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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과 출력, 잘 마치셨나요? 그럼 이제 영화 제작의 가장 마지막 순서가 남아 있습니다. 편집 다 했는데 뭐가 또 남았냐고요? 바로 관객과 함께하는 ‘상영’입니다. 내가 아는 사람이 됐든 불특정한 사람들이 됐든 우리가 ‘영화’라는 틀을 빌려 한 이야기는 결국 누군가와 나누어야만 완성됩니다. ‘우리 가족 영화 만들기’의 회차마다 강조했던 것처럼 상영회 역시 전혀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최대한 좋은 화질로 출력을 하고, 극장을 대관하고, 홍보 전단을 만들고 사람들을 초대하면 됩니다!(말만 들으면 엄청 대단한 일 같죠?)
그냥 우리끼리 보려고 만든 건데 굳이 상영관을 대관해서까지 상영회를 할 필요가 있나 반문하실 수도 있을 거예요. 물론 집에서 텔레비전나 컴퓨터를 통해 보면서 상영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어떤 매체를 통해 작품을 상영하느냐에 따라 그 작품은 전혀 다른 느낌을 줄 수도 있습니다. 빛이 차단되고 다른 소음이 없는 극장은 ‘어쩔 수 없이’ 집중해야만 하는 곳
[영상공작소] 개봉영화만 극장 상영? 나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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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장도를 가지고 다니세요
고현정_사즉생인가…. 선생님은 어떤 나무 좋아하세요?
조용헌_소나무, 느티나무, 대나무. 그 중에서도 대나무의 솨솨하는 댓잎소리는 약간 음산할 수도 있지만 그를 빗소리 대신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죠. 사시사철 잎이 지지 않으니 저녁이면 새들이 깃들어 잠을 잡니다. 게다가 옛날에는 대나무가 빽빽이 우거져 있으면 호랑이가 뚫고 들어오지 못했어요. 허리를 S자로 꺾지 못하니까. (웃음) 집을 가리고 싶을 경우에도 대나무를 심으면 빨리 자라 2, 3년 만에 가려줄 수 있어요.
고현정_그럼 우리나라 산 중에는 어떤 산을 좋아하고 즐겨 찾으세요?
조용헌_나를 품어주고 달래주는 지리산이 좋습니다.
고현정_지리산도 힘들겠다. 품어줄 사람이 많아서. (좌중 웃음)
조용헌_요즘은 한 5천명 될 겁니다. 둘레가 500리니까 10만명 들어가도 괜찮아요. 지리산에 가면 자살하는 이 없고 굶어죽는 사람 없다고 하죠. 몸이 처질 때는 바위산인 설악산, 북한산이 좋고 허탈
배우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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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직 그대만'은 전직 복서 철민(소지섭)과 사고로 시력을 잃어가는 정화(한효주)가 만나 운명을 건 사랑을 시작하는 이야기로 오는 10월 개봉 예정이다.
[오직 그대만] 한효주, ‘앞으로 멜로영화만 찍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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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_나는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고리타분한 사람인지라 보자고 하는 분들이 주로 중년 남자들인데 이거 참 전혀 안 어울리는 조합이 아닌가 싶습니다. (웃음)
고현정_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선생님을 뵙자고 청한 과정이 자연스러웠어요. 올여름 비 피해로 집들이 무너지는 광경을 TV에서 계속 봤는데 며칠 흐른 뒤 선생님이 집의 의미에 관해 쓰신 책 <백가기행>을 제가 읽고 있더라고요. 물론 그전에도 신문 연재 칼럼과 저서의 독자였고요. 명사들을 동물에 빗댄 글도 재밌게 읽었어요. 최근에는 안철수씨를 곰에 빗댄 글이 기억나요.
조용헌_코알라가 곰 됐다고 썼죠. (웃음) 내가 지금까지 만나고 인터뷰한 사람들은 고승이나 샤먼 같은 ‘마법사’들, 아니면 정치인이나 CEO이었는데 여배우는 처음입니다.
고현정_마법사들을 만나면 주로 어떤 질문을 던지세요?
조용헌_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사후 세계는 무엇인가를 묻죠. 영혼이 육신이라는 번데기를 벗어날 때는 한 30분만 괴롭고 그러고
배우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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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학자인 조용헌 칼럼니스트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뜻을 고현정이 전해왔을 때 펄쩍 뛰어오르며 놀라지는 않았다. 몇 차례 대화를 통해 그녀가 속담과 고사성어의 맛을 즐기고 옛사람들의 문장을 애호하며 세상 저변에 복류하는 보이지 않는 기운을 긍정한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당한 장서가인 고현정은 애독서를 묻는 질문에 중문학자 이병한 교수가 엮은 한시집 <치자꽃 향기 코끝을 스치더니>를 망설임없이 꼽은 적도 있다. 집을 위로와 휴식의 그릇으로 조명한 칼럼니스트의 근작 <조용헌의 백가기행(百家紀行)>은, 최근 혼자 집 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져 전에 없이 집에 관해 찬찬히 생각할 기회를 얻은 고현정을 끌어당긴 또 다른 계기였다.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쪽 사정이고, 고택과 사찰을 답사하고 기인, 달사들과 만나 글로 정리하기를 업으로 삼아온 인터뷰이로서는 배우의 프러포즈가 난데없는 제안일 수밖에 없었다. 계룡산에서 첫 섭외 전화를 받은 조용헌은 “영화는
배우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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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가 아니었다면, <도가니>는 극단적인 상상력이 만들어낸 ‘너무 나간’ 이야기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건 실화이고, 그래서 영화와 실제 사건이 어느 정도 맞닿아 있는지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사건의 실체와 관련된 질문을 감당해줄 사람은 원작자인 공지영 작가뿐이었다.
-영화를 보고서 감독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을 것 같다.
=그런 거 없다. (웃음) 다만 정말 수고가 많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내 작품이 스토리가 강해서 영화로 만들기 쉬울 것 같다고 그러는데, 의외로 그렇지 않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때도 송해성 감독이 얼마나 화를 냈는지. (웃음) 영화를 보기 전에 걱정했던 건 인호 역을 맡은 공유였다. 너무 잘생기기만 한 것 같아서 이런 이야기와 어떻게 맞을까 했는데, 다행히 내가 쓴 것보다 더 멋있는 강인호를 만들어주었다.
-원작자로서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다면.
=폭행이 일어나는 장면은 내가 쓸 때도 힘들었지만, 눈으로
우리가 사는 여기가 몰상식과 야만의 도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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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감없이 묘사된 끔찍한 사건의 현장
원작의 중심인물을 축소시키는 한편, 여러 주변 인물들을 지운 영화는 그날의 기억까지 한달음에 달려간다. 이미 원작을 읽은 독자라면 책장을 넘기기가 두려웠던 그날의 사건을 영화가 어떻게 묘사할지 근심스러웠을 것이다. 영화는 이 장면이 이야기의 의무인 듯 마주한다. 활자를 통해 상상하는 소설에 비할 수는 없지만 실제적인 이미지로 재현된 사건의 현장을 목도하는 것 역시 숨이 막히는 일이다. 아이들의 울부짖는 표정과 그들을 바라보는 가해자의 표정은 공포가 아닌 실제적인 분노를 전한다. 와이셔츠만 입은 채 아랫도리를 드러내고 있는 중년 남성의 모습, 그가 완력으로 아이들을 제압하고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끔찍함은 배가된다. 어쩌면 수화의 움직임과 사운드를 활용한 은유적인 연출, 혹은 정적인 카메라로 관객의 인내심을 폭발시키는 방식도 시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황동혁 감독은 “있는 그대로 보는 느낌이어야만 이 끔찍한 사건을 제대로 알릴 수 있을 것”이라
기억하고 보라! 외면해선 안될 아픈 진실을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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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작가의 소설 <도가니>가 영화화됐다. 활자로도 감당하기 힘든 이야기를 이제 영상으로 바라보게 된 거다. <마이파더>의 황동혁 감독이 연출한 <도가니>는 영화적인 트릭을 최대한 배제한 채 원작이 전한 당시의 기억을 재현하고 있다. 감독에게 소설이 영화로 옮겨온 과정과 연출 태도에 대해 물었고, 공지영 작가를 통해 실제 사건의 속내를 들여다보았다. 애써 외면하고픈 이야기지만 성폭행이라는 사건의 성격뿐만 아니라 이야기가 담고 있는 한국의 현실이 2011년 현재와도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도가니>는 짚고 넘어가야만 하는 작품일 것이다.
왼손 새끼손가락을 편다.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갖다댄다. 남자가 여자를 강제로 폭행하고 있다는 뜻의 수화다. 영화 <도가니>는 이 간단한 수화에 담긴 끔찍한 실화에 관한 이야기다. 청각장애자들에게 가해진 성폭행 사건의 전모와 진실을 은폐하려는 움직임을 묘사한 영화는 그들의 아픔과 이를 위로하지 않
기억하고 보라! 외면해선 안 될 아픈 진실을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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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10주기를 맞은 지난 일요일, 토론토영화제에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첫 3D영화 <트윅스트>가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되었다(코폴라 신작 상영에 앞서, 10년 전 그날 영화제 기간 중 토론토에서 테러 소식을 접했던 몇몇 영화인들의 회고를 담은 짧은 영상물이 상영되었다). 코폴라가 <영원한 젊음>(2007)과 <테트로>(2009) 같은 최근작을 통해 좀더 개인적인 주제에 관심을 집중하는 한편 그의 영화적 뿌리라 할 소규모 인디펜던트영화로의 회귀를 시도해왔음을 상기할 때, <트윅스트> 역시 그러한 최근의 행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영화가 아닐 것이라는 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한편으론 그가 3D 테크놀로지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코폴라의 신작은 프로듀서 로저 코먼 밑에서 연출한 초기작 <디멘시아 13>(1963)과 같은 피를 공유하는 저예산 고딕호러이자 에드거 앨런 포에 대한
[유운성의 시네마나우] 거장과 테크놀로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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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과 풍경의 상보성 안에서 하나를 다른 것으로 구성하라. 그것들을 채색하라. 그것들을 완성하라. 얼굴과 풍경의 교본들은 예술에 영감을 준다. (…) 건물, 마을이나 도시, 기념물이나 공장 (…) 이것들은 건축이 변형시키는 풍경 안에서 얼굴로서 기능한다. 회화는 얼굴에 따라 풍경을 위치시키고, 하나를 다른 하나처럼 취급함으로써 그 운동을 역전시키기도 한다. 영화의 클로즈업은 얼굴을 하나의 풍경으로 취급한다.”
풍경-얼굴
들뢰즈-가타리의 <천개의 고원>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 이렇게 풍경과 얼굴을 등치시키는 발상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당장 후보로 떠오르는 것은 16∼17세기에 유행했던 이른바 ‘인형풍경’(anthropomorphic landscape)이다. 이는 풍경 속에 거대한 사람의 얼굴을 감추어놓은 그림으로, 마니에리스모라는 시대에 화가들이 처한 독특한 상황의 산물이다. 르네상스를 통해 주요한 기법이 모두 발명되었기에, 이 시기에 화가의 기예는 진지한 창안에
[진중권의 아이콘] 고흐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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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츠 퍼니 스토리> It's Kind of a Funny Story(2010)
감독 라이언 플렉·안나 보덴
상영시간 101분
화면포맷 1.85:1 아나모픽 / 음성포맷 DD 5.1 영어
자막 한글 / 출시사 유이케이
화질 ★★★★ / 음질 ★★★☆ / 부록 ★★☆
<행오버2>는 못난 남자들의 이야기다. 어른으로 행세하지만 기실 그들은 어른이 되지 못한 남자들이다. 그래서 여전히 놀이에 열중한다. <행오버2>는 따로 노는 그들의 몸과 마음을 노래로 표현했다. 시간이 남아돌아 어쩔 줄 모르는 그들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타임 인 어 보틀>을 부르는 장면을 보라. 그러나 영화에서 ‘짐 크로스’보다 더 유용하게 쓰이는 건 ‘빌리 조엘’이다. 말썽꾸러기 앨런의 방에는 조엘의 1980년 앨범 ≪유리집≫의 거대한 커버가 걸려 있다. 커버에서 조엘은 유리집을 향해 돌을 던지는 포즈를 취한다(당시 한국에선 커버가 교체당했다). 그러니까 앨런은
[DVD] 우리는 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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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다의성과 불확정성을 즐기는 홍상수 영화의 특징을 계승한다는 중평을 받는 <북촌 방향>(<북촌방향>이 아니라 <북촌 방향>으로 쓰는 이유에 대해서는 글의 결론 부분에서 상술하겠다)은 패턴에 대한 강박과 패턴화로부터 탈주하려는 해체의 에네르기가 한몸을 이룬 기묘한 텍스트이다. 나는 홍상수가 디자인한 플롯이 전통적 서사화법의 작동원리에 대한 대안적 체계를 창조해왔음을 줄곧 주장(<씨네21> 755호 전영객잔 ‘홍상수의 이야기 교육’ 참조)해왔다. 단일한 체계로의 수렴을 끝내 거절하는 홍상수의 내레이션 방식은 세밀하게 디자인된 플롯과 그 속에서 노니는 인물들에 대한 하나의 생각과 그에 대한 재고(再考)를 추인하는 혁신적인 구동원리를 창안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북촌 방향>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했으므로 나는 교묘하게 설계된 영화의 구조를 가능한 한 정확하게 들여다보고 싶다. 북촌 인근을 지시하는 이정표에 그려진 화살표만큼이나 다
[전영객잔] 북촌이라는 중간계 탐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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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자고 한 얘기치고는 뼈가 있었다. “신분 상승을 하고 싶었다.” <의뢰인> 제작보고회 때 출연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박희순은 그렇게 대답했다. 누구는 인생의 밑바닥을 보여주고 싶어 기를 쓰는데 신분 상승이라니. 하긴 그의 전작을 떠올려보면 아주 이해가 안되는 말도 아니다. 난데없이 집에 침입한 ‘미친년’(강혜정) 때문에 몇번이나 자살 시도에 실패하는 남자(<우리집에 왜왔니>(2008))며, 상금 10억원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쇼 참가자 8명의 생사를 쥐락펴락한 장 PD(<10억>(2009))이며, 머리가 노랗게 탈색될 정도로 동티모르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쳤던 전직 축구선수(<맨발의 꿈>(2010))는 확실히 슈트 차림과 거리가 먼 인물들이었다. “비슷한 처지의 인물을 연기하다 보니 내심 이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우연찮게 들어온 작품들이 신분이 높은 인물이었다. (웃음)” 그게 <혈투>(2010)의 무관 헌명
[박희순] 연극하던 시절로 되돌아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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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을 그 캐릭터로 살았으면 빠져나오는 데도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선배 배우 최주봉의 말이 한치 틀리지 않았다. 아내를 찾으러 온 조선족 ‘구남’의 처절한 사투. 1년여를 옌볜과 부산을 오가며 매진한 <황해>는 하정우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영화 끝나고 ‘<황해> 후유증’이 생겼다. 다른 작품 때와 달리 이번엔 좀 심했다. 말 한마디 뱉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굳이 그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당시 만난 하정우는 할 말을 찾지 못해 힘든 기색이 역력했었다. 인터뷰가 불충분하다면 이후에 메일로 보충하고 싶다는 말로 그는 인터뷰를 끝냈다. 지치고 암울한 구남의 영혼이 준 상처는 컸다. 이러다 영영 사회성을 잃어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불안한 나날이 지속됐다. 하정우를 구한 건 <의뢰인>이었다. “<황해>를 하면서 영화적 깊이와 진지함에 골몰했었다. 빠져나올 구실이 필요했다. <의뢰인>은 장르적 쾌감을 주는 영화더라
[하정우] 깊은 밤을 날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