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둑 기보 읽기를 굳이 배운 적이 있었다. 이창호 9단의 기보에 대한 해석을 읽다가 ‘검고 뭉툭한 선(線)’이라는 표현을 만났는데, 바둑의 기보가 미적으로 읽힐 수 있음에 충격을 받아서였다. 지금은 안다. 뛰어난 선수나 감독의 야구를 보면, 축구를 보면, 장인이 담근 술 한잔을 마시면, 한평생 가족을 먹인 할머니의 밥 한 그릇을 먹어보면… 그 안에 다 우주가 깃들어 있다. 그 안에 시가 있고 음악이 있다.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에서는 체스의 기보 안에 숨은 우주를 발견한 한 소년이 주인공이다.
소년은 태어나면서부터 입술이 붙어 있었다. 탯줄을 자르자마자 수술대 위에 누워야 했던 그는, 절개한 입술 피부에 다리 살을 이식해 붙여야 했는데, 성장하면서 입술의 그 부분에 솜털이 난다. 그는 상상 속의 친구 둘을 사귀는데, 하나는 코끼리 인디라로, 새끼 코끼리던 때 백화점 지붕에서 전시되었으나 몸집이 너무 커지는 바람에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다른 하나는 좁은 틈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
-
11월9일 일본 원전과 관련해 눈에 띄는 뉴스가 2건 있었다. 첫째, TV프로그램에서 후쿠시마산 야채를 시식하던 일본의 한 캐스터가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둘째, 후쿠시마현 후타바군 가와우치의회 니시야마 지카코 의원은 지난 11월6일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글에서 지난 3월 동일본 지진 이후 후쿠시마 원전에서 작업했던 인부 중 4300명 정도가 사망했으며 유족들에게 입막음용으로 각각 3억엔씩이 지급됐다는 주장을 적어 논란이 되었다. 지난 9월19일에는 도쿄 도심에 5만명이 모이는 대규모 원전 반대 시위가 있었다. 문제는 현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으며, 일본 정부나 언론의 발표를 무조건 믿기 힘들다는 불신이 퍼져나갔다는 점이다. <후쿠시마, 일본 핵발전의 진실>은 원자력 폐지를 주장한다. 저자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과학의 탄생> <16세기 문화혁명>으로 잘 알려졌는데, 일본의 최초이자 최후의 학생운동 시
[도서] 나는 왜 핵발전에 반대하는가
-
[정훈이 만화] <신들의 전쟁> 허르메스, 이건 네탓이 아냐…
[정훈이 만화] <신들의 전쟁> 허르메스, 이건 네탓이 아냐…
-
김혜선이 17년 만에 복귀했다. <대장금>(2003), <왕꽃 선녀님>(2004), <소문난 칠공주>(2006), <조강지처클럽>(2007), <동이>(2010), <신기생뎐>(2011) 등 수많은 드라마를 통해 안방극장 시청자에게 얼굴을 내비쳐왔는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김혜선이 <화엄경> <참견은 노, 사랑은 오예> 이후 오랜만에 영화에 출연했다는 것이다. <완벽한 파트너>에서 그는 요리연구가 ‘희숙’을 맡아 20살 어린 제자와 화끈한 로맨스를 펼친다. 데뷔 이래 처음으로 선택한 노출연기다. 억척스러운 엄마, 단아하고 세련된 중년 등 여러 드라마에서 구축한 자신의 이미지를 180도 뒤집는 어려운 결정이었다. 인터뷰 내내 그는 “나는 영화배우로 출발했다. 항상 영화에 목말라 있었다”라는 말을 힘주어 했다.
-영화가 야하더라.
=지루하진 않았나?
-야하더라. 영화는 봤나.
[김혜선] 영화배우? 탤런트? 난 배우다
-
-
Q. <티끌 모아 로맨스>를 보면 천지웅(송중기)과 구홍실(한예슬)이 문 닫은 전자제품 대리점 밖에서 만능 리모컨으로 TV를 켜서 <겨울 나그네>를 보잖아요. 진짜 가능한가요?
A.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만능 리모컨은 말 그대로 만능이니까요. 우선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기 위해 하이마트 고객지원센터에 전화를 했습니다. 친절한 상담원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만능 리모컨 말씀이십니까, 고객님~.” “네.” “저희는 실무를 진행하지 않아서 지점에 문의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고객님~.” <씨네21>과 가까운 서울 중구 신당동 소재 청구점 연락처를 얻었습니다. 청구점의 TV 관련 부서 직원과 다시 통화를 했습니다. “거리 때문에 힘들지 않을까요?” 그 직원의 말에 따르면 영화에서처럼 TV를 쇼윈도 가까이 진열하는 매장은 거의 없다고 하네요. TV는 보통 매장의 안쪽에 있습니다. 만약에 가까이 있다고 해도 현실성은 없어 보입니다. “만능 리모컨도 설정
[Cinepedia] <티끌 모아 로맨스>를 보면 천지웅(송중기)과 구홍실(한예슬)이 문 닫은 전자제품 대리점 밖에서 만능 리모컨으로 TV를 켜서 <겨울 나그네>를 보잖아요. 진짜 가능한가요?
-
-저기, 안녕하세요.
=앗, 죄송합니다. 제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사실 화장지 1칸만 끊으려고 한 건데 이게 통째로 나와서요. 아니 슬쩍 잡아당겼을 뿐인데 이게 왜 통째로 나오지? 이거 고장났나? 정말 화장지 가져갈 생각으로 그런 게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왜 그렇게 깜짝 놀라시는지. 저는 오늘 뵙기로 했던 월간 <거지의 왕> 기자입니다. 이번에 저희가 천지웅씨를 올해를 빛낸 창조적 짠돌이 30인 중 1명으로 선정해서 이렇게 찾아온 겁니다.
=아, 그러시군요. 그렇게 화장실에서 갑자기 아는 척하시면 어떡해요. 전 여기 카페 직원인 줄 알고 얼마나 놀랐다고요. 오랜만에 커다란 두루마리 화장지가 걸려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저 이거 하나로 최소 두달은 쓴다고요.
-역시 저희가 당신을 선정한 보람이 있군요. 두루마리 화장지 3칸이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가능하다는 얘기가 거짓만은 아니었네요.
=그나저나 어차피 인터뷰하면서 커피 사주실 거면 카라
[주성철의 가상인터뷰] 쉿, 가난뱅이 생활백서
-
겁먹지 마라. 의심하고 저항하라. 우리는 너무 쉽게 관습에 길들여지고 우상을 맹신한다. 물론 그럴 수 있다. 하나 그 순간 우리는 관객이 아닌 소비자로 전락한다. 영화산업의 성지 할리우드에서 반골감독으로 매도당하면서도 그 중심에 저항정신을 심는 데 게으르지 않았던 로버트 알트먼은 영면의 순간까지 자신의 신념을 관철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던 그의 목소리는 세상을 변화시켰고, 현대 미국의 초상이 되었으며, 수많은 감독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쏟아지는 거대한 영화산업 속에서도 쿠엔틴 타란티노, 존 카메론 미첼, 폴 토머스 앤더슨처럼 ‘할리우드영화’가 아닌 ‘미국영화’를 찍는 감독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죽기 직전까지 쉬지 않고 뿌린 알트먼의 씨앗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 로버트 알트먼이 우리 곁을 떠난 지도 벌써 5년이 지났다.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2006년 11월20일 80살로 타계한 로버트 알트먼의 5주기를 맞아 11월22일부터 12월4일까지 특
미국영화의 정신을 만나다
-
<마이웨이> My Way
감독 강제규 / 출연 장동건, 오다기리 조, 판빙빙 / 제작 디렉터스 / 투자·배급 SK 플래닛, CJ엔터테인먼트 / 개봉예정 12월
2차대전 당시 중국, 소련, 독일을 거쳐 노르망디까지 갔던 조선인이 있었다. 강제규 감독이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7년 만에 연출한 <마이웨이>는 그의 행적을 따르는 영화다. 시간적 배경은 1938년의 경성이다. 조선 청년 준식(장동건)과 일본인 타츠오(오다기리 조)는 마라토너로서 조선과 일본을 대표하는 라이벌이다. 그러던 어느 날, 준식은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고 그로부터 1년 뒤, 일본군 대위가 된 타츠오와 재회한다. 2차대전의 한복판에 떨어진 두 남자는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전쟁을 함께한다. 강제규 감독이 연출한 3편의 전작들이 장르, 테크닉, 규모, 그리고 시장 크기에서 확장을 시도했다면, <마이웨이>는 그가 추구한 ‘확장’의 키워드를 더욱 끝까지
[Coming soon] 강제규 감독이 추구하는 '확장'의 결정판 <마이웨이> My Way
-
타셈 싱의 <더 셀>(2000)과 잭 스나이더의 <300>(2007)이 비주얼적인 측면에서 이후 할리우드영화에 미친 영향은 상당하다. 내러티브와 별개로 설계된 듯한 판타스틱한 CG의 향연은 한동안 어떤 트렌드처럼 향유됐다. 실내건 로케이션 촬영이건 마치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세트처럼 사고하는 그 방식은 특수효과 테크닉의 발전에 따르는 자연스런 부산물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혹은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엘 토포>(1970)나 <홀리 마운틴>(1973)처럼 세계에 대한 공포를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론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또한 단지 ‘빈약한 내러티브와 화려한 비주얼’이라는 이분법으로 구획짓기 힘든 뭔가가 있다는 인식하에 특수효과 만능의 시대에 있어 당대의 기술을 사적이고 표현주의적인 감성으로 흡수한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었다. <신들의 전쟁>이 주목받은 이유 역시 그 트렌드의 중심에 서 있던 타셈 싱이 그를 종결 혹은 확장할
밋밋한 액션으로 완성된 생기없는 신화의 세계 <신들의 전쟁>
-
화장실 유머와 히치콕이 만나면 어떤 영화가 나올까. 흔치 않은 이런 상상에 대한 답은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에 있다. 직장상사에게 당하는 고등학교 동창 세 남자의 일상을 보여주는 시작은 로맨틱코미디의 분위기였으나 사건은 점차 스릴러의 양상으로 전개된다. 세명의 주인공들은 대사를 통해 히치콕 영화 <열차의 이방인>을 직접 언급한다. ‘교차살인’을 제안하고 일이 엉뚱하게 꼬인다는 면에서 이 영화는 확실히 히치콕을 계승하고 있다. 하지만 히치콕 특유의 스릴과 서스펜스 대신 코미디로 풀어간다는 면에서 완전 딴판이다. 이혼해주지 않는 아내와 억압적인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던 히치콕의 살해 동기는 인격적인 모욕을 주는 직장상사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것으로 바뀐다. 과장되어 있긴 하나 세명의 상사는 직장인이 만날 수 있는 끔찍한 상사를 유형화시켜놓았다. 죽이고 싶을 만큼이 되어야 하니 상사들의 캐릭터는 다소 도를 넘는 수준으로 묘사된다.
일체의 사생활을 반납
화장실 유머와 히치콕의 만남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
-
청나라 말기, 중국 서남부의 한 마을. 평범한 종이 기술자 진시(견자단)는 어느 날 마을에 찾아온 강도를 우연히 처리하게 된다. 시체를 부검하던 수사관 바이쥬(금성무)는 평범한 촌부인 진시의 실력을 눈여겨보고 그 실체를 파헤치려 한다. 치밀하게 사건을 재구성해보는 바이쥬는 결국 진시가 오래전 사라졌던 살인마 중 하나라 굳게 믿고 그를 법의 심판대에 올리려고 한다. 이로 인해 진시의 어두운 과거가 드러나고, 마침내 그 아버지의 조직인 72파 무리들이 마을에 들이닥친다.
<무협>은 장철의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1967, 원제 <독비도>)의 리메이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또 다른 리메이크작인 <서극의 칼>(1995)과 비교하면, 나중에 외팔이가 된다는 설정은 같지만 무도관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더구나 관찰자로서 사건을 재구성하는 수사관의 존재, 정체를 숨긴 남자라는 설정에서 거의 독자적인 영화라고 봐도 무방하다. &l
견자단과 '레전드' 왕우의 대결을 볼 수 있는 본격 무협영화 <무협>
-
천년 묵은 뱀은 뱀이 아니라 요괴다. <백사대전>은 진실한 사랑을 가졌으나 요괴일 수밖에 없는 이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다. 백사 소소(황성의)와 동생인 청사 청청(채탁연)은 인간세계를 구경하다 약초꾼인 허선(임봉)을 발견한다. 물에 빠져 죽을 위기에 처한 허선을 소소가 구하고, 그렇게 만난 두 남녀는 혼인한다. 어느 날, 요괴가 옮긴 병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허선은 해독약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 소소가 자신의 공력으로 허선을 돕지만 않았어도 그들의 사랑은 온전했을 것이다. 중생들을 구하기 위해 마을에 내려온 법해 대사(이연결)는 소소의 기가 담긴 허선의 약에서 요괴의 출현을 직감한다. 인간 세상의 모든 요괴와 전쟁을 벌이는 법해 대사는 소소의 진심과 상관없이 그녀를 물리치려 나선다.
정소동 감독이 연출한 <백사대전>은 중국의 전설 <백사전>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우리에게는 서극의 <청사>로 더 익숙한 이야기다. 하지만 인간과 인간이
다소 과한 CG로 만들어진 '천녀유혼'의 또 다른 판본 <백사대전>
-
불이 꺼진 텅 빈 야구장 관중석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빌리 빈(브래드 피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이다. 그가 귀에 댄 라디오 너머로 2001년 디비전 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즈에 지고 있는 애슬레틱스의 상황이 들린다. 2002년 빈곤 속에서 어렵사리 20연승의 쾌거를 이루기 전이다. <머니볼>은 패자의 적막이 승자의 환호성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유장하게 보여준다. 야구장은 스카우트와 트레이드 비용으로 1억달러 이상을 쓰는 부자 구단들에 4천만달러짜리 구단 애슬레틱스가 맞서 싸우는 전장이 된다. 그 전투를 이끄는 지휘관이 빌리다. 그는 예일대 경제학과 출신의 피터 브랜드(조나 힐)를 부단장으로 기용해 새로운 경영전략을 펼친다. 두 ‘경영인’이 외모나 인간관계가 아니라 출루율이나 방어율에 근거해 선수들을 뽑은 결과, 그해에 애슬레틱스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20연승이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낳는다.
혹자들의 평대로 <머니볼>의 빌리는 <소셜 네트워크&
야구를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재미있는 야구영화 <머니볼>
-
자극이 없으면 감각은 무뎌진다. <완벽한 파트너>는 연애를 통해 새로운 자극을 찾으려는 두 스승과 제자 커플의 로맨스물이다. 10년째 밍밍한 시나리오만 쓰고 있는 시나리오작가 준석(김영호)에게 연애는 옛말이다. 연애하라는 영화사 대표의 구박에 준석은 학원 밖에서 우연히 만난 제자 연희(윤채이)에게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 둘은 충동적인 관계를 가진다. 이때부터 두 사람의 잠자리와 시나리오 작업에 불이 붙는다. 자극이 필요한 건 연애한 지 꽤 오래된 듯한 요리사 희숙(김혜선)에게도 마찬가지다. 요리책 발간을 앞둔 희숙은 새로운 요리를 개발해야 하는데 아이디어가 영 마땅치 않다. 그에게 영감을 주는 건 20살 연하의 제자 민수(김산호)의 싱싱한 레시피뿐이다. 희숙 역시 사람들의 눈을 피해 민수와 사랑을 나누기 시작한다.
굳이 분류하자면 <완벽한 파트너>는 ‘로맨틱코미디’보다 ‘섹시코미디’에 방점을 찍는 영화다. 관객으로 가득 찬 극장 안에서 서로의 성기를
갖가지 정사신이 난무하는 섹시코미디 <완벽한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