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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들개로 태어났다.” 웹툰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원류환(김수현)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면 들개는 무슨, 북파공작원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훈남 배우 세명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트레일러가 공개된 뒤 원작의 캐릭터들과 주연배우들의 높은 싱크로율이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유독 원작과 자주 오버랩되는 것은 배우 이현우의 얼굴이다. 흠모하는 원류환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커다란 눈망울의 이현우는, 정말 웹툰 속의 리해진과 똑 닮았다.
이현우는 드라마 <공부의 신>과 <아름다운 그대에게>로 시청자의 사랑을 받기 전까지 <대왕세종> <선덕여왕> <계백> 등에서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 역할을 맡아왔다. 선량하기 그지없는 이현우의 앳된 얼굴은 확실히 그를 아역배우로서 돋보이게 하는 강점이었다. 덕분에 꽤 오랫동안 ‘순백색’으로 머물렀던 이현우는 지난해 방영된 <적도의 남자>를 통해서 비로
[이현우] 소년에서 성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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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캐스팅으로 연기에 발을 들인 배우 박기웅은 길을 외우는 취미가 있다고 했다. “새로운 곳에 가면 그 동네를 많이 걸어다닌다. 처음 간 장소에서 느껴지는 설렘이 너무 좋아서.” 그 설렘이 어느 정도 가시고 나면, 그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두발로 직접 작성한 동네의 지도가 완성됐다. 이 소박한 취미는, 그의 연기 경력에 대한 비유도 된다. 2005년 영화 <괴담>으로 데뷔한 이래 매 작품 새로운 얼굴로 관객의 인지력과 기억력을 시험해온 그는, 새로 이사 온 동네를 산책하듯 30여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통과해왔다. <동갑내기 과외하기 레슨2> 같은 코미디영화부터 한/중/일 합작 드라마 <풀하우스 테이크2>까지 목록도 다양하다. “어느 작품을 들어가든 첫 촬영 때의 그 간들간들한 기분을 정말 좋아한다. 그렇게 새 캐릭터를 몸에 익히는 게 그전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더라.” 그 간들간들함에 이끌려 그는 쉼 없이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확
[박기웅] 늘 처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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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헝헝~. 푸하핫~. 왕의 위용은 온데간데없이 김수현은 인터뷰 내내 참으로 다양한 소리를 내며 웃었다. 김수현에게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동구의 모습이 아직도 몸에 배어 있는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제가 바보 같다는 말인 거죠?”라며 또 웃었다. 달동네 바보 동구로 위장해 살아가는 남파간첩 원류환. 김수현이 스스로 선택한 임무였다. 얘기를 나눌수록 김수현은 엘리트 간첩으로 살았던 때보다 동네 바보로 살았던 시간에 더 머물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고된 액션연습과 혹독한 한겨울의 촬영이 김수현을 거세게 몰아붙여서였을까. 오기와 끈기로 스스로를 다잡아야 했던 시간들을 김수현은 웃음에 실어 날려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순간 문득 김수현에게 속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드라마 <드림하이> <해를 품은 달>, 영화 <도둑들> 이후 인기에 취해 있는 대신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데 몰두했던 김수현을 만나 은밀하게 물었다. 당신의 진짜 정체
[김수현] 위대한 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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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남한의 달동네에 잠입했던 세명의 간첩들이 5월24일 공덕동 스튜디오에서 접선했다. 김수현, 박기웅, 이현우는 원류환, 리해랑, 리해진이 영화에서 나누었던 진한 동료애를 스크린 밖에서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었다. 철근이라도 씹어먹을 것만 같은 젊음! 그 젊음의 에너지로 스튜디오를 후끈 달구어놓았던 세 배우들이 은밀하고 위대한 속사정에 대해 털어놓았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그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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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 다이어리] <스타트렉 다크니스> 멀미할 것 같아요!
[헌즈 다이어리] <스타트렉 다크니스> 멀미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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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보는 영화’를 표방하는 무주산골영화제가 오는 6월13일부터 4박5일 동안 열린다. 보도자료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오래도록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일했던 김건 집행위원장과 조지훈 프로그래머라는 이름이었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는 큰 내홍을 겪었다. 6월 유운성 프로그래머가 해임된 이후 민병록 집행위원장과 김건 부집행위원장이 사퇴했고 11월에는 조지훈, 맹수진 프로그래머, 홍영주 사무처장도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고석만 신임 집행위원장 체제로 올해 14회 영화제를 무사히 치렀다. 일단 규모와 성격 등 확연하게 차별화되는 두 영화제 사이의 연결지점을 굳이 찾으려 했다기보다, 그의 근황과 더불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다양한 직함으로 무려 12년이나 일했던 그의 새로운 영화제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었다. 그는 전주의 ‘삼인삼색’과 ‘숏숏숏’ 프로젝트의 핵심적인 매니저이기도 했다. 그렇게 ‘잘 쉬고 싶었지만 어쩌다보니 또 영화제’라는 그는 인터뷰 내내 영화제 예찬론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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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 캠핑극장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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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을 다뤄온 다큐멘터리 제작자이자 텔아비브 대학에서 영화, 문학,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여성이고 어머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는 영화감독이다. 미할 아비아드 감독의 <보이지 않는>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보이지 않는-폭력의 관계구조’ 섹션의 쟁점에서 가장 호소력 짙은 영화 중 하나다. 영화는 연쇄강간범의 피해자였던 두 여성이 32년 뒤에 만나 과거를 복기하는 과정을 다루는데, 여주인공이 든 카메라는 증언을 기록할 뿐이다. 그 어두운 창 너머 암흑 속에 ‘보이지 않’게 잠복해 있는 폭력의 기원을 그녀와 함께 더듬어보았다.
-영화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들었다. 두 여주인공이 32년 전에 이른바 ‘예의바른 강간범’에게 피해를 입었는데, 이 모순적 별명의 유래는 무엇인가.
=영화는 두 여주인공에게 트라우마가 된 강간사건을 다루고 있다. 강간범은 저널에서 ‘예의바른 강간범’(polite rapist)이라 불렸다. 그는 여성을 강
[flash on] 상처란 보이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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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드는 밤>은 결혼 2년차 부부 현수와 주희의 일상과 고민을 담담하게 지켜본다. 현수와 주희는 곧 장건재 감독과 김우리 프로듀서 부부의 모습이기도 하다. 전작 <회오리 바람>처럼 감독 본인의 경험이 담겼는데 만듦새는 한층 꼼꼼하고 견고하다. 혼자만이 아닌 두 부부의 고민이 한데 녹아들어가서다. “사진을 인화하듯이” <잠 못 드는 밤>을 정성스럽게 건져올렸다는 장건재 감독은 요즘이야말로 진짜 ‘잠 못 드는 밤’의 연속이라고 털어놓았다.
-<회오리 바람>에 이어 다시 감독 본인의 이야기다.
=내가 제일 잘 아는 이야기에서 출발해야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침 쓰던 시나리오가 진척이 더뎌서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가기 위한 가벼운 작업이 필요했고, 당시 결혼 3년차였던 우리 부부의 삶을 영화에 담아보기로 했다. 영화 일을 시작하고 난 뒤 겪은 가장 큰 변화가 결혼이다. 영화 하는 사람들의 상황이 대개 비슷하지 않나. 대부분
[flash on] 결혼 3년차 우리 부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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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로맨틱코미디영화 한편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로맨틱코미디의 명가 워킹 타이틀 제작이라고는 하지만 1년차 부부에게 찾아온 새로운 사랑이란 설정이 참신하다고는 말 못하겠다. 하지만 식상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영화 앞에 댄 메이저라는 이름을 더하는 순간 알 수 없는 기대가 몽글몽글 피어난다. 무려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의 작가 아닌가. 이토록 발칙하고 기발한 캐릭터를 만들어낸 인물의 영화가 밋밋하게 끝날 리 없다는 일종의 확신. 첫 연출작 <저스트 어 이어>를 들고 찾아온 감독 댄 메이저의 의외의 일면을 만나보자.
-첫 연출작을 로맨틱코미디영화로 고른 이유가 있나.
=나는 나의 결혼생활을 통해 드러나는 모순을 10년간 관찰해왔고, 이제 영화로 만들어서 풀지 않으면 안될 만큼 많은 소재가 생겼다. (웃음) 결혼식장에서 커플들을 볼 때마다 ‘저들은 얼마나 갈까’ 하는 상상을 하곤 하는데, 한번은 아내의 친척 결혼식에 참석했는데 신랑이 신
[flash on] 모니터 뒤에서 웃음 참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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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쇼핑을 보고 있으면, 내게 필요한(그런데 아직 사지 않은) 물건이 얼마나 많은지 놀라게 된다. 어떻게 저 물건이 없이 지금까지 살았을까? 물광 메이크업을 완성하는 쿠션 파운데이션, 장마철에 딱인 젤리 슈즈, 각얼음으로 쉽게 빙수를 만드는 빙수기에 아무 컵에나 랩을 대고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밀봉되는 매직랩, 와이어가 없는 속옷과 천연 아이스크림 제조기…. 그렇게 홈쇼핑의 ‘오늘 이 구성 마지막’에 현혹되어 내 생활을 개선시킨 결과는 60년대의 산아제한 구호와 같다. 무턱대고 사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이런 내게 천금 같은 한마디가 있었으니,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나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없어도 어떻게든 된다.” 정리 전문가인 곤도 마리에의 <버리면서 채우는 정리의 기적>은 베스트셀러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의 실천편이다.
곤도 마리에식 정리 기술의 핵심은 ‘설레지 않는 물건은 처분한다’는 것이다. 물건을 만져보고 설레면 두고 설레지 않으면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정리하면 복이 온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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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미학 산책>의 정민이 허균에서 홍길주까지 옛사람 9인의 독서법을 묶었다. 배울 만한 독서법만큼이나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한 사유가 가득하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종이책을 들고 있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살펴 읽는 것을 포함해야 한다는 우화나 글을 인간에 적용시킬 때 병법은 어떻게 풀이되는가에 대한 이야기 등이 그렇다. 한편으로는 책이 귀하던 시대에 문장부호 하나까지 아껴 읽고 마음에 담던 시대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도서] 공부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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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상태가 이상해졌다. 기타무라 모리는 그렇게 표현했다. 서른아홉까지는 완벽해 보였던 인생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공황발작으로 완벽하게 무너져내렸으니까. 퇴직하고 집에 왔더니 아내와는 대화랄 게 없는 데다 아들은 그를 무시했다. 결국 아내에게 천만원을 달라고 부탁한다. 아들과 여행을 다니기 위해서다. 가족을 찾기 위해, 그 자신을 찾기 위해. 공황장애를 이겨내기 위한 그의 발버둥만큼이나 아내의 말없는 노력에 대한 이야기들이 눈물겹다.
[도서] 공황장애를 이겨내기 위한 발버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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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된 뒤(전 제목은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 중고책 사이트에서 3만원에서 3만5천원에 거래되고 있는 책이 재출간되었다. 저자가 제목 그대로 가난을 우아하게 돌파하는 내용을 적었다. 저자는 부유한 사람들 사이에서 가난하게 살면서 책에 쓴 내용을 터득했다. 블로그와 SNS를 통해 부유한 삶을 엿보는 일이 쉬워진 사회에도 이 책의 가르침이 도움이 될까? 쓸모는 둘째치더라도, 유머가 발군이다.
[도서] 가난을 우아하게 돌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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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이후 도덕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잿더미 위에 앉을 수밖에 없었던 독일이 고작 70년 만에 반성해야 할 학생에서 유럽을 이끄는 스승으로 발돋움했다. 유로화 위기가 경제 강국 독일을 유럽의 운명을 결정하는 초강대국가의 위치로 끌어올렸다. 유럽연합이 붕괴될 것인가를 두고 연합 내 채권국과 채무국 사이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고, 나아가 정치와 경제의 엘리트가 관리하는 ‘위로부터의’ 유럽 프로젝트와 ‘아래로부터의’ 저항 사이에 빚어지는 구조적인 긴장 역시 마찬가지다. 부자와 은행을 위한 국가사회주의를, 중산층과 빈민에게는 신자유주의를! 이러니 여기저기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다. 계층간의 격돌, 세대간의 격돌, 빈부격차가 나는 정부간의 격돌. <위험사회>를 쓴 울리히 벡의 <경제 위기의 정치학>은 단호하게 말한다. “경제학은 사회와 정치 분야에서만큼은 문맹과 다름없다. 다시 말해서 경제학의 안목은 사회와 정치를 알아보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니 모두
[도서]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