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의 손길>은 대만의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유시앙의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유시앙이 직접 자신을 연기했고,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했다. “반은 실화고, 반은 만든 이야기지만 현실적으로 그리려 했다. 난 대본을 외울 필요가 없었다. 큰 방향만 잡고 편하게 연기했다. 그 외 지팡이를 움직이거나 잡는 모습들을 직접 보여주려 했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 그가 필요했던 이유는 피아노였다. 시각장애인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많지만, 유시앙 만큼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는 배우는 없기 때문이다.
선천적으로 시각장애를 가진 유시앙은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많은 좌절을 경험했지만, 노력 끝에 지금은 ‘마사키 바바’라는 밴드에 소속돼 수많은 뮤지션과 협연하고 있다. 지난 6일에는 <빛의 손길> 상영이 끝난 후, 관객들에게 직접 연주를 들려주기도 했다. 아마 그의 진짜 사연 속에는 눈물을 기대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을 것이다. 주인공을 위해 헌신하는 가족들의 희
[people] 눈물 대신 청춘의 꿈
-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는 북한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엔터테인먼트만을 위해 기획된” 작품이다. 곡예사를 꿈꾸는 탄광촌 소녀의 이야기 속에는 스포츠영화의 열정과 로맨틱코미디의 웃음, 그리고 곡예의 경이로움이 한데 엮여 있다. 하지만 북한의 김광훈 감독과 공동연출로 이 영화에 참여한 니콜라스 보너(왼쪽)와 안자 델르망은 바로 “그 점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 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총 6년이 걸렸다. 그중 3년 동안 시나리오를 고쳐야 했다. 북한의 제작사들은 대부분 주인공 여자의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과 훈련을 받지 않은 여자가 어떻게 곡예사가 될 수 있는지 등을 지적했다. 우리는 단지 동화 같은 이야기를 만들려고 한 것뿐인데 말이다.”(안자 델르망)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영화는 지난 9월24일, 평양국제영화제에서 최고 감독상을 받았다. 당시 영화를 본 북한 관객들은 “여자주인공이 진취적으로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이야기”라는 점에 열광했다고 한다. “그녀의 옆에는 강한 남
[face] 유럽의 시각? 그저 북한 영화일 뿐
-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핸드프린팅의 마지막 주인공은 중남미를 대표하는 감독 아르투로 립스테인이었다. 해운대 비프빌리지에서 열린 아르투로 립스테인 감독의 핸드프린팅 현장부터 와이드앵글 파티에 모습을 드러낸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의 모습까지. 폐막까지 하루를 남겨둔 부산국제영화제의 이모저모를 고스란히 담았다.
“마지막 핸드프린팅의 주인공은 바로 나!” 와카마츠 코지, 아그니에슈카 홀란드 감독에 이어 핸드프린팅 행사에 참여한 아르투로 립스테인 감독과 이용관 집행위원장. (왼쪽부터)
“파티에 오니 호랑이 기운이 솟네요.” 와이드앵글 파티에 참석한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
우리 노래 <감자탕> 들으면 감자탕 먹고 싶어지지 않나요?” 해운대 비프빌리지에서 야외무대공연을 연 백수와 조씨.
뉴 커런츠 심사위원부터 특별강연까지, 지성의 꽃으로 손꼽히는 프랑스의 소설가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가 부산영화포럼에서 특별강연을 열었다.
“우리가 바
[hot spot] 여기, 부산에 내 손바닥을 남깁니다
-
1. 제가 어떻게 감독이 됐냐면요
‘한국영화의 오늘 - 비전’ 부문에 초청된 10명의 감독 가운데 6명이 모였다. (사진 왼쪽부터) 이공희(<기억의 소리>), 이로이(<멜로>), 오멸(<지슬>), 신수원(<명왕성>), 이지승(<공정사회>), 최위안(<낭만파 남편의 편지>) 감독 등이다. 10일 오후 6시 영화의 전당 비프콘라운지에서 열린 아주담담 행사에서 이들은 자신이 겪었던 다양한 사회적인 경험을 영화에 녹여낸 감독들이라는 소주제로 관객들과 만났다. 이공희 감독은 영화를 전공한 후, 문학과 영화를 오가며 활동하다 50대 중반에 첫 장편을 만든 감독이다. 그는 “과거 글을 쓰면서도 영상시 작업을 했던 경험이 <기억의 소리>를 본 관객들에게 많은 질문을 하게끔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멜로>를 연출한 이로이 감독은 프랑스에서 미학을 공부하던 도중 영화에 빠져들었다. 오멸 감독과 신수원 감독은
BIFF must list
-
-
몇해 전, 윤종신이 <라디오스타>의 MC를 맡을 때 어떤 사람들은 “이건 아니지!”라고 외쳤다(나는 아니었다). 거기서 그는 “교복을 벗고~”를 남발하며 ‘불후의 명곡’인 <오래전 그날>을 농담으로 만들었다. 그걸 보면서 가수나 배우나 어쨌든,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영광 따위 알게 뭐람, 지금 뭘 하는지가 중요하다.
<익스펜더블2>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 영화는 차라리 두 시간짜리 ‘예능 쇼’인데, 맥락도 개연성도 없이 총알이 빗발치는 중에 ‘왕년의 액션배우들’이 한 화면에 나오는 것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척 노리스가 등장할 때 흐르는 <석양의 무법자> 메인 테마야말로 가장 적절했다. 정말 뜬금없었으니까(굳이 공통분모를 찾자면, 대부분의 마카로니웨스턴 무비도 다수의 80년대 액션영화들처럼 낮은 평가와 높은 인기를 누렸다는 정도?). 하지만 이 영화의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즐거우면 됐지 뭘
-
주인공, 특히 남자주인공의 인생이 초장부터 기구하기로 치면 이경희 작가의 드라마만 한 게 있을까.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차무혁, <상두야 학교가자>의 차상두, <이 죽일놈의 사랑>의 강복구 등. 곡절 많은 가족사와 비루한 삶 속에서 남은 혈육, 혹은 그 비슷한 사람을 위해 사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이어가던 이 남자들은 생에 단 한번 이기적인 사랑이나 눈먼 복수에 에너지를 쏟아내다 그것도 의미를 잃는 순간 스러진다. 뭔가 충족되지 않은 채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은 백마 탄 왕자님의 반대편에서 ‘나란 남자 위험한 남자. 도망치려면 지금뿐’이라고 중얼거리지만, 사랑을 갈구하는 위악적인 제스처와 허기진 눈빛에 극중 수많은 여자들은 속절없이 빠져드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정말로 풍덩풍덩 잘도 빠진다. <이 죽일놈의 사랑>에서는 강변에 놀러간 남자를 뒤따라간 여자가 다리에서 뛰어내렸고 KBS2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에서는
[유선주의 TVIEW] 나란 남자 (속은) 착한 남자
-
2층에 올라가면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겠단다. 고속으로 달리고픈 치들은 직선으로 뚫린 길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하물며 지그재그로 난 길은 말해 뭐하랴. 그들은 그런 길일랑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다. 시간이 소중한 줄 알면서 정작 시간이 뭘 해줄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이탈리아 횡단밴드>에서 음악제에 나설 네 남자는 마차를 대동하고 길을 떠난다. 차로 몇 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는 그렇게 해서 열흘 동안의 낭만적인 여정으로 탈바꿈한다. 노래하고 이야기하고 촬영하면서 그들은 뱀의 몸처럼 구불거리는 길 위를 잘도 걸어간다. 황량한 산간 지대를 통과할 무렵 누군가가 카를로 레비와 그의 자서전 <그리스도는 에볼리에서 멈추었다>에 대해 말을 꺼낸다. 이어 레비가 머물렀던 산간 마을에 도착한 그들은 포도주 잔을 높이 들어, 밴드가 정체성을 찾도록 영감을 준 그를 기린다. 그뿐인가, 영화에서 레비 역할을 맡은 지안 마리아 볼론테에게 건배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프란체스코
[이용철의 아주 사적인 클래식] 네오리얼리즘 적자의 위대한 증명
-
“평론가란 ‘생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산에 기생하는 사람’이다. 영화평론가란 대개 영화감독에의 꿈을 접은 사람들에게서, 음악평론가란 작곡이나 연주자의 꿈을 접은 사람들에게서, 문학평론가란 작가의 꿈을 접은 사람들에게서 출발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평론가란 대개 애초 생산을 꿈꾸었으되 재능의 부족이나 의지의 박약, 혹은 지나치게 운이 없어 꿈을 접었으나, 아예 그 바닥을 떠나려니 너무나 서럽고 딱히 갈 데도 없어 ‘남의 생산에 평론이나 일삼으며 사는 사람’이다.”
어떤 문화혁명
김규항이라는 ‘평론가’의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평론가가 아니라, 평론가를 평론하는 메타평론가다(소위 ‘지식인 비판’). 그의 논리대로라면, 메타평론가 역시 “평론을 생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평론에 기생하는 사람이다. 애초 생산을 꿈꾸었으되 재능의 부족이나 지식의 박약, 혹은 지나치게 운이 없어 꿈을 접었으나, 아예 그 바닥을 떠나려니 너무나 서럽고 딱히 갈 데도 없어 남의 평론에 평론이나 일삼으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평론가라는 기생충
-
지난 ‘최신가요인가요’ 글 중에 가장 인기가 많았던 것은 (뭐, 정확한 통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의 노래교실 이야기를 썼던 김연자의 <10분 내로> 편이었다. 글을 잘 읽었다고 인사를 해주는, 이른바 ‘피드백’이라는 것을 자주 받지 못하는 편인데 (지난 글에 밝힌 것처럼 가끔 추천곡을 받을 때도 있긴 하다) 김연자에 대한 글만큼은 여러 종류의 이야기를 들었다. 재미있었다는 사람도 있고, ‘너도 이제 늙었구나’ 싶었다는 사람도 있고, 마음이 짠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어머니의 이야기라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았나 싶다.
추석을 맞아 고향에 내려왔으므로 칼럼 한주분은 가뿐하게 우려먹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어머니에게 요즘 어떤 노래를 배우고 있는지 물어보고, 그 노래에다 적당히 소금치고 후추치고 두루치고 장식해서 내놓으면 간단할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사란 게 늘 그렇듯 만만하지가 않다. 어머니는 노래교실에 흥미를 잃고 있었다. 노래 부르는 건 여전히 좋아하지만
[김중혁의 최신가요인가요] 끈일까 벽일까
-
그녀가 사라진 지 한달이 지났다. 큰 집에서 현모양처로 사는 게 꿈이라던 그녀. 유석(김주혁)은 그 꿈을 이뤄주기 위해 대출을 받아 집까지 새로 장만한 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문자 한통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지금 유석은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에 출근해, 창가에 앉아 아이패드에 저장된 그녀의 사진을 보고 있는 중이다. 오전 11시 반, 아직 손님이 드문 시간대라 카페 안의 분위기는 고즈넉하다. 추억을 되새김질하기 안성맞춤인 시간. 그런데 갑자기 한 무리의 30대 아줌마들이 이 정적을 깨고 카페에 등장해 간단히 주문을 마친 뒤, 수다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분위기, 심상치 않다.
“지난 주말에 성호 엄마가 우리 집에 잠깐 놀러왔었거든. 그런데 새로 이사 간 동네 분위기가 장난 아니래.” “남편 직장 때문에 그쪽으로 간 거잖아. 여기 아파트 전세 내주고, 곧 다시 돌아온다며 갔잖아.” “응, 그런데 성호를 거기 유치원엘 보냈는데, 글쎄 그 유치원 엄마들이 세파로 갈려 있다지 뭐야,
[design+] 동네 카페의 사운드스케이프
-
최근 우리의 독도와 중국명 댜오위다오, 일본명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영유권 문제로 동북아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일장기와 일본 제품이 불태워지고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에서 원정 온 극우단체 회원들이 백주에 위안부 소녀상 앞에 말뚝을 꽂는 등 온갖 파렴치한 작태들을 태연히 저지르고 있다. 나는 이런 소모적인 감정싸움이 하루빨리 없어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아마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최근 벌어진 영유권 갈등의 핵심에는 동북아 삼국의 서로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과 편견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국과 한국인들을 국가간의 상호 조약이나 국제 법령 등을 어느 때든 편의적으로 무시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막무가내로 징징거리는 교양없는 이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 일본과 일본인들을 과거에 대한 반성은커녕 저열한 역사의식으로 아직도 남의 땅을 기웃거리는 후안무치한 이웃으로 생각하고 있다. 또 중국은 일본을 사악한 사기꾼으로, 일본은 중국을 무지한
[SO WHAT] 편견의 유령들
-
“첫 멜로영화이자 나를 놓고 연기한 첫 작품이다. 30대를 여는 첫 작품이기도 하고.” <용의자 X> 제작보고회 때 류승범은 유독 ‘처음’을 강조했다. 그 말은 무언가를 처음 경험했다는 뜻도 가지고 있겠지만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선언처럼 들리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용의자 X>에서 그가 연기한 ‘석고’는 그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류승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남자다. 언제나 에너지가 넘쳤던 전작과 달리 석고는 사회성이라고는 전혀 없이 오로지 수학에만 몰두하는 히키코모리 같은 남자다. 우연히 옆집에 사는 화선(이요원)이 전남편을 살해하는 것을 목격한 석고는 어떤 이유로 화선을 위한 완벽한 알리바이를 설계한다. 언제나 누군가가 낸 문제를 풀다가 처음으로 아무도 풀 수 없는 문제를 낸 석고는 어떤 의미에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류승범과 맞닿아 있는 인물이었다.
-얼마 전 <베를린> 촬영을 끝냈다.
=지난해 10월부터 지금까지 쉼없이 달려
[류승범] 이 배우의 알리바이
-
며칠 전 꽤 황당한 뉴스가 타전되었다. 미국의 한 보안업체가 좀비 대비 훈련을 실제로 시행한다는 뉴스였다. 이 좀비 대비 훈련에는 미군과 경찰, 의료진, 연방 공무원 등 1천여명이 참가하며, 가짜 좀비들을 사람들 사이로 투입한다고 한다. 놀라워라, 국가 공권력이 좀비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실토라도 하는 것일까.
미국의 좀비 사랑은 익히 알려진 이야기. 시카고나 시애틀 같은 미국 대도시에선 아예 수천명이 모여 좀비 퍼레이드를 연다. 각기 좀비로 분장해 수천명이 흐느적흐느적 도시를 행진하는 것이다. 이 축제는 유럽으로도 수출돼 점점 규모가 늘어나는 양상인데, 영국에서는 ‘좀비 오디션’도 등장했다.
하긴 그뿐이랴. 조지 로메로의 ‘시체 4부작’에서부터 최근 개봉한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미드 <워킹 데드> 등 영화, 드라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좀비 관련 게임들이 증명하듯 이미 매스 미디어는 좀비에게 점령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이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좀비시대
-
요즘 프린터 시장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건 소형 포토 프린터다. 디지털카메라 시장의 침체와 함께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찾던 프린터 제조업체들이 안착한 것이 바로 스마트폰용 소형 프린터 시장이다. LG 포켓 포토는 그 시작을 알리는 제품이다. 무게는 겨우 200g 남짓. 휴대가 손쉬운 이 프린터는 스마트폰에 저장된 콘텐츠를 50x76mm 크기의 사진으로 인화할 수 있다. 기존 폴라로이드 사진기와 다른 건 원하는 사진만 골라 인쇄할 수 있다는 것. 또한 필터 효과는 물론 텍스트나 QR코드, 심지어 사진을 분할하고 여권이나 반명함 크기로 사진을 뽑을 수도 있다. 유지비용도 장당 500원 정도에 불과하고 사진의 출력 시간은 45초(여타 폴라로이드 사진기는 평균 100초 이상이 걸린다), 한번에 최대 20장 정도의 사진을 출력할 수 있다. 화질은 기존 폴라로이드에 비하면 상당히 선명한 편. 아직은 안드로이드폰만 사용 가능하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18만원대.
[gadget] 손안의 프린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