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 <왠 유어 스트레인지>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도어즈>와 비교해서 뭐가 어떻게 다른가요.
A: 우선 올리버 스톤의 <도어즈>는 짐 모리슨에 대한 올리버 스톤 감독 개인의 해석에 충실한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사실보다는 감상과 해석에 초점을 맞추기도 했고, 결과적으로 신화화된 부분도 있습니다. 발 킬머의 연기는 그야말로 압권이었지만 아무래도 ‘해석’에 치중하다보니 여러 가지 사실이 왜곡되거나 축소되어 전달된 감도 있었죠. <도어즈>에 대해 도어스의 키보디스트이자 짐 모리슨의 ‘절친’이었던 레이 만자렉이 여러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도어스의 실화이자 ‘안티-올리버 스톤’의 영화가 될 것이다"라고 언급할 만큼 올리버 스톤의 <도어즈>가 불편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왠 유어 스트레인지>는 짐 모리슨의 죽음에서 시작되지만 도어스의 재결성 공연으로 끝납니다. 화면 위로 흐르는 조니 뎁의 내레이션과 여러 자료화면, 공연 실황,
[무비딕] 도어스와 짐 모리슨의 60년대
-
12월10일에서 11일로 넘어가는 새벽 홍대 근처의 한 공연장. 무대 위 ‘2008 What a Sweet Day’라는 알림판이 세워져 있다. 새벽 2시가 넘어 스윗 소로우(인호진, 성진환, 김영우, 송우진)의 공연 리허설이 진행됐다. 스윗 소로우 멤버들은 자신들의 달콤한 사랑 노래 <사랑해> 반주가 흘러나오자 본격적으로 분위기를 타기 시작했다. ‘너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한창 몰입해 노래를 부르는데 김영우가 “잠시만요. 헌일아 사랑 노래니까 조금만 밝게 가자”며 노래를 끊는다. 이어 성진환은 헌일에게 다가가 “너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왜 그래? 밝은 노래하는데 웃으면서 하자”고 말해 분위기를 싸하게 만든다. 스윗 소로우 공연의 기타 세션으로 참여한 밴드 메이트(임헌일, 정준일, 이현재)의 임헌일에게 선배들은 엄하게 굴었다. 그런데 이는 <플레이>의 마지막 촬영날, 잘 짜인 각본대로 굴러간 상황. 임헌일이 메이트를 결성하기 전 마지막으로 했던 세션이
[씨네스코프] 그렇게 밴드 메이트는 태어났다
-
*지브리 스튜디오의 2011년작은 <코쿠리코 언덕에서>
-여고생이 주인공인 청춘로맨스물이 될 예정.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 지브리여,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의 악몽을 잊은 건가요….
*마이클 무어, 성폭행 혐의로 수감된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의 보석금 2만달러 후원
-“50년 전에 존재했다면 베트남, 이라크 전쟁을 예방했을” 위키리스크의 유지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거라고. 역시 대인배 감독님.
*<트랜스포터> TV시리즈로 제작
-제작자는 뤽 베송, 총 12부작으로 만들 예정. 제작사 유로파코프는 <테이큰>도 드라마화가 유력하다고. 그나저나 드라마에서도 스타뎀이 주인공일까요?
[댓글뉴스] 지브리 스튜디오 신작 外
-
영화판에서 ‘블랙리스트’라는 단어를 듣는다면 ‘제작 가능성이 영영 차단된 저주받은 작품’을 상상할 법하다. 그러나 웹사이트 blcklst.com에서 발표한 ‘2010년의 블랙리스트’ 명단은 좀 다르다. 총 290명의 할리우드 영화사 간부들을 대상으로 “올 한해 읽은 시나리오 중 꽤 괜찮았던 명단 10위 안에 들어가”지만, 아직 제작 단계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관객이 접할 기회가 없었던 시나리오들을 모은 설문이다. 그러니까 ‘비운의’ 리스트라기보단 지금 시대 할리우드의 트렌드를 어렴풋하게나마 엿볼 수 있는 기회이자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 내에서 어떤 영화를 디벨롭하고 프로듀스하고 배급하는 사람들의 집단적인 취향을 볼 수 있는 스냅숏”(제작자 프랭클린 레오나드)이다.
가장 두드러진 경향은 역시 실화 혹은 실존인물에 대한 대중의 관음적 흥미다. 블랙리스트 1위를 차지한 작품도 <컬리지 리퍼블리컨>이다. ‘컬리지 리퍼블리컨(미국 공화당을 지지하는 대학생 모임)’ 의장
실화의 재구성 재미에 빠진 할리우드
-
-
정유미는 강한 ‘떨림’을 지닌 배우다. 연기하는 그녀는 조용히 신들린다. 떨림은 요동과 달라서, 멀리 있는 사람에게 보이지 않아도 옆 사람한테는 전이된다. 그녀의 강직한 감정과 집중력은, 본인의 연기로 직접 드러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은연중에 상대 배우를 자극하고 움직여 스르륵 장면을 끌어간다. 게다가 정유미의 연기는 감정에 악센트와 악상기호를 넣어 유려하게 표현하는 유형이 아니라, 담백한 직선으로 속엣것을 표출해버리고 거기 형상을 부여하는 뒷일은 동료배우와 연출자에게 맡기는 쪽에 가깝다. 이는 스스로를 돋보이게 하는 데에는 확실히 불리한 특징이지만, 동시에 정유미와 짝이 된 많은 남자배우들이 이완된 상태로 본인의 최상급 연기를 보여주는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돌아보면 2010년 정유미는 작품 안에서 줄곧 연애 중이었다. 타이틀 롤을 맡은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와 TV단막극 <위대한 계춘빈>, 박중훈과 커플을 이룬 <내 깡패 같은 애인>, 윤
[정유미] 우먼 인 러브
-
유해진을 보면 늘 기운생동하는 배우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가 나온 대다수의 영화에서, <트럭>이나 <죽이고 싶은>과 같은 주연작을 빼면, 그는 주연을 받쳐주는 조연을 맡고 있는데, 상대 배우의 기운을 훔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기운을 내뿜는 균형의 추를 절묘하게 맞춘다. 상대에게 눌리지 않지만 과하게 내지르지 않는 기운으로 그는 캐릭터에 입체적인 생동감을 불어넣는다는 느낌을 준다. 개인적으로 그를 기억하게 한 첫 번째 영화 <공공의 적>에서 그가 맡은 칼잡이 양아치 캐릭터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시체안치실에서 죽은 사람의 몸을 앞에 놓고 일장연설하며 시범을 보이는 장면, 게다가 슥 장난으로 강철중의 배에 칼을 대는 시늉으로 강철중의 혼을 빼놓는 모습은 우리가 전형으로 가두는 악인의 모습에서 빠져나오는 인간의 입체적 면모를 절묘하게 보여주었다.
테크니컬한 배우의 연기는 잠깐 신선할지 몰라도 좀 질리게 마련이다. 유해진은 테크닉이 있다는 느낌을 주는
[유해진] 그의 몸이 말하는 게임의 규칙
-
원빈의 외모는 첫 출시부터 독보적이었다. 90년대 후반에도 ‘조각미남’은 많았지만, 이토록 여리고 섬세한 ‘피겨’는 처음이었다. 기존의 남성 외모에 대한 미적 감수성을 흔들어놓는, 정말 세련되고 ‘얄상한’ 신상이었다. 이후 ‘꽃미남’들이 늘어났지만, 디자인만 따왔을 뿐 원빈처럼 내면이 느껴지는 눈빛을 구비하진 못했다. 그리움과 애정결핍이 그대로 묻어나는 꽃사슴 같은 그 눈빛 말이다. 기이할 정도로 개인성을 뿜어내는 그의 외모는 때로 배경과 유리되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얼마면 돼?” 하고 치켜뜨는 반항기 어린 모습은 극과 별개의 ‘짤방’인 양 관객의 뇌리에 남았다. 그것은 어쩌면 미모의 배우가 겪어야 할 필연적 한계일 것이다. 원빈 역시 이를 알았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우리형>의 둘째아들이 우직한 형들에 맞서 인정투쟁을 벌이는 동안, 원빈은 배우로서의 한계에 맞서 자의식과 사투를 벌였다. 두편의 영화에서 원빈은 ‘어른 되기’의 도약을 시도하였으나, 여전
[원빈] 아름다움 그 이상의
-
어쭈구리. 지인이 읽어보라고 보낸 시나리오의 남자주인공 이름이 ‘송새벽’이다. 호젓이 자세를 가다듬고 프로를 본뜬 객관성으로 시나리오를 읽은 소감을 답신한다. ‘… 아, 그리고 굳이 덧붙이자면 주인공 캐릭터에 송새벽씨가 잘 붙는 것 같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그는 어느 때고 그가 아니던가. 어디서고 너무 많이 본 사나이가 아니던가. 하관을 묶어놓은 듯 제 안으로만 투덜투덜 쌓는 말투며, 이건 뭐 카메라를 잡아먹어도 아쉬울 판에 맞고 자란 아이처럼 바닥으로 툭툭 떨어지는 시선은 어떻고. 4D 세상에 2D인 그의 얼굴은 옆에 앉은 지하철 양복쟁이와 뭐가 다른가. 양복쟁이는 침 흘리며 쓰러진 우리에게 드넓은 어깨라도 빌려주지, 중력조차 버거운 듯 흘러내린 그의 뒤태는 배우의 아우라는 고사하고 남정네로서도 호기가 없다, 호기가. 그런데도 왜 이 난리인가? 뭐, 그래도 끈기는 있어 잔기술을 익혀서 여자에게 공을 쏟는 듯하더니(<시라노; 연애조작단>) 보다 못해 만나주니
[송새벽]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루저
-
타고난 인상이 선하다. 아니 뭔가 억울하다. 벌써 11편의 영화를 찍었지만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을 통해 올해 처음으로 여우주연상 수상을 경험한 서영희는 작품마다 적지 않은 존재감을 차지한 것에 비해 그 역할의 폭이 좁았다. 그녀에게 허락된 역할은 단 두 가지. 피해자가 되어 죽거나 과장되게 웃기거나. “이제껏 다른 사람들은 한 계단 한 계단 쉽게 올라가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이렇게 한 계단이 높고 험난할까 생각했었다”는 그녀의 푸념 섞인 수상소감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녀는 분위기를 지배한 적은 있을지언정 한번도 직접 이야기를 이끌어가보진 못했다. 그런 그녀가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을 통해 드디어 의미있는 한 계단을 내디뎠다. 스스로 밝히듯 높고 험난한 한 계단이었던 만큼 단순히 계단 한칸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도약에 가깝다.
그녀는 언제나 죽는 쪽이었다. 비극의 끝에서 생을 마감하는 피해자. <추격자>의 흥행으로 이러한 이미지는 대중성마저
[서영희] 그 불균질함의 매혹이여!
-
흥행성적으로 보면, 2010년 한국영화계는 남자배우들이 압도했다. <전우치>와 <의형제>와 <아저씨>가 대표 격이다. 좀더 붙인다면 <이끼>와 <포화속으로>가 있겠다. 특히 강동원, 원빈이라는 당대의 꽃미남 배우들이 ‘누구의 동생, 교복 입은 청춘, 아들’의 옷을 벗고 ‘남파공작원, 전직 특수요원’ 등 남자 어른의 모습으로 무장하고 한국 상업영화의 기세를 이어갔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외모로 현실(인 듯)의 이야기를 실어나르는 그 위용이 실로 대단했다. 반면, ‘주류 흥행영화’ 목록에서 주인공으로서의 여배우들을 찾아내는 일은 이제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시>의 윤정희와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의 서영희와 <옥희의 영화>의 정유미 등은 2010년에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연기자들이지만 그들의 영화는 상업적 성공과 거리가 있었다. 이제 점차 온전히 여자주인공이 중심인 영화는 상업영화로서는 변방
[문소리] 현실의 ‘그녀’가 여기 있네
-
<첩첩산중>의 문성근을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질투는 나의 힘>의 문성근이 떠오른다. <옥희의 영화>의 문성근을 보다보면, 어느 순간 <오! 수정>의 문성근이 겹친다. 물론 이 기시감은 그 네편의 영화의 구조 속에서 그가 놓인 위치(한 여자를 두고 젊은 남자와 경쟁관계에 놓인 나이 많은 남자)가 거의 동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 강렬한 기시감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네편의 영화에서 나타나는 그의 연기 톤은, 정말이지 아무 변화가 없다. 또는, 각각의 영화에서 그가 동일한 연기 톤을 보여주는 어떤 순간은, 아주 강렬한 흔적을, 아주 길게 남긴다. 다시 한번 돌이켜보면, 그는 아주 동일한 톤을 반복하면서 영화마다 서로 다른 미세한 뉘앙스의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다. 물론 그 미세한 차이는 네편의 영화가 매우 유사해 보이는 만큼이나 완전히 다른 영화라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
[문성근] 오싹해, 연기인지 진짜인지 모르겠어
-
배우 류승범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언제나 에너지, 본능, 들끓는 무의식의 어떤 것. 이런 동네의 단어들을 사용해왔다. 누구도 이견은 없었고, 그 밖에 다른 식으로 그를 표현할 길은 없다고 단언들을 했다. 나 역시 그랬다. 그는, 몇편 되지는 않지만, 내가 시나리오작가로서 참여했던 작품 중, 활자로 표현된 모든 것- 행간의 뉘앙스부터 마침표, 쉼표, 한톨까지 깡그리 펄펄 끓게 만든 독보적인 배우였다. ‘집어삼켜-소화하고-폭발한다.’ 연기의 이상적 삼 단계를 그냥 한 호흡으로 씹어 뱉는, 분출의 전율과 쾌감. 작가에게까지 그걸 전이시켰던 배우는, 그가 유일했다.
2008년, 감독 대 배우로서 그를 다시 만났다. 당시 배우 류승범은, 아니 이십대 청년 류승범은, 서른을 막 앞두고 있을 때였다. 대략 묘사하자면 그는 좀더 깊었고, 좀더 넓었고, 좀더 기분 좋게 풀어져 있었다. 본능과 직관으로 움직이는 배우라고 여겼으나 정작 그는 이성과 감성 양쪽으로 깊게 사고하는 배우였다. 더불어,
[류승범] 뿜는 배우에서, 품는 배우로
-
한동안 이 배우는 멈춰진 ‘모래시계’였다. 정지된 시간 속에서, 유예된 삶 속에서 10년이 흘렀다. 그러나 다시 뒤집혀 운동을 시작한 아름다운 시계는 그로부터 5년 뒤, 세상의 시간마저 바꾸어놓았다. 드라마 <봄날>처럼 아련하게 귀환한 고현정은 <히트> <선덕여왕>으로 이어지는 박력있는 활약상을 통해 여배우들의 영토, 그 외연과 내연을 조금씩 확장해나갔다. 결국 ‘줌마델라’의 백일몽에 빠졌던 브라운관은 “아사리판”의 현실정치를 향해 직격탄을 날리는 거대한 여성 캐릭터를 잉태하기에 이르렀고, 수컷들의 대결로 피비린내 진동하던 스크린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던 <여배우들>의 육성을 날것으로 전할 용기를 얻었다.
지금 고현정은 ‘대물’(大物)이다. “49%의 악의 꽃 속에 피어나는 51%의 선의 꽃”, 피도 눈물도 없는 정치판에 혈혈단신 뛰어들어 결국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된 여자의 믿지 못할 이야기를 소화불량 없이 씹어 삼킬 수
[고현정] 우리 시대의 여제
-
지난해 말 <전우치>를 시작으로 2월의 <의형제>와 11월의 <초능력자>까지, 올 한해 강동원은 잇따라 세편의 작품을 관객 앞에 내밀었다. 스코어 역시 기대만큼 좋다. 하지만 이 영예가 그의 파트너에게까지 이어지진 못한 듯하다. 유일한 여성 상대역 임수정이 그랬듯, 버디무비에서도 그는 혼자 살아남는다. 신 수에서 우세한 고수는 강동원에 가려졌고, 예상치 못했지만 ‘송강호의 <의형제>’란 단어 조합도 익숙지 않다. 강동원의 위상이 어느덧 우리가 기대한 좌표를 넘어선 게 아닌가 생각게 되는 대목이다.
‘문체를 갖지 않는 작가’가 졸렬하다고 평가받는 것에 대비되어, 배우들은 스스로 자신이 만든 문체에 얽매이게 될까봐 조마해한다. 그러니 강동원의 필모그래피가 양식(style)에 대한 자기부정을 내비치는 것을 지켜보는 건 흥미롭다. 이 과정에서 그는 <늑대의 유혹>을 통해 형성된 청춘스타의 이미지가 소진되기 전에, 적용 가능한 ‘배우’
[강동원] 청춘의 신비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