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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대를 위한 지도자는 따로 있다. 기분 장애, 특히 양극성 장애 분야의 전문가로 하버드 의과대학과 케임브리지 헬스 얼라이언스에서 임상의학을 가르치고 있는 나시르 가에미가 쓴 <광기의 리더십>은 정신질환을 갖고 있었던 지도자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던 시대와 그들이 세상을 이끈 방식을 담았다. 그는 강조한다. 정신질환은 단순히 제정신이 아니라거나 현실에서 동떨어져 있다거나 정신병에 걸렸다는 뜻이 아니다. 가장 평범한 정신질환, 즉 우울증과 조증은 대체로 사고력과는 전혀 관련이 없고 비정상적인 기분과 관련 있다. 그들은 실제로는 대체로 제정신이다. 항상 조증이나 우울증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조증이나 우울증에 대한 ‘소인’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조증이나 우울증에 동반되는 여러 요소들이 직접적으로 지도자의 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어떻게 정신질환이라는 약점이 힘이 될 수 있을까. 처칠, 링컨, 간디, 루스벨트, 케네디, 히틀러 등의 사례가 창의성,
[도서] 광기와 천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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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12월1∼30일
장소: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문의: 02-766-6929
지하철 벽면은 온통 성형외과 광고뿐이고, TV를 켜면 어디선가 본 듯한 미남미녀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성형의 왕국’, 바야흐로 외모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이다. 현대 독일을 대표하는 극작가 마리우스 폰 마이엔부르크가 쓰고 윤광진이 연출한 <못생긴 남자>는 이러한 외모 지상주의와 몰개성의 시대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풍자가 살아 있는 작품이다.
못생긴 외모 때문에 회사에서 불이익을 받은 주인공 레테는 전면적인 성형수술로 완벽한 외모를 얻게 되고, 그로 인해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곧 ‘사회에서 성공하는 외모’를 대표하는 사례가 되고, 그를 복제한 얼굴들이 쏟아지면서 레테는 정체성의 위기에 빠진다. ‘성형’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단순히 외모 지상주의를 꼬집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자기 정체성의 문제로까지 확대한 점이 흥미롭다.
2007년 초연된 이후
[공연] 난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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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2013년 1월27일까지
장소: 충무아트홀 대극장
문의: 02-6391-6333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태자였던 루돌프, 그의 삶은 비극적인 만큼 매력적이다.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는 왕권을 계승받을 황태자이지만 혁명을 꿈꿨던 자유주의 사상가였고 사랑에 열정적이었던 루돌프의 인생을 담은 작품이다. 루돌프 황태자의 어머니이자 그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준 엘리자벳 황후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엘리자벳>을 먼저 본 관객이라면 이 작품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유독 황태자 루돌프의 삶이 매력적인 소재로 여겨져온 것은 그가 자신의 아내가 아닌 연인 마리 베체라와 마이얼링 별장에서 권총 자살로 삶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자살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황태자 신분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자유주의 사상가였던 점을 감안하면 그의 죽음이 타살이었을 가능성도 꽤 높다.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는 이 점을 놓치지 않는다. 그와 그
[공연] 무대를 울린 사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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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음악웹진 ‘보다’ 편집장 ★★★★
3장의 믹스테이프를 연속으로 발표하며 위켄드는 R&B 신(scene)의 중심으로 들어갔다. ≪Trilogy≫는 그 3장의 믹스테이프와 몇곡의 신곡을 더해 발표한 앨범이다. 그의 음악은 일관되면서도 노래 하나하나에는 갖가지 듣는 재미가 있는 요소들을 배치해놓았다. R&B 안에 덥스텝이나 트립합의 향취까지 훌륭하게 담아냈다. 그리고 그의 매력적인 보컬은 여기에 확실한 마지막 점을 찍는다.
이민희/ 음악웹진 ‘백비트’ 편집인 ★★★☆
드레이크, 카니예 웨스트, 프랭크 오션 같은 이름이 스쳐지나간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온갖 전자음과 효과가 쏟아지지만 그들 가운데 가장 곱게 들린다. 충분히 터뜨릴 수 있지만 진성보다는 가성을 선호하는, 성량 조절에 능숙한 보컬 덕이다. 소녀를 부르는 사랑 노래가 많지만 욕설로 도배한 노래를 부르라 주문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만 같다. 인간의 목소리와 기계적인 사운드 사이에서 침착한 균형을 유지
[MUSIC] 불가항력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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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 익숙하다. 어느 순간부터 스크린의 단골손님이 되더니 이제는 화면에 얼굴을 비추지 않으면 섭섭할 지경이다. 무시무시한 악역부터 친근한 옆집 친구까지 천의 얼굴을 소화하면서도 전혀 위화감이 없는 배우 김성오. <아저씨>의 장기밀매업자 종석과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김 비서가 한 얼굴 속에 자리할 수 있는 건 만만치 않은 그의 연기 내공 덕분이다. 2000년 연극 <첫사랑>으로 데뷔해 수많은 영화 속 단역을 거치고, 서른두살에 SBS 공채 탤런트에 늦깎이 합격하여 오늘날 충무로의 대세가 될 때까지. 숱한 풍파에도 그를 버틸 수 있게 한 것은 오로지 연기를 사랑하고 즐기는 마음, 그것뿐이다.
-12월에만 <나의 PS 파트너> <반창꼬> <타워>가 연달아 개봉한다. 그야말로 대세다.
=그렇지도 않다. 엄밀히 말하면 오히려 운이 없는 편이다. 한꺼번에 개봉하는 통에 순식간에 작업한 줄 아는 분도 계신데, 우연히 개
[김성오] 익숙한 남자의 특별한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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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독의 영화노트] <26년> <남영동1985> 작은 스위치들
[올드독의 영화노트] <26년> <남영동1985> 작은 스위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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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제69회 베니스영화제의 주요 작품들을 서울에서 보게 됐다. 모두 21편인 상영작은 세 부문으로 나눠 있다. 올해 베니스의 상영작 가운데 이탈리아 작품들을 선보이는 ‘베니스 69’, 그리고 고전들을 새로 복원해 공개하는 ‘베니스 클래식’, 마지막으로 올해의 80주년을 맞이하기까지 고전이지만 희소성을 가진 작품들을 묶은 ‘80!’ 등이다. 이탈리아영화의 현재, 그리고 고전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기회다. 이번 행사는 개관 10주년을 맞은 서울아트시네마의 프로그램으로, 12월12일부터 2013년 1월6일까지 진행된다. 상영시간표는 127쪽 참조.
<특별한 하루>
감독 프란체스카 코멘치니 / 2012년 / 89분 / 컬러 / 15세 관람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지나는 연예인 지망생이다. 그녀에게 ‘행운’이 찾아왔는데, 유력 정치인이 돕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가의 일정이 자꾸만 연기되는 바람에 지나는 한없이 기다리는 입장에 놓인다. 그날 지나를 호송하는 젊은 운전
[영화제] 이탈리아영화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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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 놈을 때리는 데에는 이유가 없다.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불량배 은혁(백성현)은 또래의 패거리들과 어울려 다니며 길남(김주영)을 비롯한 다른 조선족 청년들과 하루가 멀다하고 싸움박질을 벌인다. 그러던 어느 날 은혁은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에 온 길남의 소꿉친구 칭칭(정주연)을 곤경에서 구해주게 되고, 이를 계기로 둘 사이에는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채업을 하는 폭력배 윤식(박재훈)과 조선족 사회를 돌보는 위강(전창걸)의 이권다툼으로 조선족과 주민들의 관계는 날이 갈수록 험악해지고 그 와중에 길남의 아버지와 은혁의 친구 상구(최상학)가 말려들면서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진다.
<차이나 블루>는 욕심이 많은 영화다.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는 조선족 이주민들과의 갈등을 은혁, 길남, 칭칭 세 청춘남녀의 일화로 그려내면서 동시에 사채업과 연예인 기획사, 정리되지 않은 과거사의 앙금 등 당대의 여러 사회적 문제들을 건드린다. 하나 이러한 여러 갈래
욕심이 많은 영화 <차이나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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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영화에서 ‘나치강제수용소’가 등장하는 순간, 거의 어김없이 함께 불려오는 것은 아마도 ‘기억’의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경험이 기억으로 바뀔 때, 영화는 자연스럽게 플래시백 구조로 현재와 과거를 병치하는 방식을 선택하곤 한다. 안나 저스티스의 영화 <리멤버> 역시 이러한 맥락에 놓인 영화라 할 수 있다.
1944년 폴란드의 나치수용소, 강제 수감된 폴란드인 토마스(마테츠 다미에키)와 독일 출신 유대인 한나(앨리스 드바이어)는 사랑에 빠진다. 위험을 무릅쓰고 탈출을 시도한 이들은 수용소를 벗어나는 데는 성공하지만 주변 상황은 나빠져만 가고 결국 이유도 알지 못한 채 헤어진다. 30년 뒤, 아픈 기억을 애써 외면하고 살아가던 한나는 우연히 토마스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던 토마스의 사진을 꺼내보며 과거의 일들을 떠올린다. 영화는 1944년(과거)과 1976년(현재)을 오가며 한나의 기억들을 차례로 불러오고, 그 과정에서 점점 더
그녀의 잃어버린 시간 <리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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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독보적인 세계관을 구축한 감독에게, 그 세계관을 이어갈 새로운 시리즈의 유혹은 엄청난 것이다. 무려 30여년 동안 <스타워즈>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조지 루카스를 생각해보라! 이러한 유혹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2000년대 초반 지상 최대의 판타지영화를 만들어냈던 피터 잭슨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다행스러운 건 <호빗> 3부작 중 시리즈의 포문을 여는 첫 영화 <호빗: 뜻밖의 여정>(이하 <뜻밖의 여정>)을 보건대 피터 잭슨이 안일한 마음으로 중간계에 복귀한 건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맞먹는 환상적인 프로덕션, 블록버스터영화의 최전방에 위치한 신기술로 무장한 <뜻밖의 여정>은 2시간50분의 러닝타임 동안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자질을 갖췄다.
<호빗>의 1부는 <반지의 제왕>으로부터 60여년 전의 중간계를 조명한다. <
60여년 전의 중간계를 조명하다 <호빗: 뜻밖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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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전작인 <카모메 식당>은 덩치 큰 핀란드의 갈매기를 보고 주인공이 어린 시절에 키웠던 고양이를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고양이는 뚱뚱한 데다 싸움질만 하고 다녀서 모두가 싫어하지만 주인공한테만 유독 호의를 보인다. 고양이를 너무 좋아한 주인공은 어머니한테 알리지도 않고 먹이를 많이 줘 고양이는 죽는다. 그리고 1년 뒤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린다. 주인공은 이제 낯선 핀란드에서 그 고양이를 닮은 갈매기(카모메)를 이름으로 한 식당을 열어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듯이 사람들에게 음식을 대접한다.
외로움 속에 서로서로 친구가 되어주고 정을 준 그 고양이를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에서는 외로운 사람들에게 직접 대여한다. 그 사람들은 하나씩 다 구멍을 갖고 있으며 갇혀 있다. 죽음을 앞두고 집에 갇혀 있는 할머니나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방에서 일하는 아버지, 직장에 하루 종일 갇혀 있는 여직원이 그들이다. 고양이를 빌려주는 사요코(이치카와 미카코)도 할머니가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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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를 꿈꾸는 엠마(앤 해서웨이)는 대학 졸업 파티날, 자신이 짝사랑하는 덱스터(짐 스터지스)와 우연히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부잣집에서 태어나 방탕한 생활을 즐기는 덱스터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성실한 노력을 쌓아가는 엠마의 너무 다른 삶의 양상은 이들의 사랑을 쉽게 허락해주지 않는다. 때문에 엠마와 덱스터의 애틋한 마음은 좀처럼 서로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안타까운 시간들만 차곡차곡 흘러간다.
대부분의 멜로영화들이 이런 엇갈림의 시간을 쉽게 해결하기 위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결정적인 (하지만 어딘가 억지스러운) 사건을 배치한다면, <원 데이>는 20년이라는 시간을 고스란히 기다리는 쪽을 선택한다. 그리고 엠마와 덱스터가 처음으로 함께 보낸 1988년 7월15일을 시작으로 매해 기념일을 셈하기라도 하듯 달력을 넘겨가며 이들의 삶을 그저 지켜본다. 그러고보니 (20년 동안) 7월15일 성 스위딘 데이, ‘하루’(원 데이)들을 지켜보는 이 영화는 2월
긴 시간을 가로지르는 여러 번의 하루 <원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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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최악의 테러리스트라 불리는 오사마 빈 라덴은 과연 어떻게 잡혔을까. 걸프전 당시 ‘사막의 폭풍’ 작전이나 9.11 테러 생중계와 비교하자면, 지난해 5월1일 미국 특수부대 작전으로 인한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은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TV영화로 제작된 <코드네임 제로니모>는 그 전모를 실시간으로 가상 생중계하는 영화다. TV시리즈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가장 악질적인 탈옥수를 연기했던 로버트 네퍼가 특수부대팀의 리더로 등장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코드네임 제로니모>에서 ‘그날’을 다루는 실감나는 기록이 치밀하게 긴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국을 비롯해 파키스탄과 폴란드까지 아우르는 로케이션과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요원들이 함께 협력하는 과정, 그리고 작전 수행에 이르기까지 준비하고 협동하는 모습들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작전에 투입된 요원들이 가족과 대화를 나누고, 작전 변경 등 일상적인 갈등과 마주하는 것은 이른바 ‘특수부대 영화’들에서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 <코드네임 제로니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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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뮤지션 샘(루퍼트 프렌드)은 세상을 떠난 아내 조세핀(사라 웨인 콜리스)을 잊지 못해 모텔에서 폐인처럼 살아간다. 어느 날 낯선 여자(클레멘스 포시)가 갑자기 샘의 방 화장실로 뛰어들어오고, 샘은 여자의 요청에 응해 노래를 불러준다. 여러 날 동안 화장실 문을 사이에 두고 숨바꼭질하던 두 남녀는 얼굴도 모르는 상대에게 야릇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여자의 이름은 ‘파이’다. 원주율을 가리키는 그 수학기호가 맞다. 샘의 노래 가사를 빌리자면, 시작은 알아도 끝은 모르는, 그저 다음 숫자에 대한 설렘으로 이어질 뿐인 원주율은 두 사람의 느닷없는 인연을 의미하기도, 변화무쌍한 삶 자체에 대한 비유가 되기도 한다.
삶, 사랑, 그리고 원주율에 내재된 즉흥적 성격은 <어느날, 사랑이 걸어왔다>를 채우고 있는 재즈음악의 속성이기도 하다. 샘이 선보이는 즉흥연주는 불규칙한 리듬으로 포개진 영화 속 이미지들과 조응하며 몽환적이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영화에서 여
삶, 사랑, 그리고 원주율 <어느날, 사랑이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