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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봤더라?’ 2007년, 13살 핀란드 소년 월테리 세레틴은 TV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북극으로 항해를 떠난 러시아 잠수함”에 관한 해외 뉴스를 본 소년은 갑자기 소장하고 있던 영화 <타이타닉>의 DVD를 돌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누군가 어이없이 저지른 엄청난 실수를 알아차렸다. 러시아 국영방송 <로시야>가 다루었고, <로이터>를 통해 전세계에 타전된 뉴스 속 잠수함은 실은 <타이타닉> 도입부에 등장하는 가짜 잠수함이었다.
조지프 핼리넌의 <우리는 왜 실수를 하는가>(문학동네)에 등장하는 수많은 에피소드 중 하나다. 천재들만 모였다는 미국 항공우주국의 발표에 대해 계산 오류를 감히 제기한 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코흘리개였다. 권위를 자랑하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이 27년 동안 전시 실수를 저질렀음을 한눈에 발견한 이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코찔찔이였다. “초보자는 알지만 전문가는 모르는” 거대한 실수들, 서투르
[에디토리얼]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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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한국 극장가에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영화 2편이 한달 차이로 나란히 도착하고 있다. 5월23일 개봉한 <비포 미드나잇>이 18년간의 긴긴 산책을 마무리한 로맨스영화였다면, 6월20일 개봉할 <버니>는 링클레이터가 지난 15년간 매달려온 야심찬 블랙코미디다. 의문투성이인 실제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 블랙코미디는 마을 사람들이 주고받는 소문 사이를 맴돌며 천천히 인생의 부조리한 진리에 다가가는데, 그 발걸음이 자못 진지하다. 링클레이터의 영화세계를 능수능란하게 이해할 만한 유머감각은 쥐뿔도 없으나 그의 유머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읽어보고 싶었던 한 관객의 글을 여기 싣는다.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독자 분들은 영화를 보신 후 읽으시길 권장합니다.)
거두절미하고 리처드 링클레이터식으로 질문을 던져보자. 버니 티드는 누구인가? 마을에 떠도는 소문을 요약하자면, 그는 (지금도) 텍사스주 카시지에서 가장 사랑받는 장의사다. 흠잡을 데 없는 방부처리 솜
“버니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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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사나이
닐스 아르스트럽 Niels Arestrup
평범하고 마음씨 좋은 노인은 어울리지 않는다. 자크 오디아르의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2005)이나 <예언자>(2010)에서처럼 입에서는 담배 연기를 뿜어올리고, 손에는 붕대를 감고 있어야 그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하지만 <워 호스>(2011)에서 손녀가 사랑하는 말을 되찾으려 안간힘을 쓰는 할아버지의 모습도 보는 이들의 심금을 울린다. 이처럼 광활한 연기 폭을 드러내는 노인네가 또 있을까.
어려서부터 전설적인 드라마 지도자 타디아 발라코바 밑에서 연기를 배운 그는 알랭 레네의 <스타비스키>(1974), 잔 모로의 <뤼미에르>(1976)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경력을 쌓았고 글렌 클로스와 호흡을 맞춘 이스트반 자보의 <비너스>(1991), 줄리앙 슈나벨의 <잠수종과 나비>(2008) 등을 통해 오랜 조/단역 생활을 마감했다. 또한 에
‘이름이 뭐예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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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들어서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배우들, 하지만 얼굴만 보면 자동으로 수많은 명장면들이 줄줄이 떠오르는 배우들이 있다. 바로 그런 아리송한 배우들을 한데 모았다. 하지만 아무나 골라낸 것은 절대 아니다.
숨겨진 발견의 필모그래피나 새롭게 도전할 새로운 캐릭터 등 어딘가 ‘반전’의 매력이 있는 이들만 모았다. 자크 오디아르의 <예언자>에서 주인공을 범죄의 세계로 이끌던 닐스 아르스트럽, 패디 콘시딘의 <디어 한나>에서 한나를 죽도록 패던 찌질한 남편 에디 마산, 김지운의 <라스트 스탠드>에서 술주정하다 구치소에 얌전히 갇히게 된 로드리고 산토로, 잭 스나이더의 <맨 오브 스틸>에서 외계인 악당 조드 장군으로 변신할 마이클 섀넌,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에서 제임스 프랭코에 이어 새로운 해리 오스본으로 찾아올 데인 드한 등 그들의 또 다른 작품이나 경력이 궁금하지 않은가. 바로 그 궁금증을 속 시원히 해결해줄 20인의 명단과 이
‘이름이 뭐예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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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 다이어리] <은밀하게 위대하게> 김복남을 기억하는 관객들
[헌즈 다이어리] <은밀하게 위대하게> 김복남을 기억하는 관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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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돌아오는 6월6일은 당연한 말이지만 ‘현충일’이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국군 장병들에게 묵념하는 날. 조기를 게양하는 날. 국가적으로 많은 행사가 있는 날. 하지만 그건 1950년대 이후의 일이고, 1949년 6월6일은 현충일이 아니었다.
1949년 6월6일 새벽,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 청사는 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에게 포위된다. 몇 시간 뒤 출근하던 반민특위 요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이들 경찰에 무장해제된다. 그 과정에서 조사관을 비롯한 주요 요인들은 뒤뜰에 끌려가 무릎이 꿇리고, 특경대 요인들은 서울 시내 경찰서에 나눠져- 돌려가며- 지독한 고문을 받게 된다.
친일 출신 경찰들에 의해 이루어진 반민특위 습격 사건. 이 습격 사건이 있은 뒤 반민특위는 급격하게 와해된다. 사실상 친일파 청산은 물건너가고, 잡혀왔던 친일파 대부분이 무죄로 풀려난다. 1기 위원들이 전원 사퇴하자 새롭게 들어선 2기는 오히려 친일파들에게 사법적 면죄부를 공식적으로 부여하
[김진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또 다른 6월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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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들이 늘어놓는 사적인 편견은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가 주는 ‘불쾌’ 중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극화를 거친 편견은 인물간 대립을 통해 이야기 속에서 나름의 답을 찾기 마련이지만 그녀의 드라마 속에서 의미없이 반복되는 정교하지 못한 편견은 대개 갈등의 자리까지 치고 올라오지 못했다. 대화보다 일방적인 전달에 가까운 대사들은 제각기 성격을 지닌 캐릭터를 지켜보는 느낌보다 작가의 경험과 편견을 공유하는 임성한-a, 임성한-b, 임성한-c의 무한 반복처럼 보이기도 한다.
잠깐 들어도 작가가 누군지 대번에 파악할 만큼 독특한 스타일에, 일상적인 대사가 많고 옹호하는 가치관이 강력하게 드러나는 점에서 김수현 작가와 임성한의 공통점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연인이든 혈육간이든 도덕의 화신이든 징글징글한 속물이든 간에 뭐 하나 쉽게 넘어가는 일 없이 자신의 온 존재를 건 듯 격렬하게 맞서는 김수현의 인물들에게 비하면, 임성한의 인물은 ‘피고름’ 등 강렬한 표현에 집착할 뿐 현실이라면 면박
[유선주의 TVIEW] 당신 정말 속물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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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하나의 장르를 상징하는 경우가 있다. 존 웨인과 웨스턴의 관계가 그렇다. 또 배우가 하나의 미학을 대표하는 경우도 있다. 안나 카리나 혹은 잔 모로와 누벨바그가 그렇다. 뉴 저먼 시네마를 대표하는 배우 한명을 꼽는다면 영화인들은 단연 한나 쉬굴라를 떠올릴 것이다. 쉬굴라는 파스빈더를 만나 함께 연극을 하고, 함께 영화계로 진출해 그가 37살의 젊은 나이로 죽을 때까지 주요 영화에 모두 출연했는데, 그게 전부 파스빈더의 대표작이자 쉬굴라 자신의 대표작이고, 더 나아가 뉴 저먼 시네마의 대표작이 됐다.
문학 소녀, 파스빈더의 뮤즈가 되다
한나 쉬굴라는 문학을 좋아했다. 독일문학은 물론이고, 프랑스문학을 특히 좋아했다. 대학을 다니며 연기가 배우고 싶어 연극 스튜디오에 다녔는데, 그곳에서 훗날 뉴 저먼 시네마의 대표 감독으로 성장하는 파스빈더를 만났다. 첫인상은 별로였고, 약간 거칠어 보이는 그에게 관심도 없었다. 쉬굴라는 뮌헨대학교 문학부 학생이었고, 파스빈더는 공적인 경력
[한창호의 오! 마돈나] 뉴 저먼 시네마의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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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시험서 위조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이 “용서받지 못할 일”이라고 발끈하자 새누리당에서는 공공기관 비리 임직원의 재산을 압류할 수 있도록 법을 고친다고 나섰다(이번에는 하루 만에. 대통령 말씀 떨어지고 법안 나오는 시간 재기 이거 은근 재미있다. 점점 짧아진다). 그동안은 형사처벌과는 별도로 옷만 벗고 퇴직금도 챙기는 편이었는데, 회사에 끼친 손실에 대해 기관장이 구상권을 청구하는 형식으로 비리 임직원의 재산을 내놓게 하겠다는 것이다.
‘박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은 ‘의원 학생들’ 모습은 그렇다쳐도(걸린 놈 패가망신시키는 데 지나치게 경쟁하다보니 다른 법과 충돌하기도 한다), 모든 걸 사후 징벌적으로 처리하려는 것은 위험하다. 위법 행위로 회사에 금전적 손실을 끼친 임직원에 대해서는 지금도 대표이사 등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맥락은 다르지만 그동안 노조에(심지어 노조원 개인에게) 악랄하게 뒤집어씌웠던 각종 손배소들을 떠올려보면 될 것이다. 악용하려고 들면 한도 끝도
[김소희의 오마이 이슈] 일벌일계라도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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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스를 연기한 역대 수십명의 배우 중에 캐릭터보다 더 희한한 이름을 지닌 유일한 배우.” 2010년 <BBC> 시리즈 <셜록>이 방영됐을 때 처음 접한 베네딕트 컴버배치에 관한 묘사는 그랬다. 미확인 비행 물체처럼 대중의 시야에 진입한 지 3년이 지난 지금,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마이클 파스빈더와 더불어 대서양 양쪽에서 가장 주목받는 영국계 남자배우가 되었다. 규모로는 몰라도 열성으로 치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팬덤도 거느리고 있다. 신작 <스타트렉 다크니스>에서 컴버배치는 J. J. 에이브럼스가 꼼꼼히 조립한 이 영화의 무게중심을 기우뚱하게 할 만큼의 카리스마를 발산하는데, 그 카리스마의 색깔은 셜록의 캐릭터와 통하는 바가 있다. 남은 2013년 공개될 예정인 컴버배치의 영화는 편수로나 화제성으로나 만만치 않다. <호빗: 스마우그의 페허>, 비틀스의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으로 분하는 <더 맨 후>, 메릴 스트립과 공연한 &l
[베네딕트 컴버배치] 마성의 소시오패스 베네딕트 컴버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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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마케터들의 업무 환경을 개선하겠다. 직업인으로서의 영화마케터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5월30일 CGV압구정에서 열렸던 영화마케팅사협회(Korean Film Marketers Association, KFMA) 창립총회에서 초대 회장으로 선출된, 영화홍보대행사 영화인 신유경 대표가 영화마케팅사협회의 목표를 밝혔다. 영화마케팅사협회에는 영화인, 퍼스트룩, 올댓시네마, 딜라이트, 더홀릭컴퍼니, 레드카펫, 무비앤아이, 메가폰, 시네드에피, 언니네홍보사, 영화사 하늘, 이가영화사, 이노기획, 엔드크레딧, 워너비펀, 필름마케팅 팝콘, 호호호비치, 흥미진진 등 총 18개 영화홍보대행사, 93명의 영화마케터가 가입했다. 창립총회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6월5일, 논현동에 위치한 영화인에서 신유경 초대 회장을 만나 영화마케팅사들이 조합을 만든 이유와 앞으로의 활동 계획부터 물었다.
-영화마케팅사협회의 초대 회장을 맡았다.
=이리저리 상황을 재고 있었다면 못했을 것 같다.
[신유경] 우리 어떻게 사는지 한번 들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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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본 어떤 분이 “오, 제목 죽이는데. 정곡을 찌르는군”이라고 감탄을 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정대세를 보고도 공작원이라고 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라니. 물론 필립 로스가 한국을 배경으로 이 책을 쓴 것은 아니지만(우리나라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는 한다. “트루만이… 한국에 쳐들어가 이승만이라는 파시스트를 지원하겠다고…”), 매카시즘이 휩쓸던 1950년대의 미국사회는 현시점의 대한민국을 생각나게 한다.
기본적인 줄거리는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지만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주인공 아이라 린골드는 노동자로 일하면서 공산당에 가입한다. 큰 키와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그는 우연히 연극에서 링컨 역을 맡게 되는데 연설문을 암송하는 그의 대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준다. 결국 그는 ‘강철의 린골드’라는 뜻의 ‘아이언 린’이라는
[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빨갱이와 결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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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안녕을>로 최우수 사립탐정소설 신인상을 수상했던 때 법적 음주 가능 나이인 만 21살 미만이었던 마이클 코리타(이제 겨우 서른살이다)의 <밤을 탐하다>가 출간되었다. ‘사립탐정 링컨 페리’ 시리즈가 아닌 독립 장편이기 때문에 마이클 코리타라는 작가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추천한다. 연방보안관이면서 살인청부업자로 살았던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은 남자가 아버지를 배신한 자에게 복수를 꿈꾼다.
[도서] 마이클 코리타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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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에서 독일 문학의 거장 헤르만 헤세 선집 <크눌프>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로스할데>의 3권이 추가로 출간되었다. 독일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스무살 언저리의 고뇌하는 청춘들에게, 우정과 사랑, 그리고 세계와 개인, 욕망과 예술을 고민하게 했던 헤세의 책들을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같은 유명한 책들 말고도 새 번역으로 고루 만날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인 셈이다. <유리알 유희>까지 6월 중 11권 완간 예정.
[도서] 새 번역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