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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영화제가 중반을 넘어섰다. 정한석 기자는 지금까지 칸에서 만난 ‘특별한’ 영화들에 대해 냉철하면서도 애정어린 주석을 달아 길고 긴 에세이를 보내왔다. 그 영화들을 만든 이들 가운데 동시대 아시아의 거장으로 불릴 만한 세명의 감독을 만났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천주정>의 지아장커 감독, <블라인드 디텍티브>의 두기봉 감독이다. 그 밖에 칸영화제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사건들과 이슈들을 정리했다. 영화라는 꿈을 먹고사는 프랑스의 작은 도시 칸에서 날아온 흥미로운 이야기가 이제 곧 펼쳐진다.
비처럼 영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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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화두는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 5.18민주화운동을 “북한 소행”으로 몰고, 희생자들을 “홍어”, 시신이 담긴 관을 “택배”라 조롱하는 일베 회원들의 패륜적 발언들은 5월18일 아침을 달궜다. “민주화” 발언을 했던 한 아이돌은 본심이야 어쨌든 일베의 아이콘이 되었다. 심지어 조갑제씨마저 광주 북한군 침투설을 부정했다는 이유로 ‘종북’으로 낙인찍는 걸 보면 일베의 폭주는 불신지옥 집단과 닮아가고 있다.
일베는 지역혐오, 여성혐오, 인종혐오 등 약자들에 대한 온갖 혐오들이 들끓는 용광로처럼 보인다. 극우적 선동이 밤낮으로 괴이하게 과열되는 곳, 누가 더 근사한 혐오 발언을 하고 인증숏을 날리는지 앞다투어 경쟁하는 인터넷 ‘패션극우’들의 왕국.
혹자는 아직 일베가 인터넷 커뮤니티 차원에 머물러 있지만 유럽처럼 인기있는 극우 정치인과 만난다면 길거리를 함께 활보하고 국회 명함을 파는 정당정치 세력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한다. 일리있다. 이들이 길거리에 쏟아져나온다면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진격의 일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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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간 불화를 다룬 TV 솔루션 프로그램들은 대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격렬한 갈등상황에 놓인 문제가족의 변화와 화해를 통해 가벼운 깨달음을 얻은 뒤 기승전결이 끝난 이야기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구성된다. 한데 지난해 이맘때부터 올 5월까지, 6개월 간격으로 각 2회씩 3부가 방영된 <SBS 스페셜-무언가족>을 볼 때만큼은 맘이 편치 못했다. 상담을 통해 화해의 실마리를 얻은 가족이 있는데도, 어쩐지 해결의 후련함과는 거리가 멀다.
<무언가족>에 출연한 다양한 가족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상당 부분 돈과 시간에서 출발한다. 시간을 팔아 돈을 마련하는 동안 소외된 이는 입을 닫고, 돈을 벌지 못해 시간이 남는 쪽은 경멸과 무시 속에 곪아간다. 남의 성공담에 혹하는 현실감각 없는 남편에게 “말 같은 소리를 해. 역겨워 듣기 싫어 죽겠어”라고 쏘아붙이며 품 안의 개에게 “아빠 물어!”라고 지시하는 아내. 스트레스를 가족에게 푸는 아버지를 피해 장애를 가진
[유선주의 TVIEW] 마침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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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폰다는 자기 세대의 대변인이다. 그는 1970년대에 배우로서 절정을 보냈다. 1970년대는 이른바 ‘정치영화의 시대’인데, 폰다는 ‘68세대’ 이후에 등장한 진보세력의 맨 앞줄에 서 있었다. 대중의 지지로 먹고사는 스타가 혁신의 대변인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스스로 존재의 토대를 허물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마르쿠제의 말을 빌리면 대중은 혁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전통을 긍정하는 순응자에게 더 호감을 갖는다(<일차원적 인간>). 폰다는 스타의 위치에서 전통과 한판 승부를 벌인, 혹은 그런 대결에의 초대를 마다하지 않은 드문 삶을 살았다.
그러나 시작은 섹스 심벌
제인 폰다(1937~)의 데뷔는 아버지의 후광으로 가능했다. 알다시피 그의 부친은 전설인 헨리 폰다다. 데뷔작은 앤서니 퍼킨스와 공연한 <키 큰 이야기>(Tall Story, 1960)이다. 농구 선수와의 로맨스를 그린 청춘물로, 감독은 <피크닉>(1955)
[한창호의 오! 마돈나] 낮은 데로 임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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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애니메이션과 특수효과의 거인 레이 해리하우젠이 5월7일 타계했다. 그가 괴물을 창조한 <신밧드와 호랑이의 눈>은 (아마) 내가 극장에서 본 최초의 영화였을 거다. 어른이 된 뒤 감독 이름을 찾아보았지만 번번이 까먹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나는 첫 영화를 영영 ‘해리하우젠 작품’으로 기억할 모양이다. <호빗>의 용이 아무리 굉장한 위용을 드러내도 내겐 해리하우젠의 외눈 괴물과 해골부대만큼 무섭지 않을 게 확실하다. 해리하우젠은 진짜 동물도 종종 이용했다고 한다. 사진은 <신밧드의 일곱 번째 모험> 중 한 장면.
4/30
<셰임>(Shame)의 주연배우 마이클 파스빈더가 2012년 <보그>와 가진 인터뷰를 읽었다. 무슨 이야기 끝엔가 그는 영화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노라고 했다. 그만 양손 맞잡고 공감해버렸다. ‘shame’은 우리말로 옮기자면 ‘치욕’보다는 부드럽고 ‘수치’보다는 탁한 느낌의 단어다. 위아래 입술이 맞닿은 채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잘 붙인 제목 하나 열 줄거리 안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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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다양성 영화 사업에 대한 불만이 계속 터져나오고 있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플러스 운영위원 4명이 허경 프로그래머의 계약 해지에 반발해 4월24일 집단 사퇴했다. 이 사태로 인디플러스와 함께 영진위가 직영하고 있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서울영상미디어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의 상당수가 계약직이거나 2, 3개월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파견직 형태로 고용 계약을 맺고 있음이 드러났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얼마 전 ‘시네마테크에 긴급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성명서를 내고, 문화체육관광부와 영진위 그리고 서울시에 현실적인 수준의 예산 지원을 촉구했다. 서울아트시네마 관계자에 따르면, 극장 영사기는 노후로 고장이 빈번하고, 층간소음 문제로 상영이 종종 중단되기도 한다. 안정적인 상영환경을 갖추기에 지원금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그 피해는 고스란히 관객이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6년간 갈팡질팡
영진위의 전용관 사업운영을 둘러싼 잡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포커스] 대책 있나, 비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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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나이를 먹지 않을 것 같은 배우들이 있다. 때문에 우리는 말콤 맥도웰의 백발이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두꺼워진 하관, 그리고 에드워드 펄롱의 다크서클을 보며 새삼스레 무정한(?)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된다. 윌 스미스도 그런 배우 중 하나다. 아이같이 해맑은 얼굴과 짱짱하게 힘이 들어간 팔다리로 계속 악당과 외계인을 쫓아다닐 것만 같던 이 악동은 어느새 훌쩍 큰 십대의 아들을 데리고 우리를 찾아왔다. 직접 만나본 윌 스미스는 <애프터 어스>를 촬영하며 배우로서, 아버지로서 그가 느낀 여러 가지 감회들을 넌지시 들려주었다.
“죽으면 원없이 쉴 텐데, 지금 무엇하러 쉬나?” 작곡가 퀸시 존스가 했던 이 말을 윌 스미스는 평생의 신조로 삼아왔다. 정말 죽은 뒤 한꺼번에 몰아서 쉬기라도 할 듯이, 데뷔한 지 20여년을 훌쩍 넘긴 그는 지금까지도 스크린 안팎에서 왕성한 활동을 계속해오고 있다. 윌 스미스는 피부색의 흑백을 가리지 않고 폭넓은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는
[윌 스미스] 여전히 유쾌한 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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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자 유지태는 이미 낯설지 않다. <자전거 소년>(2003)을 시작으로 <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2005), <나도 모르게>(2007) 등 네편의 단편을 통해 자신의 연출세계를 선보여왔다. <마이 라띠마>는 가진 것 없는 남자와 타이 이주여성이 보여주는 고독한 사랑 이야기로 배우 유지태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이주민, 호스트, 노숙인 등 영화에 등장하는 사회 밑바닥 계층의 소외된 인물들을 통해 그는 이 한편의 작품이 아닌 앞으로 자신이 영화를 통해 추구해나갈 가치를 설파하고 있다.
-첫 장편으로 제15회 도빌 아시아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연기상복이 별로 없었던 것과 비교된다. (웃음)
=도빌영화제는 아시아영화발굴에 있어서는 정평이 난 영화제다. 디렉터가 딱 한마디 하더라. “영화가 좋아서 불렀다”고. 그 이상 뭐가 더 필요하겠나 싶더라. 한국에서였다면 배우 유지태에 대한 후광도, 선입견도 있었을 텐데 순수하게 영화로만
[유지태] 감독질? 폼 잡고 싶은 마음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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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가상의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이 재미가 있으려면 무엇보다 그럴듯해야 한다. 우주로 진출한 인류의 전쟁사를 통하여 민주주의에 대해 자못 철학적인 접근을 시도한 <은하영웅전설>이나 2차대전에서 연합군이 패배한다는 가정 아래 식민지 미국의 모습을 그린 필립 K. 딕의 <높은 성의 사나이> 등이 모두 진지하고 논리적인 것도 그래서다.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 실패로 돌아가는 데서 출발한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는 온건파인 이토가 살아남으로써 일본이 무모한 진주만 공습을 포기하고 전승국이 된다는 줄거리로 이어지는데,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면 전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상황을 바탕으로 쓴 소설은 어떨까. 예를 들면 전세계에 좀비가 출현해서 인류를 공격하는 이야기라면? 맥스 브룩스의 <세계대전Z>는 잘 쓰기만 하면 이런 스토리까지도 정말 그럴듯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소설은
[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매우 있을 법한, 좀비와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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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리시 페이션트>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마이클 온다체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마이클이라는 열한살 소년이 21일 동안, 실론에서 영국으로 항해하는 오론세이호에 탑승하면서 시작한다. 마이클은 여러 개의 수영장. 감옥, 9명의 요리사들, 그리고 600명 이상의 승객을 태운 7층 규모의 배 오론세이호 안의 식당에서 가장 외진 테이블을 배정받고, ‘고양이 테이블’이라 불리는 장소에서 캐시어스와 라마딘이라는 소년들을 만나게 된다.
[도서] 21일간의 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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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소설이 완벽한 영화로 만들어진 드문 경우 중 하나가 바로 <L.A. 컨피덴셜>일 것이다. 절판되어 입소문으로만 돌던 책이 새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1951년부터 1958년을 배경으로 LA경찰국에 근무하는 웬들 화이트, 에드먼드 엑슬리, 잭 빈센즈라는 세 형사의 이야기를 통해 1950년대 LA의 복잡한 시대상황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678쪽에 달하는 이 책 한권이면 아무리 긴 비행이나 철도 여행도 겁나지 않을 듯.
[도서] 1950년대 LA의 복잡한 시대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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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가서 나만의 방식으로 스케치를 남기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참고할 만한 책이 두권 나란히 출간되었다. 미대 시절 우연히 떠난 긴 여행에서 즐겁게 그리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고 인터넷 동호회 ‘미술과사람들’을 만들어 활동 중인 오은정의 <지금 시작하는 여행 스케치>, 그리고 그래픽노블 <혜성을 닮은 방> <카페 림보>의 작가 김한민의 <그림 여행을 권함>이다. 그림 보는 재미만큼이나 글읽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도서] 즐겁게 그리는 것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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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에세이가 나올 때마다 이번에는 읽지 않아도 되겠지 생각해놓고는 맥주 마시며 땅콩 안주 먹듯 홀짝홀짝 우드득우드득 어느새 한권을 다 끝내버리곤 한다. 뭘 읽었지 생각해보면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나중에 “아! 이런 얘기가 있었지” 하고 책을 찾아보면 그 책이 아니라 다른 책에 실린 에피소드다. 이봐요 하루키 선생, 혹시 집에서 에피소드 재활용기계 같은 걸 쓰고 계십니까? 약간 과장하면 그의 에세이집에서 F. 스콧 피츠제럴드가 한번이라도 언급되지 않은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이렇게까지 투덜대놓고 어느새 다 읽어버린 책이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다. 일본에서 예약판매만으로 50만부가 나갔다는 그의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의 순례의 해>를 기다리는 독자라면 놓치기 아까울 책이다. 일본의 여성지 <앙앙>에 연재한 글을 묶은 이 책(‘무라카미 라디오’ 시리즈는 이전에 한국에 선보인 적이 있지만 빠진 글이 많았다. 이번에는 3권 모두 전체 번역
[도서] 언제나의 하루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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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월 만에 다시 만난 김선 감독은 핼쑥해진 얼굴에 비해 표정만은 밝은 모습이었다. 지난 1월, 그는 박근혜 마네킹을 주인공으로 한 정치풍자영화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이하 <자가당착>)에 두 차례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린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를 상대로 제한상영가등급분류결정취소 소송을 낸 상태였다. 이윽고 5월10일, 서울행정법원은 “성인으로 하여금 이 사건영화를 관람하게 하고 이 사건영화의 정치적, 미학적 입장에 관하여 자유로운 비판에 맡겨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에 김선 감독은 “자가당착에 빠진 영등위도 얼마나 힘들겠냐”며 너스레를 떨면서도,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고 몇번이고 힘주어 말했다.
-승소한 소감이 어떤가.
=당연하게도 승소했는데, 당연하지 않게도 패소를 예상했었다. 영등위가 등급 관련 소송에서 한번도 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사건인데 윤창중 때문에…. 제목이라도 도발적으
[flash on] 제한상영가 또 주면 ‘돌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