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스티븐 소더버그의 <헤이와이어>를 보며 어린 시절 본 액션영화들이 마구 섞이며 업그레이드되는 듯한 기시감을 느꼈다. 주인공이 매력적이고 액션이 인상적이어서 상투적인 스토리 전개도 다 용서가 된 채로 몇몇 이미지들이 마음에 남아 가슴이 슬쩍 뛰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는 영화들 말이다. 절대적으로 이는 여주인공 말로리 케인을 연기한 지나 카라노의 신체 연기와 스티븐 소더버그의 능란한 연출 덕분이다. 미국 영화평론가 피터 트래비스의 표현대로 이 영화는 ‘앨프리드 히치콕이 만든 팸 그리어 영화’라는, 일급의 서스펜스 기교로 B영화를 만들고자 한 소더버그의 창작목표를 완벽하게 구현한 작품이다. 그것이 다분히 개인적인 취향을 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다소 길게 말하고 싶은 이유이다.
날것 그대로의 액션
<헤이와이어>의 첫 장면, 말로리 케인은 한적한 시골 레스토랑에서 차를 따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밤을 새워 피곤하다고 투덜대는 건장한 청년이 그녀
[신 전영객잔] 순수 액션의 맛
-
5백만불 전달을 명한 후 자신을 죽이고 돈을 빼돌리려는 상무의 음모를 알게 된 대기업부장이 대반격에 나서며 펼쳐지는 코믹 추격극 '5백만불의 사나이'는 오는 7월 19일 개봉 예정.
[조성하] "박진영의 연기 점수는...?"
-
리들리 스콧의 <프로메테우스>와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를 각각 ‘기원의 서사’와 ‘종말의 서사’로 명명하고 두 영화를 함께 읽어보겠다는 것이 애초의 계획이었다. 인간은 자신이 잉태되는 성스러운 순간에 참여할 수 없고, 죽은 뒤의 세상에 미리 입회할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들이 주는 불안을 견뎌내기 위해 이야기라는 것을 만들어왔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탄생’과 ‘죽음’은 이 세상 모든 이야기들의 어쩔 수 없는 두 뿌리다. 그것이 인류와 우주의 층위로 확대되면 바로 ‘기원’과 ‘종말’의 서사가 구축될 것이다. 이를 감히 ‘서사의 서사’라 칭해도 될까. 당대의 거장들이 바로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해서 나는 긴장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를 보고 나서는 애초의 계획을 포기해야 했다.
안타깝게도 <프로메테우스>는 ‘기원의 서사’라는 명칭에 힘있게 부응하는 작품이 아니었다. 이 영화의 기술적 성취가 어느 정도인지를 평가
[신형철의 스토리-텔링] 저스틴, 이것은 당신을 위한 종말입니다
-
20세기 초,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의 인력 수요가 증가하자 많은 일본인이 하와이로 이주하였다. 그 결과 1920년, 전체 하와이 인구 중 43%가 일본인일 정도로 일본인을 포함한 이민자 수가 급증하였고, 이에 하와이는 새로운 이민법을 도입해 추가로 유입되는 이민자의 수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길게 ‘일본인 하와이 이민사’를 꺼내든 까닭은 레오 요시다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 <하와이언 레시피>가 (영화에서 거의 아무런 설명을 하고 있지 않지만) 보이는 것처럼 말랑말랑한 ‘힐링 무비’가 아니라 사실은 하와이에 고립된 일본인 이민자들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달 무지개를 보기 위해 여자친구와 하와이 호노카아 마을에 온 레오(오카다 마사키)는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이곳으로 이사 온다. 그 마을엔 레오에게 밥 지어주는 것을 낙으로 생각하는 비 아줌마(바이쇼 지에코), 여배우들을 동경하는 할아버지 코이치(2011년 세상을 떠난 기미 고이시), 극장에서 빵을
그들의 달 무지개 <하와이언 레시피>
-
-
대기업의 로비스트 한 상무(조성하)는 부하직원 영인(박진영)에게 로비자금 전달을 명한다. 자신이 운전하는 차 트렁크에 500만달러가 든 줄도 모른 채 검은돈을 운반하던 영인은 도중에 괴한에게 습격당한다. 정신을 차린 영인은 자신의 안주머니에서 유서를 발견하고, 형처럼 따르던 한 상무가 자신을 사고사로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인은 500만달러를 미끼로 한 상무를 유인해 기업의 비리를 세상에 고발하려 한다. 한편, 날라리 여고생 미리(민효린)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들고 나갈 악기를 사기 위해 원조교제를 시도한다. 샤워 중인 깡패 필수(오정세)의 소지품을 모두 털어 도망간 미리는 본의 아니게 다이아몬드 도둑이 되어 필수 일당에게 쫓긴다.
두개의 추격전은 결국 영인과 미리가 같은 배를 타면서 하나로 모인다. 여기에 조폭 조 사장(조희봉) 일당과 경찰이 따라붙으면서 추격전의 규모는 커진다. 그런데 이 추격전에 없는 게 하나 있다. 바로 긴장감이다. 추격전의 쾌감이 영화적으로 전
검은돈과 다이아몬드 <5백만불의 사나이>
-
“죽기 전에 풋풋한 처녀와의 뜨거운 밤을 나에게 선사하고 싶소.” 아흔 번째 생일을 맞은 엘사비오(에밀리오 에체바리아)는 친애하는 ‘뚜쟁이’ 로사 카바르카스(제랄딘 채플린)에게 전화를 걸어 말한다. “이런 딱한 양반.” 청을 들은 그녀는 그에게 기다려보라고 말한다. 늙음을 연민하는 두 늙은이들 앞에 단추공장에서 일하는 가여운 소녀(파올라 메디나)가 나타나고, 그렇게 후텁지근한 밤하늘 아래 노인과 소녀의 첫사랑이 시작된다. 이후 노인과 소녀가 조심스레 어루만지는 현재 속으로 노인이 쓰는 일요칼럼과 그의 과거의 잔영이 얽혀들면서, 영화는 한 노인의 절절한 연애소설이자 동시에 담담한 회상록이 되어간다.
감독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일흔일곱살에 발표한 원작 소설의 구조를 충실히 따른다. 그 결과, 또 한편의 ‘소설 읽어주는 영화’가 완성됐다. 문제는 그 ‘충실함’이 종종 불필요한 독백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정적인 분위기만으로 충분할 순간에, 영화는 노인의 입을 빌려 소설에 나오는
‘소설 읽어주는 영화’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
우리네 가정을 장식해온 거의 유일한 악기였던 피아노가 언젠가부터 서서히 밀려나고 그 자리에 유행처럼 새로운 악기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카리나가 그랬고 우쿨렐레도 그러하다. 우쿨렐레는 기타처럼 생긴 하와이에서 온 4줄 현악기이다. 하지만 이 영화, <우쿨렐레 사랑모임>을 보는 데 이런 정보는 몰라도 상관없다. 악기 소리를 듣는 순간, 누구나 한번쯤은 어디선가 이 독특한 우쿨렐레의 소리를 들어봤다는 걸 알게 될 테니 말이다.
<우쿨렐레 사랑모임>은 제목 그대로 우쿨렐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그들이 우쿨렐레를 시작한 계기는 모두 다르지만 단 하나, 우쿨렐레를 사랑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우쿨렐레를 연주하고, 함께 노래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가르친다. 영화 속 누군가의 인터뷰처럼 우쿨렐레는 이들에게 하와이 해변에 누워 칵테일을 한잔 마시는 듯한 ‘슬로 라이프’를 실현해줄 수 있는 악기인 것이다.
영화는 우쿨렐레 동호회인
알로하! <우쿨렐레 사랑모임>
-
한 사람을 향한 사랑을 삶의 이유로 삼는 일은 대단히 위험하다. 10대 때 만나 줄곧 서로 사랑하며 살아온 남편에게 갑자기 버림받은 여자 카롤(헬렌 플로랑)은 말한다.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아야 해. 난 평생 그 사람만 사랑했어. 이유를 찾지 못하면 내가 죽어.” <카페 드 플로르>는 그처럼 꿈에도 대안을 상상한 일 없는 절대적 러브스토리 둘을 따라간다. 21세기 몬트리올에서는 성공한 DJ 앙투완(케빈 파랑)이 소년 시절부터 운명으로 믿어온 카롤과 행복하게 결혼해 두딸을 두고 산다. 영화의 내레이터는 그를 “행복할 수밖에 없고 자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남자”라고 부른다. 한편 40여년의 시간 너머 1970년대 파리에서는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난 아들 로랑(마랭 게리에)을 하루라도 오래 살게 만드는 것이 인생 목표인 홀어머니 자클린(바네사 파라디)이 분투하고 있다. 영화는 로랑을 “행복할 수 없으며 그 사실조차 모르는 소년”이라고 지칭한다. 그리고 계절의 변화처럼 배신
절대적 사랑이야기 <카페 드 플로르>
-
비틀스 멤버 중에서도 폴 매카트니와 존 레넌의 이름이 두드러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작사·작곡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고 음악의 성격을 규정했으며 인기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폴 매카트니나 존 레넌에 관한 이야기는 그래서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리드 기타리스트 혹은 매카트니와 레넌 사이의 중재자 또는 그들 이후의 삼인자가 조지 해리슨이었다. 그가 비로소 자기의 음악적 활력을 펼친 건 비틀스가 결성된 지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조지 해리슨은 자기가 만든 노래들이 발표할 길은 없고 쌓여만 가는 것에 조바심냈다고 한다. 하지만 훗날 그의 독창적인 음악적 세계가 점차 인정받게 된다. 그의 노래 <Something>을 두고 엘튼 존은 “지금까지 쓰인 역사상 최고의 연가다. 모든 면에서 아름다움의 극치를 들려준다”고 극찬했다.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핸드 메이드’라는 제작사를 차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테리 길리엄의 <시간 도둑들>을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조지 해리슨>
-
요즘 독립영화들의 한결같은 개봉 풍경. 트위터를 하지 않던 감독들이 계정을 만들고, 개봉 뒤에 그 계정을 휴업한다.
트위터 초창기에만 해도 상업영화들 역시 신대륙인 양 러시 행렬을 이루었다. 개선나팔을 요란하게 불며 각종 이벤트와 행사도 벌였다. 하지만 곧 SNS가 흥행에 그닥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자 뒤도 안 돌아다보고 철수했다.
상업영화 마케터들이 철수한 그 공백의 자리를 차지한 건 독립영화들. 어떤 독립영화 감독이 그 느릿한 손으로 트위터 계정을 만들고 안녕, 하고 멘션을 보낸다면 개봉이 임박했다는 뜻이다. 개봉을 앞두고 그제야 스마트폰을 구입하는 감독들이 더러 있다. 그리고 영화가 개봉되면 숱한 홍보글을 모스 부호 타전하듯 남발하다가 영화가 극장에서 내려오는 순간,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때론 배급사의 집요한 요청에, 때론 이게 마치 이제는 정해진 개봉 일정이나 되는 듯 겸연쩍게 트위터에 로그인했다가 소리 소문 없이 로그아웃하는 것이다.
하면, 트위터가 독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웃어라, 가진 게 없을수록
-
이란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 그는 2005년 이후 망명객이 됐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타지키스탄으로, 다시 프랑스로, 또다시 영국으로 테러 위협을 피해 옮겨다니는 실정이다. 인권운동가이며 진보주의자인 그의 비판적 시선과 의견을 곱게 보지 않는 이란 내 보수세력 때문이다. 2009년 개혁파 대통령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선 이후 상황은 더 좋지 않다. 그러나 그는 그동안에도 영화 만들기를 멈추지 않았고 또 하나의 결과물로 신작 <정원사>를 완성했다. 이 작품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펀드 후반작업 지원부문 선정작 중 하나가 됐다.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였다는 후문이다. 부인, 아들과 함께 후반작업을 위해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났다.
-신작 <정원사>가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펀드(ACF) 후반작업 지원부문에 선정됐다.
=나와 나의 가족이 부산영화제로부터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방면으로 지원을 받아왔다는 말부터 해야 할 것 같다. 14년 전에는
[모흐센 마흐말바프] “우리 가족은 전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집시”
-
대부분의 첩보극이나 스릴러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주인공은 막 악당의 컴퓨터에 접속한 참이다. 상대에게 결정타를 먹일 만한 자료(뒷거래 장부, 불륜의 증거, 혹은 비밀스러운 연구 결과)를 찾아낸 뒤 자신의 USB에 옮겨 담는다. 이때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악당의 모습이 교차편집되고 주인공의 입에서는 초조한 혼잣말이 흘러나온다. “빨리, 빨리….”
샌디스크의 익스트림 USB 플래시 드라이브는 이런 장르적인 긴장감을 조성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제품이다. 190MB/s의 속도로 대용량 파일을 전송, 저장 및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 스릴러의 주인공을 비롯한 소비자의 대기시간이 크게 줄었다. 저용량 파일은 거의 즉시 전송되며 3GB를 옮기는 데도 겨우 20초 정도만 기다리면 된다(40GB 파일은 4분 내 전송이 가능하다). 단, 이 속도는 USB 3.0 환경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USB 3.0 지원 장치의 출하량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니
[gadget] USB 속도전의 승자
-
사양
크기 베이스 80x89.6x33.3mm, PD어댑터
21.6x63.6x31.45mm, TV어댑터 21.6x68.9x9.82mm
무게 베이스 78g, 어댑터 28g
특징
1. 와이다이(WIDI) 지원 없이도 PC 화면을 HDTV 스크린 및 프로젝터로 무선 전송.
2. 작고 가벼워 휴대가 간편하다.
3. 저작권 요구 사항 때문에 블루레이 디스크 콘텐츠는 지원하지 않는다. 단 DVD 재생은 가능.
일단 고해성사로 글을 시작해야겠다. 나도 불법 다운로드라면 남부럽지 않게 해본 과거를 갖고 있다. 조르주 프랑주의 <얼굴 없는 눈>이나 미켈레 소아비의 <델라모테 델라모레>처럼 소문으로만 전해 듣던 영화들을 비로소 발견한 곳 역시 음침한 어둠의 경로였다. <24>의 첫 번째 시즌은 작정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거의 하루 만에 해치웠던 것 같다. 마지막 에피소드를 마치고 나니 키퍼 서덜런드와 함께 24시간 동안 외동딸 뒤치다꺼리를 한 것만큼이나 피곤
[gadget] PC를 품은 HDTV
-
지금은 사그라든 조국의 문학에 바치는 진혼곡.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는 그런 책이다. 쉽게 말하면 러시아 소설에 대한 책이고, 미국 웰즐리대학과 코넬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강의하기 위해 작성한 강의록이지만 그 이상의 의미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을 피해 가족과 함께 망명한 뒤 후일 영어로 작품 활동을 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롤리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은 그가 어디까지나 ‘러시아’ 작가였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책에 대한 책, 책 읽어주는 책이라고 하면 보통은 플롯 분석, 좋은 대목 인용, 작가와 작품의 의의 정리와 감상이 실리는데, 이 책은 그 이상이다.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는 ‘러시아 작가, 검열관, 그리고 독자’라는 글로 시작하는데, 19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러시아 역사가 문학에 얼마나 치명적인 독이 되었는지를 비판한다. “정부와 혁명주의자, 차르와 급진주의자들은 모두 똑같이 예술에 대해서는 속물이었다.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러시아 문학에 바치는 진혼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