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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제 명에 죽고싶다> Your Time is Up
김승현 | 한국 | 2012년 | 85분
OCT11 CGV4 19:00
정수기 관리사 석호는 하루하루가 고달프고 외롭다. 백수인 동생 진호는 그에게 짐만 될 뿐이다. 진호는 대학원에 가겠다며 형에게 오백만원을 받아내서는 술집 여사장 희영에게 빌려준다. 이 사실을 눈치 챈 석호가 돈을 받아오라 채근하자, 진호는 희영을 찾아 나서고 곧 우발적인 사고가 일어난다. <누구나 제 명에 죽고 싶다>는 피곤함을 토로하는 주인공 석호의 혼잣말로부터 시작해 같은 대사로 끝이 난다. 정신분열증적으로 내몰아가는 일련의 현실조건 속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고달픈 일이 된다. 주인공 석호는 이 같은 현대인의 피로감을 표상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 작품의 중반 이후까지 석호는 동생의 일에 무감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동생의 비극을 한 번 더 반복, 변주하며 복수극을 벌인다. 영화는 폭력조직, 사채시장 등 익숙한 설정
[competition] <누구나 제 명에 죽고싶다> Your Time is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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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손길> Touch of the Light
장영치 | 대만, 홍콩 | 2012년 | 110분
OCT11 롯데4 13:00
맹인 피아니스트 유시앙의 실화를 토대로 한 영화다. 영화의 전반부는 대학에 입학한 시앙의 적응기와 댄서의 꿈을 접고 음료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치에의 일상을 교차시킨다. 도로에서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두 사람은 가까워지고, 서로의 독려에 힘입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된다. 간혹 주인공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빛의 손길>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고운 심성을 지녔다. 착한 캐릭터와 교훈적인 결말, 감동을 자아내는 일부 장면들이 익숙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빛의 손길>에는 이 같은 단점들을 상쇄하는 분명한 미덕이 있다. 영화는 시앙이 주변 사물의 위치를 파악하고 동선을 익히는 과정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 마치 시앙의 인도로 새롭게 눈을 뜨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다소 남발되는 감은
[competition] <빛의 손길> Touch of the 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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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생으로 유명해지자
“이번엔 아예 문제생으로 유명해지자 마음먹고 왔다.” <가족의 나라> 기자회견에 참석한 양영희 감독은 씩씩하게 말했다. “전작을 만들 때 평양의 가족에 해가 될까봐 조심했던 것들,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이 많았지만, 이번엔 우리 가족을 아주 유명한 가족으로 만들면 오히려 피해가 안가겠다 생각했다”는 감독이다. 그런 ‘작전’에 도달하기까지 그녀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해야 했을까. 난생 처음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삼켜야했다. 그러고 보니 3년 전 <굿바이, 평양>으로 부산을 찾았을 때의 그녀가 단박에 이해가 됐다. 난 그때 아마도 오해를 좀 했던 것 같다. 전작 <디어 평양>으로 그녀를 조금은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인터뷰 내내 의외로 삼가는 말이 너무 많아 의외였다. 우리 사이엔 엄연히 ‘여기까지…’의 장벽이 있었다. 인터뷰이가 기자에게 털어놓지 못할 말이 있는 건 당연하지만, 사뭇 냉담한 태도가 느껴져 야속한 마음도 없잖아 들었던 차
[부산에서 만난 사람] 말하지 못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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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준> Arjun
아르납 차우두리 | 인도 | 2012년 | 95분
OCT11 소향 11:00
고대 인도의 하스티나푸르 왕국의 영웅 아르준은 어렸을 때부터 총명했다. 하지만 왕권을 노리는 사촌인 두르요단과의 갈등에 아르준은 권력과 중심에서 배제되어 끊임없이 도망을 가야 되고 길을 떠나야 된다. 두르요단이 그를 죽이려고 하고 아르준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지만 또 아르준은 부인까지 모두 잃는 수모를 당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에서 아르준은 용감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영화는 진정한 전사가 되는 길과 그것에 따르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무술 스승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그것에 중점을 맞추면 두려움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과 싸움을 벌일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인내와 고난의 시간을 거친 아르준은 마지막 결투에서 스승과 맞서게 되고 마침내 두르요단을 누르고 승리한다.
영화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 구조를
[wide angle] <아르준> Ar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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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크뢰이어> Marie Kroyer
빌 어거스트 | 덴마크 | 2012년 | 98분 | 월드 시네마
OCT11 롯데3 17:00
빌 어거스트 감독이 명화 속 인물을 현실로 끄집어냈다. 덴마크의 화가 페더 세버린 크뢰이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그의 아내 마리 크뢰이어가 바로 그 인물이다. 명망 높은 예술가 남편 페더와 함께 온화한 일상을 보내는 마리. 그러나 점점 정신이상 증세가 심각해지는 남편 때문에 마리는 사실 상실감에 빠져 있다. 일상에 지친 마리는 남편이 입원한 사이 어린 딸과 함께 휴양지로 떠난다. 마리는 그곳에서 젊은 작곡가 휴고 알벤과 사랑에 빠진다. 마리는 죄책감에 페더에게 휴고와의 사이를 털어놓는다. 분노한 페더는 화를 내지만 아내를 떠나보내기엔 자신의 사랑이 너무나 깊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된다. 결국 페더는 마리와 휴고의 사랑을 인정하고 휴고를 자신의 곁으로 불러들인다. 마리, 휴고, 페더가 아슬아슬한 삼각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페더의 병세가 심각해지
[cine choice] <마리 크뢰이어> Marie Kro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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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의 돌> The Patience Stone
아티크 라히미 | 프랑스, 독일, 아프가니스탄 | 2012년 | 98분 | 월드 시네마
OCT11 M해운대M 16:00
언제 폭탄이 떨어져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아프가니스탄으로 추정되는 한 마을. 한 여인이 머리에 총상을 입고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간호한다. 남편과 두 딸을 책임져야 하는 여인은 무장한 남자들이 집을 드나들며 위협을 가하는 상황에서도 집을 떠나지 않는다. 대신 끊임없이 알라에게 기도를 올린다. 그 기도는 점점 한탄과 원망의 말로 채워진다. 급기야 여인은 혼수상태의 남편을 인내의 돌이라 믿기 시작한다. 인내의 돌은 비밀을 털어놓으면 그 돌이 비밀을 모두 가져간 뒤 폭발해, 화자를 해방시켜준다는 신화 속 상상의 돌이다. 그 과정에서 남편의 치부와 여인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난다. <인내의 돌>은 2008년, 프랑스의 최고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한 동명소설을 영화한 것이다. 원작을 쓴 아프가니스탄
[cine choice] <인내의 돌> The Patience 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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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자전거> My Father’s Bike
피오틀 차스칼스키 | 폴란드 | 2012년 | 94분 | 오픈 시네마
OCT11 COMC 20:00
OCT12 소향 17:00
3년 만에 삼대가 모였다. 독일에 있던 아들, 영국에 있던 손자는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인 로덱의 병 때문에 폴란드로 날아간다. 문제는 로덱의 병이 아니다. 로덱의 부인이 편지 한통을 남기고 집을 떠났다. 결국 아들 파웰의 주도 하에 세 남자는 아내-엄마-할머니를 찾는 여정에 오른다. 이 여행의 목적은 엄마를 집으로 데려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목적은 그보다 더 시급한 과제-부자지간의 관계 회복 앞에 밀려나고 만다.
사사건건 부딪히기만 하는 이들 세 남자의 유일한 공통점은 음악이다. 70대의 로덱은 한때 재즈 클라리넷 연주자였고, 40대의 파웰은 유능한 클래식 피아니스트다. 10대 손자는 늘 헤드폰을 끼고 산다. 세대를 넘어, 장르를 넘어 음악은 이들을 하나로 엮는다. 세 사람은 길이 막혀
[cine choice] <아버지의 자전거> My Father’s B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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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대역> All Apologies
에밀리 탕 | 중국 | 2012년 | 88분 | 아시아영화의 창
OCT11 M해운대4 10:00
건설노동자 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다. 어느 날, 옆집 남자의 트럭에 올라탄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는다. 하지만 옆집 남자는 한쪽 다리를 잃었을 뿐 살아 있다. 첸은 아들의 죽음이 가져온 슬픔을 감당하려 한다. 하지만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 때문에 아내가 불임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첸은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음에 절망한다. 술로 괴로움을 달랬던 어느 날 밤, 첸은 옆집 남자의 아내를 강간하고는 말한다. 보상금은 필요 없으니 아들을 낳아달라고. 남편이 일으킨 사고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그녀는 결국 첸의 뜻을 따르기로 한다.
<사랑의 대역>은 불가피한 선택의 연속과 그로 인한 비극을 중계한다. 베이징에 거처를 마련한 두 남녀는 겉보기에는 부부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10개월을 보낸다. 이들 사이에서는 흔히 기대할
[cine choice] <사랑의 대역> All Apolog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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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계절> The Fifth Season
피터 브로슨스, 예시카 우드워스 | 벨기에 | 2012년 | 94분 | 월드 시네마
OCT11 롯데6 17:00
전작 <카닥>과 <알티플라노>로 주목을 받은 벨기에의 감독들 피터 브로슨스와 예시카 우드워스의 신작. 두 편의 전작에서 몽골과 남미에 관심을 가졌던 그들은 자국 벨기에로 돌아와 조그만 마을의 이상한 계절에 관하여 아니 실은 조그만 마을의 오지 않는 계절에 관하여 영화 한 편을 만들었다. 한겨울 마을 축제에 모여 사람들이 군무를 출 때 이미 이 영화에서는 이상한 전조가 느껴진다.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올 무렵 봄은 오지 않고 마을은 괴이해진다. 벌이 사라지고 곡식이 자라지 않는다. 흉흉해진 사람들은 이 마을에 얼마 전 들어온 자칭 철학자 그러나 떠돌이 양봉업자를 원인 제공자로 지목하고 그를 마녀사냥 한다. 종종 몇 개의 장면만으로 영화 전체를 살려내는 영화들이 있는데 <제5계절>이 그런
[cine choice] <제5계절> The Fifth Se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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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사> The Gardener
모흐센 마흐말바프 | 이란 | 2012년 | 87분 | 갈라 프레젠테이션
OCT11 CGVS 16:00
<정원사>는 이란의 명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신작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는 지금 망명중이다. 뿐만 아니라 이란의 주요한 반정부 인사로 낙인 찍혀 매일을 테러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란을 떠나 아프가니스탄으로 타지키스탄으로 프랑스로 그리고 영국으로 국제 유랑민이 되고 말았다. 그가 <정원사>를 만든 건 그래서 더 놀랍다. 이스라엘, 즉 이란의 적대국에 속하는 곳에서 이 영화는 촬영되었다. 이란의 반정부 인사가 적대국에 속하는 곳에서 영화를 찍었으니 신변이 더 위험해진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럼에도 마흐말바프가 이곳에 간 이유가 있다. 바하이 종교라 불리는 소수 종교의 본산지가 이스라엘에 있다. 기독교와 불교와 이슬람교의 장점만을 가져와 교리로 삼았다는 바하이 종교는 170년 밖에 되지 않은 소수
[cine choice] <정원사> The Garde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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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으로서가 아니라 영화학교의 교장으로 벨라 타르를 다시 만났다. 건축의 바우하우스처럼, 혹은 앤디 워홀의 ‘공장’처럼 그는 교육과 운동을 결합하는 ‘필름팩토리’라는 영화학교를 사라예보에 설립했다. 바우하우스에 파울 클레, 칸딘스키 등의 모더니즘의 거장들이 있었다면 이 공장에는 구스 반 산트, 짐 자무시, 아키 카우리스마키 등의 강력한 수호천사들이 있다. 그의 교육의 슬로건은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혁명하라’다.
-뉴 커런츠상 심사위원장 자격으로 부산을 찾았다. 심사위원장으로서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나.
=감독들한테 기대하는 것은 간단하다. 신인 감독들이 어떻게 자신의 영화 언어를 만들어내는지, 어떻게 세계를 변화시키는 영화 언어를 창작하는지, 그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다. 보수적이고 용감하지 않은 영화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왜 젊은 감독들이 그런 영화를 만드는지 모르겠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사랑이다, 이런 것들을 용감하게
[interview] “세상에 저항할 감독을 양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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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라루슈 감독의 첫 번째 장편 <상처>는 유년기의 상처가 두 남자의 내면을 어떻게 파괴해 가는지를 면밀하게 따라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리처드와 폴의 과거와 현재를 쉼 없이 오가며 두 남자의 상처는 과연 무엇인지 퍼즐을 맞추듯 그림을 완성해나간다. 마침내 온전한 그림이 관객의 눈앞에 펼쳐질 때 <상처>는 곪았던 부위를 터트려버리듯 절정에 올라선다. 자신의 유년시절을 바탕으로 본능적으로 작품을 만들었다는 지미 라루슈를 만나봤다.
-<상처>는 리처드와 폴 두 사람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가정폭력, 왕따, 남자들의 경쟁심리 등 모두 내 인생에도 있었던 문제들이다. 나 역시 왕따를 당해본 적이 있고 한때는 누군가를 따돌린 적도 있었다. 이런 문제가 처음엔 가벼워 보이지만 사실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나.
-과거와 현재의 사건을 쉼 없이 오가기 때문에 작품이 마치 퍼즐처럼 보인다. 이로써 발생하는 극의 긴장감이 이 영화
[cine talk] 인생의 퍼즐 조각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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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시디크 바르막, 현 아프간 필름 관장 이브라힘 아리피, 탈레반 시절 아프간 필름 관장이자 영화감독인 라티프 아흐마디. 이들이 ‘아프가니스탄 국립영상자료원 특별전: 폐허에서 부활하다’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이들은 영화를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문화를 지켜내고 현실을 바꾸는 데 관심이 많다. “자살폭탄테러가 일상이나 다름없다. 5분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시디크 바르막) 1992년 탈레반 정권이 들어섰던 시절 만큼이나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은 혼란스럽다. 탈레반 정권은 모든 이미지 문화를 금했고, 당시 많은 영화인들은 해외 망명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아프가니스탄의 국립영상자료원인 아프간 필름도 “폭파될 위기”에 처했었다. “탈레반 정권은 아프간 필름에서 보관 중인 필름들을 모두 불태우려 했다. 당시 아프간 필름의 동료 한명이 벽 뒤에 필름을 숨기고 벽지를 새로 발라 필름 보관실의 존재를 숨겼다.”(시디크 바르막)
이들에게
[cine talk] 탈레반으로부터 지켜낸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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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가 유럽에서 범죄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도시 중 하나라고는 하지만 그건 거기 사는 나폴리 사람들의 탓은 아닐 것이다. 거칠지만 솔직하고 낙천적인 성향으로 알려져 있는 그들은 격이 없고 친화력이 좋다. 이탈리아 배우 난도 파오네도 그런 사람이다. 마테오 가로네의 새 영화 <리얼리티>에 출연한 조연이다. “왜 참여하게 됐냐고? 이 영화의 배경이 나폴리다. 나폴리는 지성적인 면에서는 좀 떨어지고 부자들도 별로 없지만 좋은 도시다. 내가 바로 나폴리 출신이다. 가로네 감독은 내 역할에 대해 절대로 과장해서는 안 되는 인물이라고 말해주었다. 연극에서는 늘 진지한 역할을 해왔지만 영화에는 거의 코믹한 역할로 많이 등장했다. 이번에는 그와 동시에 어떤 휴머니티를 표현해야만 했다.” 그가 맡은 역할은 그러니 ‘착한 사람’이다. 아마도 감독은 난도 파오네의 얼굴에서 가난하지만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인상 혹은 그런 사람에게서만 볼 수 있는 성스러움 같은 것을 본 것 같다. 리얼리티
[people] 나폴리에서 온 멋진 사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