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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사운드>는 ‘사운드’보다 ‘청춘’에 방점을 찍어야 할 책이다. 그 청춘은 저자인 차우진 자신의 청춘이지만 20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사운드는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것이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앵콜 요청 금지>에서 시작해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와 미선이의 <Drifting>을 경유해 샤이니의 <JoJo>, 달빛요정만루홈런의 <Infield Fly>를 거쳐 당연하게도 검정치마의 <Don’t You Worry Baby(I’m Only Swimming)>를 이야기한 뒤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Abracadabra>로, 백현진의 <반성의 시간>으로, 10cm의 <오늘밤은 어둠이 무서워요>로, 그리고 흐른의 <흐른>으로 흘러간다. 지금, 여기를 살며 청춘의 마음으로 음악을 듣는 모든 이에게 복된 리스트다. 연애와 죽음이 샴쌍둥이처럼 등을 맞대고 함께 움직였던
[도서] 잘 지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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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잉마르 베리만이 살던 발트해의 섬 파로를 다녀온 이후 그의 자서전인 <마법의 등>(The Magic Lantern)을 읽었다. 이제 그의 영화를 볼 차례였고 그래서 본 것이 <화니와 알렉산더>였다. 이것은 우연이라 하기엔 절묘한 선택이었다. 영화의 많은 장면이 그의 자서전을 연상케 했다. 종교적인 분위기가 짙게 드리워져 있으면서 속으로 많은 것들이 얽혀 있는 대가족(베리만의 아버지는 루터교 목사였고 그는 자서전에서 가족간의 갈등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연극 무대 앞과 뒤에서의, 감동과 고통이 교차하는 삶(베리만은 영화감독이면서 연극연출가였다). 어린 시절 베리만을 쏙 빼닮은 용모의 알렉산더와 심지어 그가 가지고 노는 마술등에 이르기까지(마술등은 일종의 원시적 환등기로서 베리만은 어린 시절 여기에 푹 빠져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영화와 자서전간의 관계를 더듬고 있었던 나는 여느 때처럼 딴 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생활 미학에 대한 것이
[architecture+] 차라리 청빈함을 택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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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티끌모아 로맨스> 남기남과 김꽃달의 결혼생활
[정훈이 만화] <티끌모아 로맨스> 남기남과 김꽃달의 결혼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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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을 꾹 다물고 있다. 7 대 3으로 가지런히 빗어 넘긴 머리를 한 이 남자가 굳게 닫혀 있던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깊고 푸른 눈 위에 자리한 눈썹을 살짝 올렸다 내린다. 됐다. 이제 당신은 라이언 고슬링의 팬이다. 팬이 됐으니 마땅히 그의 코스프레를 해야 한다. 운전을 할 때는 가죽 라이더 장갑을 끼자. 선글라스는 기본이다. 이쑤시개 하나 정도를 입에 물면 더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보머 재킷이다. 등에는 사막에서도 살아남는 강한 생명력의 상징인 전갈 자수를 새겨 넣자. 이제 당신도 라이언 고슬링처럼 보일까. 그럴 리가. 우리에겐 그 입술, 눈썹, 눈동자, 그 미소가 없다.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미소만으로 관객을 매료시키는 <드라이브>의 라이언 고슬링은 알고 보면 말수 적은 이웃집 아저씨다. 이름도 없다. 공식 직업은 카센터 직원이며 자동차 스턴트맨이지만 본업은 범죄자들을 실어 나르는 겟어웨이 드라이버다. 그저 드라이버라 불리는 408호의 과묵한 이 남자는 우연
[라이언 고슬링] 스티브 매퀸의 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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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머니볼>을 봤어요. 화면 가득 수학공식 같은 게 나오던데 메이저리그에서 그런 공식을 정말 사용하나요?
A. 메이저리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사용합니다. <머니볼>에서는 예일대 경제학과 출신의 가공인물인 부단장 피터 브랜드(조나 힐)가 출루율을 기준으로 선수들을 찾아냅니다. 출루율의 공식은 이렇습니다. 출루율=(안타+사구+볼 넷)÷(타수+사구+볼 넷+희생플라이). 복잡하다고요? 이 정도는 약과입니다. 출루율과 장타율의 합인 OPS(On-base Plus Slugging)라는 공식은 더 복잡합니다. OPS={(안타+사구+볼 넷)÷(타수+사구+볼 넷+희생플라이)}+{[단타의 개수+(2루타의 개수×2)+(3루타의 개수×3)+(홈런의 개수×4)]÷타수}. <머니볼>의 동명 원작에는 영화에서 빌리 빈 단장(브래드 피트)이 추종했다고 하는 빌 제임스가 만든 공식이 있습니다. 빌 제임스는 매년 펴낸 자신의 책 <야구 개요>에 득점생산
[Cinepedia] <머니볼>을 봤어요. 화면 가득 수학공식 같은 게 나오던데 메이저리그에서 그런 공식을 정말 사용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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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씨. 저도 서연씨 처지 이해해요.
=네? 기자님이 제 처지를 어떻게 이해하신다는 거죠?
-저도 요즘 정신이 깜빡깜빡하거든요. 어젯밤엔 가스 밸브를 잠갔는지 안 잠갔는지 도저히 기억이 안 나서 잠자리에 누웠다가 일어나서 가스 밸브를 확인했어요. 그런데 또 잠깐 잠들었다가 또 가스 밸브를 잠갔는지 안 잠갔는지 헷갈려서 다시 한번 밸브를 확인하고….
=그런 건 제가 앓는 병과는 별로 관계없을 겁니다. 오히려 주의력결핍장애와 가까운 거겠죠. 저는 알츠하이머예요. 치매라고요.
-하,하지만.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라고요. 오늘 아침엔 금방 샴푸로 머리를 감아놓고는 내가 머리를 감았는지 안 감았는지 도저히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샴푸를 두번이나 했지 뭡니까. 문제는 이런 일이 일주일에 두세번은 발생한다는 거예요. 덕분에 머릿결은 푸석푸석해지고….
=그 정도로는 알츠하이머라고 할 수 없죠. 기자님은 그냥 정신이 좀 없는 사람일 뿐입니다. 저처럼 고유명사가 점점 머릿속에서 사라
[김도훈의 가상인터뷰] 당신은 그냥 머리가 나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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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2년마다 열리는 베를린아시아영화제가 세 번째를 맞았다. 지난 2007년에 아시아여성영화제로 출발했던 영화제는 타이틀에서 아예 ‘여성’을 빼버렸다. 하지만 영화제 출범 당시부터 간판 주제로 삼았던 이주, 젠더, 디아스포라라는 기본틀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지난 10월26일부터 30일까지 열렸던 영화제는 타이, 한국, 대만, 일본, 베트남, 홍콩, 필리핀과 구미 지역의 아시아 출신 감독들의 총 35편의 장·단편영화들을 선보였다. 한국영화는 <무산일기>와 <방가? 방가!>가 상영됐다. 이번 영화제의 주제는 ‘친족’(Imagine(d) Kinship)과 ‘음식’이었다. 그래서 출품된 영화에선 유난히 식사장면과 요리장면이 많이 나왔다. 또한 글로벌 시대의 이주문제, 각 나라의 가족에 관한 얽히고설킨 이야기, 입양문제 등을 다룬 영화들이 눈에 띄었다. 이번 영화제를 이끌었던 공동집행위원장 최선주, 기미코 수다와 이야기를 나눴다. 최선주 위원장은 독일에서 자란
[베를린] 아시아에 대한 고정관념 깨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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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 Mission : Impossible - Ghost Protocol
감독 브래드 버드 / 출연 톰 크루즈, 제레미 레너, 사이먼 페그, 폴라 패튼 / 수입·배급 CJ E&M / 개봉 12월15일
IMF(Impossible Mission Force)가 러시아 크렘린궁 폭발 테러 사건에 연루돼 위기를 맞게 되고, 정부는 분쟁을 피하기 위해 IMF 조직에 대해 ‘고스트 프로토콜’을 발동한다. 조직의 과거도 정체도 모두 지워져버린 것. 순식간에 국제 테러리스트가 되어버린 이단 헌트(톰 크루즈)는 자신과 조직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불가능한 미션을 다시 시작한다. 이번 시리즈 역시 미국 LA, 러시아 모스크바, 체코 프라하, 캐나다 밴쿠버, 인도 뭄바이, 그리고 아랍에미리트 두바이까지 화려한 로케이션을 자랑한다. 제작자 J. J . 에이브럼스가 자랑하는 최고의 장관은 바로 톰 크루즈가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 빌딩 외벽에 매달려 액션을
[Coming soon] 두바이 빌딩 외벽에서 펼쳐지는 톰 크루즈의 액션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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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살에 척추암에 걸린 남자 아담(조셉 고든 레빗)에게 ‘50 대 50’의 정의는 이렇다. 살 확률, 죽을 확률 반반. 전문가인 의사도, 병에 걸린 본인도 알 수 없는 냉혹한 현실. 절친 카일(세스 로건)은 그 수치를 곧장 돌려 해석한다. “50 대 50이라고? 카지노에선 최고의 확률이야!” 물컵의 반이 채워졌을까, 혹은 비었을까와 같은 긍정과 부정의 선택지. 지극히 뻔해 보이지만 수치로 계산하기 힘든 삶의 태도와 철학, 모든 게 담겨 있는 복잡 미묘한 세계다.
아담이 발음하기도 힘든 ‘Schwannoma Neurofibrosarcoma(말초신경종양)’를 설명하며 영화는 여러 번 웃음을 끌어낸다. 단어를 듣는 순간 주변 반응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생소한 병명만큼이나 아담 같은 남자가 병에 걸릴 확률은 10%도 안돼 보이니까. 첫 장면이 조깅 장면인데다 건강에 해로운 술과 담배는 자제, 행여나 사고가 무서워 이제껏 운전면허도 따지 않은 남자가 바로 아담이다. 라디오 방송국 PD
언젠가 병이 닥칠 순간에 되새겨볼 듯한 작고 따뜻한 지침서 <5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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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가 허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건 비단 한국이 처한 상황뿐이 아닌 듯하다. <아바타> <다크 나이트>를 뛰어넘어 브라질 역사상 가장 높은 흥행수익을 기록한 <엘리트 스쿼드2>가 그 살아 있는 예다. <엘리트 스쿼드2>는 액션스릴러 장르의 영화로는 보기 드물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금곰상을 수상한 <엘리트 스쿼드>의 속편이다. 극영화이지만 부정부패가 만연한 브라질의 실태를 다큐멘터리적인 화법으로 고발하는 이 영화는 정부, 국회의원, 검찰로 이어지는 부패와 비리의 악순환을 속도감있게 보여준다(다뤄야 할 비리가 너무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영화의 페이스를 재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히 브라질판 <부당거래>라고 부를 만하다.
전편에서 교황이 왕림할 빈민가의 갱단과 사투를 벌였던 경찰특공대 ‘보피’(B.O.P.E·실존하는 브라질 특공대)의 대장 나시멘토(와그너 모라)가 또다시 주인공이다. 1편에서 ‘성화 작
브라질판 '부당거래' <엘리트 스쿼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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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모텔방에서 한 남자가 비디오카메라를 켠다. 그 순간 카메라는 영화가 가장 내적이고 은밀한 공간을 담아내는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지만 한 가지가 다르다. 남자의 뒤편에 수줍게 앉아 있는 사람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다. 이어지는 장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두 남자는 욕실에 들어간다. 여전히 부끄러워하는 남자와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남자는 이윽고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욕실에서 서로를 애무한다. 카메라가 물줄기에 젖어버린 그들의 성기까지 서슴없이 비출 때, 보는 이는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난처해진다. <REC>의 오프닝신이다.
<REC>는 퀴어옴니버스영화 <동백꽃>의 <떠다니는, 섬> 에피소드, 퀴어단편영화 <올드 랭 사인>을 연출한 소준문 감독이 극장에서 선보이는 첫 중편영화다. 전작을 통해 동성 연인들의 관계를 멜로적인 감수성으로 조명해온 소준문 감독은 <REC>에서도 그 감성을 유지하되 ‘파격’이
시각적 파격과 감정적 신파가 촘촘히 쌓인 퀴어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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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의 한 어촌, 아홉살 소녀가 등대 외벽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경비 할아버지의 으름장도 아이를 말리지는 못한다. 아이의 이름은 다슬이(유해정). 그녀는 동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벽이나 지붕, 혹은 돌담에 그림을 그린다. 다슬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눈사람이 나오는 애니메이션이다. 눈처럼 흰 우유에 밥을 말아먹으며 다슬이는 매일같이 눈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 날 거짓말처럼 하얀 눈이 쌓이고, 다슬이는 정성들여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한다.
<다슬이>는 서번트 신드롬(발달장애가 있는 이들이 특정 분야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갖는 현상)을 보이는 자폐아동 다슬이와 아이의 곁을 지키는 할머니, 그리고 나이트클럽 웨이터인 삼촌의 이야기다. 하늘과 가까운 달동네 단칸방에서 이들은 티격태격하며 서로를 보듬고 살아간다. 다슬이의 재능은 일차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에 있지만, 현실을 아름답게 재구성할 수 있는 상상력 역시 그녀가 가진 놀라운 재능 중 하나다. 영화는 다슬이가 보
어촌 사람들의 일상이 녹아든 착하고 따뜻한 영화 <다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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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모를 질병이 전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확산된다. 사람들은 감정을 발작적으로 돌출시키며 감각을 잃어간다. 이들은 지독한 비탄을 경험한 뒤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되고, 공포와 허기 속에서 미각을 상실하며, 분노를 표출한 뒤 청각을 잃는다. 지구의 멸망과 심판, 그리고 각종 음모에 대한 추측 속에서 생존 의지와 절망이 충돌하고, 사람들은 고립된다. 기존의 관계조차 지속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두 남녀, 과학자 수잔(에바 그린)과 요리사 마이클(이완 맥그리거)이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 둘은 사라져가는 감각들에 의지해 소통을 이뤄나간다.
<퍼펙트 센스>는 적은 예산으로 전대미문의 비상 상황이 주는 혼란을 비교적 잘 구현해낸다. 감각을 잃은 사람들이 현실에 적응해가는 과정도 흥미롭게 그려진다. 사람들은 바이올린 소리로 냄새를 상상하거나 스피커를 붙들고 진동을 느끼는 등, 남아 있는 감각을 가지고 현실에 적응하려고 애쓴다. 누군가는 폭동을 일으키고 약탈을 감행하는
갈등은 느슨하고 휴머니티에 대한 긍정은 급하다 <퍼펙트 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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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는 통증을 느끼는 육신과 노동의 문제로 시작한다. 영화는 초반 피아노 공장, 마네킹 공장, 채석장 등 다양한 산업현장에서 이루어지는 현장보건관리를 통해 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그들이 겪는 산업재해의 현황을 보여준다. 초반부의 특징은 관찰과 집요함이다. 카메라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높은 곳에 고정되어 있다. 다큐멘터리의 목소리나 발언은 배제되어 있으며 지극히 건조하다. 산업재해에 관한 다큐멘터리라고 생각되던 영화는 평생 농사일을 해온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노동과 자본의 문제로 범위를 확장하고 후반부 들어 이 사회를 움직이는 시스템에 대한 문제와 그 시스템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이미지와 재현의 문제로 마무리한다.
자연물인 질료와 인간의 합리성을 기반으로 한 기술을 결합한 것이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대상, 즉 재료라고 가정하면 모든 재료 속에는 재료 자체가 가고자 하는 운동성이 내재되어 있다. 모든 영화에서 재료의 운동성은
노동과 자본,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실험적 다큐멘터리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