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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이십대 중후반과 삼십대 초중반을 꼬박 바쳤던 회사를 불시에 그만두고 나자 한동안 밤샘 마감이 없어도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졌다. 내 인생 최고의 시간들은 이미 끝나버린 것 같은데 늘어난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앞으로 살날이 50년은 더 남았고, 최소한 그 절반 정도는 일을 해야 할 텐데, 도대체 뭐 해먹고 살 것인가. 돈도 돈이지만, 스스로 가장 신나게 살았던 시기를 떠나보내고 남은 것은 고단하게 펼쳐지는 일상과 현실적인 문제뿐이라는 게 마음을 자꾸 가라앉게 만들었다. 인생에 뭐 하나 정리된 것도 없는데 애매하게 나이만 먹고 고민거리는 늘고 체력은 달리고, 어떡하지 나?
그러던 중 QTV <20세기 미소년>을 만났다. 사실 90년대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H.O.T의 문희준과 토니안, 젝스키스의 은지원, god의 데니안, NRG의 천명훈이 한 프로그램에 출연하다니, 토니안 말대로 “90년대였으면 출연료가 감당 안돼서” 모일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천명
[최지은의 TVIEW] 오빠들, 안 죽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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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인 우디 앨런은 말했다. “일흔넷 먹은 영감이 여자한테 수작 거는 걸 누가 보고 싶겠는가(그래서 60대에 수작 걸어 양녀하고 살림 차렸나). 노인들이 나오는 영화는 나한테도 지루해서 만들고 싶지 않다.” 아니,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최소한 한국에서는. 노인들이 나오는 영화는 노인들이 보고 싶어 한다. 손에 손을 잡고 극장으로 놀러가서 마음껏 자식 욕도 하고 늙으면 서럽다며 한탄도 한다.
인적이 드물어야 마땅한 평일 오후 강북의 어느 극장, 로비를 메운 노인들은 설레는 표정으로 <송포유> 팸플릿을 들고 있었다. 불길했다. 설마 저분들이 몽땅 <송포유>를 보러 온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아이언맨3>도 하고 있잖아? <송포유>는 광고도 안 한다고. 그러나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지. 자그마한 상영관으로 밀려 들어온 노인들은 좌석 번호 따위 필요없다며 극장을 휩쓸더니 마치 단체 관람객처럼 나란히 뒷줄부터 점령하고 앉기 시작했다.
[김정원의 피카추] 브라보 실버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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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27일 일기에 <아이언맨3> 결말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셰임>, 그리고 이탈리아 화가 아고스티노 카라치의 <피에타>. 마이클 파스빈더가 벗은 몸을 시트로 감고 천장을 응시하는 <셰임>의 첫숏은 몇초 동안 정사진으로 착각할 지경이다. 시트도 마침 성모 마리아의 색인 푸른색이라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그린 서구 종교화가 즉각 떠오른다. 파스빈더는 예수라고 해도, 옆 십자가에 못박힌 죄인이라고 해도 납득이 되는 멋진 얼굴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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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플렉스 화장실에서 극장 직원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우연히 들었다. 이번 주말 흥행몰이가 예상되는 <아이언맨3> 개봉을 앞두고 두명의 스탭은 마치 지평선에서 다가오는 토네이도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 심경인 듯했다. 한편 다른 한명은 매점에 오징어 굽는 기계가 들어올까봐 걱정스러워 했다. 오징어구이는 나 역시 반대라고 하마터면 끼어들 뻔했다. 누가 뭐래도 구운 건어물 냄새는 몰입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분해와 조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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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고를 헤아려 돈을 뽑으면서 CF모델의 춤을 멀뚱히 본다. 관공서도 기업도 대학도 심지어 은행 현금인출기까지 창조경제를 부르짖는다. 내용의 모호성을 떠나 이 표현은 굉장히 무성의하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내세웠던 창의경제보다 언어의 조탁 능력이 떨어지는 이가 만든 게 틀림없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반복된 강조에 너도나도 아는 척, 하는 척한다.
나도 먼 산을 바라보며 창조경제가 뭘까 생각한 적이 있다. 곳곳에 이쑤시개처럼 꽂힌 송전탑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언제나처럼 ‘저 송전탑만 없으면 경관이 정말 좋을 텐데…’ 싶었다. 유럽의 시골이 그 ‘뷰’만으로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막대하다. 해외여행 자율화 세대는 공감할 것이다. 그 그림 같은 전원풍경의 1등 공신은 전봇대 없는 길이라는 걸. 지금 우리 산야는 송전탑이라는 거대 전봇대가 지배하고 있다.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기적과 부흥을 좇던 과거에는 주먹구구식으로 에너지 정책을 펴고 전력을 공급했다 하더라도, 원전으로 대표되는 대
[김소희의 오마이 이슈] 창조경제만 없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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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강우석의 영화는 늘 옛날 미국영화의 무구한 오락적 가치를 떠올리게 한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공공의 적> 이후, <한반도>를 제외하곤 난 늘 그의 영화를 일관되게 지지해왔다. <전설의 주먹>도 마찬가지였는데 이 영화가 예상만큼 흥행하지 못한 것을 두고 놀랐다. 나는 이 영화의 건전한 오락적 가치가 충분히 대중적으로 통하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편의 영화의 흥행 여부를 작품 자체의 가치만으로 판별할 수는 없다. 다른 대다수 영화에 비해 긴 상영시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한계라는 것도 이 영화의 흥행 스코어를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웠던 언론의 호평에 비해 이 영화가 상대적으로 낡았다는 상당수의 비판적 시각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를 옹호하고 싶다. <전설의 주먹>이 다루고 있는 삶의 남루함이라는 소재에 외면할 수 없는 강우석의 윤리적 정직성이 스며들어 있고 그가 묘사
[신 전영객잔] 강우석 스타일을 지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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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은 남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적어도 엔터프라이즈호 안에서 남녀 차별이란 있을 수 없다.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서로의 등을 지켜줄 수 있는 존재, 엔터프라이즈호의 승무원이 된다는 건 그런 것이다. 하지만 임무와는 별개로 그녀들의 매력만은 감출 수 없다. 통신 장교 우후라는 모든 트레키(<스타트렉> 시리즈의 팬)의 로망 아닌가. 한층 성숙해져 돌아온 우후라는 물론 미모의 과학 장교 캐롤은 기나긴 우주 항해에 활력을 더해줄 것이다. 스팍의 연인 우후라와 커크와 미묘한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캐롤의 연애담도 미지의 세계를 향한 모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재미다. 쉽지 않은 남자 친구들을 둔 그녀들의 속사정을 들어보자.
-우후라의 역할이 대폭 늘었다.
=조 살다나_감사하다. <스타트렉>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그 신선함은 화합과 희망의 상징이었다. 당시엔 미국인 함장, 스코틀랜드인 기술 장교, 동양인 항해사, 흑인 여성 통신 장
[조 살다나, 앨리스 이브] 우리의 행동이 <스타트렉>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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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없다면 건조하고 퍽퍽한 우주에서의 모험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스타트렉> 시리즈의 개그 페어로 다시 태어난 두 남자, 기술 장교 스코티와 의사 본즈가 바로 그들이다. 전편에 이어 엔터프라이즈호의 위기를 넘기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스코티는 냉소적인 말투로 자신의 신념과 감정을 숨김없이 표현할 줄 아는 남자다. 자나 깨나 커크의 무모함을 걱정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는 닥터 본즈 역시 스스로의 감정을 속이지 않는 솔직함으로 주위의 신뢰를 얻는다. 어쩌면 비상식적인 모험광들의 집단인 엔터프라이즈호에서 유일하게 상식적인 두 사람. 그들이 피곤할수록 우리는 즐겁다. 시종일관 투덜대며 문제를 지적하는 푸념 속에는 엔터프라이즈호를 향한 진한 신뢰와 애정이 묻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승무원 인기투표 1, 2위를 다투는, 볼수록 매력있는 남자들을 만나보자.
-스코티가 <스타트렉: 비기닝>에 이어 또 한번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사이먼 페그
[사이먼 페그, 칼 어번] 트레키도 대중도 만족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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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탐험하는 이 장대한 스페이스 오페라의 껍질을 벗기고 나면 아기자기한 멜로드라마가 보인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작품에서 가장 강력한 화학 반응은 다름 아닌 커크 선장과 그의 일등 항해사 스팍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닮은 구석이라곤 없는 두 남자는 종족은 물론 성별마저 넘어선 교감을 선보인다. 다혈질에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커크 선장과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규칙과 논리를 따르는 스팍은 정반대의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둘은 언제나 서로를 필요로 하는 영혼의 반쪽이다. 때로는 자신의 진심을 이해해주지 않아 토라질 때도 있고 가끔은 서로의 연인을 향한 질투의 감정도 슬쩍 내비치지만 그래도 끝끝내 상대를 이해하는 진정한 로맨스의 끝. USS 엔터프라이즈호의 믿을 수 없는 모험은 커크와 스팍의 끈끈한 유대 속에서 피어난다.
-<스타트렉 다크니스>의 주요한 뼈대는 커크와 스팍의 우정이다. 화면 밖에서도 커크와 스팍처럼 호흡이 잘 맞는 편인가.
=크리스
[크리스 파인, 재커리 퀸토] 정반대라고? 우린 닮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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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렉>은 다시 태어났다. 공개된 <스타트렉 다크니스>(이하 <다크니스>)의 위용은 이 영화가 J. J. 에이브럼스의 새로운 시리즈가 될 것임을 확신하게 한다. <스타트렉: 더 비기닝>(2009, 이하 <비기닝>) 감독에 에이브럼스가 낙점되었을 때만 해도 그리 우호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다방면에서 활약 중인 할리우드의 실세 감독의 손에 전통있는 시리즈의 아우라가 훼손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비기닝> 이후 대중은 에이브럼스의 ‘스타트렉’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다크니스>는 어쩌면 에이브럼스의 <스타트렉>을 시리즈 최고의 자리에 밀어올릴지도 모른다. 놀람과 경탄으로 압축되는 반응들, 그만큼 만족스러운 결과물이다. 새로운 우주를 향한 개척자들, 여기 런던에서 만난 엔터프라이즈호 승무원들의 편지를 함께 부친다.
애초에 <스타트렉>은 그리 연속성이 단단한 시
[스타트렉 다크니스] USS 엔터프라이즈호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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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거장 페드로 코스타가 또 다른 거장 주앙 세자르 몬테이로의 회고전을 기념해 한국을 찾았다. 전자는 형식 이전에 실존 그 자체의 힘을 믿으며 유일무이한 방식으로 현실을 포착해낸 반면 후자는 욕망의 아름다움을 다채로운 방법으로 쓰다듬은 이미지의 연금술사였다. 많은 것을 뭉뚱그리고 생략함에도 불구하고 거장이란 표현 안에서 그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들이 발 디딘 새로운 영역에의 도전 혹은 고집 때문이다. 비록 두 사람의 영화세계는 전혀 다르지만 주앙 세자르 몬테이로를 기억하는 페드로 코스타의 언어는 결국 두 사람이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거장들의 흔적을 통해 현재 우리가 어디쯤에 서 있는지를 발견한다. 현실을 기만하지 않고 눈앞의 존재를 직시하며 진짜 세계를 필름에 담아내는 페드로 코스타는 오늘도 여전히 사라진 것들에 시선을 돌리고 과거를 재배열하며 ‘지금’을 발견해나가는 중이다. 문득 페드로 코스타가 상상하는 내일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페드로 코스타] “아무도 나쁜 것을 그대로 보려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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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나인>의 최종회가 끝난 직후부터 새벽 3시가 다 되도록 지인과 카카오톡으로 “이럴 수는 없다, 이게 말이 되는가” 하는 요지의 대화를 나누었다. 향을 태우면 30년 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나인>에서 과거에 갇힌 주인공은 살았나 죽었나? 마지막의 선우는 성장한 선우인가, 안 죽은 선우인가, 미래에서 온 선우인가? 설정을 이리저리 맞추다 지친 나머지, 하나를 맞추면 다른 하나가 어그러지는 퍼즐을 퍼즐이라고 불러도 무방한가, 작가를 잡고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결론은 이랬다. <여름으로 가는 문>처럼 말끔히 정리되는 게 아니면 곤란하다고. 그래서 다시 읽었다.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여름으로 가는 문>은 코니 윌리스의 <개는 말할 것도 없고>와 더불어 ‘끝내주는’ 시간여행물이자 러브 스토리다. 주인공 댄은 천재 엔지니어다. 그는 가사도우미 로봇을 만들어 성공을 거두지만 자신의 약혼녀 벨과 동업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우리, 미래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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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블로그에서 싸움이 붙은 일이 있었다.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극존칭에 대한 투덜거림이 시작이었다. 이 책에도 그런 대목이 있다. 요즘 화두가 된 이슈다. 바로 갑님의 횡포에 대한 것. “손님, 카푸치노 나오십니다”라는 괴이한 문장이 왜 횡행하는가. 각 장의 제목을 이어붙이면 요즘 밥벌어먹는다는 일의 어려움이 드러난다. 게임의 규칙은 당신 편이 아니고, 이익은 위로 위험은 아래로 쏠린다. 무엇보다, 당신을 위한 멋진 신세계는 없다.
[도서] 밥 벌어먹는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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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마종기의 산문집. 어린 나이 피난을 갔던 마산에서의 추억에서부터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던 추억, 일상의 나날들, 그리고 가족을 비롯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자신이 쓴 시를 옮겨적고 그에 관련한 심상을 펼쳐 보이는 일도 있으니, 그의 시에 대한 코멘터리를 듣는 기분으로 읽어갈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의사로 살았던 시간에 대한 기록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달라지는 세상에 대한 나이든 현자의 생각을 읽어가는 기분.
[도서] 마종기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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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답을 찾지 못한 질문으로 가득한 생을 산다. 조앤 치티스터 수녀가 쓴 <무엇을 위해 아침에 일어나는가>는 ‘힌두교―지혜’, ‘불교―깨달음’, ‘유대교―공동체’, ‘그리스도교―사랑’, ‘이슬람교―복종’이라는 5가지 영적 전통별 대표 키워드와 그 주제에 해당하는 삶의 보편적인 질문들에 답한다. 왜 나는 바뀔 수 없는가? 어떻게 내가 할 일을 알까? 무엇이 정말로 중요한가? 정답지가 아니라, 어떻게 질문을 마주하는가를 배울 수 있는 지혜의 책.
[도서] 지혜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