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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공덕동에는 유명한 먹자골목이 있다. 위치는 공덕시장 근처로, 전을 파는 가게와 족발 파는 가게가 특히 이름이 높다. 사시사철 장사진이고, 초저녁에도 바글바글이다. 사무실이 공덕동에 있던 시절, <씨네21>도 공덕동 먹자골목에서 빈번히 회식을 했다. 한번은 취재원과 그곳에 다녀온 남동철 선배가 “공덕시장 족발집에서 남기남 감독의 조감독을 만났다”고 했다. 남기남 감독의 조감독은 옆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는 손님이 아니라 음식을 내오는 식당 종업원이었다. 영화 이야기를 나누고 있음을 알아채고, “왕년에 나도∼” 하고 대화에 끼어들었던 모양이다. 우리 주변에 혹시 왕년에 한가락 했던 영화인들이 많지 않을까. 스스로는 영화인이라고 자부하지만 누구도 영화인이라고 알아주지 않는, ‘충무로 넘버3’들을 지면에 모셔보자고 한참을 떠들다가 그만두고 말았다.
류승완 감독은 이런 궁금증을 끝내 참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도 그에겐 궁금증이 아니라 사명감이었을 것이다. “
[에디토리얼] 이름 모를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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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이틀간의 수업이었지만 액션영화 제작의 노하우를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그 경험을 통해 만족할 만한 액션 숏 하나를 얻기 위해 수많은 사람의 땀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군도> 촬영으로 바쁜 와중에 귀중한 시간을 내준 정두홍 무술감독과 서울액션스쿨에 감사의 말을 전한다. 참, 4편의 영화 중 가장 반응이 좋았던 작품은 무엇이었을까? 서울액션스쿨팀은 기자가 작업한 4번 UFC 액션을 1등으로 꼽았다. ;;;
Tip5. 액션영화에서 연기의 중요성
“감독이 아무리 뛰어난 상상력을 가지고 있고, 무술감독이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걸 구현할 수 있는 배우가 없으면 소용없다. 앞으로 서울액션스쿨은 팀원을 대상으로 연기수업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연기수업과 신체 훈련을 거친 뒤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될 때 편집을 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서울액션스쿨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언제든지 방문하면 된다.”
- 정두홍 무술감독.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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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촬영 시간은 고작 4시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촬영한 뒤 오후 2시부터 편집에 들어가야 하는 촉박한 일정이다. 성훈과 영수가 유치장 안에서 시비가 붙는 드라마 장면을 최대한 빨리 찍고 나머지 시간을 남은 액션 신 촬영에 집중하는 게 이날의 작전이었다. 드라마 신 촬영은 일단 성공. 전날 장한승 무술감독의 조언 덕분에 액션 신 촬영에 요령이 생겼다. UFC 기술을 보여줘야 하는 장면은 풀숏으로 찍은 뒤 신체가 가격당하는 부분을 여러 각도에서 클로즈업숏으로 찍었다. 다행스럽게도 촬영에 리듬이 붙었고, 그러면서 배우들도 전날에 비해 몸놀림이 편해진 것 같다. 덕분에 목표했던 분량을 제시간에 가까스로 찍었고, 곧바로 현장 편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편집은 서툰 촬영을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어떤 컷은 시선이 맞지 않아 아예 붙이기가 애매했고, 또 어떤 컷은 컷 지점이 애매해 동작이 전혀 연결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많이 찍는다고 찍었는데, 막상 이 어 붙여보니 장한승 무
후반작업-편집과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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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 걸 직접 해볼 차례인데 난감하다. 있을 줄 알았던 사각의 링 이(있을 리가) 없다. 오리엔테이션 때 경찰서 세트장이라는 사실을 공지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생각으로 시나리오 쓸 때 공간을 링으로 설정한 것일까. 작가 잘못 만나 스탭들이 고생이다. 결국 세트장에 맞게 시나리오를 싹 바꿔야 했다. 함께 작업을 하게 된 서울액션스쿨 권귀덕(<우린 액션배우다> 출연, <내가 살인범이다> 조감독) 무술감독이 그때 제안했다. “유치장에 들어온 성훈과 영수가 서로를 노려보다가 상상 속에서 UFC 대결을 하는 게 어떤가? 상상이니까 경찰서에서 UFC 시합을 하는 게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오, 마이 구세주! 그의 아이디어대로라면 무술팀이 준비해온 액션 콘티를 대폭 수정하지 않고, 성훈과 영수가 유치장 안에서 시비를 붙는 상황만 설득력있게 덧붙이면 된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유치장 신은 맨 마지막에 찍기로 하고 무술감독이 준비해온 액션 콘티부터 확인했
프로덕션②-액션 합 설계와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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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첫날. 아침부터 억수같이 퍼붓는 비도 서울액션스쿨 팀원 20여명, 참가자 10명으로 가득 찬 공덕동 경찰서 세트장 안의 수업 열기를 식히지 못했다. “범인은 이렇게 앉으면 되나요?” “범인이 칼을 훔친 뒤 도망갈 때 형사가 우산부터 던지는 건 어떠세요?” “이 합이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 얘기해주세요.” 정두홍 감독은 1번 에피소드를 연출하는 한지혜 감독으로부터 배우 배치부터 소품 사용 그리고 액션 콘티까지 쉴 새 없이 확인을 받는다. 무술감독이 준비해온 액션 콘티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건 감독의 몫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보기 좋은 그림일지라도 감독이 원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감독은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분명하게 하고, 그것을 무술감독과 배우에게 정확하게 전달해야 현장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게 정두홍 감독의 설명이다. 몇번의 논의와 리허설을 거치고 나자 조사를 받던 용의자가 경찰이 방심한 틈을 타 책상 위의 놓여 있던 칼을 훔치고 탈출하는 액션 시퀀스가 만
프로덕션①-정두홍 감독의 1번 에피소드 실습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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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를 쓰기 전 스스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이틀 동안 촬영과 편집을 완료해야 하는 까닭에 러닝타임은 길어야 3분 내외여야 할 것, 짧은 시간이지만 상황극이 아닌 서사의 형태를 갖출 것, 두 캐릭터의 개성은 이종격투기 기술을 통해 보여줄 것 등. UFC 에이전트 선발전에서 맞붙는 ‘성훈’과 ‘영수’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꾸역꾸역 써내려갔다. 복싱 선수 출신인 둘은 오랜 라이벌 관계다. 성훈은 긴 팔과 긴 다리를 이용한 타격 기술이 강점이고, 맷집이 좋은 영수는 그라운드 기술이 주특기다. 공이 울리자 접전을 벌이는 두 선수. 영수는 성훈의 오랜 부상 부위인 오른쪽 정강이를 노린다. 고전을 면치 못하던 성훈은 자신의 정강이를 노리던 영수의 움직임을 역이용해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다. 써놓고보니 심심한 상황극이 되고 말았다.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일까. 다음날 열린 조 회의 때 시나리오보다 성훈이 어떻게 때리고, 영수가 어떻게 맞을지에 대해 더 많은 얘기가 오갔다. UF
액션영화 시나리오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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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출을 전공했던 대학 시절, ‘액션 키드’는 꿈도 못 꿨다. 액션영화를 만들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액션 합을 설계하는 작업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고, 설계를 하더라도 그걸 수고해줄 액션 배우가 주변에는 없었다. 다른 장르에 비해 컷의 호흡이 짧다보니 찍어야 할 컷은 또 어찌나 많은지. 편집장으로부터 ‘한국영화아카데미 정두홍 액션 연출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하라는 명을 받았을 때 호기심보다 두려움이 앞선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아니나 다를까. 수업에 앞서 진행된 오리엔테이션에서 기자를 포함한 참가자 10명 앞에 선택지 4개가 주어졌을 때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1번. 경찰서로 이송된 살인사건 용의자가 형사가 방심한 틈을 타 옥상으로 도망치면서 벌어지는 액션이다. 2번. 유도 선수 출신인 사장이 자신을 쫓아온 사채업자 5명을 상대하는 상황이다. 3번. 국정원 요원과 북한 특수요원간의 싸움이다. 4번. 라이벌 관계의 이종격투기 선수 두명이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서는 시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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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과 촬영 그리고 조명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많다. 모두 연극영화과의 주요 커리큘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액션 연출은 그렇지 않다. 현장의 무술팀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액션 연출을 전문적으로 가르쳐주는 곳은 없다. 그래서 한국영화아카데미(KAFA+)는 CGV 무비꼴라쥬, <씨네21>과 함께 젊은 영화학도와 감독을 위해 ‘정두홍 무술감독 액션 연출 마스터클래스’를 열었다. 기자를 포함한, 미리 선발된 10명의 참가자는 5월27∼28일 이틀간 마포구에 있는 경찰서 세트장에서 정두홍 무술감독이 이끄는 서울액션스쿨과 함께 짧은 액션영화를 찍으며 온몸으로 액션 연출을 배웠다. 그리고 5월29일 CGV압구정 무비꼴라쥬관에서 <씨네21> 주성철 기자와 정두홍 무술감독이 진행한 강연 ‘KICK by KICK 오픈 클래스’도 들었다. 강연 내용은 다음 장에서 펼쳐질 액션영화 제작 노하우 팁에 간단하게 정리했다. ‘액션 키드’가 되는 길은 험난했지만 3일간 흘린 땀은 결코 아
액션 장인의 혼이 불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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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과 욕망, 죽음과 성에 대한 매혹. 이러한 요소들은 언제나 프랑수아 오종의 영화 중심부를 관통하는 큰 줄기였다. 그러나 샬롯 램플링으로 대변되는 오종의 성숙한 페르소나들이 사회적 지위와 계급, 권력의 틀에 가로막혀 환상의 영역에서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곤 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프랑수아 오종의 신작 <영 앤드 뷰티풀>에서 우리가 목격할 수 있는 건 싱그러운 젊음의 페르소나다. 비밀스럽게 매춘을 시작한 10대 소녀 이자벨의 모습을 통해 오종은 아직 정제되지 않은 청소년기의 욕망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영 앤드 뷰티풀>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된 영화인가.
=전작 <인 더 하우스>에서 젊은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니 좋더라. 내가 단편을 만들 때만 해도 젊은 배우들을 많이 썼던 것 같은데, <사랑의 추억>부터 샬롯 램플링과 많은 작품을 함께하며 대다수 영화에서 성숙한 캐릭터나 나보다 나이 많은 인물들
지독한 사춘기 미스터리한 1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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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대륙과 인종의 경계를 넘나들며 식민주의와 욕망, 폭력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왔던 프랑스 감독 클레어 드니의 시선은 지금 유럽 대륙에 머물러 있다. 도시의 밤거리를 배회하며 자신의 욕망을 좇는 <바스터즈>의 인물들은, 언젠가 파국을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위험한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은 이 타락한 도시의 진정한 선인인 마르코(뱅상 랭동)의 삶마저 파괴하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나쁜 놈들’ 천지다. 이번 영화를 통해 첫 디지털 작업을 시도한 클레어 드니는, 영화적 선택을 내리는 데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 주저함이 없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바스터즈>는 그녀의 머리와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무의식적인 매혹의 요소들을 엿볼 수 있는 영화다.
-비가 세차게 퍼붓는 첫 장면이 굉장히 강렬하다.
=나는 비가 계속 내리고 있는 장면으로 영화를 시작해보고 싶었다. 마이클 만이 연출한 <도둑>의 첫 장면처럼 말이다. 음악을 맡은 뮤
돌이킬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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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이 사랑하는 프랑스 작가주의 감독의 첫 미국영화. 아르노 데스플레생의 <지미 P>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너무나 유럽적인 이 지성의 감독이 미국을 배경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지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5월18일 기자시사를 통해 공개된 <지미 P>는 정신분석학과 꿈이라는 테마나 인물간의 대화에 주목하는 스타일에 있어 데스플레생 고유의 개성을 그대로 이어받는 영화다.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뒤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인디언 병사 지미(베니치오 델 토로)와 그의 상담을 맡은 정신분석학자 조르주(마티외 아말릭)의 우정과 치유를 조명한다.
-당신의 전작들을 돌이켜봤을 때, <지미 P>는 새로운 도전으로 느껴진다.
=물론 이 영화의 시대와 배경은 내가 한번도 다뤄본 적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전작 <킹스 앤 퀸>에서 (이 영화의 원작인) 조르주 데브르의 책 <리얼리티와 꿈>(Reality and Dream)을
인디언과 유대인 두 남자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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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이방인>은 이후의 전개를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영화다. 서로의 몸을 음흉한 눈빛으로 훑으며 쾌락을 좇던 게이들의 낙원의 숲은, 그들이 노닐던 호숫가에 떠오른 한구의 시체로 인해 공포의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사랑과 섹슈얼리티, 두려움과 공포가 공존하는 이 작은 사회를 간결하고 힘있는 이미지를 통해 포착해낸 프랑스 감독 알랭 기로디의 시선은 전작 <도주왕>보다 한층 성숙해졌다. 프랑스 영화계의 촉망받는 작가주의 감독으로 출발해 중견이 된 지금도 여전히 관객에게 새로운 감흥을 선사하길 멈추지 않는 알랭 기로디를 칸에서 만났다.
-당신은 <호수의 이방인>이 프랑스의 작가이자 사상가인 조르주 바타유의 에로티시즘에 대한 생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내게 더 많은 영향을 준 건 시나리오이지만, 작품을 다 쓰고 났을 때 내가 바타유의 생각에 깊이 빠져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몇년 전 우연히 “에로티시즘은 죽음까지 파고드는 삶이다”라는
사랑과 공포가 맞닿은 관능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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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그레이와의 작업은 어땠나.
=제임스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내게 보여줬다. 때때로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아무에게나 말하지 못할 매우 사적인 얘기도 들려주더라.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태껏 함께 작업한 그 어떤 감독보다도 제임스 그레이와 친밀한 사이가 됐다. 그리고 <이민자>를 위해 한달 동안 리허설을 했는데, 이런 경험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내겐 매우 새롭고 특별한 작업이었다.
-<이민자>엔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이 반영되었다던데.
=그렇다. 제임스는 나와 유년 시절의 기억을 공유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해 어떤 장면이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미국으로 온 폴란드 여인 에바가 바나나를 껍질째 먹는다거나 스파게티 소스를 벌레로 착각하는 에피소드는 제임스의 할머니 이야기라더라. 사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라비앙 로즈>를 촬영한 뒤 미국에 갔는데, 문화도 다르고 낯설고 언어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마
“감독과 유년 시절 기억을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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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5년 만의 귀환이다.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혈통을 계승했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 감독 제임스 그레이가 <이민자>를 들고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을 찾았다. <위 오운 더 나잇> <투 러버스> 등의 전작에서 선보인, 경계에서 흔들리는 인물들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번 영화에서도 여전하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도피한 폴란드 여인 에바(마리온 코티아르)의 고단한 삶을 통해, 제임스 그레이는 많은 꿈들이 사그라지고 잊혀져가기도 했던 1920년대 미국의 초상을 애잔한 시선으로 조명한다. 이민자 조상을 둔 러시아계 미국인으로서, “이번 영화의 테마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는 제임스 그레이와 그의 새로운 페르소나가 된 마리온 코티아르를 칸에서 만났다.
-<이민자>에 마리온 코티아르를 캐스팅하기 전에 그녀를 알지 못했다고. 어떤 인연으로 작업하게 됐나.
=그녀의 남편이자 영화감독인 기욤 카네와 친분이 있었다.
집단에 소속되기 위한 몸부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