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까지, 내가 어떤 자리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 인사를 나누면서 재즈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면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이 두 가지 있었다. 첫째, 와인 좋아하세요? 둘째, 무라카미 하루키 좋아하세요? 이상하게도 찰리 파커를 좋아하느냐 혹은 키스 자렛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아본 기억은 내게 없다. 물론 그때마다 나는 ‘예’라고 대답한다. 술은(와인뿐만 아니라) 다 좋아하니까. 그리고 적어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상실의 시대>는 재미있게 읽었으니까. 그때마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노무’ 재즈는 아직도 우리에게 독립된 음악이 아니구나. 그저 장식물이구나. 와인 마실 때의 배경음악 혹은 하루키풍 라이프스타일(또는 그것에 대한 로망) 속의 무엇.
그렇다. 언감생심, 나는 하루키를 질투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전세계 어디서든 베스트셀러 작가가 재즈 뮤지션보다 유명한 것은 당연하며, 그렇다면 그 작가의 눈을 통해 사람들이 재즈를 바라보는
단카이 세대의 모던재즈
-
“예를 들면 호른이라는 악기가 있다.”
“마유미가 처음으로 쇄골을 으깨놓은 젊은 남자는, 스포일러가 붙은 하얀 닛산 스카이라인을 몰고 있었다.”
“나는 얼음 사나이와 결혼하였다.”
“토니 다키타니의 진짜 이름은, 정말 토니 다키타니였다.”
예를 들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작은 이렇다. 툭 안기는 첫 문장의 매력에 가벼운 마음으로 책의 첫 장을 넘긴다.
시나리오를 쓰기 전, 하얀 워크 스페이스에 커서가 깜빡거리는 것을 몇분 혹은 몇십 분을 바라보다가 다잡히지 않은 생각들과 떠다니는 아이디어들에 마우스를 내려놓고 방 안을 빙글빙글 돈다. 방을 치워보기도 하고 발을 씻어보기도 하고 스탠드의 조도를 낮추고 음악을 틀고 하얀 머그잔에 가루 녹차를 풀어놓아보기도 한다. 의자에 앉은 채로 무릎을 굽혀 발뒤꿈치를 허벅지 앞쪽에 올려놓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다시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다가 짧은 글들이 모여 있는 책들에 눈이 간다. 전에 읽었던 하루키의 단편이라 해도 상관없다.
책을 들고
상상력을 이완시키는 마법
-
92학번인 내가 분포된 나이 띠 근방의 사람들은 ‘무라카미 하루키’란 이름에 비슷한 감정을 품지 않을까? 그러니 만인의 우상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게 참 부끄럽다. 그 이름에 누가 될 텐데 이거 참…. 그러나 이런 소심한 사람을 용기내게 만든 게 바로 그이다. 그의 고백이다.
그는 고백한다. 소설을 시작할 때 앞일을 모르고 출발한다고. 대충의 도착지만 있을 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여행. 그런데 그렇게 나온 글이 때로 자신을 앞질러 있기도 하단다. 비슷한 고백이 하나 더 있다. 그가 번역해준 레이먼드 카버의 <글쓰기에 대하여>에 나오는 고백이다.
‘첫 문장을 쓴다. 그러나 그 다음 문장이 무엇이 될지 모른다.’ 이 문장을 처음 보았을 때가 대학교 4학년이었다. 앞으로 뭘 하며 먹고살지 세상은 넓고 자신은 극도로 초라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내게 이 말은 구원의 메시지였다. 서점에 가득 깔린 책이나 넘쳐나는 영화 포스터만 봐도 기가 죽었다. ‘와~ 세상엔 참
근육의 소설가를 만나다
-
내가 하루키를 처음 읽은 것은 스무살 때였다. 1990년대였다. 386세대가 뜨겁게 청춘을 산 다음의, 스무살. 이념과 투쟁에의 부담감은 어느 정도 사라진 뒤였고, ‘신세대’라는 신조어가 내 또래를 지칭할 즈음이었다. 스무살의 나는 막걸리 대신 생맥주를 마셨고, 세상을 이야기하기 전에 록카페에서 서태지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즐거웠다. 하지만 어쩐지 좀 먹먹하고 헛헛했다. 개인주의까지는 좋은데 그래서 과연 그게 무엇인지, 실체를 몰랐다. 정작 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스무살을 규정해줄 ‘말’이 없었고 ‘코드’가 없었다. 그런 시절의 무라카미 하루키는 절묘했고 적절했다. 뜨겁지 않아도, 차가운 방식으로도 죄책감없이 세상을 살 수 있는 거라는, 어떤 선배의 고마운 전언 같았달까. 그의 책에는 가장 사적이고 사소한 영역에 대한 찬사가 있었다. 집단이 아닌 개인이, 그 자체로 충분히 값지고 빛날 수 있다는 예시가 있었다. 그렇게, 이념의 공백을 시나브로 채워가며 하루
그때 그 시절 로망이여
-
-
한때 꿈 이야기를 올리는 커뮤니티를 운영해볼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을 만큼 꿈을 많이 꾸는 편이다. 근심이 많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낮 동안 충분히 열심히 살지 않아서라고도 한다. 이유야 어쨌건 많은 양의 꿈을 ‘다작’하다 보니 때로 꽤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 바로 어제(이 원고청탁을 받고 나서 며칠 뒤에) 꾼 꿈을 가감없이 적어보자면 이렇다.
나는 관처럼 생긴 수조에 반듯하게 누워 있다. 사람들은 어떤 시기가 되면(혹은 어떤 조건을 충족시키면) 다음 세대를 위하여 의무적으로 삶을 마감하도록 하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었고, 지금은 나의 차례였다. 나는 살짝 초조했으며, 약간의 아쉬움과 함께 한편으로는 약간의 뿌듯함을 동반한 일종의 윤리적 의무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세대간 재분배와 관련한 어떤 경제이론을 떠올린 것도 같은데, 그것이 꿈속에서였는지 깨어난 뒤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들을 수 있을 법한 차분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절차를 안내하는
무한의 무한과 꿈의 원더랜드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상실의 시대>를 읽은 지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나는 아직 불이 켜 있던 아파트의 불이 꺼지던 순간을 지켜보다가 뒤돌아서던 발길 같은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 불빛들은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한다. 우리에게 삶이 확실하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었을까? 앞날이 마치 불빛이 꺼진 아파트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어떤 삶의 태도를 가질 수 있을까? 우리는 그때도 아파트와 도시와 곧 가버릴 청춘을 육체의 눈이 아닌 영혼의 눈으로 볼 수 있을까? 거대한 것들의 시대는 갔고, 영웅과 모험과 혁명과 열렬한 논쟁과 모색의 시대도 갔고, 세상은 가볍고 변덕스럽고, 반짝거리되 찬란하지 않고 그래서 우리의 열정과 소망과 성취 역시 작아졌을 때 그때도 우리는 무의미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 그때도 또다시 모든 것이 새로워질 것이란 것을 입 밖으로 내 물어보아야 할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런 상실감의 시대에 뜻밖의 방식으로 인간을 인간으로 보게
당신은 어떤 사회에 살고 있습니까?
-
‘이건 기적이다.’ 트란 안 훙 감독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의 영화화에 착수하자 배급사인 도호는 즉각 놀라움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키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작품은 1981년, 장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영화화한 오모리 가즈키 감독의 동명 영화가 처음. 그 뒤 <렉싱턴의 유령>에 수록된 단편 <토니 타키타니>를 각색, 미야자와 리에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된 <토니 타키타니>(2004) 두편이 전부였다. 그간 하루키 소설은 인간 내면의 심리묘사, 일상에 대한 언어 위주의 표현이라는 특징 때문에 영화화를 어렵게 만든다고 인식돼왔다. 그러나 정작 실질적인 사정은 하루키 본인이 자신의 소설이 영화화되는 데 부정적인 탓이 더 크다. <노르웨이의 숲>을 영화화하고 싶어 하는 왕가위 감독 역시 까다로운 하루키의 허락을 구하지 못해 결국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중경삼림>을 연출했
무라카미 하루키+트란 안 훙=?
-
아주 오래전에 무라카미 류씨를 만났는데, “이봐요 하루키씨, 한번 정도는 밀리언셀러 같을 것을 써놓는 게 좋을 거예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아연해서 ‘태평한 말을 하는 사람이군’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밀리언셀러의 작가가 되고 보니 그가 말한 대로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여러모로 공부가 되었습니다. 엄청나게 지쳐버렸지만요. -무라카미 하루키
2010년 7월28일. 트위터 최고의 화두는 재보궐선거와 <1Q84> 3권 출간이었다. 서점에서 <1Q84> 3권을 구입한 사람들은 인증숏을 올리며 책 구입 사실을 알렸다. 그럴만도 하다. <1Q84> 1, 2권은 한국에서 지금까지 총 115만 부가 팔려나갔고, <1Q84> 3권은 예약판매가 시작된 직후 모든 인터넷서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일본에서는 <1Q84> 1, 2권이 출간 12일만에 100만권이 판매되는 기록적인 성적을 기록하던 중인 8월5일, &l
‘종합 소설가’의 성장
-
이해영 감독, 이윤정 PD 등 그와 함께 청춘을 보낸 이들의 에세이를 함께 싣는다
<1Q84> 3권이 한국 독자들에 선을 보였다. 또 한번, 이게 끝이 아닐지 모른다는 설이 돌고 있다. 출간도 되기 전에 빠르게도 베스트셀러 수위를 점했다. 일본과 한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국가들에서만의 열광은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거의 모든 책이 40여개 언어로 번역되고 있으며, 출간될 때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상실의 시대>로부터 20여년이 지나는 동안 하루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이해영 감독, 김종관 감독, 밴드 못[Mot]의 이이언, 재즈칼럼니스트 황덕호, 정혜윤 PD, 이윤정 PD가 보내온 에세이들은 90년대를 통과해 지금 이 자리에 선 당신에게 추억의 한 페이지를 열어줄 것이다.
하루키 스타일을 좋아하세요?
-
<아저씨>의 이정범 감독은 주연배우 원빈과 함께 다니다 보니 이유없는 수모(?)를 당한다. 하필이면 원빈과 단둘이 서 있는 사진 한장을 찍었는데, 그걸 보고 누군가 이런 댓글을 달아놓았다고 한다. “원빈 옆에 서 있는 저 코 있고 눈 달린 건 뭐냐?”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재미있다는 듯 껄껄 웃었다. 영화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좋다. 시사회 다음날 관계자들의 호의적인 평에 그는 다소 상기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그가 바라는 일반 관객의 반응은 또 어떤 것일까. 가령 이런 것이 최상이다. “여자가 남자 애인의 손을 끌고 들어가서 보게 되는데, 끝난 다음에는 남자가 더 반해서 극장을 나서게 되는 그런 영화.” 궁금한 것 몇 가지를 이어서 더 물어봤다.
-시나리오 작업이 오래 걸렸고 많은 공을 들였다고.
=사실 이 작품으로만 보면 그렇게 오래 걸린 건 아니다. <열혈남아>가 끝나고 <시크릿 보이>라는 로맨틱코미디를 2년 동안 썼다. 완고까지 마쳤다
[이정범] 피와 땀이 흐르는 카타르시스에 끌린다
-
원빈과 김새론이 공연한 영화 <아저씨>는 의외로 뜨겁다. 고독한 남자와 그에게 찾아온 소녀와의 멜로드라마가 강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아저씨>는 액션영화 본연의 시청각적 쾌감을 폭발시킨다. 기자시사 뒤 쏟아지는 호평에 <아저씨>에 담긴 장르적인 특징과 재미에 대한 설명을 보탰다. 그리고 데뷔작인 <열혈남아>를 거쳐 <아저씨>를 통해 상업영화 시스템에 안착한 이정범 감독과 액션스타로서의 남성적인 매력을 유감없이 드러낸 배우 원빈을 만났다. 영화 <아저씨>의 온도를 미리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다.
“넌 누구냐”는 질문에 피로 물든 사나이가 정체를 밝힌다. “옆집 아저씨.” 영화 <아저씨>는 이 아저씨의 고독한 혈투를 집요하게 묘사하는 영화다. <열혈남아>를 연출했던 이정범 감독은 외로운 남자와 소녀의 만남을 통해 전작에 깃든 유사가족에 대한 이상적인 믿음을 전하는 한편, 분노에 못 이긴 남자를 멋스
이 짜릿하고 끈적한 액션의 쾌감
-
(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예능과 드라마를 넘나들며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가수 겸 배우 이승기가 "예능에서는 절대 연기하지 않는다"는 소신을 밝혔다.4일 오후 SBS 목동 사옥에서 열린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제작발표회에서 이승기는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연기에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예능에서는 절대 연기를 하지 않는다는 게 내 철칙"이라고 답했다.그는 KBS 간판 예능프로그램 '1박2일'의 원조 멤버로 수년째 활약하고 있다.이승기는 "예능프로가 코믹 연기의 감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됐을 수는 있겠지만 드라마에서 연기하는 호흡과 타이밍은 다르다"며 "또한 '1박2일'은 진실성이 중요한 프로그램인데 연기자인 내가 그 안에서 연기를 한다면 진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11일 첫 선을 보이는 수목극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서 이승기는 구미호와 사랑에 빠지는 철 없는 대학생 대웅을 맡았다. 이승기
이승기 "예능에선 연기 절대 안 해"
-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가 2차례에 걸쳐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아 영화 개봉에 비상이 걸렸다.영상물등급위원회는 4일 최민식ㆍ이병헌 주연의 '악마를 보았다'에 대해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렸다. 이는 지난달 27일에 이어 두 번째로, 제작사와 배급사는 두 번 모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신청했으나 거부당했다.영등위는 "도입부에서 시신 일부를 바구니에 던지는 장면, 절단된 신체를 냉장고에 넣어 둔 장면 등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현저히 훼손시킨다고 판단돼 제한상영가 등급에 해당한다"고 밝혔다.제한상영가 등급은 상영 및 광고ㆍ선전에 있어서 제한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영화에 내리는 등급으로, 이 등급을 받은 영화는 제한상영관으로 등록된 극장에서만 상영과 홍보가 가능하다.하지만 설치와 운영 규정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실제 운영되는 제한상영관은 한 곳도 없어 '악마를 보았다'가 이대로 제한상영가로 확정되면 국내에서 상영할 수 없게 된다.'악마
<악마를 보았다> 제한상영가 판정위기(종합)
-
(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CF 스타로 자리 잡은 배우 신민아가 작품 활동을 통해 CF 스타의 이미지를 극복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4일 오후 SBS 목동 사옥에서 열린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제작발표회에서 신민아는 CF 활동에 비해 작품 활동이 미진하다는 지적에 "영화를 계속하긴 했는데 광고 수가 작품 수보다 많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풀어야할 숙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 작품처럼 많은 관심을 갖는 작품이 필요했다고 볼 수 있어요. 배우가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생각만큼 좋지는 않지만 본업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그는 "이번에 맡은 역할을 잘 살려서 (CF 활동에 주력한다는)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강조했다.11일 처음 방송하는 새 수목극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서 신민아는 500년 만에 봉인에서 풀려나 철 없는 대학생 대웅(이승기)과 사랑에 빠지는 구미호를 연기한다.전설 속
신민아 "연기로 CF스타 꼬리표 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