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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하는 커플 도둑 왕보(유덕화)와 왕려(유약영). 이들은 한 사업가의 고급 승용차를 훔쳐 티베트로 달아나고, 그곳에서 ‘세상엔 도둑이 없다’고 믿는 순수청년 사근(왕보강)을 우연히 만난다. 5년 동안 번 돈을 챙겨 고향행 기차에 몸을 싣는 사근은 전문 소매치기단의 표적이 된다. 역시 호시탐탐 사근의 돈을 노리던 왕보도 왕려를 데리고 기차에 함께 올라탄다. 하지만 왕보는 왕려의 임신사실을 알게 되면서 범죄에 손을 씻고, 사근의 돈을 지켜주기로 결심한다. 여기에 이들 커플을 뒤쫓는 형사까지 가세하면서 기차 안은 한바탕 소용돌이가 몰아친다.
소매치기는 홍콩영화가 오랫동안 심심찮게 써먹어온 소재다. 홍금보의 연출작 <제방소수>(1982), 두기봉 감독의 <참새>(2008)처럼 명장면으로 두고두고 회자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는가 하면 관금붕 감독의 <인재뉴약>(1989)처럼 그저 스쳐지나가는 장면으로 쓰이기도 했다. 이
훔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천하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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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고대하던 죽음을 목전에 둔 병희(박희순) 앞에 낯선 방해자가 나타난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집으로 들이닥친 그는 노숙자 수강(강혜정)이다. 구타와 포박으로 병희를 제압한 그녀는 창문 너머의 아파트를 감시한다. 난데없는 상황이 당황스럽지만, 병희는 수강에게 아무것도 묻거나 따질 수 없다. 돌아오는 건 묵묵부답이거나 구타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식사를 하게 된 두 사람은 사연을 털어놓는다. 병희는 왜 죽으려 했는지, 그리고 수강은 왜 이 집에 왔는지. 수강의 이야기에 공감한 병희는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노총각 남자와 4차원 소녀의 동거담이 아니다. 일면 비슷한 재미는 있으나, 사실상 <우리집에 왜 왔니>는 ‘미친년’이라 불린 한 여자의 비극적 삶과 그녀를 통해 삶의 기운을 찾는 남자의 이야기다. 영화는 시체가 된 수강의 몸 구석구석을 훑으며 시작한다. 그녀는 누구인지, 왜 죽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서로를 향한 위로 <우리집에 왜 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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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회사 간부 루시 힐(르네 젤위거)은 한 공장의 자동화와 구조조정이라는 업무를 떠맡는다. 불행한 일은 그 공장이 춥기로 유명한 미네소타주의 뉴 얼름이라는 마을에 있다는 점. 따뜻한 마이애미를 떠나 눈밭으로 둘러싸인 뉴 얼름에 도착한 루시는 텃세 심한 공장 노동자들과 마찰을 겪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그녀를 대하는 마을 주민들에게 서서히 끌리기 시작한다. 특히 지역노조 대표 테드(해리 코닉 주니어)와 티격태격하는 가운데 정분을 쌓으면서 루시는 이 마을에 동화된다. 하지만 본사의 압력이 거세지면서 루시는 갈등을 겪는다.
<미쓰 루시힐>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다. 짐작할 수 있듯 대도시 생활에 젖어 있고 출세욕에 불타던 루시는 상종하기 싫은 시골 사람들과 벽을 쌓고 살지만 결국 그들의 투박하지만 진심어린 애정을 깨닫게 되고 그 안에서 사랑도 찾는다. 아울러 그녀는 불편한 시골 생활에 적응하면서 온갖 해프닝을 빚지만 마침내 따뜻한 공동체적 가치의 소
오바마 시대에 대한 낙관적 기대감 <미쓰 루시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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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망있는 경극 가문에서 태어난 매란방(여명). 외모, 목소리, 몸짓 어느 하나 나무랄 데 없는 그는 경극계의 천재로서 스타로 성장한다. 그러나 새로운 경극을 향한 그의 욕심은 전통을 고수하는 스승과의 예기치 않은 갈등을 낳는다. 결국 시대와 재능이 탄생시킨 스타 매란방은 스승을 제치고 경극계의 일인자로 군림한다. 그러던 중 남장 전문배우 맹소동(장쯔이)을 만나면서 매란방은 경극에만 전념했던 배우로서의 자신이 아닌 사랑에 빠진 한 남자로서의 욕망을 깨닫는다. 그러나 경극을 위해 운명지워진 배우의 숙명 앞에서 그는 평범한 행복을 희생해야만 한다.
매란방은 중국 국민에게 스타나 배우 하나로 간단히 환원될 수 있는 성질의 인물이 아니다. 중국 전통 예술 경극은 격랑의 세월을 함께해온 중국의 혼이고, 경극계의 일인자인 매란방은 그 혼을 드러내는 일종의 상징과 같은 존재다. <패왕별희>로 중국 경극의 예술성을 알린 첸카이거는 그 세계의 중심축에 있는 ‘데이’를
매란방의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의 삶 <매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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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원인 모를 화재로 죽었다. 그날 이후 딸 안나(에밀리 브라우닝)는 이상한 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정신병원 생활을 하던 도중 집으로 돌아온 안나를 맞는 이는 언니인 알렉스(아리엘 케벨)와 엄마의 간병인이었지만 지금은 아빠의 새 애인이 된 레이첼(엘리자베스 뱅크스)이다. 안나는 알렉스와 함께 아빠의 선택을 되돌리려 하지만 아빠의 마음은 확고하다. 어느 날 안나 앞에 엄마의 유령이 나타나 레이첼을 향해 ‘살인자’라고 소리를 지른다. 레이첼의 음모에 의해 엄마가 죽었다고 판단한 안나는 알렉스와 함께 그녀의 뒷조사를 시작한다.
한때 붐처럼 일었던 할리우드의 아시아영화 리메이크는 대부분 실망스러웠다. 할리우드 배우들을 데리고 아예 원작과 똑같은 영화를 만들려하거나, 할리우드적인 손길을 입히려다 결국 다시 원작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을 리메이크한 <안나와 알렉스: 두 자매 이야기>(이하 <안나와 알
할리우드적인 해석 <안나와 알렉스: 두자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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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으로부터 8년. 범죄자의 신분이 된 도미닉(빈 디젤)은 사랑하는 여인 레티(미셸 로드리게즈)와 함께 남미의 국가들에서 자동차 강도로 일해왔다. 미국으로 떠나보낸 레티가 갑작스럽게 살해당하자 도미닉은 복수를 꿈꾸며 고향 LA로 잠입해 들어온다. 한편 LA 경찰로 일하는 브라이언(폴 워커)은 자신이 추적 중인 마약단 두목과 레티의 죽음에 모종의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약 운반 레이서로 위장잠입한 도미닉과 브라이언은 범죄단의 소굴에서 우연히 마주치고, 법과 복수를 위해 다시 한번 손을 잡기로 한다.
분노로 질주하기 전에 도로 정리 좀 먼저 해보자.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원제와 국내 개봉제목이 제 각각이라 미리 훑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2001년 개봉한 첫 번째 영화는 <분노의 질주>(The Fast & The Furious)다. 롭 코언의 연출도 박력이 있고 빈 디젤과 폴 워커, 미셸 로드리게즈의 시너지도 근사하다.
아드레날린 촉진제 <분노의 질주 : 더 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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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시리즈 <꼬마기관차 토마스와 친구들>의 두 번째 극장판. 1940년대 영국의 목사 윌버트 오드리가 원작 동화를 지었다. 배경은 탈것들이 사람처럼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마법의 섬 ‘소도어’. 어느 날 꼬마기관차 토마스가 섬의 옛 수도 그레이트 워터튼을 찾아낸다. 뚱보 사장은 워터튼의 재건축을 건의하고 작업을 위해 새 기차 스탠리를 투입시킨다. 동료 기관차들은 모두 스탠리를 좋아하지만, 토마스는 자신의 자리를 잃는 것 같아 언짢다. 기분이 상해 실수를 연발하던 토마스는 짐수레를 밀다 외딴 광산에 갇혀버린다.
어릴 때 보았던 만화는 다시 보면 심심하다. 주인공과 친구들은 착하기 그지없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배신과 배반도 없다. 어딘가에서 철수와 영희가 튀어나와 교과서의 한 구절을 읊을 것만 같았던 비디오를 진심으로 즐거워하던 시절이 있었더란다. 아이들은 정말 단순한 것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 보았던 토마스의 재림이다. 우리에겐 TV시리즈 <꼬마
아이들을 위한 동화 <토마스와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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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마이클 코넬리 지음/ 랜덤하우스 펴냄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上>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북스피어 펴냄
이성을 볼 때 어디부터 보는가? 남자라면 여자의 눈(이라고 쓰고 가슴이라고 읽는다)-가슴-다리(라고 쓰고 가슴이라고 읽는 사람도 있다)가 가장 일반적인 루트인 것 같다. 여자들은 남자의 얼굴, 엉덩이, 손… 과 같은 산발적인 부위에 목소리나 체취를 더해 공감각적(!)으로 느끼는 일이 많다. 그럼 책을 고를 땐 어떨까? 책의 어디가 당신을 유혹하는가? 책 표지 디자인에 유달리 약한 사람도 있고 느낌표 콱콱 박힌 표지 문구에 홀딱 넘어가 버릇하는 사람도 있다. 뜻밖에도 저자의 이름이나 얼굴에 심하게 유혹당하는 사람도 있다(소설가도 잘생기고 예쁘고 볼 일이다). 그래서 팔랑귀 독자들을 향한 호객행위는 대개 표지 인근에 집중되게 마련이다.
그런데 독자를 넋놓게 하는 호객 행위가 처음 드러나는 책의 속살, 그러니까 서문에서 이루어지는 일도
[이다혜의 작업의 순간] 우아하고 감상적인 호객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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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난 스타 또는 만화가의 팬클럽 회원이다. 심지어 팬클럽 부회장 선거에 떨어진 게 억울해서 분루를 삼킨 적도 있다.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일 때문에 그 당사자를 만나야 하는 자리가 생기면 오히려 절대로 가지 않는다. 밥 먹다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의 방송이 나오면 일부러 모르는 척하든지 그 세계에 상당히 어두운 척하는 어색한 발연기가 작렬한다. 그러다가 어찌어찌 직접 만나게 되면 심지어 대놓고 무시하거나 “그 작품은 왜 그래요?”라는 말까지 내뱉는다. 아… 이놈의 츤데레 근성!! 이 무쓸모한 이중생활이라니. 밤엔 팬클럽 게시판에 미친 듯이 흑하면서 스타에 대한 악플에 악플로 맞서는 3차대전의 포격수였다가 낮엔 ‘우아한’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라니…. 하지만 문제는 낮에도 우아하지 않다는 데 있다. 난 준비하던 영화 한편이 엎어지고 다시금 새 준비를 시작한 저렴한 PD에 불과하니까.
우아함은커녕 약간 아니 꽤 웃기는 상황이다. 이젠 낮과 밤이 혼연일체다. 게시판의 내
[나의 길티플레저] 그래, 나 퐈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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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늘어진 고무줄처럼 무기력했다. 마감에 지쳐, 사람(사랑 말고)에 지쳐, 야금야금 늘어나는 마이너스 통장까지. 시작은 지난 연말이었다. 급한 불을 끄겠답시고 ‘자기계발서’류의 단행본 알바에 뛰어들었다. 뭐 딱히 연말연시라고 먹고 마실 생각은 없었지만, 거리엔 캐럴이 울려퍼지지 사방팔방에 연인들투성이지… 세상은 나 모르게 황금기를 구가하는데다 회사는 눈코뜰 새 없이 바빴단 말이다. 그 와중에 ‘마이너스 통장’이라는 말을 되뇌며 몇 주간 정말 잠도 안 자가며 알바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수금 소식은 들리지 않고…. 출판사 대표님 제 계좌번호 잃어버리셨나요? (훌쩍) 마이너스로 따지면 행복지수도 마이너스. 마감은 일상이 된 지 오래인데 마감의 압박은 점점 심해지기만 한다. 설상가상.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은 두통에 소화불량을 달고 다니게 만들었다. 회사 스트레스에 시달리니 영화와 잡지가 아닌 것들에서 행복을 구하게 되더라.
이런 나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준 사건(?)이 3월에 생겼다
[오픈칼럼] 3월, 나를 행복하게 했던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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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를 곳이 생겼다는 연락을 받은 산생활 고참들이 다니러 온 때는, 아직도 추위의 서슬과 봄바람의 애교가 시시때때로 섞여들던 2월 말께였다. 그들은 눈과 낙엽에 묻혀 있는 땅에서 신기하게도 먹을 것을 캐냈다. “봄에 올라오는 어린 것은 웬만하면 먹어도 괜찮아요.”
아궁이에 불만 피우면 역류하는 연기로 매일 훈제되곤 했던, 그리고 그 이유를 고장난 굴뚝의 팬 탓으로 돌렸던 우리에게, 굴뚝의 가운데 덮개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도 그들이었다. 거름과 제초제의 용도로 쓰이는 목초액을 받기 위해 굴뚝 가운데 부분에 덮개를 설치하고 그 밑에 항아리를 놓아둔 것이었다. 굴뚝의 뚜껑이 닫힌 것도 모르고 불을 때워댔으니, 아궁이가 에라 이 무식한 것들, 연기나 먹어라, 한 것이다.
고참들은 “땅에서 솟는 풀은 한번 살짝 뜯어 먹어보세요. 먹어도 괜찮으면 먹고, 이상하다 싶으면 안 먹으면 돼요”라고 했다. 생체실험을 통해서 자연학습을 하고,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우라는 것이다. 배움이란 원래
[최보은의 돈워리 비해피] 어여쁜 그것들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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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로의 진입로와 진출로는 다양하다. 그중 상대적으로 가볍게 출입할 수 있는 통로는 케이트 윈슬럿이라는 배우가 만든 것이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정열적이고 모험에 가득 찬 전직 여배우, 그러나 미국 교외의 작은 집에서 주부 노릇에 미쳐가는 ‘에이프릴’이라는 인물 연기는 훌륭하다. 프랑스 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설탕>(Le Sucre)에 나왔을 때 나는 그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스크린 전체가 쿵쿵쿵 진동하는 느낌을 받았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의 케이트 윈슬럿이 그렇다. 한편으로는 고전적 글래머인 듯도 하지만 영민하고 단호하면서도 어딘가 케세라세라 흠, 미묘한 표정이다.
내가 케이트 윈슬럿에게 정작 처음으로 경탄했던 것은 제인 캠피온의 <홀리 스모크>를 보고서다. 인도에서 종교지도자 바바에게 빠져드는 루드를 연기한 케이트 윈슬럿이 노상방뇨하는 장면은 압도적이다. 통쾌하다. 하비 카이틀과 팸 그리어가 함께 출연해 영화에 이상
[전영객잔] 오늘, 아우슈비츠는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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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강타할 블록버스터 10편.’ <씨네21>이 특집기사를 소개하기 위해 지난주 표지에 적은 문구다.‘블록버스터’가 여름을 ‘강타’한다는 이 표현은 사실 더할 수 없이 그 자신의 기원을 가리킨다. 두세 가지 기원설(다른 극장의 연극을 초토화할 만큼 압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연극을 지칭하는 것에서 생겼다는 설, 연극을 보기 위해 관객이 한 블록을 다 차지하고 줄을 길게 서는 현상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이 있다) 중에서도 블록버스터라는 용어가 2차대전 중 쓰인, 도시의 한 블록을 날려버릴 만큼 강력한 폭탄에 붙여졌던 별명에서 유래했다는 설을 믿는다면 그렇다.
한편, 폴 비릴리오는 <전쟁과 영화>라는 독창적이고 탁월한 한권의 책에서 전쟁의 기술력과 지각력이 영화와 어떻게 관계 맺게 되었는지 쓰고 있다. 블록버스터와 관련한다면 스탠리 큐브릭(<씨네21>이 지난주 타계 10주년 관련 기사를 실었다)의 가장 우화적인 영화인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정한석의 블랙박스] 블록버스터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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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나의 외가 어른들은 좌익 계열이었다”고 손자뻘 되는 감독은 담담하게 말한다. 이런 식의 영화에는 두 가지 함정이 도사리게 마련이다. 한편에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식의 민주주의에 관한 어설픈 사회적 성취를 암암리에 누리려 드는 시도가 있을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봉쇄하는 것이 더 나을 무섭고 아픈 기억을 무차별적으로 노출하여 막연한 휴머니즘이나 예각화된 정치선전의 재료로 삼는 유혹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할매꽃>은 제3의 길을 선택했다. 아마 이 점이 이 영화의 성공요인일 것이다. 인권 담론에로의 보편화 이전에 자기 피붙이들이 직접 겪었던 ‘생지옥’에 접근할 것. 사실 담론화란 개인의 기억을 가로지르는 빗장들이 어느 정도는 풀려나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면서도 섣부른 정치적 정당화나 연민에의 호소에 빠지지 않을 것. 오히려 현재를 살아가는 관객의 문제틀을 의식적으로 드러내는 한에서 과거를 회상할 것이 <할매꽃>이 견지한 원칙이다.
슬픔이
[영화읽기] 신파도 아닌, 잔혹사도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