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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프> The Reef
앤드루 트라우키/ 오스트레일리아/ 2010년/ 87분/ 미드나잇 패션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 이후 수많은 상어영화들이 만들어졌다. 기억나는 영화가 있으신지? <죠스>의 졸렬한 후속편들은 거론할 가치도 없고, 저예산영화 <오픈 워터> 정도가 일부 마니아의 지지를 받았을 따름이다. 진짜 피를 말리고 숨을 멎게 만드는 상어영화를 기다려왔다면 <더 리프>는 썩 괜찮은 선물이다. 일단의 오스트레일리아 커플들을 태우고 호주의 산호초 해안을 여행하던 요트가 암초에 부딪혀 전복된다. 일행은 선택해야 한다. 뒤집힌 채로 조류 때문에 육지에서 점점 멀어지는 배 위에서 구조를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든 가까운 육지를 향해 헤엄칠 것인가. 결국 일행은 단 한명을 배에 남기고 헤엄을 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한 마리의 백상어가 마치 재미있는 놀이를 하듯 한명 한명 사냥하기 시작한다. <더 리프
피를 말리고 숨을 멎게 만드는 상어영화 <더 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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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팩토리> The Tiger Factory
우밍진/말레이시아, 일본/2010년/84분/아시아영화의 창
사내아이는 400달러다. 여자아이는 그보다 많은 2500달러에 거래된다. <타이거 팩토리>는 아기를 팔고 사는 거래에서 ‘공장’으로 취급받는 19살 소녀의 삶을 그린 영화다. 일본으로 가기 위해 돈이 필요한 소녀 핑은 식당과 돼지 사육장을 오가며 일을 하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핑은 이모의 ‘베이비 팩토리’ 사업에 동참한다. 인도네시아 이주민 남자들과 관계를 맺고 아이를 낳아 주는 일이다. 이모는 아기를 구매하려는 사람에게 말한다. “저 애는 정말 예쁘죠? 그러니 아이는 얼마나 예쁘겠어요?” 이건 실화다. <코끼리와 바다> <물을 찾는 불 위의 여자>를 통해 세계적인 신성으로 등극한 우밍진 감독은 신문에서 미얀마와 인도네시아 이주민을 이용해 아기를 거래한다는 기사를 발견했다. 그는 소재가 가진 현실고발적인
19살 소녀의 삶을 그린 영화 <타이거 팩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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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공장> Dream Factory
김성균/한국/2010년/80분/와이드 앵글
다큐멘터리 <꿈의 공장>을 보고 난 후 한동안 생각에 빠졌다. 이 영화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좀처럼 정리가 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그저 또 하나의 ‘투쟁’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이 작품은 자본주의 안에서 또한번 ‘가진 자’로부터 부당하게 빼앗긴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으려는 ‘약자’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몇 해 전 구입했던 통기타가 있다. 내가 <꿈의 공장>을 보고 불편했던 연결고리가 여기에 있다. 그 당시 값비싼 유명한 통기타와 그보다 훨씬 저렴하지만 거의 동등한 질의 악기를 놓고 고민하다 결국 저렴한 쪽을 택했다. ‘Made in China’라는 것만 빼놓고 너무 마음에 드는 악기였다. ‘이렇게 질 좋은 기타를 이렇게 싼값에 구하다니...’ 혼자 즐거워했고 뿌듯했다. 그것이 어떻게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는 나와 전혀 무관한 일이었다. 생각해 볼 이
이 또한 투쟁의 다큐멘터리 <꿈의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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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이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 A Small Town Called Descent
자밀 쿠베가/남아프리카공화국/2010년/106분/월드 시네마
<추락이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은 남아공의 사회문제인 제노포비아의 참상을 고발하는 경찰드라마다. 남아공의 후미진 마을에서 짐바브웨 출신 남자가 시체로 발견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특수경찰 스콜피온 3인조가 곧 파견되고, 그들은 동네 신부의 증언으로 부패한 지역 경찰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다. 그러나 변호사의 비호를 받는 권력자의 진실을 파헤치기란 여간해서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을 여자의 증언으로 끔찍한 사건이 드러나고 사건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해마다 일자리를 찾아 아프리카 이주인들이 대거 유입되는 남아공에 제노포비아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현재적 문제다. 영화 속 표현처럼 남아공인들에게 이들 이주민들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더러운 외국인’이며, 그런 인식이 불식되지 않는 한 폭력사태는 언제든 가능하다. 줄
제노포비아의 참상 고발 <추락이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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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영화가, 엎어졌다. 크랭크인 열흘 전, 한창 분주한 사무실에서 그 소식을 들었다. 순간 섬광이 번쩍. 정신을 차리니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사람이 최악일 땐 고속도로, 그것도 경부고속도로를 저절로 달리게 되더라. 뭔가 묵직한 게 가슴팍을 짓눌렀지만, 슬픔도 절망도 아닌. 단지 멍하기만 했다. 멍하니까 배가, 죽도록 고팠다. 휴게소 TV에서 속보가 나왔다. ‘최진실’이 죽었다고 했다. 순간 먹던 우동 가락이 입부터 위까지 안 끊어진 한 줄로 그냥, 섰다. 그리곤, 미치도록 나는 울었다. 안 멈췄다. 울면서 다시 운전을 했다. 그제야 엿같이 슬펐고 절망스러웠다. 무작정 부산을 보고 싶었다. 위안일 것 같았다. 맹목적으로 달렸다. 그런데 문득. 부산영화제 기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순간, 1km도 더 갈 수가 없었다. 그게 누구건, 만나는 족족 받게 될 수많은, 뻔한 질문들에 단 한 줄 답할 자신이 없었다. 전라도로 방향을 돌렸다. 그 부산영화제라는 게, 얼마나 증오스러
웃음도 눈물도 추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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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Railways
니시코리 요시나리/일본/2010년/130분/아시아영화의 창
남부럽지 않은 전기회사의 간부로 재직 중인 하지메의 올해 나이는 49살. 어렸을 적 막연하게 꿈꾸던 미래는 잊고 산 지 오래다. 졸업을 앞두고 취직할 생각이 없는 딸은 회사에만 집착하는 아버지를 못마땅해하며, 엄마 역시 새로 오픈한 허브샵에 온 정신을 쏟는 중이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도 회사 걱정만 하던 하지메는, 딸과 함께 오랜만에 고향을 찾는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갑작스런 친구의 부음소식과 병원에서 들려준 어머니의 심각한 병세였던 것. 하지메는 그제서야 지난 세월을 후회하며, 어린 시절 막연하게 꿈꾸던 철도기관사로서의 제2의 삶에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도시의 삶을 정리한다.
<철로>는 도시의 위태로운 삶 속에서 외줄타기 하던 중년의 남자가 어릴 적 꿈을 찾아 제 2의 인생에 도전한다는 전형적인 성장영화다. 인물 간의 갈등양상이 너무
도시 속 중년 남자의 꿈 <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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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둥이 주앙> Juan
카스퍼 홀텐 /덴마크/2010년/102분/ 플래시 포워드
모차르트가 현대에 뮤지컬을 만들었다면 아마 이랬을까. 덴마크에서 날아온 이 흥겨운 소동극은 그야말로 눈과 귀가 즐겁다. 매력적인 아티스트인 주앙은 밤마다 코펜하겐 거리를 활보하는 못 말리는 바람둥이다. 친구 레포렐로의 도움을 받아 마음에 드는 여성은 반드시 정복하고 마는 주앙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자 여성을 악의적으로 이용한다. 여느 날처럼 여성을 유혹한 그는 일찍 귀가한 그녀의 아버지와 다투다 실수로 그를 죽이고 만다. <바람둥이 주앙>은 살인 혐의를 받고 도망치면서도 끊임없이 여성을 유혹하고, 이용하고, 차버리는 주앙의 24시간을 따라간다. 섹시하면서도 기품 있는 그의 유혹에 넘어간 여자들은 모든 것을 바치며 주앙에게 빠져들고 도와주지만, “나의 열정! 내 일은 오늘도, 영원히 끝나지 않아.”라고 외치는 주앙의 독백처럼 그에게 모든 것은 게임일 뿐이다.
모차르트의 유명
덴마크에서 날아온 흥겨운 소동극 <바람둥이 주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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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착오> Erratum
마렉 레츠키/폴란드/ 2010년/ 95분/ 플래시 포워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고향으로 갑작스러운 출장을 떠나게 된 남자의 이야기다. 1박2일의 짧은 여정을 계획했던 남자는 예기치 못한 사고로 출발이 지연되고 이 시간 동안 꼬여있던 인생의 커다란 매듭을 풀게 된다. 출장 첫날 교통사고를 낸 남자는 공중전화로 신고를 하고는 두려움에 뺑소니를 친다. 아버지 친구를 찾아가 사실을 고백하고 고민하던 그는 다음 날 자수하기 위해 경찰서로 찾아간다. 그런데 담당경찰관은 의외의 반응을 보인다. 노숙자에 알콜중독자인 희생자보다 한 집안의 가장이자 아이 아빠인 남자를 더 걱정하면서 그에게 유리한 조서를 꾸며준다. 결국 남자는 무혐의로 경찰서를 나오지만 자동차 수리를 위해 하루를 더 머무르게 된다. 특별히 할 일이 없던 남자는 시체안치소로 찾아가 죽은 노인에 대해 알아본다. 아무도 노인을 찾아오지 않은 것을 안 남자는 유품을 건네받고 가족에게 연락하기 위
오래 기억 남을 부자의 소통방식 <시행착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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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일기> The Journals of Musan
박정범/ 한국/ 2010년/127분/ 뉴 커런츠
탈북자는 최근 충무로 안팎의 감독들이 새롭게 발견하기 시작한 소재다. 김동현 감독의 독립영화 <처음 만난 사람들>과 장훈의 <의형제>가 대표적인 예다. 박정범 감독 역시 2008년 미장센단편영화제에서 탈북자를 다룬 단편 <125 전승철>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다. <무산일기>는 <125 전승철>의 아이디어를 연장시켜 완성한 장편이다.
주인공 전승철(감독이 직접 연기한다)의 주민등록 뒷번호는 125로 시작한다. 탈북자라는 의미다. 그는 배불리 먹기위해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왔지만 온갖 폭력에 시달리며 시간당 2천원짜리 포스터 붙이는 일로 입에 풀칠을 한다. 그는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하는 여자를 마음에 둔 채 그녀가 일하는 도우미 노래방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지만 돌아오는 건 멸시뿐이다. 비루한 탈북자의 인생에
관객의 심장을 움켜쥐는 강렬함 <무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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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베리 클리프> Strawberry Cliff
크리스 초우/ 홍콩, 중국, 미국,프랑스/2010년/105분/뉴 커런츠
자신이 죽을 시간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견디기 힘들까. <스트로베리 클리프>는 타인의 죽음을 보는 능력을 지닌 여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고 살 수 있는 것은 애써 그것을 삶과 분리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죽음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그녀 혹은 그녀 주위 사람들의 삶을 침범해올 때 영화는 ‘죽음은 언제나 삶과 함께 한다’는 잊고 있던 진실을 들려준다.
다른 사람이 죽는 시간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케이트는 어느 날 제이슨이란 남자에게 그가 죽을 시간을 가르쳐준다. 제이슨은 믿지 않지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죽고 난 후 그녀에게 연락을 해주기로 약속한다. 이 농담 같은 약속은 제이슨이 케이트가 얘기한 시간에 정확히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 지켜진다.
타인의 죽음을 보는 능력을 지닌 여자 <스트로베리 클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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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개막 4일째인 10월10일부터 부산국제영화제는 한층 더 두터워진다. 극장과 해변에서 거장의 영화와 세계적인 스타들이 관객들과 만날 때, 다른 한 쪽에서는 부산프로모션플랜 (Pusan Promotion Plan, 이하 PPP)을 통해 신작 프로젝트를 들고 부산을 찾은 감독들과 제작·투자자들이 머리를 맞대기 때문이다. 아시아필름마켓 기간에 열리는 PPP는 지난 15년간 아시아 신작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대표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해 부산국제영화제의 또 다른 축이 됐다. PPP가 영화산업 종사자와 기자에게만 관심이 허락된 자리는 아닐 것이다. 신인감독과 유명 감독의 프로젝트들이 골고루 소개되는 이 행사는 영화팬들에게도 세계영화의 지형도를 미리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다.
차이밍량의 신작 <소년의 일기>
올해 PPP는 접수된 약 150편의 프로젝트 가운데 총 27편을 선정했다. 30편을 선정한 지난해에 비해 3편이 줄었다. 영화제 측은 선정작품이 많으면 관계자들의 관심에
이재용 감독 신작에 투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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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이 대세다. 부산영화제와 아이돌이 뭔 상관이냐고? 물론 부산의 스타는 각국을 대표해서 날아온 영화인들이다. 그러나 올해는 아이돌의 기세도 만만찮다. 대형영화사들이 주최하는 파티에 아이돌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다. 시작은 지난 10월 8일 오후 7시 롯데엔테터인먼트 파티에 참석한 티아라와 빅뱅의 태양. 특히 태양은 "영화배우 탑에 많은 성원부탁드린다"며 수많은 (특히 여성)제작자들을 향해 눈웃음을 날렸단다. 9일 밤 9시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CJ엔터테인먼트 파티에는 2NE1이 출격했다. CJ측은 "2NE1측에서 바쁜 주말을 비우면서까지 부산행을 결정해줬다"고 (예뻐서 죽겠다는 말투로) 고백했다. 물론 영화사들은 초청장 없이 입장이 불가능한 파티의 성격상 입출입 통제에 꽤나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초청장 필요없는 기자들은 공짜로 아이돌도 보고 신났겠다고? 슬프게도 <씨네21> 기자들은 데일리 매거진을 만드느라 "Can’t nobody hold us down"을 외치며 홍
[BEHIND PIFF] 헉! 2N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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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영화사의 산증인인 대배우에게 바치는 최고의 헌정다웠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인 <그녀가 허락한 모든 것: 스타, 배우, 그리고 김지미>를 기념하는 뜻깊은 행사인 ‘한국영화 회고전의 밤’이 지난 10월9일 9시, 노보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너무 많은 영화인들이 참석해 행사장 입구부터 인산인해를 이뤘다. 김동호 집행위원장과 임권택 감독 내외, 배우 남궁원을 비롯한 원로배우 및 원로영화인들이 참석했으며, 윤여정, 강수연, 예지원, 문소리 장준환 부부, 류승룡 등 많은 후배 영화인들도 참석했다.
영화평론가 김종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기념영상 상영과 디렉처스 체어 및 회고전 책자 증정식을 가졌다. “73세의 나이로 행사 사회를 진행하는 것도 쉬운 경험은 아닌 것 같다”라고 운을 띄운 김종원 평론가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배우 김지미의 반세기 필로그래피를 소개했다. 이어서 대형 스크린에서는 그녀가 출연한 영화의 스틸컷과
영원히 기억해야 할 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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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터도 없이 소로 밭가는 게 지겹고 지겨워 우시장에 아버지 몰래 소를 팔러 갔다가, 뜻하지 않게 소와 여행하게 된 남자 선호. 임순례 감독의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장가도 못가고, 시인도 되지 못하고 뜻대로 되는 일 없는 한 남자의 자아찾기다. 그 길에 불교에서 말하는 구도의 상징, 소가 함께 간다. “2007년 김도연 작가의 원작을 접했으니 <워낭소리>보다 구상은 앞섰다.(웃음)” 영진위 심사 때부터 ‘<워낭소리>도 있는데 왜 또 소냐?’는 소리를 들어서인지, 임순례 감독은 이미 예상했다는 반응이다. “우리 문화에서 소는 깨달음의 상징이었다. 그러니 소 아닌 다른 동물을 생각하긴 힘들었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성공에 관심도 없고, 어쩌면 성공할 능력도 없는 사람들. 소위 말해서 ‘루저’라고 부르는 사람들에 대한 안쓰러운 연민이다. 농경사회의 상징인 소나 이제는 힘을 잃은 시나, 이 영화의 모든 것들은 모두 사라져가는 지난
소와 함께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