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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영화, 올해의 영화인’은 계속된다. <씨네21>의 진정한 한해 마무리다. 한국영화, 외국영화 베스트5를 뽑았고 과대, 과소평가받은 작품도 덧붙였다. 한국영화의 경우 6위에서 10위에 오른 작품들도 소개했다. 올해의 영화인 문항은 예년과 동일하게 올해의 감독, 주연 남녀배우, 신인 남녀배우, 신인 감독, 제작자, 시나리오, 촬영감독을 선정했다. 올해는 <씨네21> 필진 30인이 참여했다. 이것이 우리가 올 한해 사랑한 올해의 영화, 올해의 영화인이다.
2012 Best of the Bes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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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신화가 있다. “매일같이 카페에서 일하니 너는 좋겠다.” “자유로운 영혼이시네요.” “정시 출근 안 하는 게 어디야.” 회사 다니는 친구들이 내게 하는 얘기다. 아이 왜들 이래. 여러분은 4대 보험 적용되시잖아요. 때 되면 휴가도 가잖아요. 신용카드, 현금영수증 세금환급 받잖아요. 퇴직금도 나오잖아요. ‘글쟁이 프리랜서’가 한달에 200만원 벌려면 얼마나 악착같아야 하는지 아세요(이래봬도 경력이 11년인데!). 아무튼 ‘소간지’가 나오는 <회사원>은 직장인의 억하심정과 판타지를 얼마나 우려먹는 영화란 말인가. 뭐라고요? 모아둔 돈으로 카페‘나’ 하겠다고요? <한겨레> 안 보셨어요?
물론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들도 있다. 카페에서 회사 옥상으로 장면이 전환될 때 흐르던 미연의 노래 같은. 그 도시적 우울로 가득한 사운드의 공간감이 카페에서 건물 옥상으로, 또 사무실에서 형도의 해고 위기로 옮겨가는 연출은 좀 찌릿했다. 모그의 음악은 신의 주위를 빙빙 배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도시적 우울함을 가득 머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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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라스베이거스에서 돈을 세는 단위는 액수가 아니라 무게였다. 카지노 회계부서의 직원들은 카운트룸에 들어서기 이전에 저울에 올라서야 했고, 퇴근할 때도 매니저가 지켜보는 가운데 다시 몸무게를 재야 했다. 아침과 저녁의 몸무게가 눈에 띄게 다르면 몸 수색은 피할 수 없었다.
<좋은 친구들>과 <카지노>의 각본을 쓴 니콜라스 필레기는 <카지노>에서 ‘라스베이거스 팩트’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라스베이거스 시스템이 자동화되기 이전에 정립됐을 이 팩트는 돈의 값어치에 해당하는 지폐의 무게를 환산한 공식으로, 100만달러는 100달러짜리 지폐로는 9.3㎏, 20달러짜리 지폐로는 46.3㎏, 5달러짜리 지폐로는 185㎏, 25센트 동전으로는 21t이다.
라스베이거스 팩트는 <CBS>의 새 TV시리즈 <베이거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보이 카지노 카운트룸의 새 매니저 미아 리조(사라 존스)는 출근 첫날 저울에 올라서서는
[안현진의 미드 크리에이터 열전] 라스베이거스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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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의 은행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을 놓치지 않고 손으로 받으면 원하는 대학에 바로 붙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보충수업을 마친 뒤 저녁을 후다닥 먹어치우고 야간자율학습 시간을 기다리며 벤치에 앉아 은행나무쪽으로 바람이 부는 모습을 절박한 눈으로 좇던 고3의 가을이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는 몰랐지만 대학은 꼭 가야 한다고 배웠고, 하루가 평생을 결정짓는다는 수능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가슴을 죄는 것 같은 두려움과 마주하는 나날이었다. 불시에 이뤄지던 소지품 검사에서 삐삐 몇개를 찾아낸 담임은 매를 들어 비밀번호를 불게 했고, 점수에 따라 종아리에 가로줄 멍이 선명하도록 맞기도 했다. 머리카락 길이나 구두 굽의 높이에 대한 단속은 엄격했지만, 전교에서 촌지를 받지 않는 선생님이 손에 꼽힌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서울 강북의 흔한 사립여고, 그나마 성적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 덜 치이고 살았던 내게도 고등학교 시절의 좋은 추억은 그리 많지 않다.
졸업 뒤 뒤를 돌아본 적은 거의
[최지은의 TVIEW] 꿈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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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답게 리처드 아벨은 <돈>에 관한 긴 글을 “무성영화의 마지막 시기에 유럽의 양끝에서 돈과 자본이라는 주제로 두편의 영화가 기획됐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은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영화로 옮기는 거대한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하지만 1927과 1928년에 걸쳐 진행되던 영화는 제작 초기 단계에서 멈추고 말았다. 프랑스에서는 마르셀 레르비에가 에밀 졸라의 <돈>을 각색한 영화를 준비했다. 80여년 전에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두 사회는 왜 동시에 돈과 자본을 영화의 주제로 삼은 것일까. 에이젠슈테인의 입장이야 당연하다고 치더라도 레르비에가 자본주의 사회에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본주의의 막다른 골목을 이미 보았거나 예견했을 터, 그들은 깊이 근심하거나 비전을 제시하려 했던 것 같다.
초기부터 독특한 형식의 실험적인 작품을 내놓은 레르비에는 졸라의 고전을 각색하면서도 현대적인 색채를 가미했다
[이용철의 아주 사적인 클래식] 당신에게 ‘돈’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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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세주의’(neo-medievalism)라는 말이 있다. 이는 헤들리 벌이 <무정부적 사회>(1977)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세계화’로 인해 개별국가들의 주권이 점점 더 침식당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과거에는 한 국가가 자신의 영토 내에서 절대적 주권을 행사했으나, 오늘날 한 국가의 주권은 나라 밖의 다양한 기구나 조직의 정치적, 경제적 간섭을 받는다. 가령 유럽연합을 생각해보라. 이 상황은 하나의 영토 내에 황제와 교황과 제후와 그 밖의 다양한 세력의 주권이 어지럽게 중첩되어 있던 중세를 닮았다.
중세에서 꿈꾸기
이 정치학 용어를 문화의 영역에 끌어들여 새롭게 대중화한 것은 움베르토 에코이리라. 에세이 <중세에서 꿈꾸기>(1986)에서 그는 말한다. “현재 우리는 유럽과 미국 모두에서 중세에 대한 새로운 관심의 시기를 목격하고 있다. 그것은 기묘하게도 환상적 신중세주의와 책임있는 문헌학적 조사 사이를 오가고 있다.” 에코 자신이 쓴 <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마술을 믿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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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심각한 야행성이었다. 오후와 저녁 내내 멍하니 지내다가도 자정을 넘기면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고 손끝의 감각이 되살아나면서, 밤의 괴물로 변신했다. 밤의 괴물이 되어서도 하는 일은 별로 없다. 밖으로 나가서 누군가를 물어뜯거나 하는 일은 없고, 방에 혼자 앉아 손톱을 물어뜯으며 수선스럽게 이런저런 일들을 한다. 음악을 듣다가 책을 보다가 글을 쓰다가 누군가를 생각하다가 문득 시계를 보면, 어이쿠, 벌써 새벽 여섯시야? 하며 서둘러 잠을 잔다. 대학 때는 야행성으로 인해 오전 수업은 거의 다 빼먹었고, 군에 있을 때조차 야행성이었고, 회사에 다닐 때도 야행성이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나 같은 야행성 괴물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이 괴물들은 밤만 되면 초능력을 발휘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도저히 쓸 수 없는 분량의 글을 순식간에 써내며, 평소에는 들을 수 없는 음악 속 미세한 소리들을 잡아채며, 사소한 일들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난다. 밤만 되
[김중혁의 최신가요인가요] 밤의 초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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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사정이 어떻든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이것만큼은 꼭 누리면서 살고 싶다는 식의 ‘자기만의 사치’가 다들 한 가지씩은 있다. 맥도널드에서 햄버거와 먹을지언정 질 좋은 와인을 포기할 수 없었던 <사이드웨이>의 그 애잔한 남자주인공처럼 말이다.
나름대로 틈틈이 소비란 얼마나 덧없고 허망한 것인지를 줄기차게 주장해온 나이지만, 내게도 포기할 수 없는 나만의 사치가 있다. 바로 편백나무 욕조에서 즐기는 느긋한 목욕 시간이다. 지금의 남편과 한집에서 살게 되면서 혼수랍시고 내가 가장 공들여 장만한 거의 유일한 품목이 이른바 ‘히노키’라고 불리는 그 나무 욕조였다. “이사하기 전날 밤 잘 데가 없어서 가까운 모텔 갔잖아. 그런데 오빠가 3만원인가 4만원짜리 그 싸구려 모텔에 욕조있는 욕실이 있고 심지어 뜨거운 물이 펑펑 나온다며 얼마나 아이처럼 뛸 듯이 좋아하던지…. 그 때문에도 내 카드 한도가 허용하는 선에서 제일 좋은 욕조를 사고 싶었어.” 그때 남편은 돌아가신 리영희 선
[SO WHAT] 작은 사치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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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곰곰이 되살려보자. 영화에서 쉴새없이 뛰고 구르는 손예진을 본 적이 있던가. 남의 지갑을 슬쩍한 적은 있긴 하다고?(<무방비도시> (2007)) 매력적인 소매치기이긴 했다. 대체로 그는 경험 많은 여자였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두려워했으며(<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 헤어진 남편과 다시 시작하기도 했다(드라마 <연애시대>(2006)). 그뿐이랴. 두명의 남편을 두려는 대담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아내가 결혼했다>(2008)). 그러니까 어떤 장르보다 감정을 섬세하고 예민하게 다루어야 하는 멜로 장르에 주로 출연해온 손예진이다.
그래서일까. 그가 <타워>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블록버스터 속 그의 모습이 선뜻 떠오르지 않았나보다. <타워>에서 그가 맡은 서윤희는 초고층 주상복합빌딩 내 푸드몰의 매니저다. 크리스마스이브, 타워스카이에 화재가 발생하자 건물 안은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그는
[손예진] 이상하지 않은 나라의 손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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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좋은 배우다. 적어도 그 점에선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연극판에서 다져진 연기는 데뷔작 <꽃잎>(1996)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겼고 대중에게 이름을 각인시킨 <박하사탕>은 물론이거니와 2009년 최고의 블록버스터 <해운대>에서조차 ‘설경구’라는 세 글자는 연기력으로 상징되는 이름이었다. 그저 작품성있는 영화 몇편의 주연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의 필모그래피가 멜로부터 코미디, 시대극, 블록버스터, 심지어 시리즈물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넓게 퍼져 있다는 걸 알려주면 의외로 놀라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이토록 경계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영화에 출연했음에도 대중은 그를 여전히 스타가 아닌 색깔있는 연기자로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평범해서 그런 거 아닐까 싶다.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얼굴 아닌가. 지금 <감시>를 찍고 있는데 (한)효주가 난간위에 걸치고 서 있는 (정)우성이를 보고 ‘진짜 배우 같다’고 감탄하더라.
[설경구] 눈으로 묻고 얼굴로 대답하는 설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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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먹서먹할 줄 알았다. 크랭크업한 지 1년 가까이 지났기 때문이다. 우려는 기우였다. 스튜디오에 들어오자마자 설경구와 손예진은 서로의 안부부터 챙겼다. 마치 어제도 만난 사이처럼 둘은 아무렇지 않게 농담도 주고받았다. 오누이 같았다. 손예진은 “원래 (설)경구 오빠와 친해요. 경구 오빠 덕분에 현장도 즐거웠어요”라고 <타워>의 현장을 떠올렸다. 알려진 대로 <타워>는 108층 규모의 초고층 빌딩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사고를 소재로 한 재난 블록버스터다. 이 영화에서 설경구는 소방대장 영기 역을, 손예진은 빌딩 내 푸드몰의 매니저 윤희 역을 맡았다. 그러니까 두 사람은 화재 속에서 동지애를 나눈 전우인 셈이다. 다음 장부터 설경구, 손예진의 <타워> 출연기를 전한다.
[타워] 돌아보라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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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 당시 가장 친했던 친구가 어느 날 정색이 돼서 내게 끔찍한 비디오테이프를 봤다고 얘기했다. 사람들이 눈알이 빠지고 배가 갈라진 채 죽어 있는 실제 영상을 봤다는 것이었다. 내가 깜짝 놀라 그게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친구는 자신과 가족의 고향에서 국군이 사람들을 마구 죽이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고, 그 비디오테이프에 당시 일어났던 일이 담겨 있다고 설명해줬다.
내가 그 친구의 말을 듣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놀랍게도 ‘신고를 해야 하나?’ 하는 거였다. 어릴 때라 뭐가 뭔진 잘 몰랐지만 왠지 그 친구가 말하는 내용이 학교에서 들었던 ‘간첩’의 그것과 뉘앙스가 비슷해서였다. 하지만 그 친구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내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친구였다. 내가 어디서 누군가에게 맞고 있다면 가장 먼저 달려와서 함께 싸워줄 그런 친구 말이다. 난 일단 그 친구의 말을 끝까지 조용히 듣기만 했다.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걸어오면서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내일 학교에 가
[김진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26년 전 혹은 26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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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맨이 되고 싶다. 취업을 하고 싶다. 대기업이라고 겁낼 필요도 없다. PT가 입사시험에 포함되어 있다고? 그렇다면 더 의욕충전이다. 윤태호의 <미생: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이하 <미생>)를 봤기 때문이다. <미생>에는 직장 생활의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어떤 자기계발서보다 낫다. 또한 <미생>에는 모든 회사원의 애환이 녹아 있다. 엄마를 기다리는 어린이집의 아이들이 우르르 뛰어나오는 장면(21수)을 보고 코가 찡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반면 윤태호는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이면을 다루는 <내부자들>도 연재했다. 2012년 대선과 함께 종지부를 찍을 이 웹툰은 <미생>과는 다른 결을 품고 있는 듯하지만 결국 한 사람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는 윤태호다.
Profile
1988 허영만 문하로 만화계에 입문
1993 <비상착륙>으로 데뷔
1997 <연씨별곡>
1998 <야후 Y
[윤태호] 삶에서 완생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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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앤드올룹슨은 음향 가전계의 샤넬이나 프라다 같은 이름이다. 남다른 건 품질이나 디자인만이 아니어서 가격표 또한 명품의 몸값을 제대로 깨우쳐준다. 스피커부터 오디오, TV까지 죄다 이 브랜드 제품으로 통일하는 건 머리끈부터 양말까지 샤넬로 휘감는 것만큼이나 부담스러운 일이다. 물론 대안은 있다.
뱅앤드올룹슨의 플레이메이커는 타사 제품들을 명품 사운드 시스템에 호환시키는 일종의 무선 중계기다. 뱅앤드올룹슨의 오디오는 없지만 대신 스피커를 갖추고 있다면 플레이메이커를 각종 스마트폰이나 맥, PC 등과 연결해 호사스러운 사운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이미 오디오까지 구입한 이용자라면? 기존 장비도 고스란히 이용하면서 무선 스트리밍 시스템을 하나 더 추가하게 되는 셈이다. 자체 음량 조절 및 음소거가 가능하고 뱅앤드올룹슨 전용 리모컨인 베오4와도 호환된다. 가격은 미정.
[gadget] 나를 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