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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여주인공 수정은 부잣집 아들 재민과 동거하는 중에 그의 약혼녀가 일하는 곳이자 그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화랑에서 일한다. 재민은 물론, 수정을 좋아하는 인욱도 그녀에게 “거기 꼭 나가야겠어? 오기야 자존심이야”라며 그만둘 것을 종용한다. 수정은 두 남자가 화를 내건 달래건 듣지 않는다. 재민의 재력도 인욱의 학벌도 갖추지 못한 그녀에게, 팁으로 먹고사는 노래방 도우미 같은 아르바이트가 전부이던 그녀에게, 전화받고 청소하고 은행 심부름이나 가끔 하면서 한달에 백만원이 보장되는 일자리는 자존심 ‘따위’로 그만둘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한승태의 <인간의 조건>을 읽다가 그 장면이 생각났다. <인간의 조건>은 단순히 일이 힘드네 박봉이네 하는 표현으로 묘사될 수 없는, 드라마 속 수정의 일자리와도 퍽이나 다른 몇몇 일자리에 관한 체험보고서다.
진도에서 꽃게잡이를 한 것을 비롯해, 서울의 편의점과 주유소, 아산의 돼지농장,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꽃게잡이 배를 타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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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띠지에 쓰인 광고문구를 빌리면 ‘30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마스다 미리의 만화 3권이 나란히 출간되었다. 30대 미혼여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는 인기에 힘입어 시바사키 고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고, 독신주의라고 불리는 고모와 엄마를 바라보는 소녀의 이야기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그리고 과감히 시골로 이사간 하야카와와 그녀의 두 친구들(혹시 궁금하다면 말이지만 모두 여자다) 이야기를 그린 <주말엔 숲으로>가 그 책들이다. 이 만화의 등장인 물을 저 만화에서 만나게 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별개의 이야기들. 물론 별개라고는 해도 결국 다 겹쳐 보이는 30대 언저리 여자들의 일상 이야기다.
마스다 미리는 어디까지나 여자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아주 예민하고 까칠하고 때로 지저분하기까지 한 일상의 순간을 드러내 보여준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에서 어린 소녀는 고모와 엄마가
[도서] 손끝만 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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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2013년 2월17일까지
장소: 서울미술관
문의: www.seoulmuseum.org
소나무는 예부터 선비들의 문학과 그림에 빠지지 않는 소재로 추사 김정희는 <세한도>를 통해 자신의 꼿꼿함을 드러냈다. 그런데 오늘날 다시 소나무 그림을 본다면 어떤 울림이 있을까? 화선지에 묵으로 그려낸 그림을 오래 바라보는 일은 쉽지 않다. 더욱이 풍부한 입체감과 컬러가 풍요로운 세계에서, 단조롭고 덤덤한 그림은 천연기념물에 가깝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책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서 문장과 사유, 그리고 온몸으로 우리가 잊고 지낸 외로움과 고독을 눈앞에 끌어당긴다면, 화가 문봉선은 실제 대상을 바라본 눈의 힘과 필력으로 천년의 시간을 천천히 불러낸다. ‘독야청청|獨也靑靑-천세(千歲)를 보다’라는 전시 제목은 30여년간 전국 각지를 돌며 관찰해온 ‘소나무’를 투사시키는 장치이다. 소나무 그림 20여점은 지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두눈을 깨끗하게 닦는 시간을 선물로 건
[전시] 방방곡곡의 소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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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2013년 2월17일까지
장소: 일민미술관
문의: ilmin.org
2012년 12월 한달간의 뉴스를 검색하면 ‘광화문’이라는 지명이 몇번 나올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광화문은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특별한 섬 같았다. 지난 12월 세종대왕과 이순신 동상이 함께 자리한 광화문에서 ‘대첩’이라 이름 붙은 선거 유세가 있었다. 또 대통령이 된 이의 얼굴 사진을 들고 나와 밤늦게 환호하는 이들의 얼굴도 있었다. 광화문은 같은 장소라 믿기 힘들 만큼 하루에도 몇번씩 낯빛을 바꾼다. 그러나 여기엔 밖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별 상관없이 움직이는 광화문 우체국도 있고 교보문고도 있으며 일민미술관도 있다.
사거리 횡단보도를 양 갈래에 놓고 자리한 일민미술관은 새해 첫 전시로 ‘생존’을 말한다. 특정한 누구의 절박한 생존을 말한다기보다는 예술과 종교, 진화와 과학을 횡단하는 질문 던지기 차원으로서 전시는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 <갈라파고스>를 적극 인용한다. 전시 제목 또한
[전시] 생존을 위한 당신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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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음악웹진 ‘보다’ 편집장 ★★★☆
어쩌면 당연한 것임에도, 이제는 당연하지 않은 것이 돼버린 한장의 ‘앨범’이라는 개념을 다행스럽게 리오나 루이스는 아직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그가 팝시장의 최전선에 서 있는 만큼 귀를 잡아끄는 싱글들을 여기저기서 수집해오긴 했지만, 이 앨범은 최소한의 일관된 색깔과 톤을 갖고 있다. 그런 흐름 안에 매혹적인 싱글들이 몇 있고, 리오나 루이스는 그 싱글들을 정말 ‘잘’ 부른다.
이민희/ 음악웹진 ‘백비트’ 편집인 ★★☆
이런저런 과거의 디바 이름과 같이 거론되는 게 그리 이상하지 않을 만큼 여전히 노래 참 잘한다. 믿음직한 가창력을 가졌지만 과거의 레전드만큼 표현의 폭이 크지 않다는 게 약점이다. 그래서 찾은 돌파구는 편곡의 변화인데, 전에 비해 리듬을 풍성하게 쏟아내지만 일렉트로니카에 능한 프로듀서에게 목소리만 빌려준 느낌이다. 그녀의 발라드는 이제 물릴 만큼 들어왔고, 댄스는 조화에 대한 감각이 좀 부족해 보인다.
최민우/
[MUSIC] 오디션 스타의 유통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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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는 성유리가 2년 전에 찍은 저예산영화다. 매니지먼트사의 만류를 무릅쓰고 출연했다. 해사한 얼굴을 클로즈업한 포스터만 놓고 보면 고만고만한 성장영화 같다. 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그게 아니다. 동생의 죽음을 제 탓으로 여기는 극중 윤희는 아버지의 매질을 당연한 형벌로 받아들인다. 눈두덩은 항상 멍이 들어 있고, 입가는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다. 아프지만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윤희를 세상은 동정하는 대신 경멸한다. 유쾌하고 씩씩한 캐릭터가 더 어울릴 법한 성유리는 왜 굳이 고행을 자처한 것일까. 연기를 시작한 지 10년. 성유리에게 드라마가 주어진 경로였다면, 영화는 찾아야 할 돌파구인지 모른다. 그녀 역시 의외의 선택을 “고심의 결과”라고 말했다.
-드라마 <신들의 만찬>(2012)을 끝내고 어떻게 지냈나.
=여행 겸해서 홍콩에 화보촬영하러 다녀왔다. 2년 동안 거의 쉬지 못했다. 요즘은 필라테스와 발레를 접목한 자이로토닉을 하면서 체력을 보강하고 있
[성유리] 포기는 없다, 진짜 배우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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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워'는 108층 초고층 빌딩에서 벌어진 대형 화재에 맞서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의 목숨을 건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오는 12월 25일 개봉.
[영상인터뷰] ‘타워’ 설경구 손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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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 다이어리] <타워> 여의도에 '해운대'가!
[헌즈 다이어리] <타워> 여의도에 '해운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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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 가득한 삼류 음악 감독 '유일한'(김래원)이 인생 역전을 노리고 참여한 대형 뮤지컬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 확률 제로의 소년 '영광'과 파트너가 되어 불가능한 꿈에 도전해 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2013년 1월 개봉 예정.
[이광수]"이성민 선배에게 연기 도움 많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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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박찬경 형제 감독의 공동 연출작 '청출어람'은 소리 연습을 위해 산행에 나선 고집불통 스승과 철부지 소녀 제자의 어느 특별한 하루를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송강호] 백발 분장 도전,"박해일 정재영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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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독의 영화노트] <아무르> 그런 식의 작별
[올드독의 영화노트] <아무르> 그런 식의 작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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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진콜: 24시간, 조작된 진실>은 2008년 전세계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배경으로, 월스트리트의 한 금융사에서 24시간 동안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영화는 정리해고 통보 장면으로 시작한다. 리스크 관리팀장 에릭(스탠리 투치)도 이날 해고 통보를 받는다. 에릭은 회사의 위기상황이 정리된 USB를 피터(재커리 퀸토)에게 전하고 회사를 떠난다. 샘(케빈 스페이시)은 대규모 인원 감축에서 살아남은 직원들에게 “떠난 이들은 잊어라. 당신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이러한 희생 덕에 회사가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날 밤 에릭이 건네준 USB의 파일을 분석한 피터는 회사가 보유한 MBS(주택저당증권)의 가치가 이미 폭락해 회사에 큰 위기가 닥칠 것을 알게 된다. 피터는 상사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회장 존(제레미 아이언스)이 참석한 긴급 임원회의가 소집된다.
보너스를 제하고도 연봉이 960억원쯤 되는 회장 존은 말한다. “세상엔 행복한 부자와
“1등이 되거나 똑똑하거나 사기를 칠 것.” <마진콜: 24시간, 조작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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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성유리)는 폭우가 쏟아지던 날 강물에 빠진 자신을 구하다 익사한 동생을 잊지 못한다. 그날 이후로 윤희는 땅만 보고 걷는다. 비가 오는 날이면 외출을 할 수가 없다. 자신이 죽고 동생이 살았어야 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아버지의 반복되는 구타도 그저 묵묵히 견딜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윤희는 동네 골목길에서 고등학생 진호(이주승)에게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이 들어 있는 지갑을 빼앗긴다. 그리고 두 사람은 진호의 학교 식당에서 급식도우미와 학생으로 다시 만난다. 진호에겐 가족이 어머니뿐이다. 어머니에게 폭행을 일삼던 아버지는 어머니와 진호를 버리고 돈 많은 여자에게 새장가를 들었다. 언제 죽음을 맞을지 모를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해 있다. 진호는 어머니를 보호할 능력이 없는 보호자다.
<누나>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두 사람, 윤희와 진호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자신의 상처를 꽁꽁 싸맨 채 속으로 아픔을 삭이는 윤희와 상처를 감추기 위해 거친 욕
데칼코마니로 찍어낸 듯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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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비에르는 현재 덴마크에서 가장 촉망받는 여성감독이다. 한국 관객에겐 201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인 어 베러 월드>의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더 친숙할지 모르겠다. 삶의 딜레마와 아이러니를 일상의 화법으로 유려하게 풀어내는 그녀의 작품은 대중적이면서도 통찰력을 잃지 않기에 영화팬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다시 말해 상업적인 감각과 예술성의 ‘밸런스’를 두루 유지한다는 것이 비에르의 장점인데, 그녀의 신작 <다시, 뜨겁게 사랑하라!>에서 그 잣대는 상업적인 측면으로 보다 기운 느낌이다. 서사적 전개와 배경에서 <투스카니의 태양> <맘마미아!>를 연상케 하는 이 영화는 이탈리아를 무대로 위기의 중년에 새롭게 찾아온 로맨스를 조명한다.
암 투병 중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이다(트린 디어홈)는 꽤 무난한 인생을 살아왔다. 항암 치료를 중단하겠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남편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기
위기의 중년에 찾아온 로맨스 <다시, 뜨겁게 사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