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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남자가 한 여인을 두고 ‘우리 선희’라고 생각한다. 그게 홍상수 감독의 <우리 선희>의 내용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게 될 우리는 짐작한다. 그게 다가 아닐 것이라고. 더 많은 결들이 이 영화를 채우고 있을 것이라고. 이것이 홍상수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네명의 필자가 <우리 선희>에 관한 4인4색의 감상문을 제출했다. 그리고 여섯명의 필자가 질문을 모아 홍상수 감독에게 전했고 답변이 왔다. 홍상수 감독이 <우리 선희>에서 새롭게 시도하거나 발견한 것들도 정리해서 넣었다. 계절이 오는 것처럼 홍상수의 영화가 오는 것을 반기는 독자들을 위해 마련한 특집이다.
우리 선희를 본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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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 다이어리] <관상> 배우로 길할 상
[헌즈 다이어리] <관상> 배우로 길할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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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대선 직전 갑자기 터진 국정원 여직원 사건으로 인해 많은 언론이 여직원 오피스텔 복도에서 대기하던 때, 나는 한 인터넷 언론의 생중계를 통해 얼굴이 동그란 여자 경찰 한명을 처음 보았다.
물론 당시 현장이 난리통이었고 사람들의 관심도 오피스텔 안에 있는 사람이 국정원 여직원인지 아닌지, 정말 댓글 작업을 하고 있었는지 여부 등에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주목할 만한 이유는 없었지만, 문 앞에서 국정원 여직원과 차분히 대화하고 허둥대던 사람들에게 담담하게 브리핑을 하는 모습이 현장의 소란스러움과 대비되어 묘하게 이질적이었다. ‘저 사람 누구지?’ 하는 호기심이 들 찰나 현장은 북새통을 이루었고 그렇게 그녀는 내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 ‘동그란 얼굴’이 다름 아닌 권은희 수사과장이란 걸 알게 된 건 이후 그녀가 수사에 대한 부당한 외압을 폭로한 뒤였다. 언론에 소개된 그녀의 이름은 낯설었지만, 그녀의 사진은 낯이 익었다. ‘맞아! 바로 저 동그란 얼굴이었어!’라고 속으로
[김진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경찰, 권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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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구를 지켜줘.” 2013년 여름영화들이 상상한 미래 풍경의 갤러리다. <엘리시움> <월드워Z> <애프터 어스> <감기> <오블리비언> <설국열차>(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8/13
<아이언맨3>로 예년보다 일주일 일찍 시작한 여름영화 시즌이 오늘 <엘리시움>의 언론 시사로 종착역 플랫폼에 진입한 느낌이다. 애니메이션 <몬스터 대학교>와 <슈퍼배드2>가 남아 있긴 해도 영화의 달력으로 처서(處暑) 즈음이라 해도 무방하다. “드디어 종말도 종말이구나.” 이것이 2013년 여름을 전송하는 나의 즉각적 감회다. 할리우드가 제출한 시나리오에 의하면 지구의 미래 연표는 쑥대밭이다. <월드워Z>에서 지구는 시체를 소생시키는 초자연적 역병의 만연으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다. (4월 개봉작이긴 하지만) <오블리비언>의 진술에 따르면 지구는 2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종말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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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울, 이주승, 김새벽, 안재민, 정혜인, 신재하 등 독립영화의 샛별들이 대거 출연한다. 지쳐 있다가도 노래가 흘러나오면 제각기 큰소리로 기합을 넣으며 신나게 춤을 춘다. 입고 있는 유니폼은 “논란의 여지가 없도록 지금은 폐업한 모 편의점의 예전 유니폼을 본떠” 의상팀에서 자체 제작했다.
판타지오픽쳐스에서 기획한 배우그룹 서프라이즈의 멤버 공명(왼쪽)은 군입대를 앞두고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기철을 연기한다. 걸그룹 헬로비너스의 유영은 사교적이고 다혈질인 하나를 맡아 기철에게 유용한 조언을 해준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나게 된 선남선녀의 동상이몽이 재미있는 장면이다.
김경묵 감독은 편의점의 하루를 스쳐가는 여덟명의 청년들을 날마다 한두명씩 차례로 관찰하고 있다. “매일 새로운 배우들과 작업하다보니 편의점을 주제로 한 옴니버스영화를 찍고 있는 기분이다.” 출연배우들이 많으니 정해진 분량만큼은 하루에 다 찍어야 한다. 해가 뉘엿한 오후 4시가 되면 “말할 수
[씨네스코프] 편의점 인간관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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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새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의 얼굴이 무척 삭았다. ‘그런 모임이 없었다’고 했다가 ‘모임은 있었지만 그런 발언은 없었다’더니 급기야 ‘발언은 있었지만 농담이었다’고 말을 바꾸는 걸 보며 그간 이 대표가 보였던 영민함과 당당함은 어디로 갔나 싶었다. 공당 대표의 기자회견이 아니라 억지스런 변명이었다. 일각에서는 이참에 ‘이석기 세력’을 털어내라고 주문하지만, 그럼 그 당에 누가 남을까. 국민 앞에 사과하고 진상을 조사하자는 내부의 목소리마저 ‘분파주의’로 매도됐다는 소식을 들으니, 비록 지금은 갈라섰지만 정의당과 노동당 사람들은 짧지 않은 시기 어떻게 이들과 함께했는지 새삼 존경스럽다. 아주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국정원 못지않게 ‘셀프 개혁’이 불가능한 집단이다.
‘녹취록’에 나왔다는 이 의원과 참가자들의 발언은 거의 ‘방언’ 수준으로, 간증모임에서나 나올 법한 과장과 망상이 어우러져 있다. 굳이 몸싸움을 벌여가며 “진실의 승리” 운운하는 모습도 딱하다. 법정이 아니라 병
[김소희의 오마이 이슈] 국정원과 통진당의 당연한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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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네가 웃겨야 돼. 네가 웃겨야 영화가 살아.” 설경구가 문소리에게 해줬다는 이 얘기는 정확한 예언이 됐다. <스파이>는 첩보영화의 외피를 두른 코미디영화다. 그리고 그 웃음폭탄의 8할은 문소리가 투척한다. <스파이>에서 문소리는 자신의 남편이 능력 좋은 스파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출장이 잦은 남편에게 쉼 없이 잔소리를 늘어 놓는 안영희를 연기한다. 남편 철수가 국가의 중차대한 일을 처리하려 할 때마다 공교롭게도 자꾸만 철수의 레이더망에 잡히며 그의 집중을 흩뜨리는 영희는 자칫 민폐 캐릭터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영희는 문소리라는 배우를 만나 귀여움을 입는다. 고음역대에서 쉽게 갈라지는 목소리를 지닌 문소리가 애교를 섞지 않은 담백한 부산 사투리로 철수를 닦달하는 모습도 밉지 않다. 또한 그 목소리는 신기하게도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영화 전체의 분위기마저 띄운다.
그런데 문소리가 이렇게 코미디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던가. 아니, 코미디
[문소리] 제대로 웃겨주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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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일은 안 하면 된다. 안 해도 산다.” 무리없는 삶을 지향하는 설경구와 달리 <스파이>의 철수의 현실은 무리 막급이다. “월급쟁이 스파이” 철수에게 제임스 본드 같은 폼생폼사 스파이가 웬 말. 주어진 임무 완수하랴, 잘생긴 이중 스파이로부터 마누라 사수하랴. 그에게는 숨 돌릴 틈도 사치다. “피로도가 아주 높은 캐릭터다. 한시름 놓으려 하면 마누라가 딴 남자한테 한눈팔고 있고, 한시름 놓으려 하면 마누라가 납치됐다 그러고. 아무것도 모르는 영희(문소리)는 잘생긴 라이언(대니얼 헤니)이랑 연애도 하고 피로도 풀고 마지막에는 자기가 스파이인 줄 알고 스릴도 만끽하는데, 그런 상황을 빤히 다 보고 있는 철수 입장에서는 진짜 똥줄 탄다니까.”
팍팍한 철수의 삶에 숨통을 틔워주는 게 20년차 배우 설경구의 여유만만 생활연기다. 헤니의 라이언이 ‘아줌마’들의 환상을 담당한다면 그의 철수는 아줌마들의 현실을 보전한다. “<박하사탕>에서도 방금 전까지 물고문, 전
[설경구] 신경쇠약 직전의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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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따로따로 해? 무슨 비밀 얘기라도 하려고?” 한발 빨리 인터뷰를 시작한 설경구를 찾아와 문소리가 톡 쏘아붙인다. “어, 비밀이야. 여기 커튼 칠 거야.” 문소리의 뒷모습에 설경구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응수한다. 한수 한수 주고받는 모습에서 15년차 커플의 진정한 내공이 절로 묻어난다. <박하사탕> <오아시스> 이후 11년 만에 본격 권태기 부부로 재결합한 설경구와 문소리, 그들다운 모습이다. “첩보영화의 탈을 쓴 코미디영화.” <스파이>에서 설경구는 “마누라 살리기”에 정신이 없는 “월급쟁이 스파이” 철수로, 문소리는 미워도 다시 한번 “남편 살리기”에 얼떨결에 도전하게 되는 초보 스파이 영희로 분한다. 아직 여름이 한창이던 8월 중순 마포구 서교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그들만의 스파이 부부로 살아남는 법에 대해 들었다.
[스파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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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예술과 구원에 대한 영화네.” 지난해 <러시안 소설>을 미리 본 부산국제영화제 관계자들은 신연식 감독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로맨스 장르의 외피를 두른 상업영화 <페어러브>를 제외하면, 신연식 감독의 작품(<피아노 레슨> <좋은 배우>)은 대개 예술 장르의 테두리 안에 위치한 사람들을 조명하며 삶과 예술에 대한 성찰을 풀어놓곤 했다. <러시안 소설> 역시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으나 27년 뒤 위대한 작가가 되어버린 한 소설가의 삶을 통해 예술의 본질을 탐구하는 영화다. “안 그런 시나리오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여태까지 나온 영화들이 본의 아니게 영화 때려칠 생각을 하고 만든 작품이라 그런가보다. (웃음)”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서 예상치 못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신연식 감독의 저력인 것 같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뒤 신 감독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완성한 <러시안 소설>은
[신연식] 눈 딱 감고 못된 짓을 해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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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3일 <미나문방구>, 7월4일 <고령화가족>, 7월20일 <오블리비언>, 8월19일 <감시자들>, 8월22일 <은밀하게 위대하게>.
올여름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랐던 날과 영화 제목들이다. 개봉한 지 어느 정도 지난 시점에 갑자기 포털 사이트에서 열띤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이 작품들은 모두 VOD 서비스 시점과 관계가 있다.
국내 영화시장에서 영화 VOD에 대한 높은 반응과 관심은 VOD 서비스일과 맞물려 주요 포털에서 등장하고 있다. 더군다나 VOD를 주로 이용하는 20, 30대가 인터넷 및 모바일을 주로 활용하는 세대와 맞물리면서 이러한 관심은 즉각적일 수밖에 없다.
영화 VOD에 대한 관심과 성장은 각종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올 초 문화체육관광부가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영화 VOD 시장 규모는 2158억원으로 2011년 1709억원보다 26%성장했다. 특히 디지털케이블
[트렌드] 극장에서 봤니 안방에서 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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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 새 책이 나오면 새 삶이 시작되네. 원하는 사람 누구한테나 자네의 일부분을 나눠주는 거니까, 아주 이타적인 순간이기도 하고.”
조엘 디케르의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은 살인사건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이면서 주인공인 작가가 책을 써나가는 과정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화자인 마커스 골드만은 데뷔 소설이 200만부가 팔리면서 문단의 총아 겸 유명인사가 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곤경에 빠지게 된다. 작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병, ‘라이터스 블록’(writer’s block)에 걸린 것이다. 거장이든 신인이든 가리지 않고 작가라면 누구에게나 한번씩 찾아온다는 라이터스 블록은 말 그대로 장애가 생긴 것처럼 글을 못 쓰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머릿속에는 영감이 떠오르지 않고 한 글자도 써내려갈 수가 없다. 지금까지 어떻게 글을 썼는지 스스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마커스는 바로 이런 증세를 보이게 된다.
출판사와의 두 번째 책 계약에 따른 마감은 점점 다가오고 미칠 것
[금태섭의 서재에서 잠들다] 반전의 반전의 반전의 반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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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뷸러상, 휴고상을 수차례 수상한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의 소설. ‘보르코시건’ 시리즈 3권이다. 마일즈 보르코시건은 바라야 제국 황족이자 보르코시건 백작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이다. 그의 꿈은 가문의 전통에 따라 위대한 군인이 되어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군인이 되는 길의 첫 관문인 제국군 사관학교 입시에서 그는 그만 다리뼈가 부러져 불합격한다. 부디 시리즈 전권이 무사히 출간되기를.
[도서] 위대한 군인이 되어 나라에 충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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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를 쓴 위화의 장편소설. 양페이는 태어나면서 생모와 이별하고 철도 선로 인부였던 아버지에게 극적으로 구출되어 그의 아들로 살아가게 된다. 그런 양페이가 불의의 사고로 죽고 나서 7일 동안 연옥에서 이승의 인연들을 만나 그동안의 앙금도 풀고 사랑을 재확인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사회의 부조리마저 해학 넘치는 문장으로 그려내는 위화 특유의 이야기 솜씨는 이 책에서도 여전하다.
[도서] 이승의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