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관하여 질문받을 때 피로함을 호소하거나 난감해하기도 한다. 지아장커는 정확히 그와는 반대의 경우다. 그는 어떤 질문을 받더라도 늘 대답을 내놓는 종류의 감독이다. 칸에서 발표된 그의 신작 <천주정>은 영화제가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지금, 현지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 중 하나다. 사건과 폭력에 연루된 네명의 주인공이 서로 스치고 또 이어지며, 그들의 이야기로 현대 중국의 어떤 면모를 드러낸다. 오전 9시30분, 아침 일찍 지아장커를 만났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지아장커는 인터뷰 내내 긴장을 놓지 않았고 마치 이것이 자신의 영화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얻는 또 하나의 새로운 자리인 것처럼 시종일관 진지했다. 그리고 그는 폭력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더 정신을 집중하여 말하곤 했다(영화 내용에 바탕해야 이해가 가는 답들이 많다. 영화에 관한 설명은 67쪽 참조).
-영화를 만들게 된 원동력에 대해 듣고 싶다. 당신은 이번 영화를 한 트위터
폭력은 전염된다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시종일관 여유있는 미소를 잃지 않고 말했다. 6년을 데리고 키운 그 아이가 자신의 친자가 아니라고 밝혀졌을 때 그 순간부터 그 아이는 남의 아이인가 여전히 내 아이인가. 혹은 내가 낳은 아이가 남의 손에서 6년을 고이 자랐을 때 그 아이는 내 아이인가 혹은 남의 아이인가. 그걸 알게 된 부모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 막막한 질문 앞에서 자신 또한 고민을 많이 했음을 주저하지 않고 고백했다. 동시에 이것이 누구에게라도 주어질 수 있는 난감하고도 보편적인 선택의 질문이라는 사실 또한 내내 강조했다. 아버지로서 아이에 대한 생각을, 그리고 때로는 돌아가신 부모님에 관한 생각을 들려주면서 이 이야기가 아버지로서, 자식으로서, 그리고 사람으로서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의 말을 들으며 알게 되었다.
-이 영화의 시작은 무엇인가.
=나에게는 5살짜리
나는 아버지다
-
Q. 5월22일 현재 경쟁부문 최고의 화제작은?
A. 경쟁작들에 대해 엇갈린 평을 내놓던 영미권(<스크린 데일리>), 프랑스권(<필름 프랑세즈>) 매체가 한마음으로 높은 별점을 선사한 영화는 코언 형제의 신작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뿐이다. 60년대 뉴욕 포크 뮤지션 르윈 데이비스의 일상을 조명하는 이 영화를 두고 외신 매체들은 코언 형제의 “오디세이적 내러티브”(<버라이어티>)와 주연배우 오스카 아이작의 매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영화제 후반에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는 남우주연상을 비롯해 올해 영화제 주요 수상 부문의 가장 강력한 후보자가 될 것이다.
Q. 최악의 말실수는?
A. 라스 폰 트리에의 ‘나치 발언’으로 이미 2년 전 최악의 구설수를 경험한 칸영화제이지만, 해마다 새로운 악동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차분하던 올해 영화제에 논란의 불씨를 일으킨 장본인은 프랑수아 오종 감독이다. 그는
남자가 보타이를 매야 하는 이유는?
-
2013년 칸영화제의 영화들에 관한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하면 좋을까. 이렇게 시작해보자. 칸에 오기 위해서는 파리를 거쳐야만 한다. 그날, 조종사가 파리 샤를 드골 공항으로의 착륙을 알리고 비행기가 하강을 시도하던 순간에 기이한 우연 하나가 불쑥 찾아왔다. “When I was seventeen/ it was a very good year….” 그렇게 시작하는 어떤 노래가 비행기의 하강에 맞춰 기내 라디오 방송에서 흐르기 시작했다. 다름 아니라 칸으로 가기 위해 육지에 착지하려는 바로 그 순간에 하고많은 노래 중에서도 그 노래가 흘러나왔다는 것이 내겐 감격적이었다. 프랭크 시내트라가 꿈결 같은 회상에 젖어 부르는 <It Was A Very Good Year>. 지난해 이맘때 칸의 어느 극장에서 알랭 레네의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의 엔딩 크레딧이 오를 때 나는 넋을 잃은 채 그 노래를 듣고 있지 않았던가.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영화는 당신을 기다린다
-
-
올해 칸영화제가 중반을 넘어섰다. 정한석 기자는 지금까지 칸에서 만난 ‘특별한’ 영화들에 대해 냉철하면서도 애정어린 주석을 달아 길고 긴 에세이를 보내왔다. 그 영화들을 만든 이들 가운데 동시대 아시아의 거장으로 불릴 만한 세명의 감독을 만났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천주정>의 지아장커 감독, <블라인드 디텍티브>의 두기봉 감독이다. 그 밖에 칸영화제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사건들과 이슈들을 정리했다. 영화라는 꿈을 먹고사는 프랑스의 작은 도시 칸에서 날아온 흥미로운 이야기가 이제 곧 펼쳐진다.
비처럼 영화처럼
-
요즘의 화두는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 5.18민주화운동을 “북한 소행”으로 몰고, 희생자들을 “홍어”, 시신이 담긴 관을 “택배”라 조롱하는 일베 회원들의 패륜적 발언들은 5월18일 아침을 달궜다. “민주화” 발언을 했던 한 아이돌은 본심이야 어쨌든 일베의 아이콘이 되었다. 심지어 조갑제씨마저 광주 북한군 침투설을 부정했다는 이유로 ‘종북’으로 낙인찍는 걸 보면 일베의 폭주는 불신지옥 집단과 닮아가고 있다.
일베는 지역혐오, 여성혐오, 인종혐오 등 약자들에 대한 온갖 혐오들이 들끓는 용광로처럼 보인다. 극우적 선동이 밤낮으로 괴이하게 과열되는 곳, 누가 더 근사한 혐오 발언을 하고 인증숏을 날리는지 앞다투어 경쟁하는 인터넷 ‘패션극우’들의 왕국.
혹자는 아직 일베가 인터넷 커뮤니티 차원에 머물러 있지만 유럽처럼 인기있는 극우 정치인과 만난다면 길거리를 함께 활보하고 국회 명함을 파는 정당정치 세력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한다. 일리있다. 이들이 길거리에 쏟아져나온다면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진격의 일베
-
가족간 불화를 다룬 TV 솔루션 프로그램들은 대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격렬한 갈등상황에 놓인 문제가족의 변화와 화해를 통해 가벼운 깨달음을 얻은 뒤 기승전결이 끝난 이야기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구성된다. 한데 지난해 이맘때부터 올 5월까지, 6개월 간격으로 각 2회씩 3부가 방영된 <SBS 스페셜-무언가족>을 볼 때만큼은 맘이 편치 못했다. 상담을 통해 화해의 실마리를 얻은 가족이 있는데도, 어쩐지 해결의 후련함과는 거리가 멀다.
<무언가족>에 출연한 다양한 가족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상당 부분 돈과 시간에서 출발한다. 시간을 팔아 돈을 마련하는 동안 소외된 이는 입을 닫고, 돈을 벌지 못해 시간이 남는 쪽은 경멸과 무시 속에 곪아간다. 남의 성공담에 혹하는 현실감각 없는 남편에게 “말 같은 소리를 해. 역겨워 듣기 싫어 죽겠어”라고 쏘아붙이며 품 안의 개에게 “아빠 물어!”라고 지시하는 아내. 스트레스를 가족에게 푸는 아버지를 피해 장애를 가진
[유선주의 TVIEW] 마침표가 없다
-
제인 폰다는 자기 세대의 대변인이다. 그는 1970년대에 배우로서 절정을 보냈다. 1970년대는 이른바 ‘정치영화의 시대’인데, 폰다는 ‘68세대’ 이후에 등장한 진보세력의 맨 앞줄에 서 있었다. 대중의 지지로 먹고사는 스타가 혁신의 대변인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스스로 존재의 토대를 허물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마르쿠제의 말을 빌리면 대중은 혁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전통을 긍정하는 순응자에게 더 호감을 갖는다(<일차원적 인간>). 폰다는 스타의 위치에서 전통과 한판 승부를 벌인, 혹은 그런 대결에의 초대를 마다하지 않은 드문 삶을 살았다.
그러나 시작은 섹스 심벌
제인 폰다(1937~)의 데뷔는 아버지의 후광으로 가능했다. 알다시피 그의 부친은 전설인 헨리 폰다다. 데뷔작은 앤서니 퍼킨스와 공연한 <키 큰 이야기>(Tall Story, 1960)이다. 농구 선수와의 로맨스를 그린 청춘물로, 감독은 <피크닉>(1955)
[한창호의 오! 마돈나] 낮은 데로 임하소서
-
▲모델애니메이션과 특수효과의 거인 레이 해리하우젠이 5월7일 타계했다. 그가 괴물을 창조한 <신밧드와 호랑이의 눈>은 (아마) 내가 극장에서 본 최초의 영화였을 거다. 어른이 된 뒤 감독 이름을 찾아보았지만 번번이 까먹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나는 첫 영화를 영영 ‘해리하우젠 작품’으로 기억할 모양이다. <호빗>의 용이 아무리 굉장한 위용을 드러내도 내겐 해리하우젠의 외눈 괴물과 해골부대만큼 무섭지 않을 게 확실하다. 해리하우젠은 진짜 동물도 종종 이용했다고 한다. 사진은 <신밧드의 일곱 번째 모험> 중 한 장면.
4/30
<셰임>(Shame)의 주연배우 마이클 파스빈더가 2012년 <보그>와 가진 인터뷰를 읽었다. 무슨 이야기 끝엔가 그는 영화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노라고 했다. 그만 양손 맞잡고 공감해버렸다. ‘shame’은 우리말로 옮기자면 ‘치욕’보다는 부드럽고 ‘수치’보다는 탁한 느낌의 단어다. 위아래 입술이 맞닿은 채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잘 붙인 제목 하나 열 줄거리 안 부럽다
-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다양성 영화 사업에 대한 불만이 계속 터져나오고 있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플러스 운영위원 4명이 허경 프로그래머의 계약 해지에 반발해 4월24일 집단 사퇴했다. 이 사태로 인디플러스와 함께 영진위가 직영하고 있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서울영상미디어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의 상당수가 계약직이거나 2, 3개월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파견직 형태로 고용 계약을 맺고 있음이 드러났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얼마 전 ‘시네마테크에 긴급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성명서를 내고, 문화체육관광부와 영진위 그리고 서울시에 현실적인 수준의 예산 지원을 촉구했다. 서울아트시네마 관계자에 따르면, 극장 영사기는 노후로 고장이 빈번하고, 층간소음 문제로 상영이 종종 중단되기도 한다. 안정적인 상영환경을 갖추기에 지원금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그 피해는 고스란히 관객이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6년간 갈팡질팡
영진위의 전용관 사업운영을 둘러싼 잡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포커스] 대책 있나, 비전 있나
-
평생 나이를 먹지 않을 것 같은 배우들이 있다. 때문에 우리는 말콤 맥도웰의 백발이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두꺼워진 하관, 그리고 에드워드 펄롱의 다크서클을 보며 새삼스레 무정한(?)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된다. 윌 스미스도 그런 배우 중 하나다. 아이같이 해맑은 얼굴과 짱짱하게 힘이 들어간 팔다리로 계속 악당과 외계인을 쫓아다닐 것만 같던 이 악동은 어느새 훌쩍 큰 십대의 아들을 데리고 우리를 찾아왔다. 직접 만나본 윌 스미스는 <애프터 어스>를 촬영하며 배우로서, 아버지로서 그가 느낀 여러 가지 감회들을 넌지시 들려주었다.
“죽으면 원없이 쉴 텐데, 지금 무엇하러 쉬나?” 작곡가 퀸시 존스가 했던 이 말을 윌 스미스는 평생의 신조로 삼아왔다. 정말 죽은 뒤 한꺼번에 몰아서 쉬기라도 할 듯이, 데뷔한 지 20여년을 훌쩍 넘긴 그는 지금까지도 스크린 안팎에서 왕성한 활동을 계속해오고 있다. 윌 스미스는 피부색의 흑백을 가리지 않고 폭넓은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는
[윌 스미스] 여전히 유쾌한 악동
-
연출자 유지태는 이미 낯설지 않다. <자전거 소년>(2003)을 시작으로 <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2005), <나도 모르게>(2007) 등 네편의 단편을 통해 자신의 연출세계를 선보여왔다. <마이 라띠마>는 가진 것 없는 남자와 타이 이주여성이 보여주는 고독한 사랑 이야기로 배우 유지태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이주민, 호스트, 노숙인 등 영화에 등장하는 사회 밑바닥 계층의 소외된 인물들을 통해 그는 이 한편의 작품이 아닌 앞으로 자신이 영화를 통해 추구해나갈 가치를 설파하고 있다.
-첫 장편으로 제15회 도빌 아시아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연기상복이 별로 없었던 것과 비교된다. (웃음)
=도빌영화제는 아시아영화발굴에 있어서는 정평이 난 영화제다. 디렉터가 딱 한마디 하더라. “영화가 좋아서 불렀다”고. 그 이상 뭐가 더 필요하겠나 싶더라. 한국에서였다면 배우 유지태에 대한 후광도, 선입견도 있었을 텐데 순수하게 영화로만
[유지태] 감독질? 폼 잡고 싶은 마음 전혀 없다
-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가상의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이 재미가 있으려면 무엇보다 그럴듯해야 한다. 우주로 진출한 인류의 전쟁사를 통하여 민주주의에 대해 자못 철학적인 접근을 시도한 <은하영웅전설>이나 2차대전에서 연합군이 패배한다는 가정 아래 식민지 미국의 모습을 그린 필립 K. 딕의 <높은 성의 사나이> 등이 모두 진지하고 논리적인 것도 그래서다.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 실패로 돌아가는 데서 출발한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는 온건파인 이토가 살아남으로써 일본이 무모한 진주만 공습을 포기하고 전승국이 된다는 줄거리로 이어지는데,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면 전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상황을 바탕으로 쓴 소설은 어떨까. 예를 들면 전세계에 좀비가 출현해서 인류를 공격하는 이야기라면? 맥스 브룩스의 <세계대전Z>는 잘 쓰기만 하면 이런 스토리까지도 정말 그럴듯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소설은
[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매우 있을 법한, 좀비와의 전쟁
-
<잉글리시 페이션트>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마이클 온다체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마이클이라는 열한살 소년이 21일 동안, 실론에서 영국으로 항해하는 오론세이호에 탑승하면서 시작한다. 마이클은 여러 개의 수영장. 감옥, 9명의 요리사들, 그리고 600명 이상의 승객을 태운 7층 규모의 배 오론세이호 안의 식당에서 가장 외진 테이블을 배정받고, ‘고양이 테이블’이라 불리는 장소에서 캐시어스와 라마딘이라는 소년들을 만나게 된다.
[도서] 21일간의 항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