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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뱀파이어 헌터>(이하 <링컨>). 그것도 3D. 제목만으로도 모든 것이 설명된다.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라는 장르 매시업 소설을 선보여 인기를 얻은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아마도 제목에 가장 충실한 할리우드영화 중 하나가 아닐까. 제목에서 느껴지는 조크는 영화에서 볼 수 없다. 관객에게 무언의 윙크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크에 가까운 소재를 무척 심각하고 진지하게 접근해 눈길을 끈다. <링컨>은 3D를 통해서 뱀파이어의 쇼킹한 이미지는 물론 화면 구석구석에서 리얼함을 느끼게 해준다. 작은 먼지 알갱이에서부터 뱀파이어의 공격과 대규모 추격전까지. <트와일라잇>의 뱀파이어를 생각하는 관객은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시길. 이를 위해 감독, 프로듀서, 원작자, 배우들과의 인터뷰도 전한다.
어린 링컨은 뱀파이어가 어머니를 살해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복수를 다짐한 그는 청년으로 성장한 뒤 우연히
지루한 뱀파이어는 못 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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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다큐멘터리는 한 인물이나 공동체의 역사를 압축한다는 점에서 (내 입장에서는) 중요한 자료다. 물론 ‘자료’이기 때문에 그 관점이나 맥락에 휘둘리지 않아야 할 필요가 더 많이 요구된다. 이를테면 “그는 록의 전설이었어요”라는 말에 감동받을 수는 있어도 그걸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것이다. 솔직히 피곤한 일이다. <말리>를 보면서도 그랬다. 레게를 이해하기 위해선 래스터페리언의 내적 모순과 60년대 이후에 음악 산업이 발굴한 인터내셔널 음악 제작, 배급 정책 등을 동시에 살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인상적이었던 건 다른 맥락 때문이다. <말리>에 묘사된 밥 말리는 레게 뮤지션이 아니라 종교 지도자 같았다. 음악 연구에서 콘서트는 종종 제의로 묘사되는데 거기에 가장 부합한단 생각도 들었다. 망명 중이던 밥 말리가 자메이카로 돌아와 양 극단의 정치 지도자를 화해시키는, <One Love Peace Concert>가 특히 그랬다. <Jamm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그 순간 그는 목사이자 MC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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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서 누가 바쁘지 않으랴마는, 뮤지컬 TV시리즈 <글리>의 크리에이터 라이언 머피는 적어도 톱10에 들 만큼 바빠 보인다. 바로 지금, 그의 손안에서 채널과 방영일자까지 결정된 TV시리즈는 3편이고, 제작하는 리얼리티 TV쇼가 1편 있다. 머피가 이토록 바빠진 건 이제는 신화가 된 <글리>의 대성공 때문이었을 것이다. 머피는 2009년 시작한 <글리>가 안정권에 오르자, <글리>를 함께 만든 브래드 팔척과 함께 케이블 채널 <FX>에서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를 시작했다.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는 저주에 걸린 집에 이사 온 가족이 겪는 사건들을 ‘섹스’라는 프리즘에 통과시켜 만들어낸 새로운 드라마로, 낙태, S/M, 약물, 총기난사, 불륜, 강도 등 매주 논쟁적인 소재를 끌어들였다. 부담스러울 정도의 낙천주의로 희망을 노래하는 <글리>의 창조자에게 이토록 어둡고 음흉한 면이 숨어 있었다니
[안현진의 미드 크리에이터 열전] 남들이 하지 않는 걸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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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님>에서 침팬지 ‘님’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 가정에서 양육된다. 연구진은 님을 사람처럼 키워 언어소통이 가능한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님은 후강구조상 인간의 언어를 말할 수 없으며, 마침내 터득하는 엄청난 수의 수화도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표현에 불과했다. 궁극적인 소통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두 번째 비극은 실패 판정을 받은 님이 침팬지 사회로 복귀하면서 벌어진다. 그때 님의 눈이 보여준 경악감은 영화에서 가장 잊히지 않을 이미지다. 님은 인간사회는 물론 침팬지 사회에서도 적응하지 못하는 존재로 남는다. 인간과 다르지 않게 키우려던 한 박사의 과욕은 한 침팬지가 고독과 슬픔 속에 삶을 마치도록 만들었다. 1970년대 초반, 우리 반에 지적장애인 한명이 있었다. 성적은 당연히 꼴찌였고, 수업 도중 의자에 오줌을 지리는 통에 놀림의 대상이 되곤 했다. 오줌을 눈 채 어쩌지 못하는 소녀의 표정은 멀리 앉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결국 소녀는
[이용철의 아주 사적인 클래식] 남과 다르다고 울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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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80년 김해 예안리 고분을 조사한 부산대박물관 발굴단의 시선은 뜨거웠다. 확인된 인골 210구 가운데 희한한 인골들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부산대의대 김진정 박사팀의 분석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몇몇 인골의 머리가 인공적으로 변형된 흔적이 역력했던 것이다. 검토해보니 10구나 됐다. 연구자들은 퍼뜩 <삼국지> ‘위서·동이전·변진조’를 떠올렸다.”(‘성형에 빠진 동이족, 죽음을 무릅쓰고’,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경향신문> 2012년 8월15일자)
가야의 편두 풍습
연구자들이 떠올렸다는 <삼국지> ‘위서·동이전·변진조’의 구절은 다음과 같다. “아이가 태어나면 돌로 머리를 누른다. 머리를 모나게 하려는 것이다(兒生 便以石厭其頭 欲其). 지금 진한 사람은 모두 편두다(今辰韓人皆頭). 왜와 가깝다보니 남녀가 문신도 한다(男女近倭 亦文身).” 이렇게 역사적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가야의 풍습이 발굴된 유골을 통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우월함은 어떻게 과시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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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중계가 여전히 못마땅하다. 이렇게 채널이 많아졌는데, 어째서 한국과 관련된 경기만 계속 틀어주는지 화가 날 때도 있다. 육상 경기는 도대체 왜 안 보여주는 거야! 좋아하는 육상 경기를 많이 보려면 뛰어난 한국 육상 선수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려주어 한국 육상에 대한 지원과 관심을 이끌어내려는 방송사의 속 깊은 배려인가. (설마!)
내가 원하는 올림픽 중계는, 경비실의 CCTV 메인 화면 같은 것이다. 분할된 화면 속에 여러 종목의 경기가 벌어지고 있고, 내가 원하는 화면을 클릭하면 그 종목의 중계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해설 같은 건 필요없고 그냥 경기를 볼 수만 있으면 된다. (무식하게 말해서) 종목당 CCTV 하나씩 설치하면 간단하잖아요!
대회 마지막 전날, 남자 5000m 결승과 남자 4X100m 계주 결승과 여자 높이뛰기 결승을 볼 수 있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한국 선수들이 없으니 마음 편하게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들의 동작 하나하
[김중혁의 최신가요인가요] 2012년 여름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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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하루라도 빨리 고향을 뜨고 싶었다. 부모님께 불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손바닥만 한 땅뙈기도 없는 형편에도 중학교까지 마치게 해주셨는데, 불만이라니! 당치 않은 소리다. 나는 다만 이 촌구석이 지긋지긋했을 뿐이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마음먹은 대로 되던가? 먼저 떠났던 친구 소식이 마을 전체에 퍼지면서, 상경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YH무역인가 하는 가발 공장에서 일하던 삼숙이가 글쎄, 데모를 하다 경찰에 잡혀갔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년이 서울 가더니 빨갱이가 되었다”며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 내게 고향 바깥으로 나가는 건 아예 꿈도 꾸지 말라고 못박았다. 하긴, 옛날 여순반란사건으로 풍비박산났던 집안 내력을 떠올려보면, 아버지의 반응이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 추석에 선물꾸러미를 싸들고 내려왔을 때만 해도 삼숙이에게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가난한 집구석, 입 하나 덜자고 방배동인가, 먼 친척집으로
[design+] 갈뫼마을의 어떤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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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올림픽이 폐막했다. 다음 영화 시나리오를 쓰느라 마음이 분주한 탓에 모든 경기를 다 보지는 못했지만 좋아하는 축구와 육상 경기는 잠을 쫓으며 챙겨봤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동메달을 따는 것도 가슴 졸이며 지켜봤고 우사인 볼트의 3관왕 세리머니도 유쾌했다. 남아공의 의족 선수 피스토리우스가 1600m 계주 결선에서 역주하는 장면은 참으로 뭉클했고 개인적으로 이번 올림픽 최고의 장면이 아닐까 싶었다.
폐막식 역시 인상적이었다. 개막식에서는 롤링 스톤스, 섹스 피스톨스, 폴 매카트니의 음악이 나오더니 폐막식에서는 아예 영국의 전설적인 팝가수들이 모두 등장해 눈과 귀를 황홀하게 했다. 존 레넌과 프레디 머큐리가 되살아났고 조지 마이클, 스파이스 걸스, 테이크 댓, 타이오 크루즈, 뮤즈, 오아시스, 비디 아이를 거쳐 더 후가 피날레를 장식했다. 이보다 더 완벽한 라인업을 갖춘 콘서트는 다시 찾아오기 힘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전세계인을 사로잡은 자신들의 대중음악에 대한 영국인의 긍지
[SO WHAT] 노동의 가치를 아는, 그날은 언제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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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필모그래피
1986 <카라바지오>
1988 <대영제국의 몰락>
1989 <전쟁 레퀴엠>
1990 <정원>
1991 <에드워드 2세>
1992 <올란도>
1996 <여성의 도착(倒錯)>
1998 <러브 이즈 더 데블: 프랜시스 베이컨의 초상을 위한 스케치>
2000 <비치>
2001 <딥 엔드> <바닐라 스카이>
2002 <어댑테이션> <테크노러스트>
2003 <영 아담>
2005 <콘스탄틴> <브로큰 플라워>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2006 <스테파니 댈레이>
2007 <마이클 클레이튼>
2008 <줄리아> <나니아 연대기: 캐스피언 왕자> <번 애프터 리딩>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2009 <
[신 전영객잔] 그/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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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물빛이 이상했다. 하긴, 한강에서 ‘물빛’ 타령을 하는 게 더 이상하지. 20여년 전 내가 한강을 처음 보았을 때에도 살아 있는 ‘강물의 빛’ 같은 건 없었다. 뭐랄까, 강이 어떤 것인지 아는 나 같은 촌뜨기의 눈에 그것은 ‘강’이라고 하기에 명백히 어불성설인, 일종의 운하나 수로 혹은 수곽에 가둔 더러운 물 창고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한강변에서 데이트와 산책을 즐겼고 청년들은 젊음을 발산하며 위로받았다. 그런 풍경이 눈물나게 짠했다. 죽어가는 강이라 해도 아무튼 거기, ‘강 비스무리한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이렇게 위로를 받는구나.
그런데 말이다. 예전에 서울시가 편찬한 <한강의 어제와 오늘> 이라는 책을 보고 정말이지 ‘깜놀’한 적이 있다. ‘아, 본래의 한강이 이렇게나 아름다운 강이었단 말이야?!’ 정말 놀랐고, 한강에게 한없이 미안했다. 진경산수화로 이름 높은 겸재 정선이 그 아름다움에 반해 그리고 또 그려도 늘 새롭다고 예찬한
[김선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미안해,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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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짧아진 머리 길이만큼이나 조윤희의 표정이 가볍다. 무거운 짐을 여행지에 풀어놨을 때의 홀가분한 느낌처럼 말이다.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방이숙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그녀는 아마도 ‘변신’이란 짐을 이제 막 푼 것 같았다. 그동안 내 남자의 아름다운 옛 애인이거나 첫사랑으로서 마치 환상처럼 머릿속에 자리잡았던 조윤희. 그녀가 영화 <공모자들>을 통해 이제 막 현실에 발을 디뎠다. 그런데 그 현실이 결코 만만치 않다. 장기밀매를 소재로 하는 <공모자들>은 이름 모를 누군가의 심장을 무참히 도려낸다는 점에서 현실보다 지옥에 한발 더 가깝다. KBS 주말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모태솔로, 연애숙맥 방이숙으로 천재용(이희준)과 풋풋한 사랑을 키워나가고 있는 그녀가 납치, 장기적출, 밀매가 벌어지는 중국행 여객선에 선뜻 오른 이유가 궁금했다. “영화에 대한 갈망이 있었는데 제의가 들어와도 시나리오를 보면 할 수가 없었
[조윤희] 지옥 문을 서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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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사내가 있다. 장기밀매꾼 생활을 청산하고 ‘따이공’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사랑하는 여자도 있다. 하지만 일이 꼬인다. 착한 그녀가 무슨 사연인지 사채에 손을 댔다는 말도 들려온다. 그는 동아줄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브로커의 제안을 수락한다. 누군가의 심장을 도려내어 배달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게 그는 생애 마지막 ‘작업’을 위해 다시 중국으로 향하는 배에 오른다.
<공모자들>의 영규, 그는 악인이다. 아니다. “그는 인간이다.” 배우 임창정은 그렇게 말했다. 악인열전이라면 이미 나홍진의 <추격자>와 <황해>, 김지운의 <악마를 보았다>가 있었다. 그러니 잔인함에 방점을 찍기보다 절대적으로 이야기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이야기란 어쩌다 그런 일을 하게 된 남자의 이야기다. “그들이 유년 시절부터 그렇게 살았더라면 감옥에 가든 누구 손에 죽든 이미 사달이 났겠지. 보편적 정서를 가지고 살다가 어느 지점에서 톱니바퀴가 어긋나면
[임창정] 거울 앞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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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정 하면 순정 충만한 코미디, 조윤희 하면 아련한 멜로나 로맨스. 최근까지만 해도 그건 공식이었다. <공모자들>은 그 유효기간이 다했음을 알린다. 중국행 여객선에서 무차별 장기밀매가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배경으로 한 이 극악무도한 범죄스릴러에서 그들은 각자 필모그래피의 새로운 챕터를 열어젖혔다. 물론 그 변신이 외딴 별에서 온 것처럼 생경한 종류의 것은 아니다. 임창정의 영규는 그가 거쳐왔던 안쓰러운 남자들을 닮아 있고, 조윤희의 유리도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무언가는 여전히 지닌 채다. 단지 거기에 새로운 표정이 더해졌는데, 지속 위에 있는 그 변화가 우리로 하여금 그 이유를 질문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답변을 듣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과연 그들의 변신은 무죄.
[임창정, 조윤희] 지속 가능한 차가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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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나오긴 하는 걸까. 카메라가 도깨비방망이도 아니고. 2010년 겨울,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들은 양은용(<내부순환선> <경>), 서영주(<은하해방전선>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김꽃비(<똥파리> <창피해>), 이 세 여배우에게 카메라를 맡기면서 적잖이 불안했을 것이다. “정말 우리 마음대로 찍어도 돼요?”라는 배우들의 되물음은 무모한 도전에 내몰린 배우들의 비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작된 <나 나 나: 여배우 민낯 프로젝트>. 카메라 작동법도 모르던 세 배우가 1년 만에 셀프 다큐멘터리를 무사히(!) 완성할 수 있었던 데는 독립영화에 대한 애정이 작동해서였을 것이다. 8월23일 극장 개봉을 앞두고 만난 세 배우, 아니 세 감독은 카메라 공포증에 대한 토로는 물론이고 시어머니 격인 부지영 총감독의 끊임없는 감시에 대한 불만까지, 쉬지 않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털어놨다.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
[서영주, 김꽃비, 양은용] 나의 시선을 담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