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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소설, 새로운 영화를 만나자. 일련의 실험적인 프랑스 작가를 일컫기 위해 ‘누보로망’이라는 표현이 신문을 통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 1950년대 중반이므로, ‘새롭다’는 표현이 다소 어색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전지적 작가의 위치를 전제하는 전통적인 문학에 반기를 들고 독자의 능동적 참여를 유도하려던 누보로망의 시도는 지금의 관객에게도 여전히 새로운 질문을 던져준다. 오는 10월14일부터 11월9일까지 ‘프랑스 누보로망, 누보 시네마 특별전’을 통해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소개되는 24편의 영화는 누보로망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묶일 수 있는 작가 세명의 대표작이다.
이론가이자 소설가로 누보로망의 대표적 기수였으며 이후 시나리오작가, 영화감독으로 활동한 알랭 로브그리예와 마르그리트 뒤라스, 이들과 함께한 시나리오 작업을 통해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이래 여든살이 넘은 현재까지 한결같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알랭 레네. <히로시마 내 사랑> 등 몇번씩 소개됐던 고전부터 로브그리
알랭 레네, 로브그리예, 뒤라스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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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겨우 10월, 차가워진 바람에 핫한 영화 한편이 몸과 마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 10월1일부터 시작해 15일까지 진행될 팝몬트리올 페스티벌은 지금 현재의 영화와 음악을 다루는 축제로 7년째 계속되고 있다. 올해도 눈에 띄는 영화들이 프리미어로 많이 소개되고 있는데 예술 전반에 걸친 다큐멘터리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파트리샤 시카와 마이크 와퍼 공동감독의 <로커빌리 514> (Rockabilly 514)라는 다큐멘터리(혹은 로큐멘터리(rockumentary))는 올해 팝몬트리올에서 가장 뜨거운 지지를 받은 영화다.
로커빌리는 초기 로큰롤 스타일로 1950년대에 크게 유행했는데 록과 컨트리 뮤직을 섞은 듯한 흥겨운 리듬이 특징이며, 하위문화로서 미국에서 꾸준히 발전해온 장르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지난 3년간 몬트리올의 로커빌리 문화를 사랑하는 인물들을 인터뷰했고 특히 1950년대 음악과 라이프스타일을 숭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몬트리올] 50년대 로큰롤에 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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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거나 말거나, <텔레그래프>가 전하는 2008년 여름 영국 극장가 호황의 원인은 “경기 침체”다. 불황이어도 기분전환을 위한 재밋거리는 찾게 마련이고, 그중 저렴한 영화관람이 혜택을 봤다는 뜻이다. 영국영화배급자연합(FDA)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가 경제 난항을 겪은 지난 3개월 동안, 영국 박스오피스 수입은 1969년 이래로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2008년 6월부터 8월까지 영국 극장가는 5360만명의 입장객을 맞이했고, 총 5억9890만달러의 수입을 거뒀다. 이는 2007년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입장객은 5%, 극장수입은 14% 상승한 수치다. FDA 대표인 마크 베이티는 영화는 경기변동과 반비례하는 대표적인 엔터테인먼트라며, “저녁에 3시간 외출한다면 술집이나 경기장보다 극장에 가는 것이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날씨마저 우중충한 영국의 여름, 극장가를 뜨겁게 달군 영화들이 <아이언맨>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l
불경기 덕? 다양성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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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공간에 몰두하기 위해 세상과 담을 쌓는 사람들.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 상상마당 6월 우수작인 유승환 감독의 <히말라야>는 그렇게 외롭고 두려운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출판사에서 일을 하는 여자와 작가 지망생인 남자는 히말라야를 여행하다 만난 사이다. 오랜만에 부산에서 만난 두 사람은 차를 마시고, 바다를 구경하고, 술을 마시며 서로의 근황을 얘기한다. 줄거리라고 말할 만한 것이 없고, 너무 단조로운 영화라는 생각도 들지만 한 가지 정서를 끝까지 밀고가는 감독의 우직함을 느낄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꿈과 이상을 상징하는 히말라야. 유승환 감독은 2001년 3월 혼자서 히말라야 트래킹을 했다. 14박15일. “그렇게 행복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때는 이상과 현실이 하나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여유가 된다면 다시 한번 히말라야를 찾고 싶다”는 유승환 감독. 이상과 현실이 하나가 아님을 알게 된 스물여덟의 남
[이달의 단편] 외롭고 두려운 사람들, 히말라야에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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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한국단편 경쟁부문의 <하이브리드>(Hybrid)는 짧은 로드무비다. 홀로 여행하던 프랑스인이 유조차를 얻어탄다. 유조차 운전사는 생수병에 모아놓은 소변을 주유소에 팔고, 심지어 기름 대신 소변으로 멈춘 자동차를 가게 만든다. 그리고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두 사람은 소변을 통해 기묘한 소통에 이른다. <하이브리드>를 들고 부산을 찾은 김새노 감독과 주연배우 크리스토퍼 루지를 해변에서 만났다. 영상원 영화과에 재학 중인 김새노 감독과 루지는 2년 전 함께 <크리스 인 코리아>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EBS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에 참가한 바 있다.
-<하이브리드>는 어떻게 떠올린 이야기인가.
=김새노: 올림픽대로를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오줌이 마렵고 기름도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때 이야기가 갑자기 떠오른 건 아니다. 원래 썼던 시나리오에 노인이 소변으로 자동차를 가게 하는 에필로그가 있었는데, 그 노인 캐릭터를 가져와서
[김새노, 크리스토퍼 루지] 따로 또 같이 두 남자의 하이브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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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영화의 3인방이 다시 뭉친다. 로드리고 가르시아가 감독하고 각본을 쓰는 <엄마와 아들>의 제작에 ‘스리 아미고스’(알폰소 쿠아론, 기예르모 델 토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참여한다는 소식이다. 450만달러가 투입된 <엄마와 아들>은 50살 중년 여성과 그녀가 35년 전 양육을 포기한 딸, 그리고 아기를 입양하고자 하는 흑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세 여성의 삶을 교차시키는 영화다. 가르시아의 전작인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 <나인 라이브즈> 속 여성의 삶을 상기한다면 이해가 빠를 듯.
<엄마와 아들> 이전에 ‘스리 아미고스’의 집결 소식이 낯설지 않다. ‘스리 아미고스’는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 <바벨> <칠드런 오브 맨> 등으로 멕시코영화의 재부흥을 알린 세 감독들을 일컫는 말. 멕시코영화의 성장에 똑같이 흥미를 가진 이들은 2007년 펠리페 칼데론 멕
‘스리 아미고스’ 멕시코영화의 부흥을 책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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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문화적 취향에 있어서의 계급적 차이에 주목한다. 계급적 차이들은 문화적 차이들을 생산하지만, 이러한 문화적 차이들이 재능이나 성취 같은 개인적 특성에 따른 것이라고 잘못 인식되기 때문에 결국 계급체계를 정당화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말하자면 ‘문화자본’도 세습된다는 것인데, 한국에서 그의 말이 어떻게 적용될지를 떠올려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일단 학벌. 세습되는 것 맞다. 강남 8학군 출신 학생들과 전문직 자녀들의 명문대 합격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뉴스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리고 영어. 이것도 계급문제 맞다. 수능점수가 엇비슷한 같은 대학 같은 학과 학생들을 비교해보면, 집안의 소득 수준에 따라 차이가 나는 능력은 영어 구사 능력 정도라고 한다. 영어몰입교육이라는 에피소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나라는 영어를 잘하는 이들이 영어를 못하는 이들을 착취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목하 노력 중이다. 그런데 다른 것들은? 사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위대한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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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겨냥해 올 12월 미 전역 개봉예정인 스콧 데릭슨 감독의 <지구가 멈추는 날>은 공상과학계 컬트 클래식으로 꼽히는 1951년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동명 원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아직 완성되지 못해 기자 시사회를 갖지 않은 이 작품은 원작과는 다른 스토리라인과 캐릭터 설정, 그리고 가장 아이코닉한 외계 로봇인 ‘고트’의 새 디자인 등에 대한 소식이 유출돼 골수팬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최근 뉴욕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주인공 클라투 역을 맡은 키아누 리브스가 자신의 캐릭터는 물론 리메이크에 대한 여론,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믿음 등을 이야기했다.
-영화는 못 봤지만 ,트레일러를 보니 원작의 클라투보다 악해 보인다
=우리 버전은 좀 사악하다. 원작에서 클라투는 인간 형상을 한 외계인(humanoid)으로 인간적이고, 개방적인데, 이번 작품은 음…. 클라투의 성격 나쁜 동생뻘이라고나 할까. (웃음) 원작의 연장 정도로 보면 좋을 것 같다. 원작에서의 관대하고 아량
[키아누 리브스] "스스로에게 납득시킬 수 없으면 출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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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보다 어딘가에>를 뒤늦게 봤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상영할 때부터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이제야 보게 됐다.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 수연과 동호의 일상에 지난 몇달간의 내 모습이 겹쳤다. 백수인 수연이 “이럴 때일수록 내게 투자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부모에게 대들 때 “돈 달라”는 말 한마디 꺼내기도 힘들었던 소심한 내 모습이 떠올랐고, 복학한 동호가 학교 식당에서 식판을 들고 두리번거릴 때는 후배들이 늘어난 낯선 교정을 하릴없이 걷던 생각이 났다. 그렇게 과거를 복구하다 보니 잊고 있던 장면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올해 초, 얼굴이 아릴 정도로 바람이 세게 불던 날의 일이다.
시작은 문자 한통이었다. “오늘 볼까?” 친구 A의 한마디에 독서실에서 명상 중이던 나는 가방을 쌌다. 졸업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취업의 길은 요원했다. 시켜만 준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무도 내가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았고, 당장 내일까지 끝내야 할
[오픈칼럼] 여기가 아닌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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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존 포드요. 웨스턴을 만듭니다. 미국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 방에서 세실 B. 드밀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어떻게 보여주는지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세실 B. 드밀을 바라보며) 그러나 나는 당신이 싫소. 당신이 지지하는 것도 싫소. 오늘밤 여기서 당신이 말한 것도 싫소.”
매카시즘이 불어닥칠 때 감독협회에서 존 포드가 행한 연설의 일부다. 당시 협회는 조셉 맨케비츠가 회장이었는데, 그는 일부로부터 친공산주의자라고 비판을 받았다. 이를 주도한 인물이 세실 B. 드밀이었다. 드밀과 그의 추종자들은 무려 4시간에 걸친 연설을 하며 매카시즘 전파의 선봉에 섰다. 드밀은 협회의 모든 감독들은 ‘충성맹세’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분위기를 압도했다. 이때 드밀에게 정면으로 반박한 인물이 바로 존 포드였다.
“나는 존 포드요. 웨스턴을 만듭니다”
연설에는 존 포드의 두 가지 특성이 드러나 있다. 우선 반골기질 혹은 아웃사이더로서의 비판
[걸작 오디세이] 웨스턴은 존 포드의 동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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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미스 페티그루의 어느 특별한 하루>를 본 건 순전히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에이미 애덤스 때문이지만, 중간에 짠하고 왕자님처럼 등장한 시아란 힌즈를 보고 반가워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전 늘 이 뚱한 외모의 중년 남자를 무척 로맨틱한 배우라고 생각해요. <미스 페티그루의…>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물론 연속극 왕자님처럼 화려한 외모와 언변을 과시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공허한 상류사회의 삶에 지쳐 우울해지고 배도 많이 나온 보통 부자 아저씨에 불과하죠. 여기서 그가 ‘왕자님’의 공식적인 기능을 수행하게 돕는 건 그의 재력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가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골목에 버려진 낡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지난 전쟁 때 죽은 친구들과 연인들을 회상하고 곧 닥칠 다음 전쟁에 대해 염려하면서 서로를 위로할 때, 전 이 영화의 로맨스가 완성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두 사람은 외모만 봐도 썩 잘 어울렸지요. 지금의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골격이 뚜렷하고 조금
[듀나의 배우스케치] 시아란 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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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고死: 피의 중간고사>와 <외톨이>의 스포일러가 대거 포함되어 있습니다.
갑갑하고 안타깝다. 올해 개봉한 단 두편의 한국 공포영화 <고死: 피의 중간고사>(이하 <고死>)와 <외톨이>를 보고 난 심정이 그렇다. 진정 기사회생의 돌파구는 없는 것일까.
2007년에 개봉했던 공포영화들이 줄줄이 흥행에 고배를 마시면서 2008년에는 신작 한국 공포영화를 단 한편도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풍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예년에 비해 확연히 줄어들었을지언정 올해도 두편의 한국 공포영화가 극장에 걸려 그 명맥을 유지했다. 한데 막상 영화를 보고난 뒤에는 또 다른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이제 한국 공포영화가 ‘고사’(枯死) 위기에 처했으며 이대로 가다가는 이 땅에서 공포영화가 아무에게도 환대받지 못하는 ‘외톨이’ 장르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두 영화의 제목마저 한국 공포영화의 암울한
[영화읽기] 때깔과 눈물에 얽힌 편집증을 걷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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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하루>는 독특한 영화다. 연인이었던 남녀가 재회하여 하루 동안 함께 돌아다닌다는 설정에서 사랑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멜로물을 떠올렸거나 상반된 캐릭터의 남녀가 티격태격하다 키스로 끝맺는 로맨틱코미디를 기대했다면 맨송맨송한 결말에 ‘뭥미?’를 외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무미건조하진 않다. 로맨틱코미디 못지않은 웃음과 멜로영화와는 뒷맛이 다른 묘한 여운을 남기는데, 그 웃음과 여운은 바로 (하정우에 의해 완벽하게 구현된) 병운이라는 독창적인 캐릭터와 스산한 경제현실의 섬세한 묘사에 기인한다.
1. 이 남자가 사는 법-병운은 윤리적 인간인가?
<멋진 하루>는 철저하게 캐릭터에 의존한 영화이며, 그중에서도 병운 캐릭터가 절대적이다. 따라서 병운에 대한 가치판단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능청스러운 날건달’(<오마이뉴스> 박영신 기자, 이윤기 감독 대담)부터 ‘순수하고… 팅커벨 같은 존재’(<씨네21> 박혜명
[영화읽기] 쓸쓸히 무너져버린 중산층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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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기봉은 제의로서의 집단적 죽음이라는 결말에 종종 매혹되는 것 같다(<익사일> <미션> <대사건>). 하지만 그가 위가휘와 공동 연출한 <매드 디텍티브>만큼 그 제의적 결말에 모든 것을 거는 영화는 없었다. 난반사하는 거울 조각들, 잘못 쥐어진 권총들, 다성(多聲)과 다중 이미지의 중첩이 시청각을 교란하며 현란한 총격의 몽타주가 시작되면 이것이 죽음의 제의인데도 너무도 아름다워 혼돈의 군무처럼 느껴진다.
여기엔 <와일드 번치>류의 손상되는 신체에 대한 페티시즘 대신 모종의 종교적 엄숙함이 있다. 어두운 무표정이 표정의 전부였던 미친 형사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눈물을 머금은 채 힘없이 쓰러진다. 지금까지의 어지러운 사건들은 오직 이 순간의 한없는 숙연함을 위해 봉사한다. 물론 제의의 끝은 죽음이다. 그런데 한 사람이 살아 있다. 이 숭고한 제의로부터 이탈한 인물. 그는 당연히 알리바이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게 성립될까.
되짚어보
[전영객잔] 광기와 다중인격이 빚은 동정 없는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