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티스트>의 정서는 순정과 신파다. 뭐 삐뚤어진 내겐 ‘시대에 도태된 주제에 기만 센 남자(예술가)를 위한 낭만적 판타지’로 보였지만. 물론 영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가부장적 내러티브(식민지 조선엔 이상과 금홍이가 있었다)에도 ‘21세기 무성영화’라는 형식으로 화제가 되었다. 물론 이것도 ‘21세기 예술=삽질의 승화’로 보인다만(아아, 어째서 이렇게 삐뚤어졌을까). 아무튼 흥미로웠고 재미도 있었고 특히 음악이 인상적인 영화였다. 정말이다.
감정과 대사, 상황과 분위기를 대체한다는 점에서 무성영화의 음악은 단지 배경음악 이상이다. <아티스트>에 줄곧 흐르는 찰리 채플린이나 조지 거슈윈 스타일의 ‘심포닉 재즈’(관현악단의 재즈)나 관습적 화성의 오케스트레이션 혹은 빅밴드 재즈는 작곡가 뤼도빅 브뤼스의 고뇌를 반영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정말 흥미로운 건 침묵이다. 조지의 꿈도 그렇고, 그와 페피의 클라이맥스에서 힘껏 밀어붙이던 음악이 갑자기 침묵으로 대체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침묵의 마법
-
취향은 나의 의지나 의도와 상관없이 다른 이의 영향을 받아 생겨나기도 하는데 나의 경우가 그러하다. 나의 취향은 순전히 ‘퍼펙트 샤인’(perfect shine)한 그의 취향에 맞춰졌다. 그에게 당신의 취향에 대해 조금 설명해달라 했더니 너무 긴 글이 왔다.
먼저 DP 익스트림 폼으로 거품을 만들어 먼지나 때를 불려 부드러운 양모 미트를 이용하여 전체를 닦아낸다. 이때 최대한 깨끗이 닦아야지 잔여물이 남게 되면 나중에 트러블을 일으킬 수 있다. 물로 깨끗이 거품을 씻어내고 Ps21 클렌저로 유분도 제거한다. 톤이 어둡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푸어보이즈 블랙홀을, 밝은 톤이다 싶으면 화이트다이아몬드를 추천한다. 바를 때는 퍼프에 물을 살짝 적시고 손톱만큼 덜어내 펴 발라준 뒤 가볍게 극세사 타월로 닦아낸다. 이제 기본적인 것은 마쳤다. 꼼꼼한 마무리를 위한 다음 단계는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카우나바 성분의 도도쥬스 슈퍼내추럴을 바르는 것인데….
무슨 얘기인지 아시겠는가? 그는
[타인의 취향] ‘퍼펙트 샤인’한 그의 취향
-
“당장 내 집에서 나가라니까!” “한번만 용서해주세요. 다시는 말대꾸하지 않을게요.” 며느리 얼굴에 물을 끼얹은 시어머니가 곧이어 아들까지 낚아챈다. “아들아, 넌 여기 있어야지. 넌 이 집의 장남이잖아.” 며느리의 황당한 표정 위로 스탭 스크롤이 올라간다. ‘제작PD 차윤희.’ 뽕끼 충만한 주제곡까지 그럴싸하게 재연한 저 막장드라마의 정체는 KBS 새 주말극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극중극이다. 외주사의 드라마 제작PD로 일하는 차윤희(김남주)는 ‘결혼을 안 하면 안 했지 내 인생에 시집살이란 없다’를 모토로 맞선을 거듭한 끝에 미국으로 입양되어 잘 자란 ‘능력있는 고아’ 테리 강(유준상)을 만났다. 남들이 시집살이 푸념을 늘어놓는 명절에 부부동반 해외여행을 다니는 흡족한 허니문. 한국 가족을 찾는 데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테리가 고맙고 또 안쓰럽지만 윤희는 긴 말을 보태지 않는다.
한편 윤희 부부가 이사하게 된 효자동 상가 건물의 2층 전셋집은 1층에서 오래된 단
[TVIEW] 가짜 온기는 이 집에 없다네
-
<사우스랜드>는 <NYPD 블루>를 쓴 앤 비더먼과 <ER>의 제작자인 존 웰스가 함께 만든 경찰수사물이다. <CSI: 과학수사대> <로 앤 오더> 등의 성공한 레퍼토리 수사물들이 매회 새로운 사건을 통해 이야기를 이끄는 것과 달리 <사우스랜드>는 ‘LAPD의 하루’라는 부제가 어울릴 법한 일상적인 경찰 업무를, 다큐멘터리라고 착각할 정도로 거리를 두고 스케치한다. 과거의 사건이 덜미를 잡거나, 인생 최대의 적수가 불시에 찾아와 심각해지는 일도 없다. 매일 어떤 위험에 부닥칠지 모르는 그들이 무사히 하루를 살아내면 다음날도 어김없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사우스랜드>는 영문 타이틀 <SouthLAnd>가 암시하듯, LA(로스앤젤레스)가 이야기의 공간이다. 하지만 흔히 떠올릴 법한 환한 서쪽의 도시가 아니라, 무심한 일광과 그 볕에 빛이 바랜 도시가 <사우스랜드>의 LA다. 스크린 타
[안현진의 미드 앤 더 피플] 그녀, 보통 사람
-
-
3·11 대지진 이후 1년이 지났다. 지난 1년간 일본은 ‘자숙’의 분위기 속에 재건에 모든 역량을 투입하였다. 하지만 3·11 대지진이 남긴 후유증과 트라우마는 아직도 사회 전반에 깊게 드리워져 있으며, 영화계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 영화계는 지난 1년간 영화산업의 위축을 겪었고, 3·11 대지진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지난해 3·11 대지진 직후 일본 영화계는 쓰나미와 지진과 관련된 영화의 개봉을 연기했고(펑샤오강의 <대지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히어애프터> 등), 많은 프로젝트의 제작이 연기되었다(야마다 요지의 <도쿄가족>, 이누도 잇신과 히구치 신지의 <노보의 성> 등). 일본영화는 지난 수년간 활황세가 지속됐었다. 2005년부터 자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급격하게 높아지기 시작했고, 개봉편수도 외화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3·11 대지진 이후 상황은 갑자기 달라졌다. 일본영화제작자연맹이 1월26일 발표한
[김지석의 시네마나우] 일본은 없다
-
러시아의 역사에 관한 책을 읽다가 다시 ‘라스푸틴’과 마주쳤다. 이 인물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러시아 혁명사를 읽을 때였다. 거의 30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이 비범한 인격이 주는 스산한 느낌을 잊을 수 없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이 괴승은 기도로 혈우병에 걸린 황태자의 피를 멈추게 하는 영험함으로 알렉산드라 황후의 총애를 받았다. 황후를 통해 무능한 황제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그는 사실상 섭정을 통해 제정 러시아의 몰락을 재촉했다.
인격의 언캐니
‘위키피디아’에 들어가니, 몇장의 사진이 올라와 있다. 사진 속의 그는 누가 봐도 예사롭지 않다. 클로즈업한 얼굴에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묘한 인격의 아우라가 깃들어 있다. 깊은 늪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한 눈동자. 거기서 그의 비범한 능력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리게 된다. 즉 일거에 사람들의 의지를 무력화시켜 제 숭배자로 만들어버리는 영적인 능력. 사진 속의 그가 주는 느낌은 ‘언캐니’에 가깝다. 과연 저자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일까
[진중권의 아이콘] 라스푸틴의 예언
-
<말하는 건축가>의 초반부에서 건축가 정기용은 부산 공무원들을 상대로 강연을 한다. 그는 안성 면사무소를 지을 때 주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뭐나고 물어봤는데 나이 든 주민들이 목욕탕이라고 답하는 걸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의 목소리는 성대결절로 많이 상해 있고 보조 마이크를 써야만 청중이 간신히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 이 장면은 <말하는 건축가>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요약한다. 정기용이라는 건축가는 모양을 뽑아내는 건축가가 아니라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건축가이며 불운하게도 그 자신의 육체는 남들만큼 버텨주지 못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자신이 지은 무주 건물들을 답사하던 그는 설계자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주군청에서 태양열 집적판을 설치한 것을 보고 화를 낸다. “이런 게 녹색성장이라고?” 그는 욕지거리를 거침없이 쏟아낸다. 그가 공들여 만든 운동장 벤치에 그늘을 드리워주는 등나무 덩굴은 태양열 집적판 때문에 햇빛을 받지 못하는
[김영진의 인디라마] 과시 없이, 표나지 않게 존재했던 건축가의 초상
-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소재로 고달픈 20대들의 꿈과 사랑을 유쾌하고 리드미컬하게 담아낸 영화 '청춘그루브'는 오는 3월 15일 개봉한다.
[봉태규] "타블로에게 조언 구했다"
-
마틴 스코시즈의 <휴고>, 그의 필모그래피만 놓고 본다면 너무나 이질적인 영화다. 하지만 그의 바이오그래피를 조금만 아는 이들이라면 <휴고>가 가장 마틴 스코시즈다운 영화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약먹는 마티’(Marty Pills)로 불릴 만큼 병약했던 어린 시절, 스코시즈는 골방에 처박혀 이탈리아계 사람들로 북적이는 비열한 거리를 창문 너머로 바라보거나, 부모와 함께 극장을 들락거리는 것을 낙으로 삼아야 했다(그의 성장담은 <마틴 스코시즈: 영화로서의 삶>을 보라). 실제로 <휴고>에서 가장 서정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장면들은 시계탑에서 휴고가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순간들이다. 늘 북적이는 기차역에서 살아가지만, 휴고는 그 세상과 섞이지 못한다(상황은 다른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그가 창 바깥으로 뛰쳐나갈 수 있었던 동력은 바로 영화-기계(또는 그것의 상징인 자동인형)의 힘이다. 휴고와 유사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스
[전영객잔] 경이로운 스펙터클의 기원을 찾아
-
-홍상수 감독의 조감독으로 작품을 여러 편 했다. 영향력이 큰 감독 아래에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 어쩌면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겠다.
=<극장전>은 연출부, <해변의 여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하하>는 조감독을 했다. 그렇게 너무 많이 하면 네 색깔이 없어지지 않겠냐는 주위의 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는 막상 주위에서 걱정하는 만큼은 못 느꼈다. 막연하지만 어떻게 될 거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감독님과 일하면서 영화에 대한 내 생각이 조금씩 나아진다는 느낌도 들었다. 홍 감독님의 트리트먼트, 대본 등을 보면서 나도 같이 발전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큰 걱정은 안 했다. 게다가 감독님과 일하면서 좋은 배우들을 많이 봤고 그게 언젠가는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남들이 말하는 그런 부담에서는 점점 더 멀어졌고 모든 게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게다가 감독님의 제작방식이 큰 의지가 됐고 거기서 확신을 얻게 됐다. 이렇게
“홍상수 감독님에게서 현장의 여유를 배웠다”
-
이광국의 <로맨스 조>는 씨네21i와 보리픽쳐스(대표 임순례)가 공동으로 추진한 신인 발굴 프로젝트 당선작이다. 이미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로테르담영화제 등에 초청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이 데뷔 감독의 이야기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그의 이야기 솜씨란 특별한 내용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뜻이 아니라 특별한 형식의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뜻이다. 씨네21i가 발굴한 신인감독이므로 더 주목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사도 어쩔 수 없다. 올해의 주목할 만한 신인감독 중 한명이 될, 이광국 감독과 그의 데뷔작 <로맨스 조>를 소개한다.
이광국의 데뷔작 <로맨스 조>는 싸구려 모텔의 복도에 걸려 있는 그림, 야생마들이 늠름하게 내달리는 그 그림에서 시작한다. 그야말로 거기엔 말(馬)들이 몰려온다. 카메라가 천천히 트랙 아웃하는 동안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음악이 흐르는 걸 보면 이때의 말들은 유머이며 신호다. 실은 그 말이 아니라 다른 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야기를 쏟아내다
-
공격형인지 수비형인지 그것까진 모르겠어요
-김윤석 배우와 두 작품을 했습니다. 전 이런 게 궁금합니다. 함께 신을 만들 때 두 배우의 장면 해석이 일치할 필요가 있나요? 아니면 현실의 인간이 그렇듯 주고받으면서 속으로 다른 그림을 그리는 건 상관없나요.
=서로 확인하진 않아요. 장면의 큰 목표에 관해선 대화하지만 연기에 대해서는 이야기 안 해요. “우리 지금 맞게 가고 있는 거니?”그런 문답은 오가죠. 예컨대 구남을 잡으려고 갑판에서 면정학이 직접 바다로 몸을 던지는 장면에서 “형, 그래도 두목인데 여기서 면가가 배에서 뛰어내리는 게 말이 돼요?” 하면 “그치?” 하면서 감독한테 이야기해보는 거죠. 그럼 나홍진 감독은 농담으로 그러죠. “뛰기 싫으세요?”(좌중 폭소) <황해>에서 둘이 처음 만나는 장면을 보면 형이 “구남이, 밥 먹었니?” 물어보는데 저는 거기서 예인지 아니오인지 애매하게 말을 뭉뚱그려서 대답해버렸어요. 그건 상대배우를 곤란하게 하려는 것도 아니고 내가
#.3 since 2009: 하정우가 자신의 연기를 돌아보다 ②
-
하정우가 프로야구 매니저 게임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가 직접 쓴 책에서 읽고, <머니볼>을 재미있게 봤다는 소감을 듣고, 슬며시 웃은 적이 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별명을 붙여주고 어울리는 헤어스타일 골라주기를 즐기는 눈치다. ‘FC 하정우’를 결성해 마음 맞는 후배들과 축구를 하는가 하면, 올해 본 영화 중 최고의 연기를 골라 ‘하정우 어워드’를 수여해 달라는 기자의 지나가는 농담에 진지하게 눈을 빛내며 열심히 기억을 뒤적인다. 스스로 규칙의 시스템을 발명하고, 한 공간을 울타리 쳐서 취향에 맞게 꾸미고 경영하는 작업만큼 하정우의 흥을 돋우는 일은 없어 보인다. 인터뷰를 위해 옮겨간 하정우의 단골 술집도 그의 ‘영역’ 중 하나였다. 사방의 벽과 문이 하정우가 그린 벽화와 직접 찍은 사진으로 뒤덮여 있었다. 구석자리에 마주앉자 그가 아담한 벽 램프를 만지작거렸다. “어제 떡볶이 먹으러 왔다가 달았어요. 이 테이블에 자주 앉는데 늘 어둡다고 느꼈거든요. 훨씬 아늑해졌어요
#.3 since 2009: 하정우가 자신의 연기를 돌아보다 ①
-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 1편 오프닝 시퀀스. 딸의 결혼식이 열리는 동안 어두운 내실에서 말론 브랜도가 분한 돈 콜레오네가 복수를 청원하는 보나세라를 면담하고 있다.)
<대부>는 제게 바이블입니다. <황해>를 찍는 동안에도 사운드트랙을 계속 들었고 <범죄와의 전쟁>의 최형배를 연기하면서도 <대부2>의 로버트 드 니로 연기를 자주 떠올렸습니다. 어떤 영화, 무슨 역인지와 무관하게 전부 대입이 가능한 교과서, 요리책이랄까요. 연기하기 전에 <대부>를 보면 어떻게 조리하고 양념을 쳐야겠다는 계획이 떠올라요. 제가 남성성 강한 영화를 많이 한 까닭도 있겠죠. 자 지금, 보나세라를 응대하면서 슬쩍 얼굴을 만지는 브랜도의 손짓을 보셨나요. <비스티 보이즈>의 재현이 동료에게 돈을 안 주려고 수 부리는 장면에서 한번 썼어요. 저만 아는 오마주? 그런 셈이죠. <범죄와의 전쟁>은 <대부>
#.2 배우의 영화관: 하정우가 액션의 명분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