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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줄에 묶여 있는 개를 보면 무척이나 마음이 불편하다. 튼튼한 네 다리가 있어도 달릴 수 없는 개의 처지가 불쌍하다. 심지어 ‘자신들의 충직하고 영리한 벗’이라고 부르는 개를 쇠줄에 묶어두고도 양심의 가책이라는 걸 전혀 느끼지 않는 인간들의 이기심을 생각하면 아주 치가 떨리게 싫어진다. 쇼펜하우어가 ‘그들의 짧은 생을 생지옥으로 만들어버린 인간들’을 욕하며 개를 쇠사슬에 매어두는 자는 개에게 물리는 봉변을 당해도 싸다 했는데 나 역시 같은 심정이 되곤 한다. 그렇다. 아무래도 난 전생에 개였던 것 같다. 고양이도, 고라니도, 소나 돼지도 좋아하지만 개만큼 감정이입이 잘되지는 않는다. 예전에 살던 집 근처 등산로에 묶여 있던 개(등산로에서 진입할 수 있는 집에서 키우던 개) 같은 경우 구름처럼 하얀 외모가 예쁘기도 했지만 등산객의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위험한 인물인지 아닌지 감지할 만큼 똑똑하고 센스있는 녀석이어서 그 처지가 더 안타까웠다. 이사 가기 전에 녀석을 극적으로 구출해서 함
[SO WHAT] 개는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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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도 감수성도 동결될 것 같은 독한 겨울. 액화 니트로겐으로 냉동한 꽃을 네덜란드 정물화 관습대로 배치한 다음 폭파의 순간을 초고속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오리 거쉬트의 <Blow Up: Untitled4>를 보며, 꽃들의 파편에 찔려 더운 피를 확인하는 몽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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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세 할스트롬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적 있는 존 어빙의 장편소설 <사이더 하우스>의 첫 장을 지배하는 주제는 “고아에게는 쓸모가 매우 중요하다”로 요약된다. 미국 메인주 세인트 클라우즈 고아원에서 태어난 소년 호머 웰즈는 몇 차례 파양 끝에 스스로가 매우 쓸모있는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는 세인트 클라우즈를 집으로 선택한다. 그리고 고아원을 운영하는 괴짜 의사 윌버 라치는 소년의 의지를 받아들인다. (닥터 라치가 이 소년에게 기울이는 무뚝뚝한 애정의 강도는 웬만한 러브 스토리를 무색하게 한다.) 20쪽에 이르러 존 어빙은 주인공 호머를 가리켜 “그는 ‘쓸모’ 빼면 시체였다”고 기술하는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쓸모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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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레이코프를 처음 알게 된 건 2000년 중반이었다. 정확히 어떤 이유로 그가 쓴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거나 그의 책을 읽자마자 그의 열혈 팬이 됐다. 사실 그의 책은 대단히 정치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재’일 뿐 그는 인지언어심리학자답게 사람의 ‘생각’과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렸을 때부터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할까?’, ‘왜 내 마음은 이렇게 변화되는 걸까’에 대해 쓸데없이(?) 궁금해했었는데 그의 책은 바로 이러한 나의 궁금증을 후벼팠고, 때렸고, 동시에 어루만져줬다. 요약하자면 그동안 읽었던 그 어떤 심리학 책보다 충격적이었다.
이후 난 ‘프레임’이란 개념에 푹 빠져 지냈다. 당연히 많은 것들을 프레임이란 개념으로 보고자 했고, 그럴 때마다 그동안 미처 몰랐던 혹은 알고 있었지만 또렷하지 않았던 것들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당연히
[김진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박근혜, 문재인 그리고 조지 레이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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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인인가, 아니면 람보인가.” <다이하드>(1988)에서 테러리스트(앨런 릭맨)가 자신의 계획을 훼방놓는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에게 정체를 물었다. <다이하드> 시리즈가 나온 지 25년째가 된 만큼 우리가 먼저 그 질문에 대답해보자. 존 맥클레인은 존 웨인이 되기엔 소박하고, 람보가 되기엔 힘이 약한 남자랄까. 그렇다면 존 맥클레인의 대답은 어떠했을까. “전설의 카우보이 로이 로저스가 우상이라네.” 100편이 넘는 서부극에 출연한 까닭에 ‘카우보이의 왕’이라 불렸던 가수 겸 배우인 로이 로저스 말이다. 맞다. 1980년대 당시 인기를 끌었던 람보나 코만도 같은 히어로급 액션영화 속 주인공에 비하면 존 맥클레인은 확실히 카우보이에 어울리는 남자다. 어쨌거나 재미있는 건 로이 로저스나 존 맥클레인이나 ‘때(피와 땀)에 전 셔츠’를 입었다는 사실이다.
‘때(피와 땀)에 전 셔츠’를 입은 남자
‘카우보이’ 존 맥클레인이 돌아왔다. 디지털 액션 시대에 뛰
[브루스 윌리스] 존 맥클레인, 네버 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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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감 제로의 CF 조감독 최보나(이시영)가 Dr.스왈스키(박영규)에게 건네 받은 "남자사용설명서"를 통해 최고의 인기스타 이승재(오정세)를 사로잡는 좌충우돌 연애스토리를 담은 '남자사용설명서'는 오는 2월 14일 개봉 예정이다.
[오정세]"‘이시영’ 여성스럽고 여린 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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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을 배경으로 각자의 목적을 위해 서로가 표적이 된 비밀 요원들의 생존을 향한 사상 초유의 미션을 그린 영화 '베를린'은 오는 1월 31일 개봉 예정이다.
[전지현]"‘련정희’, 예니콜과 너무 달라 갑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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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은 단순한 신제품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였다. 이 재주 많은 기계에 길들여진 뒤로는 통화와 문자만 주고받던 전화기로 더이상 돌아갈 수 없게 되고 만다. 하지만 이제 최초의 열광은 식어가는 눈치다.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는 재미에도 시들해지고 시리(Siri, 애플의 음성 인식 서비스)와 대화를 나누는 일도 더이상은 신기한 경험이 아니다. 최소한의 기능만 담은 저가 스마트폰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게 된 이유다. 아이리버의 2013년 첫 신제품인 울랄라(ULALA)는 정가가 14만8천원인 스마트폰이다. 약정에 구애받지 않고 이동통신사를 자유롭게 옮길 수 있는 자급제 폰이라는 점에서 부담은 좀더 가벼워진다. 운영체제는 안드로이드 2.3.5 진저브레드이고 3.5인치 액정을 장착했으며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디자인에 그립감도 뛰어나 누구나 부담없이 사용할 만하다. 듀얼 SIM 기능이 있어 해외 출장이나 단기유학 시 해당 국가 통신사의 SIM만 구입해 교체하면 별도 로밍 서비스를 이용할 필요가
[gadget] 비싸야 똑똑하다는 편견을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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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1. 3축 가속도 센서를 장착해 좀더 자유로운 수동 조작이 리모컨으로 가능해졌다. 자동차 핸들 모양의 리모컨을 별도 구매하면 카레이싱 게임을 하듯 청소를 즐길 수 있다. 이보다 더 생산적인 난폭운전은 없을 듯.
2. 4단계 멀티레이어 먼지 필터로 청소 효과를 극대화하고 필터 내구성을 강화했다. 장난감같이 보여도 맡은 바 책임은 확실히 하는 반전있는 청소기.
<중경삼림>의 양조위는 집 안에 있는 물건들과 대화를 나누곤 했다. 비누를 앞에 두고는 “요즘 점점 야위어가는 것 같아”라고 걱정해주고 젖은 수건에게는 울지 말라며 다독이는 식이다. 당시의 대사를 새삼 돌이켜보면 민망해서 손발이 타들어가는 것 같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저런 게 도시인의 고독이고 ‘간지’나는 슬픔이었다.
만약 <중경삼림>이 2010년대에 만들어졌다면 양조위는 집 안의 어떤 물건과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로봇청소기가 젖은 수건을 밀어내고 대신 캐스팅되진 않았을까? 요즘의 로봇청
[gadget] 게임기를 닮은 청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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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천, 이름만 들어서는 누군가 하겠지만 얼굴만 보면 안다. 이미 당신이 여러 한국영화에서 한번은 꼭 만났던 익숙한 얼굴이다. 그와 함께 <짝패> <부당거래> 등을 작업한 류승완 감독이 또 다른 개성파 배우 ‘우현’과 비교했을 정도로, 출연한 작품을 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왠지 어느 드라마나 영화에서 꼭 본 것처럼 느껴지는 친근한 배우다. 지난해만 해도 <이웃사람>에서 제일 먼저 죽임을 당하던 경비원 황씨, <점쟁이들>에서 박 선생(김수로)과 함께 하얀 두루마기와 검은 모자를 쓴 충렬 선생, <26년>에서 미진(한혜진)의 사격용 총기를 인명살상용으로 개조해주던 짱구 노인으로 등장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렇게 여러 영화에서 감초 노릇을 톡톡히 해오던 그가 <7번방의 선물>에서 자해공갈범으로 교도소 7번방에 들어온 최고령자 ‘서 노인’으로 등장한다. 굵게 ‘치고 빠졌던’ 이전 영화들과 비교하자면 한달여 동안 류승룡, 오달수
[김기천] 나를 키운 건 8할이 모멸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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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천재 예술가들의 삶을 다룬 콜린 윌슨의 비평서 <아웃사이더>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주목. <정신기생체>는, <아웃사이더>의 주제를 연장하되 거기에 SF라는 형식을 입히고 H. P. 러브크래프트풍 양념을 살짝 얹은(러브크래프트가 이 소설의 탄생에 어떻게 기여했는지에 관한 재미있는 스토리가 서문에 나와 있다) 작품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신기생체>를 먼저 만난 SF 독자라면 이 소설과 이란성 쌍둥이 관계인 <아웃사이더>에 대한 호기심이 솟아날 것이다.
두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무기력하고 우울하고 기계적이고 우리의 본질에서 먼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당신이라면 뭐라고 답하겠는가? 돈? 가족 혹은 타인? 사회구조? 철학과 심리학 전문가이면서 SF 애호가였던 윌슨은 두 가지 버전으로 흥미로운 대답을 내놓았다.
<정신기생체>는 꽤 독창적인 SF다. ‘인간
[도서] 우주적 정신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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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1월27일까지
장소: 연우소극장
문의: 02-6349-4721
한 극단의 창단공연에는 대개 그 극단의 특징과 색깔, 그리고 그들이 앞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연극의 청사진이 들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극단 달나라동백꽃의 창단공연 <달나라 연속극>은 지난해 괄목할 성과를 이룬 이 신진 극단이 지닌 최초의 색깔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2011년 말 작가 김은성과 연출가 부새롬, 그리고 이들과 뜻을 같이하는 젊은 배우 몇명이 모여 결성한 극단 달나라동백꽃은 신생 극단치고는 단단한 완성도를 보여준 일련의 공연들과 팟캐스트를 통해 널리 알려진 희곡낭독방송, 그리고 작가 김은성의 활발한 창작활동으로 지난해 연극계의 시선을 한몸에 모았다. 올리는 공연마다 많은 화제를 불러모았고, 또 연말에는 이런저런 상도 많이 받았다. 분주했던 2012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으며 이들은 창단공연이었던 <달나라 연속극>을 ‘달나라동백꽃 레퍼토리’ 시리즈의 첫 작품
[공연] 도약하는 신진 극단의 첫 레퍼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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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음악웹진 ‘보다’ 편집장 ★★★★
또 한명의 새로운 R&B 스타가 탄생했다. 영국 출신의 이 여자 가수는 R&B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덥스텝이나 팝 같은 다른 장르를 받아들이는 데도 인색하지 않다. ‘빈티지’와 ‘새로움’이 혼재돼 있는 R&B의 ‘오래된 미래’ 같기도 하다. 앨범 전체로서의 색깔도, 각 싱글의 매력도 다 살아 있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지만 결국은 그의 것인 목소리에도 주목하자.
이민희/ 음악웹진 ‘백비트’ 편집인 ★★★☆
의욕과 과욕 사이의 어느 아슬아슬한 지점. 제시 웨어는 못하는 게 없으며 안 하는 것도 없다. 대체로 솔 기반의 보컬을 유지하면서 문득 힙합과 어울리고, 몽롱한 전자음악의 세계로 이동했다가도 갑자기 록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그야말로 나열에 몰두하는 앨범이라 산만해질 수도 있었을 텐데, 어느 곡에서나 확실한 의도와 진지한 태도가 드러나기에 다행히 불편하지는 않다. 일관성을 포기한 대신 개별 완성도를 얻은
[MUSIC] 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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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독의 영화노트] <클라우드 아틀라스> 어떤 모호함
[올드독의 영화노트] <클라우드 아틀라스> 어떤 모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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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로로와 친구들은 슈퍼썰매 경주를 보며 챔피언이 되는 꿈을 꾼다. 그러던 어느 날 슈퍼썰매 우승 상품인 썰매를 운송하던 비행기가 에디의 미완성 실험 로켓에 부딪혀 뽀롱마을에 불시착하게 된다. 허풍쟁이 배달왕 토토는 자신이 슈퍼썰매 챔피언이라 속이고 비행기가 다 고쳐질 때까지 뽀로로와 친구들을 훈련시킨다. 다신 보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한 거짓말이었지만 뽀로로와 친구들은 발명왕 에디가 만든 슈퍼썰매로 경주에 참여하기 위해 경기장이 있는 얼음나라 ‘노스피아’까지 몰래 따라간다.
탄생 1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뽀로로 극장판: 슈퍼썰매 대모험>은 뽀롱마을에서 벗어나 노스피아라는 생경한 곳을 모험하게 된 뽀로로와 친구들을 그린다. 비록 어린이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뽀로로라지만 원작이 5분 내외의 유아용 TV시리즈란 걸 감안할 때 <뽀로로 극장판…>은 여러 가지 차원에서 도전과 모험이다. 결론적으로 이 모험은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다층적인 결이 빛나는
탄생 10주년 기념 <뽀로로 극장판: 슈퍼썰매 대모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