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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특집은 무라카미 하루키와 <1Q84>다. 초기작부터의 소설과 각종 인터뷰, 에세이집, 대담집을 두루 재독하며 떠오른 하루키에 관련된 개인적인 추억을 이야기할까 한다.
이렇게 말하니까 하루키를 좋아했던 것 같지만 사실 처음엔 읽지도 않고 싫어했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밀란 쿤데라가, 대학교 때 무라카미 하루키가 붐이었다. 다 똑같은 작가 책만 읽는 게 재미없다고 생각해서(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은 고집이지만) 일부러 그의 책을 읽지 않고 있었다. 다만 90년대 중반을 20대로 살면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지 않기란 물 위를 걷기와 같아서 결국 나도 어느 순간 풍덩 빠져들고 말았는데, 그 계기는 그의 단편소설이었다(지금도 그의 장편소설보다는 단편소설과 에세이를 좋아한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 스스로 쿨하게 보이고자 몸부림치던 또래 남자아이들의 희한한 글쓰기의 원흉이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였다. 봄날의 곰을 좋아하느냐는 말도 처음 어디선가의 술자리에서 처음 듣고 귀엽다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내겐 너무 사적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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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날이다. 한 문장만 늘어져도 책을 똑바로 들고 있기가 힘들 정도다. 이런 때 이사카 고타로의 신작이라면 딱 적당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나오키상 후보지명만 다섯번 된, 독자를 솜씨 좋게 끌어들이는 이야기꾼.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어 한국 개봉을 앞두고 있는 <골든 슬럼버>의 강렬함(리얼한 서스펜스극에 매혹적인 남자주인공을 심어놓았다)을,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의 유쾌함을, <사신 치바>의 아기자기함을 기억하는 사람에게 이번 < SOS원숭이 >는 색다른 만남이 될 것이다.
엔도는 가전마트 종업원이다. 에어컨을 사러 오는 손님을 상대한다. 그와 동시에 ‘엑소시스트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비공식적이지만 연수 같은 걸 받았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구해주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불러들이는 체질’이라는 점도 한몫한다. 그렇다, 퇴마를 업으로 한다지만 어딘가 슈퍼히어로와 닮아
[도서] 영혼을 구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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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의 원제는 ‘Blackout’이다. 정전으로 멈춰 선 엘리베이터 속에서의 사투를 보여주는 스릴러영화라는 소리다. 게다가 <엘리베이터>는 엘리베이터에 갇힌 주인공 중 한명을 사이코패스 살인마로 설정해놓았다. 재난영화와 스릴러의 결합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아내를 잃은 내과의사 칼(에이단 길렌)은 딸이 올 시간에 맞춰 집에 도착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클라우디아(앰버 탐블린)는 교통사고로 죽어가는 할머니가 부탁한 할아버지의 사진을 찾기 위해 급히 집에 가던 중 엘리베이터를 탄다. 또 한명의 남자 톰(아미에 해머)은 부친에게 학대받는 여자친구와 황급히 도망을 치기 위해 짐을 챙기러 집에 오는 길이다. 세 사람은 정전으로 인해 엘리베이터에 갇힌다. 수리 중인 아파트에는 세 사람 외 거주자가 아무도 없다. 그들은 정전이 끝나길 기다려야 하는데, 세명 중 한 사람의 살인마적 본능이 서서히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극도로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스릴러
엘리베이터 속에서의 사투 <엘리베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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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대륙과 대륙을 넘어 전파되는 J-호러 바이러스의 종착역에 도달했다. 그간 일본 호러영화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로 전염되었고, 할리우드에서 변종을 낳았으며, 마침내 유럽 대륙에 상륙했다(물론 애초에 일본과 한국 호러영화가 유럽의 대가 다리오 아르젠토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걸 언급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네덜란드 호러영화 <투 아이즈>는 노골적으로 J-호러의 영향력을 드러내는 영화다. 네덜란드어 원제마저 < Zwart Water >다. 무슨 뜻이냐고? ‘검은 물’이라는 뜻이다. 나카다 히데오의 <검은 물밑에서>에서 제목을 차용한 게 틀림없는 이 영화는 새로 이사한 집에 출몰하는 소녀의 유령과 모성을 테마로 삼은 것도 똑 닮았다.
네덜란드 소녀인 리사(이자벨 스토켈)는 아빠 폴(바리 아츠마), 엄마 크리스틴(헤드윅 미니스)과 함께 외할머니가 유산으로 남겨준 벨기에의 대저택으로 이사를 간다. 리사는 맞벌이로 바쁜 아빠와 엄마 때문에 외로운 날
전형적인 J-호러영화 형식 차용 <투 아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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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토이 스토리> 시리즈만큼 시간의 흐름에 명민하게 반응해온 애니메이션이 또 있을까 싶다. 1편에서 카우보이 인형 우디(톰 행크스)는 신종 우주로봇 인형 버즈(팀 앨런)에게 편애의 자리를 위협당한다. 2편에서 인형들의 근심은 망가지고 부서져 더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는 데에 있었다. 시리즈의 태동으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토이 스토리3>는 세월의 가장 어둡고 두려운 부분을 건드린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사람이 변하여, 인형들의 존재 자체를 잊기 시작한 것이다. 1편의 꼬마 앤디는 어느덧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려 한다. 그는 우디를 제외한 나머지 인형들을 다락방에 넣어두려 하는데, 어머니의 실수로 인형들은 탁아소로 보내진다. 앤디에게 버림받은 것으로 오해한 인형들은 새로운 놀이상대가 생긴 것에 기뻐하지만 곧 탁아소 인형들의 텃세에 휘말려 고통을 겪는다. 이를 알아챈 우디는 친구들을 구하려 고군분투한다.
시리즈의 마지막편으로 짐작되는(그
시리즈의 1편을 위협하는 3편의 탄생 <토이 스토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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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노래라는 만국 공통의 언어가 지닌 힘은 대단했다. <스텝업>은 채닝 테이텀이라는 스타를 배출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그에 힘입어 2편 <스텝업: 더 스트리트>와 3편 <스텝업 3D>가 만들어지게 됐다. <스텝업 3D>의 외형은 더욱 커지고 화려해졌다. 학교와 길거리는 ‘월드 배틀’로 대체됐고, 화려한 안무는 3D의 옷을 입었다. 젊은이들의 꿈과 사랑이라는 이야기만은 그대로다. NYU 공대생 무스(애덤 G. 세반니)는 입학식 날 의도치 않게 길거리 댄스 배틀에 끼어들게 된다. 뉴욕 비보이계의 최강팀 사무라이 팀에 본의 아니게 도전장을 내밀게 된 것. 사무라이 팀의 라이벌인 팀의 리더 루크(릭 말람브리)는 무스를 자신의 팀에 영입한다. 클럽에서 뛰어난 댄스 실력을 선보인 나탈리(샤니 빈슨)까지 해적 팀에 끌어들인 루크는 월드 배틀 우승을 꿈꾼다. 그러나 나탈리가 사무라이 팀 리더의 동생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해적 팀은 위기를 맞는다.
그 자체로 감탄을 자아내는 묘기 수준의 댄스 <스텝업 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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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주세요. 타쿠마를 살려주세요. 부탁이에요, 네잎클로버님.” 여덟살 꼬마 여자아이가 네잎클로버에 소원을 빈다. 선천성 심장질환 때문에 스무살까지밖에 살 수 없는 자신의 친구를 살려달라는 것이다. 심장이 튼튼하지 못한 꼬마 남자아이도 그 순간 마음속으로 소원을 빈다. “제게 단 한번만이라도 새 생명을 주세요.” 그리고 둘은 “어른이 되면 결혼하자”는 약속을 한다. 시간이 훌쩍 흐르고, 여자와 남자는 고등학교 입시를 앞둔 다 큰 학생이 되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타쿠마(오카다 마사키) 곁에는 언제나처럼 마유(이노우에 마오)가 있다. 그러나 타쿠마의 생명 시계는 끝을 향해 빠르게 똑딱거린다. 타쿠마는 자신의 죽음으로 마유가 상처받을 것을 걱정하며, 마유와 떨어져 지내기 위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명문사립 시도고등학교에 지원한다. 그렇다고 순순히 사랑을 포기할 마유가 아니다. 마유는 타쿠마 몰래 시도고등학교 시험을 치고, 입학식 날 전교생 앞에서 타쿠마의 바보 같은 행동을 야단
고통을 동반한 운명적인 사랑 <내 첫사랑을 너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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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를 본 누군가는, 이정범 감독의 전작인 설경구 주연의 <열혈남아>와 제목을 맞바꾸는 편이 어울린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느 모로 보나 꽃다운 청년인 태식(원빈)이 ‘아저씨’인 근거는 오직 하나, 옆집 소녀 소미(김새론)가 그렇게 부르기 때문이다. 소미를 필두로 영화 속 남녀노소는 일제히 태식을 “아저씨”라고 호명하는데, 이 광경은 아직 소년티가 남은 태식에게 보호자의 정체성을 불어넣기 위해 최면을 걸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 소녀가 ‘아저씨’라고 불러주기까지 태식은 오랜 시간을 주검처럼 살아온 남자다. 과거에 감히 이름도 욀 수 없는 극비 특작부대의 ‘섬멸요원’으로 복무했던 그는, 작전 후의 보복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숨어산다. 태식 자신처럼 쓰임새를 잃고 초라한 담보가 되어버린 물건들과 함께 기거하는 컴컴한 전당포가 그의 은신처다(우유와 선인장 화분은 드러내놓고 <레옹>을 향한 동경을 표하는 소품이다). 이웃집 소녀 소미는
순결한 여성을 위해 피 흘리며 구원을 소망한다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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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더이상 다른 외국 문화가 일본에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의 문화를 수출하는 걸 꺼림칙해한다. 또한 극소수의 일본 DVD들만이 영어자막이 입혀진 채 출시되고, 일본 영화사들은 여전히 프리뷰 테이프를 보내주길 싫어한다.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최근 “남한과 중국이 ‘쿨’ 문화 경쟁에서 일본을 앞지르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그 기사는 지난 7월 초 파리에서 열린 재팬 엑스포에 한국 만화를 홍보하는 부스가 참여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일본 통상부 공무원의 “이 행사를 한국 만화가 지배할 날이 올 것”이라는 비관적인 코멘트를 인용했다. 이 만화 부스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약 18억원의 비용을 들여 세운 것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일본영화산업이 쇠락하고 있다면 그건 정부의 지원 부족 탓이 아니라 일본 영화사들의 태도 때문이다. 국내시장이 포화상태가 되면서 한국영화산업은 성장을 위해 해외시장을 개척해왔다. 1976년 탕산 지진을 다룬
[외신기자클럽] 일본영화산업 영화사들이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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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는 단 3일.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8월6일부터 8일까지 강원도 강릉시 정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제12회 정동진독립영화제가 열린다. 담벼락도 지붕도 없는 뻥 뚫린 운동장에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고, 스크린 뒤로는 밤기차가 지나가고, 모기를 쫓으려고 피운 쑥불 연기는 분위기 연출용 특수효과 장치가 되는 별난 영화제. ‘별이 지는 하늘, 영화가 뜨는 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극장’이라는 수식어가 정동진독립영화제에 괜히 붙은 것은 아니다. 박광수 정동진독립영화제 프로그래머도 말했다. “자랑할 게 그거다. 요새는 극장이 전부 멀티플렉스 아닌가. 대형 스크린이 걸린 곳도 많지 않다. 영화를 진짜 재밌게 보려면 여러 사람들과 큰 스크린으로 봐야 한다. 정동진독립영화제에 오면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
올해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선 총 21편의 독립장·단편 영화가 상영된다. 모든 영화는 영화제 기간 딱 한번 상영되며, 모두 무료다. 박광수 프로그래머는 “추천작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를 대형 스크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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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너무 철학돋네요.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에게 실뭉치를 건네줘서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을 빠져나오게 도와준 그리스 신화 속 공주 이름이 아니더이까.
=네. 맞아요.
-이름이 좀 지나치게 직설적이지 않나 싶더군요. 꿈의 설계자에게 아리아드네라는 이름을 붙여주다니. 크리스토퍼 놀란도 참. 가끔은 놀랄 만큼 순진한 구석이 있단 말이죠.
=그렇긴 하지만, 사실 영화를 보는 관객 중 몇 %나 아리아드네라는 이름과 그리스 신화를 연결시키겠어요. 반대로 생각하자면, 이름부터 너무나도 명백하기 때문에 오히려 평론가들이 그리스 신화를 매개로 분석을 하고 그러는 건 더 민망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이중의 트릭을 갖고 있는 놀란의 이름 짓기라고 할까요.
-뭐 그럴 수도 있겠죠. 여하튼 오늘은 아리아드네양을 좀 추궁할까 싶어서 이 자리에 불러냈습니다. 각오하세요.
=각오했으니 추궁하세요.
-어젯밤 제 꿈을 설계하셨죠? 그렇죠?
=전 기억이 없는데요. 대체 무슨 꿈을 꾸셨기에 그렇게 얼굴이
[김도훈의 가상인터뷰] 음악이 들리면 깨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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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나 같은 로마 사람을 시기한다. 좋은 영화도 많이 보고, 감독과의 대화에 직접 참여할 수 있고, 또 우연히 친구들도 만나면서 로마의 여름밤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거장 난니 모레티가 개최하는 신인감독 초대전 빔비 벨리(Bimbi Belli)에 온 관객 마리아가 하는 말이다.
로마의 여름밤. 물을 사랑하는 로마 사람들은 로마를 관통하는 테베레 강변에 상점을 차리고 관광객을 불러들인다. 상점을 보러 온 사람과 보고 나가는 사람 사이의 혼잡함에서 두 발자국만 벗어나면 이탈리아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조용한 혼돈을 빚는 누오보사케르 영화관이 있다. <조용한 혼돈>에 출연하는 영화감독 난니 모레티는 여름이면 자신의 영화관인 누오보사케르에서 빔비 벨리를 연다. 예쁜 아이들이라는 뜻의 ‘빔비 벨리’는 2002년 난니 모레티가 이탈리아 젊은 감독들의 영화를 초대하는 행사로 시작했다. 올해로 6회를 맞이한 빔비 벨리는 7월12일부터 22일까
[로마] 난니 모레티의 여름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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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트>의 솔트는 안젤리나 졸리다. 그런데 <솔트>에는 양념이 또 하나 있다. 할리우드의 양념 같은 남자 리브 슈라이버다. 그는 1994년 <라이프 세이버>로 데뷔한 이래 <랜섬>(1996), <썸 오브 올 피어스>(2002), <케이트 & 레오폴드>(2002) 같은 영화들에서 빠지면 섭섭할 조연들을 끊임없이 맡아왔다. 주인공의 옆에서 자빠지고 구르는 단순한 양념은 아니다. 리브 슈라이버는 겉과 속이 묘하게 어긋난, 선과 악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왔다. 살인마로 누명을 뒤집어쓴 뒤 시드니를 괴롭히는 <스크림> 시리즈나 엄마에게 조종당하는 <맨츄리안 켄디데이트>(2004)를 한번 떠올려보시라. 악당인 줄 알았더니 선한 캐릭터였던 <엑스맨 탄생: 울버린>은 또 어떻고. <솔트>에서 리브 슈라이버는 안젤리나 졸리의 상사를 연기한다. 그러나 리브
[now&then] 리브 슈라이버 (Liev Schrei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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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만화] <고사Ⅱ> 또 한명의 누군가가 있다는 건가
[정훈이만화] <고사Ⅱ> 또 한명의 누군가가 있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