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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웨슬만: Form, Fantasy, and the Nude전> 12월29일까지 | 송은 아트스페이스 | 02-527-6282
<개빈 터크 개인전> 12월12일까지 | 박여숙화랑 서울 | 02-549-7575
올겨울 한국 미술계의 키워드는 단연 ‘팝 아트’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중·일 작가 42명의 팝 아트 작품을 소개하는 <메이드 인 팝랜드전>이 열리고, 지난 2004년 타계한 팝 아트 작가 톰 웨슬만과 현재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영국의 팝 아티스트 개빈 터크의 개인전이 줄줄이 포진해 있으니 말이다. 그중 팝 아트의 전성기인 1960년대를 풍미한 톰 웨슬만과 yBa(영 브리티시 아티스트)의 악동 개빈 터크의 전시를 소개한다.
톰 웨슬만의 작품은 관능적이고 관음적이다. 그는 블론드와 붉은 입술로 대변되는 미국적인 미인의 이미지를 작품에 즐겨 차용했는데, 마치 보란 듯이 여인의 젖가슴이나 벌어진 입, 붉은 매니큐어 사이로 새어나오는 담
[전시] 미국·영국 팝 아트의 악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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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0회를 맞은 퍼블릭엑세스시민영상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민 감독 한명을 추천받았다. 이름은 김수랑, 계양고등학교 2학년, 출품작 <풋!고추이야기>로 수상. 제목이 암시하듯 성에 대한 청소년기의 관심을 주제로 만든 영화인데 일반적인 극이 아니라 뮤지컬, 그것도 꽤 많은 배우가 출연하는 대규모 뮤지컬을 만들었다. 만듦새를 떠나 시도 자체가 격려받을 만하다. 그는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만나봤다.
-제10회 퍼블릭엑세스시민영상제에서 수상했다.
=고등부 작품상이다. 이 영화제와는 지난해 9회 때 특별한 상을 받게 되어 인연이 깊다. 그때 심사위원들이 영화를 좋게 보셔서 감사하게도 원래는 없던 심사위원 특별상을 만들어 주셨다. 그때 낸 건 <체스>라는 작품이었다. 올해는 감사한 마음으로 트레일러 자원봉사도 신청했다.
-늘 영화에 관심이 깊었나.
=영화라고 말할 순 없고 영상과 춤을 좋아했다. 춤은 힙합댄스나 팝핀 같은 것. 쉽게 춤을 포기하고 싶진 않았
[김수랑] 뭐든지 연출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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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이상 <내츄럴 본 킬러>(1994)의 멜로리를 떠올릴 사람은 없을 듯. 아마도 ‘그런지’하다는 느낌과 딱 들어맞던 왕년의 개성 넘치던 줄리엣 루이스의 시대는 그렇게 끝났다. 아니, 사실 그녀는 시류에 편승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동료들처럼 재빠르게 변신하고픈 욕망도 없었다. <룸 투 렌트>(2000)에서 노래 실력을 뽐내기도 했던 그녀는 실제 펑크록 밴드 ‘줄리엣 & 릭스’의 보컬로 내한하기까지 했다. 말 그대로 ‘자유로운 영혼’, 예전 같은 인기가 아니라 해도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올드스쿨>(2003)에 미치(루크 윌슨)의 변태 여자친구 헤이디로 출연했을 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가도, <스타스키와 허치>(2004)에 코카인 딜러 리스 펠트먼(빈스 본)의 텅 빈 머리의 정부로 출연하고 <듀 데이트>에 미스터리한 마약쟁이로까지 등장한 모습을 보니(그렇게 토드 필립스 영화에만 무려 세번), 그냥
[now & then] 줄리엣 루이스 Juliette Lew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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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난주에 페이스북으로 인터뷰 요청 쪽지를 드렸던 기자입니다.
=네, 어제 저녁으로 드신 치킨은 괜찮으신가요? 요즘에 그 치킨 먹어보고 싶었는데 올려놓으신 사진을 보니 맛나 보여서 저도 오늘 주문해보려고요.
-아, 어떻게 그것까지.
=인터뷰 요청을 하셨기에 친구추가를 해서 어떤 사람인지 한번 쭉 살펴봤죠. 그런데 프로필 사진과의 갭이 상당히 언빌리버블하게 크시네요. 저는 프로필 사진과 싱크로율이 전혀 없는 뽀샵 사진이나 뭐 그딴 걸 올려놓은 사람들 보면 무척 화가 나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사실 전 양반인 편이에요. 제 주변의 아는 사람 중에 구라 사진 올려놓은 애들 보면 패고 싶다니까요.
=그래서 맨 처음에 실물과 사진과의 얼굴 인식률이 80% 이상 되지 않으면 회원가입을 못하게 하는 장치를 걸어놓으려고 했어요. 근데 왈도가 그렇게 하면 아무도 회원가입 안 한다고 해서 관뒀어요. 뭐 걔 돈으로 시작한 비즈니스고, 세상엔 못생긴 사람이 훨씬 더 많으니까요.
[주성철의 가상인터뷰] 에리카, 해킹하기 전에 친구추가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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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 시원한 극장은 한국인의 주요 피서지. 햇볕 짱짱한 여름, 어두침침한 극장은 햇볕에 굶주린 유럽인의 기피 장소 1위이다. 청명한 하늘빛 덕에 갈수록 심해지는 기후변화를 감안하더라도 가을은 한국인에게 일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아침이고 낮이고 가릴 것 없이 어둑어둑한 회색빛 유럽의 가을 하늘은 기나긴 겨울을 예고하는 그야말로 ‘우울함’의 대명사이다. 이렇듯 프랑스의 11월은 바로 겨울맞이를 준비하는 참으로 우울한 시즌임과 동시에 영화 배급이나 실내 문화 행사 진행에 가장 위험부담이 적은 시기이기도 하다(대부분의 유럽 배급업자들은 새 영화를 개봉하는 날, 날씨가 좋을까 대단히 노심초사한다).
이런 ‘꿀꿀한 날씨’의 장점(?)을 적절히 이용해 프랑스에서는 지난 2000년부터 매년 11월을 ‘다큐멘터리의 달’로 지정해 한달 내내 전국 국립·시립 도서관, 문화원, 대학, 작은 극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주제, 규모, 장르의 다큐멘터리를 다양한 관객층에
[파리] 우울한 11월에는 다큐를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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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16일 82살로 숨을 거둔 왕티안린은 홍콩 밖에는 좀처럼 알려지지 않은 감독이다. 이제 그의 죽음과 함께, 홍콩 밖의 평론가들이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고 영화제들은 무시하고 학술서적에는 기록되지 않은, 커다란 영화사의 한 토막이 사라져가리라. 좀더 젊은 세대에 그는 지난 30년간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홍콩의 시나리오작가이자 감독인 왕정의 아버지로 기억될 터이다. 아버지처럼 왕정의 작업 역시 좀처럼 인정받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 북부에서 홍콩으로 건너와 전후 홍콩의 영화산업에 기여한 이한상이나 호금전 같은 감독과 달리, 왕 감독은 상하이 출신으로, 1935년 전쟁 난민이 되어 중국 본토를 떠났다. 그런 면에서 그는 1940년대 후반 또는 50년대 초반에 공산주의를 피해 홍콩에 온 감독들과 다르다. 1947년에 이르면 그는 이미 영화 제작의 모든 면을 익혀 영화산업에 참여했으며, 1950년 1월에 첫 감독 데뷔작으로 두편짜리 광둥어영화 <아미비검협>
[외신기자클럽] 위대한 영화 유산을 남기고 떠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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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사랑이 끝나고 나서 가장 긴 자취를 남기는 것은 하나의 장소다. 함께 걸었던 거리, 영화를 보았던 극장, 커피를 마셨던 카페…. 이별 뒤에도 그곳을 지날 때면 무심결에 떠오르는 기억들을 떨쳐버리고자 애를 써야 했던 순간들이 있다. <500일의 썸머>는 바로 그 사랑의 장소들에 관한 영화다. 무엇보다 LA라는 도시의 풍경과 정취, 우리가 잘 몰랐던 LA의 근대 건축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영화의 무대인 LA 다운타운은 사실 오랫동안 범죄의 온상으로 악명을 떨쳤다. 이후 2003년 대대적인 재개발 붐이 일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촬영된 최근의 영화들은 주로 웨스틴 보나벤처 호텔이나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같은, 포스트모던 건축의 아이콘이 된 빌딩들을 스크린에 옮기곤 했다. <500일의 썸머>는 포스트모던이 아니라 모던의 정서와 낭만을 기록한다. 톰과 썸머가 만난 지 95일째 되는 날, 본격적으로 LA 근대 건축의 면모가 소개
기억의 자극제와 그녀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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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구도심, 인천역과 청관거리 일부가 이 영화의 중심공간이다. 구도심이라? 화려했던 과거가 연상되지 않는 쇠락한 거리 풍경, 그것은 이 영화의 제작연도인 2001년이나 10년이 지난 현재나 별반 다르지 않다.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에 노출되는 시간의 코드로만 보면 동시대 인천의 공간은 송도를 중심으로 한 경제자유구역의 초반 개발 무드가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작은 것들을 돌아볼 여지가 없었던 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시선이 인천의 구도심을 향하고 있는 것은 ‘큰 계획’에 대한 조용한 저항의지로 읽혔다. 개봉 초반, 이 영화가 관객 일반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었던 것은 설정 인물의 성장소설적 구성이 강하게 다가온다는 인상이 짙었던 까닭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 ‘작은’ 영화는 초반 부진을 털고 세간의 화제작으로 반짝 떠오른다. 이 영화 얘기가 인천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번져 급기야 공직자들이 대거 착석한 가운데 인천에서 재개봉되는 해프닝을 겪는다.
소녀들의 우울한 잿빛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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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작으로 <건축학개론>을 준비하면서 영화 속 ‘좋은 공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각자의 방식으로 공간을 활용하고 또 건축가가 등장하는 영화들이 많았지만 대부분 긍정적이기보다 반대의 경우로 작용해 아쉬움이 남았다. 영화를 논하기 전, 한국에서의 집은 본연의 가치를 잃고, 교환가치로만 인정받아왔다. 좋은 벽지가 곧 그 사람의 지위를 말해주는 세상. 왜곡된 가치는 영화에 그대로 적용됐고, 화려한 치장이 곧 좋은 영화 공간으로 받아들여져왔다.
인상적인 공간을 구현한 작품으로 내가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를 꼽는 이유는 그래서 명확해진다. 두 작품의 공간에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정서가 숨쉰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자고 있는 정원(한석규)의 장면. 햇빛이 비치면서 그가 누워 있는 바닥의 마루 결이 살아 있는 공간. 또 정원이 마당에서 파를 다듬을 때, 하수구로 들어가는 물을 따라잡는 클로즈업
그 남자가 사는 곳이 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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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007 시리즈와 <배트맨> 시리즈는 이 물음에 각각 다른 답을 하고 있다. 007 시리즈가 즉물적이고 유려한 선형적인 형태와 은색 톤을 주조로 한 기계미학에 바탕을 둔 모더니즘 건축의 순백을 유쾌함으로 표현하고 있다면, <배트맨> 시리즈는 시카고 창으로 대표되는 고층 빌딩군과 그 그늘로 펼쳐지는 포스트모던 클래시즘 건축의 우울을 보여준다. 007 시리즈에서는 모두가, 모든 것이, 유쾌하다. 건물의 창도 유쾌하고, 소파도 유쾌하며, 가장 은밀해야 할 첩보부의 사무실도 창은 없지만 전체가 알루미늄이나 제물치장 콘크리트의 순수함으로 빛난다. 가장 음침해야 할 악당까지도 순진한 유쾌함을 보여주고, 심지어 그는 모더니즘 건축의 결벽증을 성격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이 유쾌함을, 이 순결함을 오염시키는 존재가 바로 제임스 본드다(그래서 나는 악당 편이 된다). 007 시리즈에서 건축은, 모더니즘의 영원불멸을 구가한다. 반면에 <배트맨>
모더니즘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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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어느 늦은 겨울밤, 작업실에서 몇몇 친구와 함께 옹기종기 담요를 둘러쓰고 비디오의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복사에 복사를 거듭한 듯 거친 화질과 음질을 구현하는 영화 한편이 시작됐다. 제목은 <시계태엽 오렌지>.
난 당시 건축과 3학년 학생이었다. 뭔가 세상은 건축을 중심으로 흘러간다고 믿었던, 혹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시기다. 당연히 영화를 보는 시선도 그랬다. 영화의 얼개와 건축의 프로세스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고, 영화 속 공간이 설계 작업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훌륭한 영화도 언어의 장벽을 넘지는 못했다. 자막이 없었기에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고, 늦은 시각의 압박까지 겹치는 바람에 나는 초반부터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환청처럼 빗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 문득 나는 눈을 번쩍 떴다. 갑자기 정신을 확 들게 했던 것은 바로 이 고급주택의 장면이었다. 마치 처참한 강간신을 적나라하게 보이고자 설계한 것
잠이 확 깨는 ‘화면발’의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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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를 설계할 건축학도 아리아드네를 처음으로 데려간 꿈속 공간은, 말 그대로 현실이 아닌 꿈속, 즉 가상공간이라는 기대답게 중력을 무시한 엄청난 도시로 표현된다. 아리아드네에게 설명하는 ‘펜로즈의 계단’뿐만 아니라 ‘킥’, ‘토뎀’, ‘투영체’와 같은 용어까지, 아니 ‘미로’라는 단어까지, 이 영화는 여태껏 상상하지 못했던 가상공간적 볼거리로 기대감까지 갖게 한다. 그러나 총상당한 피셔를 위해 다시 한번 꿈의 아래 레벨로 간 곳, 바로 코브가 부인 멜과 함께 50년 동안 만들었다는 도시는 사람이 배제된 적막감으로 사이버 이미지를 만들 뿐이다.
사실 도입부에서 그려진 꿈이라는 가상공간은 전제된 상상력답게 그 가능성만을 제시했을 뿐이다. 현실보다 오히려 더 현실적이 되어버린 설원 요새까지의 가상공간은 언뜻 사이-파이(Sci-Fi)영화에서 흔히 봐왔던 무중력을 호텔 복도에 펼쳐 놓았을 뿐이고 사이토를 구해와야 할 림보와 같은 매력적인 공간표현마저 너무도 평이하게 그려졌으니 말이다.
사이버 스페이스의 진화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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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랜 기억 속의 첫 <샤이닝>은 굉장히 어두운 영화였다. 몇 차례의 비디오 카피의 결과물이 낡은 프로젝터의 뿌연 조도를 통해 영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호텔 오버룩의 엘리베이터에서 쏟아져나오는 피가 복도를 가득 채우는 장면은 정말 어둡고 검게 느껴졌다. 잭이 도끼를 들고 아들 대니를 자신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쫓아가는 미로공원의 장면은 너무 어두워 스테디캠의 존재감만 겨우 느낄 수 있는 새까만 장면이었다. 그 이후 다시 보게 된 좋은 화질의 <샤이닝>은 시각적으로 그리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오버룩 호텔의 곳곳은 귀신이 나타날 때도 일상적이고 사실적인 조명 아래서 플랫하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밝은 조도의 영화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에게 <샤이닝>은 아주 어두운 공간감을 보여준 영화라고 기억된다. <샤이닝>은 요즘의 공포영화들이 과도한 어둠을 통해 표피적인 어둠을 추구하는 데 비해, 어떤 외부의 소음도 차단된 적막의 고립
텅빈 호텔이 토해내는 지독한 고립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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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산수는 회화사에서 주로 간송학파를 중심으로 널리 회자되어 온 것이지만, 진경건축이나 진경영화라는 단어는 생소하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실제 컨텍스트를 창작의 배경으로 삼는 태도를 가리키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는 듯하다. 그런데 과연 여기서 진경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렇지도 않고 또 그래서도 안된다는 것을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진경 창작인인 봉준호 감독이 <마더>에서 또 보여줬다.
우리나라의 어지간한 도시라면 으레 있을 법한 산비탈의 한 동네. 감독의 전작인 <플란다스의 개>에서의 아파트처럼 하나도 특이할 것 없는 장소다. 하지만 장소와 스토리가 갖는 관계의 수상한 점성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높아만 간다. 도준 엄마에게 진태가 한 말, “동네가 이상해. 꼭 연극 무대 같아”는 그 끈끈함에 대한 결정적 표현이다. 그리고 사건의 단서 또한 좁은 골목길에서 불편하게 붙어 있는 건물간의 교차하는 시선 속에 존재한다. 결국 그 이야기는,
모든 동네에는 전설이 있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