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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번역 출간된 <트뤼포 - 시네필의 영원한 초상>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한상준 집행위원장의 사려깊은 영화광적 면모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올 2월에 집행위원장 자리에 오른 한상준 위원장은 수석 프로그래머로서 활동했던 지난해와는 달리 정장을 입고 바쁘게 움직이며 영화제를 정상궤도에 올리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만 했다. 결과는 괜찮다. 영화계 안팎의 우려는 줄었고 예매율은 지난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올랐다.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오늘은 비가 안 오는데, 그게 오히려 더 불안하다”며 웃는 한상준 위원장의 얼굴에서 걱정을 찾아볼 수가 없다.
-집행위원장 첫해다. 예매가 지난해에 비해 아주 잘 되고 있다.
=특히 일본영화들이 아주 빠르게 매진되고 있다. 작은 멀티플렉스뿐만 아니라 <마츠가네 난사사건>처럼 부천시청이나 복사골에서 상영되는 작품들 중에서도 매진작이 계속 나온다. 비가 온다는 소식이 여전히 있긴 하지만 대단히
마니아와 대중, 모두와 함께 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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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삶이라 부르는 시간의 이 주름진 경험을 오롯하게 이해할 방법이란 있는가. 장자의 그 오래된 깨달음 아니 물음처럼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지 그 나비가 나를 꿈꾸고 있는 것인지, 현자의 질문은 지금도 우리의 몽롱한 삶 안에서 유효하다. <별빛 속으로>는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불가해한 그 문답의 구조 안으로 들어가 환상을 펼치되, 한국현대사의 어두운 역사의 한 장을 출입의 문지방으로 선택한다. 이 이야기는 감독 황규덕 개인의 경험에서 시작된 자전적 이야기이며 또 한 편으로는 잊혀진 시대를 지금 그려내기 위한 도전적 연출의 방식이기도 하다. 정직한 리얼리스트로서 맑은 진실의 채집에 관심을 보여 왔던 감독 황규덕은 <철수 영희>의 후속작으로 놀랄 만큼 다른 선택을 했다. 혹은 <철수 영희>의 마지막 판타지 장면이 예고라도 되었던 양 지금 자신의 영화 인생에서 첫 번째 본격 환상 양식의 영화를 만들어 부천의 개막을 알리고 있다.
중년의 독문학과
어두운 근현대사 호접몽 시각으로 재구성 <별빛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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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로봇이 꼬마들의 마법에 걸렸다. 오늘 11일(수요일) 개봉한 <해리포터와 불사조기사단>이 주말 예매 순위에서 약 55%가 넘는 예매율로 1위를 차지했다. 박스오피스에서 75%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던 <트랜스포머>의 위력을 절반이상 감소시킨 수치다. 특히 가족단위의 관객에게 사랑받는 영화인만큼 예매자의 성별과 연령 분포가 고르게 나타나고 있어 장기흥행까지도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해리포터와 불사조기사단>의 프린트 수는 500개로 스크린 수는 600개에서 650개 사이가 될 전망이다.
<해리포터~>가 1위로 진입하면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하던 <트랜스포머>는 약 30%대의 점유율에 그치며 2위로 내려왔다. 순위는 하락했지만, 지금까지의 흥행세로 볼 때 2위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3위에는 한지민의 첫 영화주연작인 <해부학교실>이 진입했으며 지난주까지 2위를 지키던 <검은 집>은 4위에
꼬마들의 대단한 마법.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예매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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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어느 날, 용산
자유로운 땅을 욕망하다
2015년, 용산공원사업이 끝난다. 미군기지 반환에 이은 지역 개발이 매듭을 짓는다. 용산은 서울을 욕망하는 사람들이 가닿을 마지막 처녀지다. 2015년의 용산은 국립중앙박물관, 전쟁박물관, 서울타워, 전자상가, 재벌가 집성촌, 이태원, 용산공원, 미군기지(일부는 여전히 남게 된다) 등을 한품에 껴안게 된다. 전근대와 근대, 메타담론과 소수자, 단일민족과 다문화, 강철과 녹지가 한번에 어울려 들어간다.
서울의 거리는 ‘배타적이어서 특별한 무엇’을 꿈꾸고 난 자리다. 구한말의 종로, 일제시대의 충무로, 군사정권시절의 명동, 90년대 강남, 2000년대 홍대에 이르기까지 ‘그들과 구분되는 나만의 밤 공간’이 쉼없이 탄생했다. 이제 남은 것은 ‘재발견’과 ‘재해석’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용산은 지루해지기 시작한 서울 사람들의 모든 욕망을 향해 열려 있는 미래의 멀티콤플렉스다.
<서울에서 서울을 찾는다>(궁리 펴냄)
[서울의 재발견] 모두 다 합치면 서울 대략 완전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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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계절이 왔다. 여름은 낮이 아니라 밤의 계절이다. 낮은 밤을 위한 리허설이다. 길고 무덥고 지리한 낮은 짧고 서늘하고 강렬한 밤으로 보상받는다. 사람들은 밤에 머물 땅을 위해 낮에 길을 떠난다. 그러나 굳이 먼 길을 떠날 필요는 없다. 밤은 원래 도시의 것이다. 서울의 여름밤보다 더 짜릿한 것은 없다. 그저 집 밖으로 향하는 길만 찾으면 된다. 골목길부터 세종로까지, 남산에서 홍대까지, 서울의 길마다 여름밤이 빼곡히 차 있다. 여름밤, 서울을 깊이 느낄 수 있는 책 몇권을 소개한다.
1982년 1월5일, 명동
밤이 시작됐을 때
기념 사진을 찍는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였다. 밤을 호흡하려는 시민들이 명동을 누볐다. 북악스카이웨이와 남산을 1시간30분 정도 돌아보는 ‘시내 야경관광’ 입간판이 거리에 나왔다. 82년 1월4일 자정, 해방 이후 37년 만에 처음으로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됐다.
물론 통금 시절에도 서울의 밤은 있었다. 다만 그것은 분단된 시간이었다. 밤 12시까
[서울의 재발견] Never Forget, Oh My Lover,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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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하드> 시리즈의 탄생 비화
네편의 원작부터 브루스 윌리스의 캐스팅까지
<다이하드>의 탄생 과정을 알기 위해서는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폭스는 미국 작가 로드릭 소프의 <형사>(The Detective)라는 소설을 원작 삼아 동명의 영화를 제작했다. 프랭크 시내트라가 주인공 형사 조 리랜드로 출연했던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자 폭스는 소프에게 속편을 쓸 것을 제안한다. 훗날 <다이하드>의 원작이 된 <영원한 것은 없다>(Nothing Lasts Forever)는 그렇게 쓰여졌다. 뉴욕의 노형사 리랜드가 오래전부터 연락을 끊고 살아온 딸을 만나기 위해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리고 있는 LA의 고층빌딩을 방문하는데, 이때 독일 테러리스트들이 이 빌딩을 점거한다는 내용은 <다이하드> 1편의 큰 골격이 됐다. 소프는 영화 <타워링>의 원작이 된 소설 <글래스 타워>와 당시 세상을
<다이하드> 시리즈의 탄생 비화 &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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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맥클레인이 돌아왔다. <다이하드3> 이후 무려 12년 만에 <다이하드4.0>을 통해 돌아온 이 미국적인 영웅은 여전히 호쾌한 액션과 삐딱한 태도로 액션영화 팬들을 자극하고 있다. 사실, <다이하드4.0>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사람들이 보인 첫 반응은 환영보다는 안쓰럽다는 쪽에 가까웠다. 정말이지 50대를 맞아 헉헉거리며 슬로 모션에 가까운 액션을 할 존 맥클레인을 생각하면 차라리 3편까지의 추억이나 즐겁게 간직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마침내 공개된 <다이하드4.0>은 ‘다이하드’ 정신을 훼손하지 않을뿐더러 이를 21세기에 맞게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이하드2>와 <다이하드3>보다도 1편에 가깝다는 반응을 얻는 중인 <다이하드4.0>의 매력과 <다이하드>의 세계를 정리해본다.
여전히 부서지며, 깨지고, 두들겨 맞고, 떨어진다. 가장 최근 시
<다이하드4.0> 아날로그 액션 영웅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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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하시 나오하루 감독의 <웨이스티드 스토리>
타카하시 나오하루 감독의 <웨이스티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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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도 맹세를 한다는데요?”
토요일 오후에 집에서 쉬다 휴대폰을 받았다. 2006년 2월로 기억된다. <한겨레21>에 몸담을 때였다. 지금은 <한겨레> 매거진팀에 함께 있는, 남종영이라는 후배 기자였다. 목소리가 다급했다. 그는 주주총회장인 백범 기념관에 있다고 했다. 어느 주주총회장인고 하니, 바로 한겨레신문사의 주주총회장이었다. “식순에 맹세가 있다니까요.” 맹세라 하면… 주주에 대한 맹세? 앞으로 주식 배당해주겠다고? 아니다. 국기에 대한 맹세다. 국기에 대고 신문 잘 만들겠다고 맹세하나? 남 기자는 주총 진행요원으로 동원됐다가 상황을 알아차리고 편집장에게 전화를 건 거였다. “문제제기해서 못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순간 머리가 복잡했다. 주총 책임자에게 전화라도 걸어? 고민을 하고 있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맹세는 하지 않고 국기에 대한 경례만 하기로 절충을 봤어요.”
여기엔 사연이 있다. <한겨레21>은 그해 1월에 ‘국기 애국주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트랜스네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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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로 B기자다. 얼마 전 김민경 기자가 오픈칼럼에서 “내공있는 중견 여배우에 특별한 선호를 지닌 B선배는 ‘안경이 터져나갈 것 같은’ 풍성한 반달 눈웃음을 짓는다”라고 썼던 그 B 말이다. 안경이 터져나갈 듯 웃음을 짓는 건 사실이나 그렇다고 부끄러운 건 없다. 내가 생각해도 나의 중년 여배우들에 대한 애정은 꽤 깊다. 꼭 여배우일 필요도 없다. 중년 여성들과 친하게 지낸 건 이미 어렸을 때부터였으니까. 중학생 때는 같은 빌라에 사는 아줌마들과 매일 배드민턴을 쳤고, 군대에서는 교회에서 밥 차려주던 작전장교 사모랑 친했고, 재수할 때는 독서실 총무아줌마랑 그녀의 아들의 진로를 놓고 고민해주기도 했다. 작은어머니들과 수다도 잘 떤다. 시집 간 여성동지들도 나한테 남편 흉을 본다. 왜들 이러시는지 정말….
하지만 아가씨보다 아줌마들과 친하게 지내는 내 모습이 싫지는 않다. 오히려 그들은 내 또래 아가씨들 보다 훨씬 재밌고 즐거운 대화를 하기에 좋은 친구들이다. 말하자면 그들에게
[오픈칼럼] 중년 여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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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판을 틀고 음악에 맞춰 신나게 점프하는 소년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춤을 추었다. 태어나자마자 춤을 추었다, 라는 음악의 가사처럼.
어쩌면 빌리에겐 음악을 느끼며 춤으로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본능이 이미 잠재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피아노 앞에 앉아 칠 줄도 모르는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어머니를 느꼈던 것도 어머니의 피아노 선율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빌리는 그 피아노 소리에 맞춰 태어나기 전 뱃속에서부터 춤을 추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생존권을 놓고 치열한 사투를 하고 있는 탄광촌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빌리는 이러한 자신의 춤에 대한 본능을 깨닫고 힘겹게 그 꿈을 키워나간다.
꿈꾸는 소년. 멋진 발레리노가 되고 싶은 소년의 꿈은 우연히 이끌린 발레 수업에 동참하면서부터 시작 되지만, 춤에 대한 열정이 생긴 이후 이미 춤은 그에게 필연이 된다.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꿈을 접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빌리는 계속 춤을 춘다
[내 인생의 영화] <빌리 엘리어트> -배우 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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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파에 시달리는 삼천만 우리동포/ 언제나 구름 개이고 태양이 빛나리/ 천추에 한이 되는 조국질서 못 잡으면/ 내 민족 앞서 선혈 바쳐 충혈원혼 되겠노라.” 1961년 5월 박정희 소장이 자형에게 보낸 시의 전문이다. 그로부터 얼마 뒤인 1961년 5월16일 0시15분. “목숨 걸기를” 밥 먹기보다 “즐겨했다”는 박정희 소장 일행은 서울 제6관구 사령부에 쿠데타 지휘소를 차렸고, 이튿날 오전 9시 군사혁명위원회는 “공공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피를 토해 부른 4월의 함성을 메아리로 되받지 못하고 허공에 날려버린 장면 정부는 “뜻있는” 군인들의 무혈혁명 앞에 순순히 무릎을 꿇었다. 짧았던 ‘승리의 화요일’이 가고, 끝모를 ‘겨울공화국’이 찾아들었다.
헌법을 워커로 짓뭉개버린 군인들은 맨 먼저 국가재건최고회의를 만들었다. 이 초법적 통치기구 아래서 같은 해 6월11일 재건국민운동에 관한 법률이 공포됐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반공과 내핍, 근면정신 고취, 생산
[한국영화 후면비사] 배우들이 시내 한복판에서 상투 틀고 교통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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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로 열렬한 환호를 받았지만 이준기는 스타라는 단어가 여전히 어색하단다. “지금은 작품 자체를 그냥 즐기고 싶다. 예전에는 나도 모르는 어떤 벽이 있었던 것 같다.” 매번 선배와의 협연을 강조하던 그가 안성기, 김상경 등 만만치 않은 공력의 배우들과 <화려한 휴가>에 출연했다. “순수하게 시나리오가 좋아 선택했다”지만 “참여한 것만으로 삶의 중요함을 일깨운 작품”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매혹적인 광대 공길, 싸움고수 승석을 거쳐 그를 찾은 캐릭터는 택시운전사 민우의 동생 진우. 머리가 좋고 공부도 잘해 형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인물이다. 출연 분량은 다소 적을지 몰라도, 이번 인터뷰를 위해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을 찍는 중에 한시바삐 달려온 것을 보면 작품에 임하는 자세만큼은 믿음직스러웠을 듯했다.
-부산 출신에 나이도 20대 중반이다. 이 영화에 출연하기 전까지 5·18에 대해 잘 모르지 않았나.
=그저 역사의 한 페이지라고
이준기, “5·18의 가해자들이 잘 살고 있다는 것이 이해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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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보니 더욱 가녀리다. 저런 손목으로 마이크를 잡고 가두방송을 했다니, 극중 모습이지만 차마 상상하기 어려웠다. <화려한 휴가>에서 이요원이 연기한 캐릭터는 퇴역 장교 출신인 흥수의 딸이자 민우의 사랑을 받는 간호사 신애. “조금의 의심도 없이”, “전적으로 감독을 믿고 연기”했기에 “한신 한신 버릴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나 긴 수식어 없이 간략하게 의사를 밝히는 어투에서, 5·18에 휩쓸려 표류하면서도 꿋꿋하게 자신을 지키는 신애라는 캐릭터가 자연스레 연상됐다. “함께 슬퍼하고 공감하는 것이 당시의 희생자분들께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안 그럴 것 같았는데 편집본을 보며 많이 울었다.” 허튼 말은 하지 않는 이요원을 믿는다면 <화려한 휴가>가 얼마나 관객의 마음을 울릴지 기대해도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좋아서 이 작품을 선택했다고 들었다.
=시대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아, 또 시대물, 그랬다. 5·18이래서 생뚱맞다고 생각했고.
이요원, “진정성, 내 안에 그런 모습이 보였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