 두편의 영화가 개봉한다. 비행기 사고로 가족을 잃고 고통받는 남자에 대한 드라마 <레인 오버 미>와 이성애자지만 그럴 만한 사연으로 게이 결혼식까지 올리는 남남커플에 관한 동성애 코미디 <척 앤 래리>다. 주연배우가 같은 영화 두편이 하루에 개봉하는 것은 흔치 않은 경우! 애덤 샌들러의 전혀 다른 두 모습 외에도 닮은 듯 다른 두 영화를 비교한다.
<레인 오버 미>와 <척 앤 래리>의 애덤 샌들러
<레인 오버 미>
<레인 오버 미>의 애덤 샌들러는 낯설다. 9·11 테러로 가족을 잃은 찰리 파인맨을 연기한 샌들러는, 말쑥했던 이미지에서 벗어나 덥수룩한 머리, 분명하지 않게 웅얼거리는 이방인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코미디로 경력을 시작한 그이지만 짐 캐리가 <트루먼 쇼>와 <이터널 선샤인>으로 변신에 성공했듯, 스크린 속 진지한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 <
[VS] 진지 샌들러 vs 코믹 샌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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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간에 개봉되는 영화를 엄선하여 관객들에게 질문하는 [개봉작 출구조사]
이번 주에는 8월 30일에 개봉한 <내 생애 최악의 남자>와 <디스터비아>를 본 관객들에게 솔직담백한 영화평을 들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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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조사]<내 생애 최악의 남자>, <디스터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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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유유자적한 남자들이라니. 구겨진 바지와 티셔츠에 슬리퍼나 샌들 따위를 신고 나타난 정진영, 김윤석, 김상호는 겉모습부터 한껏 느슨해 보였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장근석조차 소파에 기댄 자세만큼은 무척이나 편안하게 느껴졌다. 이준익 감독의 신작 <즐거운 인생>에서 활화산 밴드가 뿜어냈던 열정은 그저 신기루였을까. 오해를 간파한 듯 농담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하게 진행된 인터뷰 중에는 활화산 밴드로 직면했던 고생과 분투가 한껏 묻어났다. 무엇보다 전자기타 줄 한번 진지하게 튕겨본 적 없고 드럼 스틱 한번 모질게 잡아본 적 없었던 이들의 손에는 물집과 상처의 흔적이 수훈처럼 남아 있었다(책임감만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그들은 “마치고 술 마시자”는 애초의 약속에도 그날 역시 <윤도현의 러브레터> 출연을 준비해야 한다며 홍대 연습실로 총총히 나섰다). <즐거운 인생>에서 활화산 밴드가 들려주는 모든 곡을 스스로의 손으로 연주해낸 이들에게 더이상 두려울 것이
[김윤석, 정진영, 김상호, 장근석] 유쾌한 네 남자의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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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하르 코헨 감독은 인터뷰를 다소 어색해했다. 과감한 레게 헤어스타일에도, 체구는 작았고 목소리는 나지막했다. 전쟁통에 사귄 네덜란드 여자친구들이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을지도 모른다는 아버지의 고백에, 그럼 그들을 찾아나서야겠다며 덜컥 유럽 여행을 계획한 기발함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8월27일부터 일주일간 열리는 EBS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EIDF)의 상영작인 <아버지의 선물>은 슐레이만이 제2차 세계대전 중 밟았던 자취를 뒤쫓는 다큐멘터리다. 전쟁의 화염 속에서 그는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를 거쳤고, 40여년이 지나 코헨은 아버지 슐레이만과 함께 당시 장소들을 되짚어간다. 부자의 친밀함과 일상의 유머가 풋풋하게 묻어났던 <아버지의 선물>은 실상 “2년간 철저하게 각본을 준비”해 완성한 작품. “나는 느린 사람”이라는 코헨 감독의 말을 들으니 침착한 눈 뒤에 숨어 있는 열정과 끈기가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처음 아버지와의 여행을 담기로 마음먹었을 때 의
“아버지도 이제는, 왜 사람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는지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