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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장에서부터 <씨네21>이 칸에서 만난 감독들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그전에 잠시 이 앞 글에 머물러 주시기를 청한다. 이 인터뷰는 되는 대로 만난 다음 늘어놓은 것이 아니라 어떤 경향을 염두에 두는 동시에 우리가 만나고 싶은 이들을 최대한 만나려 애써서 만든 명단이다. 2013년 칸에서 강력하게 두드러진 두개의 영화 경향이 미국영화와 프랑스영화라는 사실은 칸 개막 리포트에서 이미 전했다. 그 두 국가의 가장 중요한 감독들이 여기 있다고 우린 생각한다(경쟁부문 아시아 감독들과의 인터뷰는 중간 결산에서 전한 바 있다).
우선 우리의 선택을 먼저 전한다. 우리의 선택이란 올해 칸에서 본 영화 중 <씨네21>이 꼽은 최고의 영화 두편을 만든 감독들이다. <이민자>를 만든 제임스 그레이(그리고 주연배우 마리온 코티아르)와 <호수의 이방인>을 만든 알랭 기로디. 이 두편의 영화가 올해의 칸을 빛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이 두 감독
선택과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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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에서 열린 성대한 영화축제도 5월26일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올해의 가장 주목할 만한 영화인들이야 명예를 안고 고국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잠깐, 뭔가 좀 허전하다. 절대로 팔레 드 페스티벌의 시상대 위에 서는 일은 없겠으나 아무 언급 없이 떠나보내기엔 너무 아까운, 올해 영화제 화제의 인사들에게 이 상을 안긴다.
마당발상
저스틴 팀버레이크
취재차 칸을 방문한 대부분의 기자들의 하루 일과는 <버라이어티> <스크린> 등이 발행하는 데일리를 챙겨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느 날 문득 데일리를 읽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체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안 나오는 책이 어딨지?” 코언 형제의 영화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의 포크 가수로 레드카펫을 밟은 팀버레이크는 올해 칸 마켓에서 주목받은 화제의 신작 프로젝트 중 한편인 <스피닝 골드>의 주연도 겸하고 있다. 경쟁작 기자회견에 참석하랴, 바이어들 대접하랴, <스피닝 골드>의
니콜 키드먼은 왜 파티에 참석하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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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가 끝나고 나면 많은 기자와 평론가들이 자신만의 베스트 또는 워스트를 선정한다. 하지만 그 모든 이들의 생각이 다 궁금하진 않다. 신뢰할 만한 이들의 생각이 언제나 더 궁금할 뿐이다. 그와 같은 여섯 평론가의 리스트가 여기 있다. <씨네21>은 특히 신뢰할 만한 국외 평론가들에게 ‘2013년 칸, 나의 베스트5 & 워스트’를 요청했고 다음과 같은 리스트를 받았다. 그들이 트위터 등에 개인적으로 올린 것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씨네21>을 위해 특별히 작성한 뒤 보내준 것이라 더 의미있다. 이하 간략한 평자 소개. 장 미셸 프로동은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편집장을 지낸 바 있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평론가다. 로버트 쾰러는 영화 전문지 <시네마스코프> <필름 코멘트> 등 여러 지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명망 높은 미국 평론가이며 올해부터 뉴욕영화제의 공동 프로그램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켄트 존스는 뉴욕영화제 공동 프로그램
당신의 마음을 움직인 영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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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석의 베스트5
<호수의 이방인>(알랭 기로디) 올해 칸의 전반부에 본 영화 중 최고작. 우스꽝스러움과 무서움이 장면마다 서로를 껴안고 뒹굴더니 끝내 결론없이 미제로 남아 더욱더 불가사의함에 이르고 만 희귀한 예. 영화라는 매체의 성질로 해낼 수 있는 어떤 그로테스크함의 진수.
<이민자>(제임스 그레이) 올해 칸의 후반부에 본 영화 중 최고작. 무모하면서도 간단하게 말할 수 있음.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를 좋아할 것인가. 그 질문이 지난해 칸에서 나와 누군가의 영화적 운명을 가늠하는 구별법이었다. 제임스 그레이의 <이민자>를 당신은 좋아할 것인가. 이것이 어쩔 수 없이 올해 같은 방식의 나의 영화적 운명이자 구별법이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짐 자무시) 제목 참 못 지었다. 하지만 ‘오직’과 ‘사랑’과 ‘살아남다’라는 이 부담스러운 주제어를 이토록 절묘한 화음과 느긋한 유머로 만드는 데에는
우리가 본 최고의 영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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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의 수상결과와 현지반응 등에 관해서는 앞선 리포트에서 얼마간 전한 것 같다. 지난호에 이어 이 자리에서는 다분히 개인적인 생각만을 말하려 한다. 일단 지난 해의 엉터리 심사위원들과 비교하자면 올해 심사위원들은 대체로 신중함을 잃지 않았던 것 같다. 워낙 기세가 좋았던 <아델의 삶-1&2>를 무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그럼에도 아쉬가르 파라디의 <과거>,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오직 신만이 용서한다>, 파올로 소렌티노의 <위대한 아름다움>, 알렉산더 페인의 <네브래스카> 등 적어도 현혹되기 쉬운 영화들을 피해 나간 건 잘한 일인 것 같다. 긴장도 좋고 영민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 서사의 덧댐이 지나쳐서 영화적 얄팍함이라는 한계도 동시에 보이고 있는 <과거>, 자칫 대단하고 집요하게 구축된 이미지의 성채라고 착각하게 될 수도 있는 <오직 신만이 용서한다>와 <위대한 아름다움>, 인물에
칸의 선택, 칸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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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종려상 시상 및 수상 소감
심사위원장 스티븐 스필버그
캐스팅이 3%만 잘못 되었더라도, 지금과 같은 영화는 나오지 않았을 거다. 우리 심사위원 모두는 세명의 아티스트를 무대에 함께 초대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감독 압델라티프 케시시
나는 이 상을 <아델의 삶-1&2>를 찍으며 만난 위대한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바치고 싶다. 그들은 내게 자유의 기운을 북돋워줬다.
배우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
이 영화는 보편적인 러브 스토리다. 사랑하는 사람이 여자라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영화가 모두에게 관용을 보여줄 수 있었다면, 나는 만족한다.
배우 레아 세이두
우리가 함께 표현하려 했던 건 우리 사이에 존재했던 사랑이었다. 물론, 우리의 유머도.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영화제 중반에 공개된 뒤 전세계 언론들의 고른 지지를 이끌어낸 <아델의 삶-1&2>가 황금종려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특히 올해 영화제의 심사위원단은 튀니지계 프랑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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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영화제 수상 총평에 관련해서는 두 가지 소문부터 전하는 게 좋겠다. 심사위원들이 명확하게 두파로 갈렸다는 말이 떠돌았다. 하지만 프랑스의 주간지 <누벨 옵제바퇴르>는 심사위원 중 한명이었던 프랑스 배우 다니엘 오테유의 말을 빌려 이렇게 전했다. “맹세하건대 심사위원들이 두파로 나뉘었다는 소문은 허위이다. 심사위원들간에 화합이 잘됐다. 우리는 공식적으로는 네번 모였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상영이 끝났을 때마다 만나서 토의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아무 문제없이 원활하게 의견을 나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무언가 내막을 자세히 알고 있지만 구체적인 설명은 생략할 수밖에 없다는 뉘앙스로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화요일 스티븐 스필버그가 아쉬가르 파라디의 <과거>를 선호한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다. 그리고 폐막 당일인 일요일 오후 5시쯤에는 이 이란 감독에게 황금종려상이 돌아갈 것이라는 소문이
모험을 택하기보다 안정을 고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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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회 칸영화제가 폐막을 알렸다. <씨네21>은 올해도 다방면에 걸쳐 칸영화제의 소식과 리뷰를 실어 결산 기사를 마련했다. 우선 올해의 수상 및 영화제 총평과 관련해서는 현지 매체의 의견을 다각도로 실었으며 황금종려상 수상작의 기자회견도 넣었다. 중반부 이후에 상영된 영화들 중 주요작에 관해서는 에세이성 리뷰도 작성했다. 올해는 특별히 <씨네21> 기자들이 뽑은 칸영화제 ‘베스트5&워스트’를 신설했으며 신뢰할 만한 명망있는 국외 평론가 6인에게 같은 방식의 ‘베스트5&워스트’의 리스트를 받았다. 쉬어가는 페이지로 칸 요지경을 보여주는 별별 가상 시상식도 해보았다. 제임스 그레이, 알랭 기로디 등 <씨네21>이 주목한 감독들과의 인터뷰도 놓치지 마시기 바란다. 자, 제66회 칸영화제의 전모가 이제 여러분 앞에 펼쳐진다.
황금종려상 압델라티프 케시시의 <아델의 삶-1&2>
심사위원 대상 코언 형제의 <인사이드 르
칸의 영화, 영화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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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린 듯 눈물이 터진다. 지난 5월20일 재개된 밀양 송전탑 건설현장. 한전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모내기 바쁜 농번기에 기습적으로 공권력을 투입해 공사를 강행했다. 민의와 무관하게 힘으로 밀어붙이는 행정집행이 있는 곳에 늘 모습을 드러내는 용역들과 경찰들. ‘용역’이라는 말의 섬뜩함과 그들 행태의 구체적 포악함. 마을 주민들의 부상이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현기증이 인다. 얼마 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송전탑 투쟁 주민에 대한 인권침해를 조사할 때, 한 주민의 호소를 전해들은 적 있다. “우리가 인권이 어딨노. 돈 있는 사람이나 인권이 있재. 가진 거 없으면 인권도 없고 개만도 못한 취급받는 기라.”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망할 놈의 세상 법’이 병증으로 자리 잡은 우리 마음의 깊은 비애. 어쩌나… 도대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다른 지역은 송전탑과 송전선로가 가능한 마을을 우회하도록 진행되는데, 밀양은 도대체 왜 이 모양인 걸까. 어째서 여기는 마을 주민들
[김선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전력대란 아니고 인권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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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고 말하기 좀 어려울 땐 귀엽다고 하듯, ‘웰 메이드’가 아닌 것에 대해 매력있다고 말하게 될 때가 있다. 빈말은 아니다. 다만 매력이란 너무나 개인적인 기준이어서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내가 TV프로그램에서 매력을 느끼는 포인트 중 하나는 ‘남들이 안 하는 짓을 하는’ 경우다. 지상파는 물론 수많은 케이블 채널에 종편까지 더해지며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시청률이 존망의 제1 기준이 되는 정글에서 아이돌이면 아이돌, 시월드면 시월드 등 이미 히트한 아이템을 뒤따라가지 않고 뭔가 희한한 걸 해보려는 프로그램에는 좀더 호기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승부를 싫어해 가위바위보도 귀찮아하고 간식내기 사다리타기를 하느니 미리 돈을 내고 마는 게 편한 성격임에도 tvN <더 지니어스-게임의 법칙>(<더 지니어스…>)을 보게 된 건 출연자들의 흥미로운 면면 때문이었다. 항상 심드렁하고 떨떠름한 표정이지만 프로그램의 색깔만큼은 확실하게 만드는 김구라, 철들지 않은 중년 허세
[최지은의 TVIEW] 결국은 드라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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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사기를 하나 친 적이 있다. 대학에 다니고 있을 때 집 근처 개량한복 가게에서 몇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개량한복이란 꽤 비싼 물건이어서 가게 수입은 대부분 함께 팔던 자질구레한 소품과 언제 들여놓았는지 모를 허름한 티셔츠 등에서 나왔다. 저녁 타임 아르바이트였던 나의 임무는 그 물건들을 오다가다 들른 술 취한 고시생들에게 팔아치우는 것이었다.
어느 저녁, 얼굴이 발그레한 고시생 하나가 가게에 들어왔다. 나는 딱 한벌 남은 티셔츠를 팔고 싶었다. 때는 90년대 후반, 장소는 무채색만 넘실거리던 신림동 고시촌, 나는 연분홍 티셔츠를 들고 활짝 웃었다. 고시생은 곤란해했지만, 나는 그처럼 얼굴이 하얀 남자가 아니라면 이런 옷을 권할 수도 없다고, 요즘 분홍색이 유행이라고, 보라고, 딱 한벌 남지 않았느냐고(이건 사실이었지) 사기를 쳤다. 그리고 한동안 그 고시생이 가게 유리문 밖을 지나갈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리곤 했다. 칙칙한 고시촌 거리에서 연분홍 티셔츠를 입은 고시생은
[김정원의 피카추] 자신감 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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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밴드 시규어 로스가 5월19일 서울 올림픽경기장에서 콘서트를 가졌다. 시규어 로스의 실황은 스튜디오 앨범과 거의 차이가 없지만, 무대 연출과 영상이 어우러진 종합 예술로서의 독보적 호소력은 현장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천의무봉한 음악과,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을 인공조명으로 모방한 무대는 ‘제2의 자연’을 조성했다. 음악을 ‘반주’하는 영상이 내내 영사된 가로가 긴 띠 모양의 스크린은, 영화의 사운드트랙과 대구를 이루는 음악의 ‘이미지트랙’이라고 부를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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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모처럼 공책에 샤프펜슬로 글씨를 쓰기로 마음먹고 나니 책받침이 아쉬워졌다. 사무용품 위주로 물건을 갖춰 놓은 ‘문구센터’ 몇곳을 가보았지만 실패였다. 그래, 문구센터라서 없는 거야. 책받침 하면 문방구지. 집 근처에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있어 어렵지 않게 찾겠거니 교문 주변을 돌아다녀 보았지만 편의점뿐이었다.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생활과 멀어진 지 오래인 나는 미궁에 빠졌다. 요즘 학생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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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이 원만하지 못해 가급적 헤벌쭉 웃으며 나다니는 편인데, 어쩔 수 없이 얼굴을 굳혀야 하는 순간이 있다. 배달 계란, 배달 우유 등 판촉장 앞에서다. 저만치서부터 “고객님~” 부르는데 가능한 한 냉정한 자세로 최대한 그들을 ‘유령 취급’하며 쓱 지나가야 불필요한 감정노동을 하지 않는다(거절이 유독 힘든 나 같은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 판촉‘이세요’). 문제는 내 옆의 먹순이. “맛만 보고 가라잖아”며 입맛을 다시는 것도 모자라 뚫어져라 쳐다보니 도리가 없다. 애가 맛있게 먹기라도 하면(얜 돌멩이도 맛있게 먹을 애예요. 으흐흑) 숨돌릴 틈도 없이 홍보•설득 멘트를 날리시는데, 다 듣고 있자니 마음은 점점 돌덩이다.
일수 수완 좋은 판촉자는 다른 품목으로 같은 구역에서 만나게 되기도 한다. 종일 서 있어야 하고 쉴 새 없이 말해야 하며 무엇보다 실적 압박을 받는 그 노동의 총량을 어떻게 따질 수 있을까. 조금 벌더라도 다치면 보호받고 아플 때 병원갈 수 있으며 잘리더라도 새 일 구
[김소희의 오마이 이슈] 비공식노동 공식화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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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 쇼 중,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조련사 여인이 한 남자를 만나 육체적 감각을 되찾은 날. 그녀는 의족을 차고 어색한 걸음으로 사고 현장을 찾는다. 대형 수족관 앞에 선 그녀가 수족관 창을 손으로 두드리자, 마법처럼 어딘가에서 거대한 고래가 나타난다. 마치 고래를 쓰다듬듯 창을 쓰다듬던 여인이 손과 팔을 움직여 동작을 시작하자, 고래가 그에 따라 움직인다. 우리는 여인의 표정을 볼 수 없는 대신 고래의 표정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혹은 의족을 찬 다리로 어색하고 꼿꼿하게 서서 우아하고 능숙하게 팔을 움직이는 여인의 뒷모습이 그녀의 얼굴 표정 그 자체라고 느낀다. 둘 사이에 가로막힌 창. 이제는 서로 섞일 수 없는 두 세계. 그 창을 사이에 두고 고래와 여인은 서로를 만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 창이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이 창은 불가능성을 가능성으로, 한계를 리듬으로 전환한다. 여인의 손짓에 고래는 어디론가 다시 사라져버리고 창 앞에 여인 홀로, 하지만 뭔가 달
[신 전영객잔] 내가 만질 수 없는 그러나 나를 만져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