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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닐 블롬캠프 / 출연 맷 데이먼, 샬토 코플리, 조디 포스터 / 개봉예정 8월15일
닐 블롬캠프라는 이름이 낯설다면, <디스트릭트9>을 떠올려볼 일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이 낯선 신인감독은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들을 핍박받는 이방인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디스트릭트9>으로 단숨에 ‘SF의 미래를 책임질 감독’으로 급부상했다. <엘리시움>은 닐 블롬캠프의 두 번째 장편SF다. 아직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는 프로젝트이지만, 블롬캠프가 창조해낼 또 다른 오리지널 SF물의 면모는 전세계 평단의 기대를 불러모으고 있다.
2159년, 인류는 두 계급으로 나뉜다. 부유한 지구인들은 우주정거장 ‘엘리시움’에 정착한다. 반면 돈 없는 자들은 자원의 고갈로 황폐화된 지구에 머무른다. 더 좋은 터전에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 지구에 머무르던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엘리시움으로 떠나길 원하고, 엘리시움의 악랄한 공무원 로데
사회적인 SF영화의 유희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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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마크 포스터 / 출연 브래드 피트, 미레일 에노스, 매튜 폭스 / 개봉예정 6월20일
좀비가 나타나면 다음과 같이 대처하면 된다. 타이트한 옷을 입고 짧은 헤어스타일을 유지해 좀비들이 잡을 수 없도록 할 것. 칼, 톱, 도끼 같은 날카로운 무기로 좀비 머리를 공격할 것. 차에서 나오거나 오토바이를 절대 타지 말 것 등. 소설 <세계대전 Z>를 쓴 맥스 브룩스 작가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비디오 영상의 지침이다. 숙지하라. 하지만 소설을 읽은 사람은 안다. 소설처럼 좀비가 몰려들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좌절뿐이라는 사실 말이다.
소설 <세계대전 Z>는 좀비와의 전쟁이 끝난 뒤 한 유엔 전문가가 작성한 전쟁보고서다. 미래의 어느 날, 중국 충칭을 시작으로 전세계에 바이러스처럼 퍼져간 좀비들은 인류를 순식간에 아비규환에 빠뜨린다. 인류는 각국 군대를 동원해 좀비에 맞서보지만 역부족이다. 장비, 미사일, 군대 모두 일류였지만 전쟁에서 꼭 필요한 ‘하나’가 인
좀비가 세상을 끝장내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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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샘 레이미 / 출연 제임스 프랭코, 미셸 윌리엄스, 밀라 쿠니스, 레이첼 바이스 / 개봉예정 3월7일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도로시도 허수아비도 양철나무꾼도 없는데, 이 영화가 바로 오즈란다. 주디 갤런드의 청아한 목소리가 심금을 울리던 <오버 더 레인보우>도 굳이 떠올릴 필요가 없어졌다. 블록버스터의 프리퀄 바람이 동화책 원작 영화에도 적용된 셈이다. 하긴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1900)의 원작은 110년도 더 된 L. 프랭크 바움의 소설이고, 스크린으로 옮겨온 빅터 플레밍 버전의 영화 <오즈의 마법사>도 1939년작이니, 이 또한 70년도 더 됐다. 샘 멘데스, 애덤 솅크먼 같은 감독 후보군을 거쳐 연출로 낙점된 샘 레이미 생각에, 특단의 조치 없이는 원작에 폴폴 쌓인 먼지를 걷어낼 길이 없을 거라 판단했지 싶다. “바움의 원작에서 많은 정보를 활용했고, 영감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완전히 새롭게 창조된 세계를 만드는 게
샘 레이미식 오즈의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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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고어 버빈스키 / 출연 조니 뎁, 아미 해머, 헬레나 본햄 카터 / 개봉예정 여름(미국 개봉 7월4일
-론 레인저, 한국에선 낯선 히어로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모습이 언뜻 조로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까만 망토와 가면은 조로의 트레이드 마크가 맞다. 하지만 론 레인저도 절대 가면 없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가면을 쓰고 카우보이 모자를 썼는데 백마까지 타고 있다, 그러면 그건 론 레인저다. <론 레인저>는 1933년 미국의 라디오 드라마로 출발한 작품이다. 라디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1949년부터 1957년까지 TV드라마로 제작됐고, 이후 소설과 영화로 여러 번 재탄생했다. 서부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론 레인저>의 이야기는 여섯명의 텍사스 레인저스가 갱단에 습격당하면서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남자-론 레인저가 자신을 구해준 인디언 친구 톤토와 힘을 합쳐 갱단에 복수하는 게 기본 줄거리다.
-조니 뎁이
해적 같은 카우보이, 서부 평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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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잭 스나이더 / 출연 헨리 카빌, 에이미 애덤스, 러셀 크로, 케빈 코스트너 / 개봉예정 6월13일
예고편을 돌려보고 또 돌려봤다. 이럴 수가! 없다. 빰빠바 빠빰빠빠~. 존 윌리엄스의 <슈퍼맨> 로고송이 빠졌다. <슈퍼맨>이 이럴 순 없다. 잠깐만, 호들갑 떨지 말고 현실을 직시해보자. 이건 크리스토퍼 놀란이 제작한 영화다. 각본이 <배트맨> 삼부작의 역사를 쓴 데이비드 S. 고이어니, 크리스토퍼 놀란의 사적, 공적 파트너인 에마 토머스 역시 빠질 리 없다. 한스 짐머는 이 구성의 화룡점정이다. 땅이라도 뒤엎을 듯한 전조를 내비치는 예고편의 장중한 음악은 그러니까, ‘지금까지 <슈퍼맨> 시리즈는 모두 잊어라. 슈퍼맨의 탄생, 기원, 시초, 근원 모든 걸 여기 새로이 밝히노라’라는 일종의 으름장이다. 일단 시놉시스 자체가 슈퍼맨의 정체성에 관한 고뇌다. 양부인 조너선 켄트(케빈 코스트너)가 아들 클라크 켄트(헨리 카빌)의 남다른 힘
강철의 사나이 슈퍼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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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멸망을 대비하며 감독들이 일제히 우주로의 대탈주를 꿈꾸기라도 한 걸까. 2013년의 외화 빅 프로젝트는 단연 SF블록버스터의 공습이라 할 만하다. <트론: 새로운 시작>의 조셉 코신스키와 <디스트릭트 9>의 닉 블롬캠프의 신작, 그리고 <호빗> 시리즈를 벗어나 로봇영화로 눈길을 돌린 기예르모 델 토로의 SF영화가 올해의 관객을 기다린다. 지난해에 비해 물량공세는 덜하지만 여전히 건재한 팬층을 거느리고 있는 슈퍼히어로물의 역습도 기대해볼 만하다. 2013년의 극장가를 치열한 전쟁으로 몰아넣을 열편의 블록버스터 외화를 소개한다. 속편의 활발한 제작, 스타 감독들의 귀환 등 올해 외화 개봉작의 경향도 함께 짚었다.
HOT BLOCK-BUSTERS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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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7번방의 선물'은 6살 지능의 딸바보 '용구'와 평생 죄만 짓고 살아온 7번방 패밀리들이 '용구' 딸 '예승'을 외부인 출입금지인 교도소에 반입하기 위해 벌이는 사상 초유의 미션을 그린 휴먼 코미디로 2013년 1월 24일 개봉 예정이다
[류승룡]"전작에서 때린 만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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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난감한. <라이프 오브 파이>는 그런 영화였다. 특히 여기엔 파이의 개인사, 등장하는 이름, 내레이션, 심지어 바나나까지 몽땅 허투루 쓰인 게 없는데, 원작 소설이든 영화든 비유와 상징이 야수처럼 으르렁대며 이야기를 살아 있게 만든다. 배가 ‘침춤’(Tzimtzum)인 것도 그렇다. ‘침춤’은 무한의 존재가 스스로 수축해 만든 진공의 공간에 세계를 만들었다는 카발라 창조론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핵심이기도 한 이 상징은 미카엘 다나의 스코어로 한번 더 강조된다. 상어떼 틈의 파이가 침몰선을 목격할 때 흐르는 이 곡은 이후에도 여러 번 변주되며 신비감을 가중시킨다. 한 세계가 파괴될 때 또 다른 세계가 탄생한다. 거기에는 이성과 본성, 의심과 믿음, 절망과 희망이 공존한다. 이 모순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 가득한 작품의 음악이 영적으로 들리는 건 한편 당연하다. 미카엘 다나는 비서구적인 사운드 소스를 전자음악과 활용하며 유명해진, 명상음악에도 심취한
[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눈물 터지기 직전의 울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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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21일. 마야 달력의 마지막 날엔 대통령선거 이틀 뒤의 우울한 여흥거리로 지구 종말론을 다뤘던 방송을 다시보기했다. 종말론에 심취한 청년의 안색은 창백하고 멸망의 날을 대비하던 또 다른 사내는 약속된 시간이 지나도 ‘들림’받지 못하자 겸연쩍은 표정으로 바닷가 방죽을 서성거렸다. 구원은커녕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단번에 망하는 일 따위도 여간해선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재확인했으니, 새해도 밝은 참에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생존으로 흘러갔다. 타인의 편의에 기대 사는 연약한 대도시 문명인 입장에서 생각하는 생존이란, 적어도 위급한 상황에서 무리에 폐를 끼치는 존재가 되고 싶진 않은 심정이랄까. 가스와 전기, 물이 끊긴 비상시에 온수로 씻고 싶다고 투덜대거나 남이 애써 피운 불을 꺼뜨리는 사람이 나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불을 피울 기술을 습득한다면 더 낫고.
SBS <생활의 달인> 무인도 생존대결 편에선 세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불을 피운다. 물이 담긴 페트병을
[유선주의 TVIEW] 종말에서 생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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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지주의자들 한 사람에게 가시적 우주는 환영 혹은 궤변에 불과했다. 거울과 부성(父性)은 혐오스럽다. 그것들은 이 궤변을 증식하여 산포하기 때문이다.” 보르헤스의 단편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1940)에 등장하는 인용문이다. 물론 이는 존재하지 않는 해적판 백과사전에서 가져온 사이비 인용이다. 아무튼 거울에 사물이 비치는 것과 아비가 자식을 낳는 것을 똑같이 환영의 ‘복제’로 파악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 단편 속에서 보르헤스는 이 문장 덕분에 ‘틀뢴’이라는 이상한 가상의 세계를 알게 된다.
존재와 생성
헤라클레이토스는 “우리가 같은 강물에 두번 몸을 담글 수는 없다”고 말했다. 강에는 늘 물이 흐르나, 우리가 보는 물은 실은 매번 다른 물이다. 강물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물도 마찬가지다. 자연의 모든 것은 한순간도 그전의 순간과 같을 수 없다.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신체를 이루는 개개의 세포들은 실은 태어났다가 죽기를 반복한다.
[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무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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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수학을 잘하지 못했지만(이라고 에둘러 표현해본다. 엄밀하게 따지면 수학은 낙제 수준!) 수학책 보는 건 좋아했다. 거기엔 숫자와 도형이 많아서 보고 있으면 암호문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그걸 계속 들여다보기만 해도 세상의 비밀을 알아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서는 표지판이나 그래피티나 도시 속 기호를 보는 걸 좋아했다. 낯선 나라의 도시에 가면 암호문 같은 표지판을 자주 들여다보았다. (조금 과장하면) 기호나 표지판 속에는 문명과 윤리와 마음이 들어 있다. 단순화된 동그라미와 네모와 화살표 속에서 그런 걸 찾아내고 싶어 하는 건, 아무래도 내가 이상한 거겠지.
예전 외국의 어느 도시에 갔을 때 지하철 즉 메트로(Metro) 표시를 해놓은 ‘M’을 보고 그 형상이 참 마음에 들었던 적이 있다. 거 참 시원시원하게 세워놓았군, 아주 멀리서도 지하철을 잘 볼 수 있겠어, 싶었다. 그로부터 몇달 뒤, 사람들과 함께 외국 여행을 하다가 사소한 의견 충돌이 있었다.
[김중혁의 최신가요인가요] 기호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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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과 가을, 초겨울에 걸쳐 정신없이 달려왔던 뮤지컬 <내 사랑 내 곁에> 작업이 모두 끝났다. 무대 작업은 처음이라 시행착오도 많았고 영화와는 너무도 다른 낯선 시스템으로 인해 고생도 많이 했지만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이 많았고 작업 중간에 여러 스탭들이 교체되는 진통도 있었다. 작업을 위해 공연장 근방에 방을 하나 잡았었는데 발 뻗고 편히 잠든 날이 손에 꼽힌다. 매일 밤 무대가 단두대로 바뀌는 끔찍한 악몽에 뒤척였다. 처음으로 누군가의 멱살을 잡기도 했었다.
본격적인 뮤지컬 작업에 들어가기 전 ‘SO WHAT’ 칼럼을 통해서 작업에 임하는 각오 비슷하게 쓴 글을 다시 읽어봤다. 처음 하는 무대 작업에 대한 기대와 흥분으로 설레던 당시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설렘이 악몽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영화와 뮤지컬은 프랑스어와 중국어의 차이만큼이나 달랐다. 문법이 다르고 용어가 다르고 뉘앙스가 다르고 무엇보다
[SO WHAT] 나의 뮤지컬 원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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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인터뷰에 응해주신 한 감독님께 선물받았던 10년 다이어리. 용도가 다했으려니 막연히 체념하고 있었는데 막상 펼쳐보니 4년이나 남아 있다. 진즉 성실했다면 365일이 ‘원데이’가 될 수도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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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에 <원데이>를 보러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성싶었다. 새벽 5시부터 날리기 시작한 눈을 맞으며 동트기 전 집을 나섰다. 정결히 쌓인 첫눈에 두줄의 점선이 찍혔다. 새해에도 여전히 비뚤고 서툰 나의 궤적. 눈발이 멎지 않았기에 나 다음 이 길을 걸을 누군가도 천진하게 처음의 기쁨을 누릴 거라는 사실이 더 흐뭇했다. 4시에 출근하셨다는 택시기사 아저씨에게 날이 험해 일찍 퇴근하셔야겠다고 참견했더니 “그럼 손님처럼 택시 필요한 사람들은 어쩌고요”라고 웃어넘기고 “시베리아 사는 사람들에 비하면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죠”라고 덧붙이신다. 그냥 수사인 줄만 알았더니 여행을 다녀오셨단다. 바이칼 호수 깊이가 1740m인 거 알아요? 호수로 흘러들어가는 물은 서른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원데이>로 시작한 DAY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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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했으나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절망과 분노,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말들이 난무했고, 그 어느 쪽에라도 마음을 두고 싶었으나 모든 것들이 껍데기 같았다. 슬프고 억울했으나, 실은 무엇에 슬프고 억울한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그러나 이상하게도 자꾸만 몸으로 돌아오는 반응에 몸서리치다가 그 끝에 지독한 호들갑과 자기 연민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은 알게 되었다. 지금 내 앞의 믿을 수 없는 현실보다, 실은 그 호들갑과 자기 연민이 어느새 더 끔찍해졌다. 수많은 말들에 또 다른 말을 끼워넣을 자격이 내게 있는지, 아무래도 주제넘은 글이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안고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쓰기로 한다. 객잔의 일원으로 다시 돌아오면서 다시 자유롭게 여기서 놀기 위해서는 한번 쯤은 이런 글을 써야 할 것 같다고 변명한다. 그러니 이 글은 2012년 12월 선거 이후, 어느 영화를 보며 느낀 상념들을 쓴 글이 되겠지만, 영화평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며, 무엇보다 사심 가득하고 이곳저
[신 전영객잔] 기다림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