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변의 모래 여인 옆에 한 남자가 찡그린 얼굴을 하고 앉아 있다. 아득한 수평선으로부터 고개를 돌린 채 허공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마치 길을 잃은 불쌍한 아이의 그것과도 같다. 이 특집은, 그 아이와 함께 <마스터>라는 영화의 망망대해에 뛰어들어 겨우 물 위에 떠 있는 시늉이라도 해보려 한 안간힘의 발로라고 해야 할 것이다.
폴 토머스 앤더슨은 동시대 미국 감독 중 젊은 나이에 비해 괴력의 재능을 지닌 작가로 인정받아온 인물이다. 그가 전작 <데어 윌 비 블러드>를 통해 20세기 초 미국의 서부를 여행했을 때 우리는 그동안 그의 영화에서 무언가 잠재해 있던 것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느꼈는데, 5년 뒤 그 짐작의 확증과도 같은 영화 <마스터>가 도착했다. 그 잠재해 있던 것이란 ‘미국의 정신사’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그가 어떻게 전작에 흥건히 고여 있던 피를 닦아내고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인들에 대한 심리적 보고서를 완성했는지 궁금할 이들에게,
마스터에게 경배를
-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대선 개입과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로 연일 매스컴이 시끄러운 요즘 많은 사람들은 과연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는 건지, 뭐가 잘못된 건지, 앞으로 잘될 수는 있을지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입장이 서로 다른 정치인들이 자기가 옳다며 떠들긴 하는데 매스컴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는 너무나 산만하고 정확히 무엇이 본질인지 알기도 쉽지 않다.
복잡할수록 정도를 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또 훌륭한 답은 반드시 훌륭한 질문으로부터 가능하다는 말도 있다. 만약 지금 이 상황이 무척 혼란스럽게 느껴진다면, 바로 지금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적기인 셈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사실 던져야 할 질문은 쉽게 떠오른다. 즉 ‘국가기관이 선거에 어떤 형태로든 개입하는 걸 인정할 수 있을까?’, 그리고 ‘국가기관이 선거에 어떠한 형태로든 개입하는 일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아마 전자의 질문에 대한 답은 어렵지 않게
[김진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외부인 출입금지
-
드라마 속 로맨스에 감정이입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원체 감수성이 메마른 성정이기도 하거니와, 사람끼리 사랑에 빠지는 게 아니라 스토리가 사랑에 빠지도록 캐릭터의 등을 떠미는 티가 나는 작품이면 아무리 절절한 로맨스가 펼쳐져도 멀뚱한 구경꾼이 되는 기분이다. 굳이 부모의 원수의 자식과, 또 굳이 어린 시절 잠시 스쳤던 그 아이와 사랑에 빠져야 한다는 주문에라도 걸린 듯 마주치자마자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러브 미션의 단계를 밟아나가는 캐릭터들에게서는 연애의 설렘보다는 비장한 의무감이 먼저 느껴질 정도다. 예쁜 건 기본이라 쳐도 밝고 순수하거나 청순하거나, 하다못해 너무 열심히 살기라도 해서 단점을 찾기 힘든 여주인공들도 딴 세상 사람들만 같다.
그런데 SBS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장혜성(이보영)이 나타났다. 고등학생 때 엄마(김해숙)가 가정부로 일하던 판사 집 딸 서도연(이다희)의 한쪽 눈을 실명시킬 뻔했다는 누명을 쓴 뒤 퇴학까지 당해 인생이 단단히 꼬
[최지은의 TVIEW] 세상 끝에 홀로 버려진 나를
-
스테판 오드랑은 클로드 샤브롤의 <착한 여자들>(1960)에서 처음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파리의 양품점에서 일하는 네명의 ‘착한’ 여성 혹은 ‘착해 보여야 하는’ 여성들의 서로 다른 사랑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데, 여기서 오드랑은 비밀이 많아 늘 따로 행동하는 의심스러운 여성으로 나온다. 첫눈에 별로 착한 것 같지 않고, 퇴근 이후에 무슨 엉큼한 짓을 하는지 한껏 상상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 맡은 역할, 곧 일반적으로 여성성으로 인지하는 착해 보이는 것과 사뭇 다른 게 오드랑의 개성인데, 그럼에도 그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배우이자 나아가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기는 스타로 성장했다.
남녀 관계 주도, 착한 역할 거부
할리우드영화에 비하면 스크린 속 유럽 여배우들의 위치가 남성 시선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기는 하지만, 그런 자유가 대중적인 사랑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여배우는 전통적인 위치, 곧 로라 멀비의 용어를 빌리면 ‘남성 시선의
[한창호의 오! 마돈나] 성 역할 부정한 암사슴
-
-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상대에게 어떤 이유로든 크게 실망했을 때 영혼에 스크래치가 나는 기분이다. 반복되면 무덤덤해지기도 하련만, 그렇지가 않다. 더 아리게 파이는 느낌이다. 영혼은 왠지 말랑할 것 같은데 그 말랑한 것에 굳은 상처가 팬다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도 그렇다. 나쁜 놈이 나쁜 짓 한 것에는 그리 크게 상처 입지 않는다. 하지만 의무와 권리, 책임을 진 자가 합당한 처신을 하지 못하는 꼴을 보는 건 참으로 힘겹다. 최근 국가기록원에 보관 중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포함한 자료 일체를 여야 공히 공개하자고 결정한 모습을 보고 기가 막혔다. 민주당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위험천만한 위법 행위에 동조하고 나선 것일까. 외교적으로도, 남북관계에도 대단히 나쁜 선례이다. 마구잡이로 빨간물 뿌려대는 호스를 틀어막거나 잠글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제 몸에 묻은 빨간칠이 싫다고 그것만 닦고 싶어 하는 이들이 제1야당으로 있으니, 때아니게 안철수의 생각이 엄청 궁금해질 정도다.
[김소희의 오마이 이슈] 불능 민주당
-
<코스모폴리스>에 대한 꼼꼼한 통찰이 담긴 글들(김효선 “지금 여기는 지옥입니다”, 허문영 “한 자본가의 미학적 승리”, 김지미 “구원은 없어라”)을 읽었다. 그 통찰들을 능가하는 정치경제학적 분석을 할 자신은 없지만, 하나의 질문만은 덧붙일 필요를 느낀다. 이 영화를 감상하는 당신의 시선은 지금 영화 속 어느 자리에서 어느 곳을 향해 있는가? 영화를 보는 동안 이걸 묻지 않은 채, 관객인 우리가 마치 객관적인 자리에서 자본의 추상성, 권능, 환상을 보고 있다고 말해도 될 것인가. 혹은 이 영화를 자본주의에 대한 근심으로 읽어내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위의 질문을 경유하지 않고 이 영화가 형상화하는 자본주의에 대해 말하는 것은 초월적인 자리에서 그 자본의 매커니즘을 포착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유사한 착각일 수 있지 않은가.
허문영만이 이 영화에 대한 섬세한 비평의 결론에 이르러 ‘우리의 자리’를 의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크로넨버그는 한 자본가의 미학적 승리를 묘사하며
[신 전영객잔] 출구를 마련하지 않은 악몽
-
<씨네21>도 이런 촬영은 처음이다. 표지를 장식한 디지털 캐릭터를 인터뷰할 수는 없는 노릇. <미스터 고>의 고릴라 링링(오른쪽) 대신 <씨네21> 스튜디오를 찾은 건, 그를 영입한 에이전트 성충수 역의 배우 성동일이었다.
도대체 옆에 있지도 않은 고릴라를 어떻게 바라보라고 주문해야 할지 손홍주 사진팀장이 고민하기도 전에, 성동일이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 배우가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촬영현장에서 가상의 고릴라와 함께 호흡하고 연기해왔다는 걸.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에 이어 김용화 감독과 함께하는 세 번째 작품이지만, 오는 7월17일 개봉하는 <미스터 고>는 배우 성동일에게 다양한 이유로 더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올여름 가장 뜨거운 블록버스터의 중심에 선 그를 만났다.
홈
신 스틸러에서 중심부로
“형, 미안해.” 김용화 감독은 성동일에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고 한다
[성동일] 독설의 신
-
시사 뒤 송대찬 프로듀서는 아는 프로듀서들한테 “감독들 눈높이를 이렇게 높여놓으면 이제 어떡하냐”는 원성을 들어야 했다. 감시자와 쫓기는 자의 시선을 매개로 영화의 주인공들은 강남 테헤란로, 이태원, 청계천, 여의도, 영등포, 종로 등의 대로를 종횡무진 활보한다. 한국영화에서 이 정도 스케일로 서울을 면밀하게 보여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감시자들>의 장점 중 8할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로케이션 뒤에는 송대찬 프로듀서의 주도면밀한 준비와 노력이 있었다. “어느 날 내 전화기에 저장된 연락처를 보니 죄다 경찰이더라.” 송대찬 프로듀서, 그에게서 <감시자들>의 숨막히는 촬영 뒷이야기를 들었다.
-유내해 감독의 원작 <천공의 눈>에서 감시반원들의 노하우를 중시했다면, <감시자들>에서는 디지털 기기, CCTV의 활용도가 더 높아진 모양새다.
=양날의 칼이다. 자칫 잘못하면 휴대폰 내비게이션, 아이패드 같은 걸로 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된
[송대찬] 서울 점거 촬영, 다시는 못한다는 각오로 찍었다
-
색기라는 것은 나 같은 범인에게는 유니콘과 같아서 그 존재에 대해 들어도 보고 읽어도 보았으나 몸으로 실체를 확인한 적은 없는 어떤 것이다. 색기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대학 때였는데, 상경대쪽에 유명한 남학생이 하나 있었다. 어느 나라인가의 교포였는데 나보다 한 학번 위고 일단 괜찮게 생겼지만 연예인을 갖다댈 만한 꽃미남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 소문이 돌기로는 그 애가 연상녀 킬러였다(고 한다). 부모가 외국에 있어서 그애 혼자 서울 생활을 한 지 3년인가 되었는데, 그때 같이 살던 여자가 세 번째 동거녀인가 그랬다(고 한다). 이 이야기의 가장 웃긴 대목은, 그 이야기를 하던 나와 친구들 모두 그 남자애를 한번 구경해보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는 것일 거다. 연상녀들을 압도한다는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 잘생긴 것도 아니라는데 대체 뭐지? 그 이야기는 결국 ‘(얼굴이나 한번)보고 싶다’에서 ‘자보고 싶다’로 흘렀고 둘 다 불발에 그쳤다. 그때 그 대화가 생각난 것은 오쿠다 히데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있지, 걔 얘기 들었어?
-
<아키라 AKIRA>가 정식으로 국내에 발간되었다. “너무 재미있어 속상하게 하고, 정말 감동적이어서 마음을 뒤흔드는 작품들 사이에서 아키라는 언제나 조용히 바라보게 만드는 작품이다”라는 만화가 윤태호의 말처럼, 1982년 연재를 시작한 뒤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진 이 작품 속의 디스토피아, 그리고 사이버펑크의 세계는 시간이 지났어도 수명을 다하지 않고 힘을 갖고 있다. 주말을 통째로 바쳐도 좋을 만큼 재미있는 만화.
[도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힘을 갖고 있는 세계
-
히치콕 감독의 <이창>에서, 주인공이 타인의 삶을 엿볼 기회는 창문 앞에 놓인 망원경에 눈을 가져다대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트러스트 유어 아이즈>에서는 다르다. 편집증에 사로잡힌 토마스는 스트리트뷰 프로그램에 빠져 지낸다. 그러다 뉴욕의 스트리트뷰에서 창문을 통해 한 여자가 살해당하는 것 같은 이미지를 목격한다. 스트리트뷰 사진들의 사생활 침해 논란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의 서스펜스가 한층 가깝게 와닿을 것이다.
[도서] 스트리트뷰 사진들의 사생활 침해 논란
-
<접속>에서부터 <공동경비구역 JSA>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건축학개론>과 같은 영화들을 제작한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가 첫 책을 냈다.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에 대해, 그녀만의 언어로 풀어낸다. 투병 중이던 어머니의 몸을 기억하는 일, 몸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던 어머니의 언어를 읽어내던 일, 그리고 이제 어머니가 떠난 빈자리에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추억을 더듬는 일이 책 읽는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도서] 어머니가 떠난 빈자리
-
누구나 이런 상상을 해봤을 것 같다. 꿈의 라이브러리 말이다. 원하는 작품들을 한데 모아놓을 수 있다면, 그 영화박물관은, 그 도서관은, 그 미술관은 어떤 공간이며 그곳의 입주자들은 어떤 작품들이 될 것인가. 이탈리아의 예술평론가 필리페 다베리오는 상상박물관을 짓는 지적유희로 한권의 책을 써냈다. 원하는 그림들을 호명해 한자리에 모아놓고 방의 유형에 따라 분류했다. 안티카메라, 생각하는 방, 도서관, 놀이방, 부엌, 침실, 음악실, 예배당과 정원… 지하부터 꼭대기층에 이르는 건물 한채가 거대한 화폭이 된다.
박물관에 들어가 가장 먼저 보이는 공간인 안티카메라가 출발점이다. 영어로는 홀이라고 번역되는 안티카메라는 만남의 공간과 동선의 중심 역할을 한다. 직각으로 되어 있는 계단 아래에는 둥그런 그림 하나가 어울리지 않을까. 다베리오가 이 자리에 선택한 그림은 미켈란젤로의 작품 중 유일하게 이동 가능한 작품인 <톤토 도니>다. 이 그림의 여주인공 격인 인물은 작품을 위탁하
[도서] 바티칸이 따로 없네
-
“물고기 다큐멘터리계의 <킬 빌>, 물고기 올 노출 3D 리얼 다큐.” <슈퍼피쉬: 끝없는 여정>의 연출자 송웅달 PD가 영화에 대해 농담으로 붙여본 수식어다. 2012년 여름 KBS1에서 방영된 5부작 다큐멘터리 <슈퍼피쉬>는 제작비 20억원으로, 2년 동안 24개국을 돌며 촬영을 진행한 ‘대작’이다. 다큐멘터리로선 이례적으로 최고 시청률 13.8%를 기록하며 이미 검증도 받았다. 이번엔 아이맥스와 3D 기술을 덧입혀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날것 그대로의 생생한 장면을 스크린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송웅달 PD는 2005년에 제작한 <사랑> 3부작으로도 유명하다. 이번에는 물고기를 향한 그의 사랑 고백을 들어봤다.
-물고기를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6시 내고향>을 연출하며 물고기가 나오는 아이템의 시청률이 높은 것을 발견했다. 이유를 고민해보니 현대인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수렵활동
[flash on] ‘생선’ 아니죠, ‘물고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