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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파킨을 <피아노>에서 처음 본 순간. 커스틴 던스트를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본 순간. 내털리 포트먼을 <레옹>에서 처음 본 순간. 어린 소녀의 가죽을 뒤집어쓴 성격파 배우를 스크린으로 목도한 순간. 우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신음하며 내뱉게 된다. “졌다. 졌어.” 김새론을 <여행자>에서 처음 본 순간도 그랬다. 소녀가 프랑스 땅을 밟으며 영화가 끝나는 순간. 깊이를 알 수 없는 소녀의 마음에 사로잡힌 자 모두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지금 김새론의 이름은 단순히 인기있는 아역배우의 차원을 슬그머니 넘어섰다. <아저씨>와 <나는 아빠다>는 김새론을 지금 한국에서 가장 어린 ‘스타’로 만들었다.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 그녀가 눈물을 흘리면 다음날 인터넷에는 이런 제목의 기사가 뜬다. “김새론 폭풍 오열. 시청자도 울었다.” 그러니까 김새론은, 지금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엘레지의 여
[김새론] 자신을 버릴 줄 아는 당찬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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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망똘망, 영특, 총기, 쾌활, 씩씩. 남지현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머릿속을 맴도는 단어들이다. 그와 작품을 함께하는 선배나 연출자가 뭐든지 맡겨도 스펀지처럼 흡수해 자기만의 것을 만들어낼 것 같은 믿음을 주는 명랑한 표정이랄까. 실제로 남지현이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그랬다. 사막에서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능청스럽고 억척스런 어린 덕만(훗날 선덕 여왕)으로 출연해 한손으로 뱀을 잡는 것은 물론 로마어와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당시 <선덕여왕>이 동시간대 드라마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초반 돌풍을 일으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주인공이 바로 미실 역의 고현정과 더불어 남지현이었다.
남지현은 2004년 드라마 <사랑한다 말해줘>에서 윤소이의 아역으로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고, 공교롭게도 <무영검>(2005)에서도 윤소이 아역을 맡으며 영화 신고식을 치렀다. 특유의 명랑한 모습을 선보인 작품은 톡톡 튀는
[남지현] 씩씩함 뒤에 영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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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마음속에는 파시스트가 숨어 있다’는 농담이 있다. 건축은 혼란스러운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인데 그 질서, 그리고 그 결과로서 효율 자체가 목적이 되면 결국 파시즘이 된다. 힐버자이머, 르코르뷔지에 등 골수 근대주의자들이 남긴 삭막한 도시계획안들을 보면 오히려 ‘건축가들이 파시스트들에게 영감을 주었나’라는 생각도 든다.
내 마음속에도 미학적 파시스트가 숨어 있나 보다. 내가 지금까지 겪었던 가장 강렬한 미학적 체험 가운데 하나는 군 복무 중 비품창고를 방문한 것이다. 그 안은 질서의 미학으로 충만했다! 중대에서 사용할 담요를 받으러 간 나에게 담당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원하는 것을 신속하게 찾아주었다. 햇살이 내리쬐는 밖으로 나오면서 나는 새롭게 경험한 군대 미학의 정연함에 잠시 현기증을 느꼈다. 이에 반해 언뜻 보이는 부대 밖 지방 소도시의 풍경은 그야말로 시각적 카오스였다.
여기까지는 그냥 미학적 차원이지만, 질서와 효율이 인간을 말살하는 데 동원된다면 문제는
[Architecture+] 아우슈비츠; 미학과 현실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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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독의 영화노트] <세상의 모든 계절> 감독님 얄미워 !
[올드독의 영화노트] <세상의 모든 계절> 감독님 얄미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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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르겐 텔러, <Victoria Beckhamgt>, Marc Jacobs Campaign SS08
7월31일까지 / 대림미술관 / 02-720-0667
패션 사진작가 유르겐 텔러에게 함께 파티장에 입장할 셀러브리티를 고르라고 한다면, 선택은 자명하다. 그는 찬란하고 더없이 아름다운 젊은 패션모델이 아니라 샬롯 램플링, 로라 던 같은 원숙하고 지적인 배우와 입장할 것이다.
유르겐 텔러는 그런 사진작가다. 사물의 초점을 날려버릴 정도로 거칠게 플래시를 터뜨리고, 여성의 처진 가슴을 사진에 담는다. 피사체를 아름답게 수정해줄 ‘포토숍 리터칭’ 기법 따위는 입에 올리지도 않는다. 그저 ‘원래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고 싶어할 뿐이다. “대부분의 패션 사진은 게이들이 생각하는 여성의 섹시함을 담는다. 그런데 이런 사진들은 심지어 이성애자 남자에게도 전혀 섹시하지가 않다. 그녀들은 너무 많이 수정되었고, 지나치게 화사하다. 거기에는 어떤 인간적인 모습도 남아 있지 않다. 글쎄
[전시] 날것의 솔직한 아름다움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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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상견례>의 다홍이 아버지처럼 한쪽 눈을 실명하고도 군대에 갈 수 있나요?
야구와 군대는 다홍이 아버지(백윤식)가 전라도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게 된 계기다. 고교야구 선수 시절, 전라도 투수가 던진 공에 맞아 한쪽 눈을 실명했고, 군 복무 시절에는 전라도 고참에게 호된 갈굼을 당했다. 과연 이 두 사연을 한 사람이 겪는 게 가능할까? 2010년 2월17일 발표된 국방부령 제702호 징병신체검사등 검사규칙-‘안과’ 항목에 따르면 양쪽 눈을 실명한 검사 대상자의 신체 급수는 평시나 전시에나 6급(면제)이고, 한쪽 눈의 경우는 5급(제2 국민역)이다. 물론 다홍이 아버지가 군 생활을 했을 60년대에는 사정이 다를 수도 있다. <위험한 상견례>의 김진영 감독은 “내내 찜찜했던 부분을 이제야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며 “나름 그 시절의 군 입대 케이스에 대해 조사해본 뒤 나온 설정”이라고 말했다. “그때는 몸에 문제가 있어도 군대에 가고 싶어 자원하는 경우가 많
[Cinepedia] <위험한 상견례>의 다홍이 아버지처럼 한쪽 눈을 실명하고도 군대에 갈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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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액션장면은? <뚝방전설> 조범구 감독의 대답은 ‘퀵서비스’ 액션이다. <퀵>은 서울 도심 한복판을 시원하게 가로지르는 퀵서비스 요원의 액션 소동극이다. 기수(이민기)는 한때 학원가를 주름잡는 폭주족이었으나 이제는 BMW 오토바이를 타고 물건을 배달하러 다닌다. 그는 폭주족 시절 단짝이었던 현직 아이돌 가수 아로미(강예원)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달리다 정체 모를 인물의 협박을 받는다. 미지의 인물이 지시하는 대로 배달을 돕지 않으면, 아로미가 쓴 헬멧이 폭발한다. 조범구 감독은 폭발로 아수라장이 된 서울의 모습과 그곳을 질주하는 오토바이를 떠올리며 <폴리스 스토리>처럼 아슬아슬한 쾌감을 드러내고 싶다는 연출 의도를 밝힌 바 있다. 강남 테헤란로나 명동 한복판, 올림픽대로 등 서울을 상징하는 장소에서 펼쳐질 추격전이 관전 포인트다.
[Coming soon] 한국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액션 장면은?<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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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에서 요즘 최고의 인기곡이라며 10cm의 <아메리카노>가 흘러나온다. 굳이 이들의 노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커피 한잔은 도시인들의 삶에 거의 필수적인 뭔가가 됐다. 언젠가부터 밥집보다 커피 전문점들이 더 많이 보일 정도니까. 하지만 새로운 커피 전문점이 생기는 속도와 비례해 불만도 그만큼 많아진다.
원두 한 봉지 가격은 얼마 하지도 않는다는데 굳이 별다방이나 콩다방에서 5천원을 주고 커피 한잔을 마시자면 5천원이 주는 사치스러움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가도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싶은 생각이 들어버리는 것이다. 편의점 아메리카노들은 그 인공적인 맛들에 고개를 돌리게 되고, 원두를 직접 볶자니 그건 너무 귀찮다.
비슷한 이유들로 캡슐커피머신의 구매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캡슐 하나에 600~800원가량만 들이면 크게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원래 먹고 싶었던 아메리카노의 맛을 (그것도 아주 편하게) 그대로 느낄 수 있으니까.
최근 네스프레소
[Gadget] 바쁜 아침 30초의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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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불었던 DSLR 열풍에 휩쓸려 고가의 DSLR을 샀던 이들 중 후회하고 있는 이들이 꽤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한명이다. 기왕 사는 거 좋다는 카메라 샀고, 렌즈도 여럿 구입했건만 실제로 사용하는 건 표준렌즈에 매뉴얼 버튼은 한번도 사용해보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라면 차라리 광각과 줌 기능이 좋은 하이엔드 카메라를 사는 게 훨씬 편하고 이익이다. 후지필름 HS20EXR은 DSLR이 불필요했던 이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이 제품은 1600만 화소에 24mm 광각부터 시작해 30배 줌인 720mm까지 폭넓은 촬영 영역을 자랑한다. 이중 손떨림 보정 기능으로 30배 망원 촬영 시에도 흔들림에 대한 걱정이 없는 점이나 DSLR 같아 보이는 외관, ISO 12800이라는 고감도 촬영도 장점.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들었던 건 풀HD 동영상 촬영과 360도 모션 파노라마 기능. 특히 모션 파노라마 기능은 파티처럼 사람 많은 곳에서 쓰기에 정말 즐거운 기능. 우리,
[Gadget] DSLR이 불필요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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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이 기폭제였다. 27살의 배우 이제훈은 자신에게 등 돌린 친구 때문에 상처입고 결국 죽음을 택하는 19살 ‘기태’로 자신을 알렸다. 이미 한참 전에 통과한 10대의 기억을 불러오는 과정. 교복 입은 이제훈은, 소년의 천진함에서부터 상처로 생긴 내면의 미세한 균열, 이후 서서히 파괴해가는 ‘기태’의 변화 모두를 발산했다. 한 지점에 머물지 않는 캐릭터 기태는 이제훈이라는 낯선 배우를 각인시킬 절묘한 기회였다. 조인성이 가질 법한 고운 남성성에서부터 엄태웅의 거친 순박함까지 남자배우로서 이제훈이 가진 마스크의 스펙트럼은 넓었다. 또래의 일상적인 면모에선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박해일의 연기를, 학교 짱으로 군림하는 기태의 모습은 투박하지만 계산되지 않는 류승범의 연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물론, 기존 충무로 배우들의 조각맞춤만으로 이제훈을 설명하는 건 무리다. 익숙한 연상을 뛰어넘어 그는 온전히 ‘이제훈만의 기태’로 수렴됐다. <파수꾼>은 1만8천명의 선택을
[이제훈] 틀에 갇히지 않은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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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번을 기념하는 <씨네21> 표지. 당장이라도 떠오르는 톱배우의 얼굴 대신, <씨네21>은 이제 막 이름을 알린 세명의 배우를 찾아냈다. <파수꾼>에서 소년의 천진함과 광기를 동시에 보여준 이제훈,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 고현정과 대적했던 어린 ‘덕만 공주’ 남지현, 그리고 <아저씨>로 스타덤에 오른 김새론이 그들이다. 물론 단순히 지금까지 그들이 보여준 성과만으로 그들을 평가하고 싶진 않았다. 이제훈은 올여름 개봉할 장훈 감독의 블록버스터 <고지전>의 촬영을 막 끝냈고, 남지현은 이정향 감독의 신작 <오늘>에서 송혜교와 호흡을 맞췄다. 마침 김새론은 <나는 아빠다> 개봉 이후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의 폭발적인 연기로 연일 화제에 오르고 있었다. 어느 하나 완성되지 않은 진행형의 배우, 쓰여진 작품 수보다 채워야 할 것들이 더 많은 배우가 그들이었다. 아직 어리지만,
[이제훈, 남지현, 김새론] 충무로 차세대 대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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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월5일과 20일, 대만에서 한편의 영화가 1, 2부로 나뉘어 개봉한다. 웨이더솅의 <시디그 베일>이 그것이다. 이 작품이 주목받는 이유는 좀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대만 영화산업의 명운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총제작비 6억위안(약 200억원)은 역대 대만영화 제작비 중 최고다. 이 작품의 흥행 결과에 따라 대만 영화산업이 부활할지, 계속 침체의 길을 걸을지 판가름날 것이라는 것이 대만 현지 분위기다.
<시디그 베일>은 웨이더솅의 드림 프로젝트다. 그리고 그의 이 드림 프로젝트는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웨이더솅은 에드워드 양의 조감독 출신이다. 1999년 <칠월천>으로 데뷔했으나 빛을 보지 못한 채 10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8년 <제7봉>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흥행수입이 무려 5억위안이었다. 이는 대만영화사를 통틀어 <타이타닉>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김지석의 시네마나우] 대만영화의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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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요한복음 18:33-38)
신약성서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빌라도가 예수와 대면하는 장면이리라. 심문의 마지막에 빌라도가 던진 질문은 사뭇 냉소적이다. “진리가 무엇이냐?” (Quid est veritas?) 예수는 이 물음에 답하지 않았지만, 어느 호사가가 철자의 순서를 바꾸는 파자(anagram)를 이용해 물음 속에서 답변을 끌어냈다. “앞에 서 있는 바로 그 사람이다.”(Est vir qui adest). 예수, 그 사람이 바로 진리다.
‘진리’에 대한 두 관념의 충돌
예수와 빌라도의 만남
[진중권의 아이콘] 개시(開示)로서의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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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지면을 빌려 현대영화의 스토리텔링에 닥친 의미심장한 변화에 대해 말해왔다. ‘21세기 영화의 한 경향’이라고까지 부를 수 있는 복합 내레이션의 부상은 주류 할리우드영화와 인디, 작가영화, 예술영화를 망라하는 동시대 영화미학의 국제적 트렌드로 여겨질 정도이다. 영화학자와 평론가, 시네필, 일반 관객에 이르기까지 영화보기 취향에 새로운 개량을 야기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복합 내러티브로부터 대안적 이야기의 가능성을 전망하는 이들이 많다. 나카시마 데쓰야의 <고백>은 이같은 이야기의 혁명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관철되고 있는가를 입증하는 하나의 사례로 보인다. 무신경한 10대 살인자들에게 딸을 잃은 여교사 유코(마쓰 다카코)의 상상을 초월하는 복수극이라는 표면의 서사를 넘어 <고백>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복잡다단한 네트워크로 얽혀 있는 현대적 관계의 양상을 복합적 서사의 구축으로 형상화하려는 내레이션 전략이다
[전영객잔] 넘침은 모자람만 못한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