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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액션도 호러도 아니다. <휴고> 같은 판타지 블록버스터도 아니다. 그저 드라마일 뿐인데 <위대한 개츠비>는 특이하게도 3D영화다. “다음 세대에 이 작품을 어떻게 하면 더 생동감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바즈 루어만의 말이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3D가 적용된 곳은, 1920년대의 부가 집결된 개츠비 저택의 파티로의 초대장이다. 말로만 듣던 개츠비의 그 유명한 파티 속에 관객이 함께 있는 것 같은 경험을 느끼게 해주자는 목적이다. 말끔한 슈트를 차려입은 디카프리오의 얼굴이 10cm 가까이 다가온다는 상상만 해도 숨이 막혀 올 지경이다. 프로듀서 루시 피셔는 “후반작업에 서둘러 효과를 넣은 영화도 아니고, 쇼크를 주려고 활용한 것도 아니다. 아마 3D를 가장 예술적으로 사용한 예가 될 거다”라며 3D 효과를 자신한다.
바즈 루어만 감독이 모티브로 삼은 건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히치콕이 <다이얼 M을 돌려라>를 3D로
파티에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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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즈 루어만이 의상과 프로덕션을 담당한 캐서린 마틴(둘은 부부이기도 하다)에게 처음으로 주문한 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뉴욕은 싫다”는 것이었다. 모던하고, 본능적이며,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뉴욕, 피츠제럴드가 보고 느꼈던 당시의 뉴욕을 재현하라는 것이었다. 소설의 배경은 1922년 여름, 출판은 1925년이었다. 시점은 결국 1922년부터 대공황이 일어난 1929년까지로 삼았다. 캐서린 마틴은 “작은 것 하나까지 모두 실존 인물들의 의상, 장신구, 문화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졌다. 일부 언론에서 당시 어떤 건 존재하지 않았다는 기사를 쓰기도 했는데, 나는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소품과 의상의 자료를 다 보유하고 있다. (웃음) 실루엣을 좀 과장한 건 있지만 모두 실증 자료를 바탕으로 한 거다”라고 전한다.
1920년대는 20세기 패션의 태동기이니만큼 이만큼 즐거운 의상 작업도 없어 보인다. 바야흐로 여성들은 빅토리아 시대의 거추장스러운 속옷을 벗어던졌고, 짧은 치마의 시대가 도래했다
본능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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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츠비의 저택
제작진이 “어른의 디즈니랜드”라 명명한 개츠비의 저택. 고딕 스타일의 뾰족한 탑들은 후반작업에서 CG의 힘을 빌려 완성됐다. 이곳의 비현실적인 화려함은 몽상가이자 자신의 존재를 데이지에게 절박하게 드러내길 원하는 개츠비의 내면을 닮았다. 그의 과시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카메라가 저택 바닥에 새겨진 개츠비의 이니셜을 비출 때다.
“내 평생 그런 광경은 처음 봤다.”
<위대한 개츠비>의 파티장 세트에 들어선 캐리 멀리건의 소회다. 1920년대 의상을 입은 400여명의 보조 출연자들, 반짝이는 샹들리에와 달처럼 공중에 떠 있는 풍선들, 곳곳에서 흘러넘치는 샴페인…. <물랑루즈>를 만든 감독 아니랄까봐, 바즈 루어만이 구현해낸 1920년대 뉴욕 상류사회의 위용은 과연 보는 이를 단숨에 압도할 만큼 화려하고 찬란하다. <위대한 개츠비>의 프로덕션 디자인을 구상하던 제작진은 원작 소설의 한 부분을 떠올렸다. 작품의 화자 닉
재현이 아니라 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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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즈 루어만이라 참 다행이다. 그간 <위대한 개츠비>를 스크린에 제대로 재현하는 것은, 개츠비가 데이지의 사랑을 얻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로미오와 줄리엣> <물랑루즈>에서 보여준 화려한 시각의 세계, 그 노하우가 <위대한 개츠비>에 업그레이드되어 적용된다. 1920년대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객을 그 시대로 데리고 가겠다는 야무진 각오로 매달린 <위대한 개츠비>의 면면을 영화를 보기 전 미리 살펴본다. 3D 촬영, 세트, 의상, 음악까지 총망라된 입체적인 해부도다.
바즈 루어만 감독이 <위대한 개츠비>를 영화화할 결심을 한 건 2001년 겨울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였다. 막 <물랑루즈>의 촬영을 끝내고 나서 여행을 하면서였는데, 어릴 적 청소년 권장도서로 읽었던 때와 달리 이때는 오디오북을 통해 ‘듣는’ 경험이었다. “와인을 따르고 스쳐지나가는 시베리아를 바라보면서 듣기 시작했다.
멋진 신기루, 1920년대로 가는 타임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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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조정석' 영상인터뷰.
[영상인터뷰] 배우 ‘조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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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왜 백혈병에 걸렸는지, 어째서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갔는지 밝혀낼게. 아빠가 꼭 약속 지킬게.” 이런 말을 하는 아버지가 우리 앞에 있다. 어디서 바람이 분다. 젖은 손을 바람이 핥고 간다. 말라가는 손바닥의 감촉을 느끼며 나는 생각한다. ‘국가’라는 단위의 공동체 속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이 있을 때, 그 억울함은 누가 풀어줘야 하는 것일까. 가장 좋은 것은 억울한 죽음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발생했다면 최선을 다해 해원해야 한다. 죽은 자를 위해, 산 자를 위해, 그리고 이 땅에서 살아갈 미래의 사람들을 위해.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애쓰는 것이 피를 나눈 친족뿐이라면 그것은 원시사회다. 혹은 혈통 공동체가 중심인 중세 봉건사회이거나. 현대사회는 억울함을 조율하기 위해 보다 합리적인 합의시스템을 활용한다. 법과 언론이 그 역할을 하기 위해 공공성을 부여받는다. 회자되는 저 엄숙한 ‘법정신’과 ‘언론정신’은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보살피라는 사회적 책무에 대한 표현
[김선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천부당 만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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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을 날리고 스케치북을 넘기는 이벤트보다 상대 머리 위로 내려앉은 벚꽃을 떼어주며 수줍게 운을 떼는 소박한 청혼이 어울리는 계절. 벚나무 길을 걸으며 그림 같은 데이트를 즐겼으나 영 좋지 않은 타이밍에 청혼한 남자와 집에 돌아가고픈 마음에 사로잡힌 여자가 있다. MBC 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의 한태상(송승헌), 서미도(신세경) 커플 이야기다.
서른아홉과 스물일곱. 열두살 차이 남녀의 첫 만남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채업을 하는 보스 밑에서 일하던 태상이 미도 아버지의 헌책방에 수금을 하러 찾아갔던 것. 독한 눈빛으로 맞서는 미도를 보며 집안의 몰락 때문에 대학에 가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 태상은 미도네 사채이자를 탕감해주고 미도를 위기에서 구했으며 이후로도 어려움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학비를 지원했다. 회사를 키우고 문화사업을 시작한 태상이 사랑을 키운 7년 동안, 미도는 나이 많은 깡패 아저씨의 영문 모를 호의에 두려움과 모멸감을 느끼며 언
[유선주의 TVIEW] 솔직함이라는 트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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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 패로는 성적 매력이 별로 없는 배우다. 취향의 문제이긴 하지만, 일반적인 관능과는 거리가 먼 외모를 가졌다. 앙상하게 말랐고, 너무 어려 보였다. 대중을 사로잡을 카리스마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배우를 하기에는 부끄럼도 많고, 노출되는 것도 싫어할 것 같았다. 그런데 패로는 10대 때 배우가 된 뒤, 우디 앨런과의 한판 싸움이 정리된 최근까지 그 어떤 스타 못지않게 팬덤의 중심에 있었다. 종종 세상을 놀라게 하는 스캔들을 일으키며, 패로의 삶은 그 자체가 세상에 전시된 멜로드라마였다. 사적인 부분이 보호되지 않고 전부 공적으로 알려지는 노출된 삶, 이것은 스타와 배우를 가르는 기준점이기도 한데, 패로는 일상의 모든 것이 낱낱이 관음의 대상이 되는 전형적인 스타의 운명을 살았다.
스캔들을 디딤돌로
스캔들은 허구에서 일어나는 외설이 현실에도 침범한 윤리적 위반이다. 허구 속의 외설도 불쾌한데, 그게 현실의 일이라면 역겨움의 대상이 되기 쉽다. 문제는 그 외설이라는 것이 종종
[한창호의 오! 마돈나] 외설로 치른 스타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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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들의 울분과 하소연이 엄청난 공감을 이루고 있다. 오죽하면 갑인 대기업과의 계약을 을들을 죽이는 ‘을사늑약’이라고까지 일컬을까. 약탈적 부당 거래와 횡포는 전 업종에 걸쳐 있다. 계약•거래에서 갑을관계는 어찌 보면 필연이다. 문제는 이것이 인격의 영역까지 침범한다는 것이다. 빵 회장과 라면 상무 사례에서 보듯 ‘갑의 지위’를 악용하는 ‘진상 갑’들은 허다하다. 남양유업 사태도 단지 물량 떠넘기기나 삥 뜯기만이 아니라 본사 영업책임자가 대리점주들에게 인격 모욕을 수시로 해댔기 때문에 불거졌다. 영업책임자는 윗분 핑계를 댈 테고, 윗분은 더 윗분, 더 윗분은 오너 핑계를 대겠지.
얼마 전 동네 상가에서 목격한 일이다. 한 가게가 망하고 다른 가게가 들어설 즈음 집기들을 철거하느라 먼지와 굉음이 그치지 않았다. 마침 아래층 커피집에 “중요한 분을 모시고 온” 손님이 “대화가 되지 않는데 커피를 판다”며 커피집 사장에게 따졌다. 사장은 관리소에 항의했고, 관리소 직원은 철거일꾼에게 법
[김소희의 오마이 이슈] 우리 모두 조금씩은 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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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을 이미 알지만 계속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대개 궁금함이란 단어로 두루뭉술하게 묶어서 이야기하곤 하지만 우리는 이 단어를 좀더 세밀하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 결과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결과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편하고 익숙해서 어떤 땐 이웃집 아가씨 같다가도 다시 돌아보면 엉뚱한 얼굴을 보여주는 천진난만한 배우, 최강희는 결과보다 과정이 궁금한 배우다. 그녀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동안의 아이콘이겠는가. 데뷔 이래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왔지만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은 모두 최강희라는 배우의 이미지에 녹아들어 귀엽고 사랑스러운 얼굴로 탈바꿈한다. <미나문방구>로 찾아온 그녀는 다시 한번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으로 작품에 신뢰를 준다. 아마도 포스터 속 그녀를 마주하는 순간 대략의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왠지 그녀의 이야기를 좀더 들어보고 싶었다. 예측가능한 결과에 대해 듣고자 함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늘 이렇게 안정
[최강희] 당신이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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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11월, 공석이던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원장으로 부임한 최익환 원장은 빠른 속도로 조직을 재정비했다. 조직개편과 맞물린, 영화진흥위원회와의 모호한 관계, 혼란과 파행 운영으로 인한 위상 축소, 그리고 부산으로의 이전 등 여러 난제들이 겹치며 잡음이 끊이지 않던 영화아카데미에 들어와 안정감을 불어넣었다. 영화아카데미 11기 출신으로 <그녀는 예뻤다>(2008), <마마>(2011) 등을 연출했던 그는 이미 그전부터 초빙교수로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쳐왔고, 제작연구과정 등 이미 성공적으로 뿌리내린 커리큘럼을 효과적으로 계승하면서 다방면의 마스터클래스와 배급을 강화하는 등 영화계와의 ‘스킨십’에 주안점을 뒀다.
차기작을 준비하다 갑자기 ‘소방수’로 들어왔던 그이지만, 이제는 ‘감독’보다 ‘원장’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해졌다. 영화아카데미에서 어느덧 1년 반의 시간을 보낸 그를 만나 새로운 방향과 비전에 대해 물었다. 박기용, 장현수 등 이전
[최익환] 계속 재미난 실험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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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을 축하하는 것을 처음으로 생각해낸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죽이는 것은 너무 가벼운 벌일 것이다.” 앞부분에 인용된, 누구나 들으면 가볍게 웃고 넘어갈 마크 트웨인의 저 말처럼,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의 시작은 잔잔하다.
주인공 부부는 로맨스 소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전형적인 쿨한 뉴욕 커플이다. 남편 닉은 1990년대 말 잡지계가 영광의 순간을 보낼 때 기자가 된다. 아내 에이미의 인생은 좀더 소설적이다. 그녀의 부모는 ‘어메이징 에이미’라는 청소년용 시리즈물을 쓰는 작가 부부다. 누구나 어린 시절 이 시리즈를 읽으며 자라고, 에이미는 그 주인공과 같은 삶을 산다. 자신감 넘치는 남자와 부유한 부모를 둔 아름다운 여자의 만남. 두 사람은 <어메이징 에이미의 결혼식 날>이 출간된 직후 결혼한다.
물론 그들의 인생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뜻하지 않은 인터넷의 발흥으로 닉은 직장생활 11년 만에 실직한다. 에이미의 처지도 나
[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올해 최고의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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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의 아버지> 등에 출연해 친근한 코미디 배우이자 유명한 미술수집가인 스티브 마틴이 쓴 장편소설. 미술품을 경매하는 소더비와 첼시의 갤러리 거리 등 뉴욕 아트마켓을 배경으로 여성 아트 딜러 레이시 예거의 이야기를 그렸다. “20세기 미국 미술시장을 반추하는 책 열권 이상의 역할을 한다”는 조이스 캐롤 오츠의 추천사처럼, 현대 미술이 어떤 과정을 통해 작품의 상품성을 획득하고 그 가치를 불려가는지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도서] 20세기 미국의 미술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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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폴란스키 감독에 의해 <악마의 씨>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한 소설 <로즈메리의 아기>의 후속편. 이 이야기에 어떤 뒷이야기가 가능할까? 로즈메리는 30여년의 긴 혼수상태에서 깨어난다(실제로 소설도 전작이 출간된 지 30년 만인 1997년에 발표되었다). 사악한 자들의 손에 넘어갔을 아들은 놀랍게도 정의를 구현한 지도자로 성장해 있다. 전작에서 암시된 음울한 분위기가 세기말 뉴욕으로 이어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도서] 정의를 구현한 지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