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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짧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얇은 책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단편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정확히는 중편과 단편을 편애한다). 우리 집 개가 3일쯤 물고 빨던 갈비뼈처럼 살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미끈하고 단단한, 뼈대 말고는 아무것도 들러붙지 않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길고 재미있는 책이 되려면 리듬이 필요하다. 가끔은 예상치 못한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해야 하고, 청룡열차를 타고 지나가며 바라보는 아파트단지의 창문처럼 기억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풍경을 과감히 잊어버리기도 해야 하고, 그러다가 사랑을 만나면 인생을 걸 줄도 알아야 한다. 존 어빙 같은 경우는 ‘이빨’이 대단한 작가에 속하는데, 언제나 약간 필요 이상으로 길다는 느낌이 드는 그의 책은 수없이 지루하고 별볼일 없는 순간이 인물과 서사 사이에 복도처럼 늘어선 구조의 결과물이다. 수많은 대화와 묘사는 그 순간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지만 큰 그림에서는 이야기를 부드럽게 감싸안는 역할을 해야 하고, 문체는 하나의 세계로서의 통일
[타인의 취향] 짧은 이야기의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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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을 땐 진짜 없는데 생길 땐 한꺼번에 생기는 것들이 있다. 여기저기서 수개월 밀렸던 원고료들이 한번에 들어온다든지 퇴근길에 식빵을 사왔는데 앞서 아빠도 언니도 한줄씩 사들고 온다든지 평생 없던 남자 복이 한꺼번에 터지기도… 아, 이건 아니구나. 아무튼 드라마도 그렇다. 매번 볼 거 없다, 쓸 거 없다 하며 머리 싸매고 고민하다가도 아주 가끔은 ‘오늘 뭘 볼까’라는 행복한 고민에 빠지는 시기가 있는데, 바로 요즘 수요일과 목요일 밤이 그렇다. 대략 6585일 주기로 돌아온다는 일식과 월식은 아니지만 1, 2년에 한번 정도 지상파 3사 드라마가 같은 날 같은 시간 스타트 라인에서 내달리는 드문 경우, 심지어 이번에는 MBC <해를 품은 달>이나 지난해의 SBS <뿌리 깊은 나무>, KBS <공주의 남자>처럼 독주하는 작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단물 다 빠졌다고 생각했던 ‘남북관계+21세기 왕자님’ 소재를 블랙 코미디로 변주하며 눈길을 잡는 MBC &
[최지은의 TVIEW] 말을 타고 현대로 온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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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의 <J. 에드거>가 국내에서 정식 개봉을 하지 못한 채, DVD로 직행했다는 소식이다. 지난 몇년간 그의 영화들(<그랜 토리노>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 <체인질링> <히어애프터>)이 연이어 극장 개봉을 통해 우리와 만났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미국 내 흥행 성적이 저조했고, 비평적으로도 그리 환대받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 속사정이야 어떠하든,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기회를 갖지 못하는 현실은 다급한 마음으로 노장의 영화를 기다려온 우리에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참고로, 오는 4월21일 영상자료원, ‘블루레이 특별전’에서 <J. 에드거>를 상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더없이 유려하고 깊었으나 다소 온건했던 이스트우드의 최근작들과 비교해서, <J. 에드거>는 폭력과 범죄로 지속된 미국 현대사의 중심부에서 무려 반세기가량 권력의 핵심이었던 한 남자의 삶을 치열
[전영객잔] 불가능한 질문에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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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적 로드무비의 탄생
◈<빛의 여행> Journey of Light
강연하 / 한국 / 2011년 / 99분 / HD / 컬러 / 드라마
떠나간 남자의 이름은 ‘재현’이고 남겨진 여자의 이름은 ‘빛나’다. 재현은 시인이고 빛나는 무명 배우다. 이유는 알 수 없고 어느 날인가 떠나간 재현으로부터 빛나 앞으로 소포 하나가 배달된다. 그 안에는 한적한 시골 마을, 파란 대문집 하나가 촬영된 CD가 들어 있다. 빛나는 이제부터 그 파란 대문을 찾아 혹은 애인 재현을 찾아 혹은 자기 자신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빛의 여행>은 그 여행길에 오른 빛나의 이야기이며, 빛나는 뭔가 사연에 얽혀 삼척항을 찾게 된 아일랜드 한국계 청년을 만나 잠시 동행하기도 한다. 주인공의 주변을 둘러싸는 풍경과 그 위로 흐르는 음악의 어우러짐이 인상적이다. <빛의 여행>에는 우회적인 상징 관계들이 곧잘 등장하며 전체적으로는 저음과 무표정이 주된 느낌을 이루고 그것으로써 은은한
여성만의 시선, 놓치면 후회할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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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를 만들며 고민했던 많은 것들 중 그녀(들)의 목소리, 그녀(들)의 언어를 어떻게 만들까 하는 부분이 있었다. 원작 <화차>는 그녀(들)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개인의 역사를 통해 당대의 일본을 읽으려는, 혹은 나는 누구로 인해 아내를 잃고 다리에 부상을 당했는가를 성찰하는 형사가 주인공이었다. 그래서 교코(영화에서는 차경선) 혹은 쇼코(영화에서는 강선영)는 붕괴되어버린 일본의 경제처럼 부유하거나 얇은 결로 기억되는 존재다. 작가는 그녀를 기억하는 친구나 동료의 현재를 세밀하게 묘사하거나 현재 진행 중인 다른 여성의 범죄를 통해 욕망의 주체인 여성을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그런데 영화 <화차>에서 내가 바라보는 경선 혹은 선영의 모습은, 자기 연민의 끝에서 마주쳐 붕괴되는 자아이거나, 실현 가능한 듯 보이는 욕망이 끝내 점점 더 나에게서 멀어지면서 오히려 욕망의 크기는 더욱 커지는, 어떤 환경 그 자체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에게 주입한 현실의 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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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적으로 흐르는 인물의 감정을 차분히 주시하도록 만드는 영화들이 있다. 말레이시아 감독 탄추이무이의 데뷔작 <사랑은 이긴다>(2006)가 그런 경우였다. 낯선 사내와 사랑에 빠지고 결국 그에게 이용당하는 여인의 이야기. <사랑은 이긴다>는 신파적인 설정을 넘나드는 다소 설익은 느낌의 작품이었지만, 뜨거운 감정이 남긴 초라한 잔해에 쉽게 연민을 보이거나 냉소하지 않는 단단한 영화이기도 했다. 이 영화로 탄추이무이 감독이 부산영화제와 로테르담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지도 5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지금 탄추이무이는 동료들과 설립한 다후앙 픽처스의 핵심 일원으로서, 그리고 말레이시아 독립영화계를 이끄는 감독이자 프로듀서, 작가로서 활발히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다.
탄추이무이의 영화에는 힘든 현실조건 가운데 수동적인 패배자로 남은 캐릭터들이 두드러진다. 단편 <탄중말림의 나무 한 그루>(2005)의 남자주인공은 심지어 캐릭터의 이름이 “아름다운 루저”다.
서툰 진심이 녹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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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바, 요코하마 사토코의 필모그래피는 2005년작인 단편 <치에미와 고쿤파초>에서 시작된다. 무려 50분 분량의 이 영화는 도쿄필름스쿨의 졸업작품인데, 감독의 고향인 아오모리현이 영화의 배경이다. 뒤에 장편 <울트라 미라클 러브 스토리>(2009)에도 이 마을은 등장하는데, 시골스러운 느낌의 순박한 분위기 덕분에 영화 속 캐릭터의 독특한 행동이 조금 상쇄되는 효과를 준다. 이 밖에 <치에미와 고쿤파초>에서 눈여겨볼 점은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다. 캐릭터의 기묘함과 더불어서 요코하마의 영화에서 ‘가족의 테마’는 줄곧 중요한 방점으로 작용하는데, 이는 최신작까지 이어지는 일관된 경향이다.
한편 장편 데뷔작 <저먼+레인>의 주인공은 청소년기의 소녀 ‘요시코’다. 그녀의 꿈은 가수인데, 그를 둘러싼 외모나 환경 등의 요건이 그다지 훌륭하진 않다. 가족을 떠난 뒤로 요시코는 아이들에게 리코더를 가르치는 일을 맡는데, 이를 통해서 싱어송라이터의
범상치 않은 캐릭터의 가족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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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생이니 적지 않은 나이다. 하지만 작품 수는 그에 비해 적은 편이다. 안드레아 아놀드는 영화가 아니라 방송 프로그램에서, 그것도 연출이 아니라 연기자로 자신의 경력을 시작했다. 1980년대, 그러니까 20대를 거치며 그녀는 이런저런 음악 방송과 아동용 방송을 기웃거렸지만 끝내 연기자로서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진 못한 모양이다. 이후에 그녀는 미국영화연구소(AFI) 등을 거치며 영화연출의 길로 항로를 바꾸었고 몇편의 단편과 텔레비전 시리즈를 만든 다음 마침내 2006년에 <레드 로드>로 장편 데뷔하게 된다. 어쩌면 연기 인생에서의 그녀의 불운이 우리에게는 행운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2000년대에 데뷔한 유능한 여성감독 중 한명을 만나게 되었으니까.
그녀가 주변의 지인들에게 시나리오를 처음 보여줬을 때부터 <레드 로드>는 스릴러로 낙점됐던 영화다. CCTV 오퍼레이터가 직업인 재키는 어느 날 밤 우연히 모니터를 살피다 몇년 전 자신의 남
미아들의 안식처를 창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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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리 리처드의 <믹의 지름길>은 전에 없는 여성주의 서부극으로 평가받는 경향이 있다. 수긍할 만하다. 서부극 안에서 여성의 자리는 늘 미비했거나 없었는데, 그녀의 영화 <믹의 지름길>에서는 그들이 사막의 한가운데에 선 진정한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점이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 이 영화의 기원은 인물이 아니라 풍경이었다. 켈리 리처드가 <웬디와 루시>의 촬영 준비를 하며 경험했던 오리건의 사막 지대가 이 영화의 기원이며, 그 사막의 풍경을 체험한 이후에야 서부 시대 여성의 이야기가 풀려나왔다. 그러고 보면 켈리 리처드는 서부극이라는 장르를 뒤집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 옛날 서부 시대를 배경으로 자신만의 로드무비를 한번 더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1994년 <초원의 강>으로 데뷔하여 선댄스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 호평을 받았으니 데뷔작의 연도로만 본다면 켈리 리처드는 꽤 경력이 있는 감독이다. 당시 <
로드무비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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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장커 이후 새로 급부상한 가장 흥미로운 중국 감독”이라는 평가까지도 받아낸 리우지아인. 그녀의 작품 <옥스하이드2>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만두를 빚는 아버지와 어머니 옆에 끼어 앉은 그녀, 정확히 동일한 크기로 잘라야 한다며 한손에는 만두에 넣을 부추를, 또 한손에는 자를 든 채로 고집을 피우고 있다. 마치 자기 영화의 숏들을 자로 잰 듯 자르는 것처럼 부추도 그렇게 자른다. 엄밀함에 대한 그녀 자신의 강박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한편 이런 장면도 있다. 아버지가 만두를 들어 눈 위에 붙이고는 마치 하얀 눈썹이 생긴 것처럼 장난을 친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실은 극영화이므로 아버지의 재치있는 연기는 평소의 일화에서 가져왔을지라도 리우지아인의 연출을 거친 것이다. 그렇게 영화는 때로 불쑥불쑥 명랑하다. 리우지아인 영화의 두 장점, 엄밀함과 명랑함의 예가 되는 장면이다.
1981년생이며 베이징전영학원 출신이고 23살에 만든 첫 번째 장편 <옥스하
현실의 시간에 근접한 명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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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으로서 미란다 줄라이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건 2006년에 그녀의 장편 데뷔작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이 개봉하면서부터다. 여주인공은 아마추어 아티스트이자 노인을 위한 택시 ‘엘더 캡’의 운전사다. 그녀가 아내와 이제 막 별거를 시작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내용의 영화다. 그녀에게 이 여자의 할아버지 고객은 너무 늦게 진정한 짝을 만난 것을 한탄한다. 동시에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녀가 찾아간 지역 미술관 큐레이터는 끝내 그녀의 작품을 받아들지 않는다. 한편 남자의 두 아들은 채팅방에서 음담패설을 주고받는데, 알고 보니 채팅 상대는 미술관의 그 큐레이터다. 이처럼 얼핏 보아도 여러 에피소드의 병렬적 얼개가 특징인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은 줄라이가 ‘어떻게 예술을 하는지’ 그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예가 된다.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에서 여자주인공의 예술활동은 늘 일상
성장통을 겪는 소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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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2012년, 향후 몇 십년을 내다보는 영화용어사전이 새로 발간된다면, ‘여성영화’라는 항목은 과연 어떤 규정들로 다시 설명될 수 있을까. 남성의 시각적 쾌락의 대상에서 벗어나 여성이 응시와 재현의 능동적인 주체가 되어 서사적으로, 형식적으로 남성 중심적인 영화관습에 대항하는 영화. 여성영화에 대한 논쟁이 여성운동의 일환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한 1970년대라면, 이런 정의들은 전략적으로 시의적절하고 명징하며 미학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전복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동시대의 어떤 영화들을 그 범주 아래, 일렬로 나열하는 것은 가능한가. 아니, 그런 작업이 여전히 의미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좀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지난날, 영화 안팎에서 적극적인 담론으로 활동하던 ‘여성영화’라는 개념은 40여년이 흐른 오늘날에 이르러, 영화의 변화, 여성의 변화에 무심한 채, 종종 영화 자체에 대해 그 무엇도 말해주지 못하는 구태의연한 용어로 소비되는 현실 또한 분명 인정해야
더 욕망하라, 세계의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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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남성 감독을 가르는 것이 구태의연한 건 아닌지 시종일관 자문하면서도 몇 가지 것들이 끝내 궁금하고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 특집을 마련했다. 말하자면 여성영화만이 지니는 그 어떤 영화적 ‘여성스러움’이 궁금했다. 남다은 평론가가 그 주제로 앞문을 열었다. 그러고 나니 어떤 뛰어난 여성감독들이 있는지도 궁금했다. 동시대에 활동하는 비교적 신인급에 해당하는 여성감독 6인을 이 자리에 초대한 이유다. 그리고 변영주 감독에게는 ‘당신은 <화차>로 여성의 무엇을 그리고 싶었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녀가 소중한 글을 보내왔다. 마지막으로 제1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필견을 추천하는 9편의 프리뷰도 함께 싣는다. 여성영화와 여성감독에 관한 당신의 관심과 이해가 넓어지기를 바라는 뜻에서다.
여성의 눈으로 본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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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와 <해피 버스데이>는 임필성 감독의 본래 취향과 새로운 변화 모두를 보여준다. 유혈이 낭자한 호러영화와 <멋지다 마사루>식의 4차원 개그 사이에서의 줄타기라고나 할까. 얼핏 어울려 보이지 않는 그 두 세계 사이를 오가며 어느덧 6년이 흘렀다. 두 장편 <남극일기>와 <헨젤과 그레텔>은 국내 평단으로부터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충무로에서 거의 맨땅에 헤딩하듯 장르적으로 펼쳐놓은 임필성만의 다부진 고집과 유혹적 취향을 읽을 수 있는 영화들이었다. 판타스포르투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헨젤과 그레텔>의 경우 데이비드 보드웰이 자신의 블로그에서 특별히 ‘컬트’라며 언급하기도 했고, 실제로 국내에도 없는 블루레이 버전이 북미지역에서 출시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해피 버스데이>와 그사이 만든 아이폰 단편 <슈퍼덕후>, 그리고 곧 크랭크인하게 될 <주말의 왕자>는
“세상을 향해 화염방사기를 갈기는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