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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AERA> 편집부에서 경제 기사를 쓰는 오시카 야스아키는 일본 동북부 대지진이 있었던 2011년 3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9개월간 125명에 이르는 관련자들을 취재해 <멜트다운>(부제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는 어떻게 일본을 침몰시켰는가’)을 써 제34회 고단샤 논픽션상을 수상했다. 이 책은 한두명의 개인의 힘으로는 불가능했던 재앙을 만들어낸 정치가, 정부 관료, 도쿄전력, 전문가, 은행가들의 입을 통해 재구성하는 원전 사고다. 사고를 대비하는 안전장치들은 있었지만, 이런 식이다. “1호기를 운전 조작했던 직원 가운데 누구 하나 비상복수기를 실제로 작동시켜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 모든 것을 상상하고 안전을 기했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판이었음이 매 순간 드러난다. 제1원전이 막아낼 수 있는 쓰나미 높이는 5.7m. 당시 들이닥친 쓰나미 높이는 약 30m. 당시 도쿄전력 회장은 도쿄전력의 노사 수뇌진과 언론인들이 참여한 방중단을 이끌고 있었는데, 쓰
[도서] 엘리트 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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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숭이> DVD를 요청하려 제작사인 이닥픽처스에 전화를 걸었더니 박상훈 감독이 직접 수화기를 들었다. 박상훈 감독은 곧 DVD를 전달하겠다고 했고, 30여분 뒤 직접 DVD를 들고 <씨네21> 사무실을 찾았다. 인터뷰 당일엔 자신이 작성한 보도자료를 들고 30분이나 일찍 약속 장소에 나와 있었다. 각본, 촬영, 헌팅, 연출은 물론이고 배급과 마케팅까지 손수 관장하고 있는 박상훈 감독은 <벌거숭이>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어 진심으로 행복한 듯 보였다. 아내와 아들을 제 손으로 저세상에 보낸 한 가장이 절망이라는 이름의 뫼비우스 띠에 갇혀 처절하게 몸부림 치는 이야기인 <벌거숭이>.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 벌거숭이가 된 박상훈 감독을 만났다.
-존속살인을 저지른 박일래라는 인물을 따라가는 영화다. 어떻게 구상한 이야기인가.
=4년쯤 전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고서 광인처럼 살다가 무작정 시골에 내려갔다. 시골에서 ‘마을 영화’도
[flash on] 창작의 텃밭을 잘 가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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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더글러스가 연기한 가장 강력하고 힘 있는 인물 중 하나가 <월 스트리트>(1987)의 주인공 고든 게코다. “탐욕은 좋은 것”이라는 매혹적인 말로 이 영화를 보았던 당대의 출세 지향적 젊은 관객을 무한정 자극했던 월 스트리트 금융가의 악덕 증권 브로커, 그러나 끝내 영화 속 자신은 파멸을 면치 못했던 인물. 더글러스는 이 인상 깊은 악역을 통해 생애 처음으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손에 쥐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때였다.
20년쯤 지나 속편에 해당하는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2010)가 제작되었을 때 더글러스는 동일 인물로 다시 출연한다. 감옥에서 출소한 고든은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밑천으로 강연하고 책을 팔며 산다. 강당에 학생들을 앉혀놓고 월 스트리트의 병폐에 관해 이것저것 짚어가던 고든은 연설의 마무리가 필요한 시점에 이르자 비장의 비유 하나를 꺼내든다. “그런 건 암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싸워서 이겨내야 할 질병 같은
[마이클 더글러스] 탐욕의 화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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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 장르 막론하고, 활동 경력 막론하고, 모든 남자 연예인을 ‘멘붕’으로 만들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 있었다. 바로 “오빠! 나 몰라?” <무한도전> ‘여름예능캠프’편에서 맹승지는 이름대로 맹한 매력으로 이 주문을 연신 외쳐대며, 어떤 수료생보다 뛰어난 성적으로 여름예능캠프를 졸업했다. 그리고 현재는 <코미디에 빠지다>의 한 코너 ‘맹스타’에서 맹스타로, <섹션TV 연예통신>의 고정 리포터로 맹활동 중이다. 연휴가 끝난 뒤 월요일 아침, MBC 일산드림센터에서 만난 그녀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데도 “바쁘니까 안 좋은 일도 금방금방 잊혀져서 좋다”며 샐쭉이 웃었다. 명절 후유증도, 월요병도 개의치 않는 그녀의 맹맹한 목소리가 유쾌했다.
-인터뷰를 늘 이렇게 점심시간에 하나.
=막내니까. 8월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일 이렇게 오전이나 점심시간에 인터뷰를 했던 것 같다.
-본명은 김예슬이고, 맹승지는 엄마가 작명소에서 지어온 이름이라고.
=처음에는
[trans x cross] 내 장점은 긍정적이고 무식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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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 헤밍웨이> Dom Hemingway
감독 리처드 셰퍼드 / 출연 주드 로, 에밀리아 클라크, 리처드 E. 그랜트, 데미안 비쉬어
영국의 범죄코미디 <돔 헤밍웨이>의 예고편이 공개됐다. 12년간의 교도소 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전설적인 금고털이범 돔 헤밍웨이의 이야기로, TV시리즈 <어글리 베티>로 에미상을 받았던 리처드 셰퍼드가 각본과 연출을 맡은 영화다. 영국에서 11월에 개봉한다.
[WHAT'S UP] <돔 헤밍웨이> Dom Heming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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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마찬가지로 뉴욕 역시 날씨가 쌀쌀해지며 본격적인 가을에 접어들고 있다. 2013년 여름, 유난히 ‘폭탄’을 맞은 블록버스터가 많았던 미국 극장가에서 선전을 펼쳐온 저예산 독립영화들을 소개한다. 먼저 선댄스영화제에서 1천만달러라는 이례적으로 높은 가격에 판매됐던 <더 웨이, 웨이 백>은 영화계 관계자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박스오피스에서 2천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스티브 카렐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10대 소년인 던컨이 어머니와 그녀의 새 남자친구와 함께 간 워터파크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작품. 미국 언론은 대체로 “모든 연령대가 무난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며 “여름에 산뜻하게 관람하기에 알맞은 영화”라고 평가하고 있다. 우디 앨런 감독의 신작 <블루 재스민>은 현재 2770만달러를 기록해 그의 작품을 통틀어 두 번째로 높은(1위는 <미드나잇 인 파리>)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우디 앨런의 열성 팬들인 장년층은 여름철보다 가을과 초겨울에
[뉴욕] 작지만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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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
제작 선샤인필름 / 감독 국동석 / 출연 손예진, 김갑수, 임형준, 이규한, 조안 / 제공, 배급 CJ엔터테인먼트 / 개봉 예정 10월24일
<공범>은 15년 전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고 한채진군 유괴살인사건을 영화화했다. 공소시효를 앞두고 다은(손예진)은 실제 범인의 목소리에서 세상에서 가장 익숙한 아빠 순만(김갑수)의 존재를 느끼고, 그의 과거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를 파헤칠수록 다은은 혼란에 휩싸이고, 평생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온 아빠에 대한 잔인한 의심은 커져만 간다. <공범>은 ‘내 가족 중에 범죄자가 있다면?’이라는 잔인한 상상에서 출발했으며, 또한 공소시효가 사라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국동석 감독은 박진표 감독의 <너는 내 운명>(2005), <그놈 목소리>(2007), <내 사랑 내 곁에>(2009) 세편에 연달아 조감독으로 참여했으며, <공범>은
[Coming Soon] ‘내 가족 중에 범죄자가 있다면?’ <공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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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마법왕국 로덴시아에 살고 있는 소심한 생쥐 아담은 로덴시아 제일의 마법사 블루에게 사사해 최고의 마법사가 되고자 하지만 자신감 없는 성격 탓에 하는 일마다 실수 연발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세계에서 로덴시아를 넘보는 검은 마술사 로텍스가 왕국을 차지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고, 왕국을 구하기 위한 전설의 보물을 찾아 아담과 그의 단짝 친구 브리, 그리고 귀여운 두명의 친구들의 여정이 시작된다.
주인공 일행이 모험을 떠난다는 이야기 구조는 사실 그렇게 새롭지 않아 보인다. 여기에 이 모험이 아직 유년의 티를 벗지 못한 주인공을 성장시킨다는, ‘성장 모험담’의 외형도 익숙하기만 하다. 이러한 양상은, 약하고 선한 생쥐의 지상세계와 반란을 꿈꾸며 강압적인 태도를 가진 들쥐의 지하세계간의 대립구도가 대스승 블루 밑에서 배출된 두명의 제자간의 대결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이야기를 통해 몰랐던 비밀을 알게 된다는 스토리 라인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
낯선 경험의 새로움 <로덴시아: 마법왕국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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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복 페티시가 있는 부동산 중개업자 메이리(테레사 청)는 업무차 매력적인 중년 여성 우메키 여사(마쓰자카 게이코)를 만난다. 우메키는 메이리에게 과거 자신이 살았던 집을 처분해줄 것을 부탁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집에 마음을 뺏긴 메이리는 자신이 이곳에 직접 살기로 한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젊은 남성 킴이 등장하고, 뒤이어 경찰 ‘4708’과 미모의 여성(하리수)까지 이 집을 차례로 찾아 메이리와 기묘한 관계를 맺는다. 과연 이들은 누구이며 어떤 사연을 안고 있는 것일까.
9년 만에 한국에서 정식 개봉하는 욘판 감독의 <하리수 도색>은 다섯명의 남녀가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서로 사랑을 나누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그린다. 감독은 특유의 감각적인 화면 속에 실제와 기억을 번갈아 등장시킨 뒤 마지막에는 그 구분조차 지워버리며 사랑과 욕망에 몸을 맡긴 인물들의 위태로운 내면을 다룬다. 그런데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공들여 형상화한 화려한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다섯 남녀 <하리수 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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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던 남극의 펭귄마을은 바다코끼리 악당들의 습격으로 위기에 처했다. 바다코끼리들에게 펭귄 알을 인질로 잡힌 펭귄들은 물고기를 조공으로 바쳐야만 한다. 한편 우연한 계기로 정글에서 태어나 호랑이 밑에서 자란 남극 펭귄 모리스는 반복되는 훈련과 몸에 호랑이 줄무늬를 그려넣는 노력 끝에 정글을 호령하는 타이거 펭귄이 되었다. 펭귄 남매 핑과 퐁은 바다코끼리로부터 펭귄마을을 구해줄 전설 속의 ‘호랑이 전사와 일곱 용사’를 찾아 머나먼 정글까지 찾아온다. 모리스와 친구들은 팀을 이루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남극으로의 모험을 떠나게 된다.
이 영화는 2011년 프랑스에서 방영되었던 동명의 TV애니메이션 시리즈의 극장판이다. 국내에서는 2012년 시카프(SICAF)와 최강애니전에서 각각 TV&커미션드 우수상과 관객상을 수상한 바 있다. 프랑스 작품이기 때문인지 펭귄 민중이 봉기하고 바리케이드를 쌓으며 바다코끼리 악당들로부터 펭귄마을을 해방시키는 모습은 프랑스 대혁명을 연상케 한다.
남극 펭귄, 야생의 맹수가 되다 <정글번치: 빙산으로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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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소도시에서 작은 구멍가게로 겨우 생계를 유지해가는 가족이 있다. 열심히 살아보려 해도 앞이 보이지 않는 생활의 연속이다. 가장 일래(김민혁)는 걸핏하면 술에 취해 아내를 구타하고, 이제 겨우 예닐곱살이 된 아들 영수는 하루 종일 게임에만 매달려 살고 있다. 이런 가족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아내 유림(장리우)의 삶도 점차 황폐해져만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좀더 나은 삶을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던 일래는 급기야 전 재산을 담보로 택배 일을 해보려고 투자를 하지만, 결국 한푼도 남김없이 사기를 당하고 만다. 실낱같은 희망조차 사라져버린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르고, 영화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와 밴쿠버국제영화제에 초청되고,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독불장군상’을 수상한 <벌거숭이>는 벼랑 끝에 선 가장 일래의 ‘선택’과 그 선택이 가져온 삶의 변화를 극단적인 대조를 통해 보여준다. 그 전반부가 처절하게 망가져가는 한 가족의 삶을 끔찍할
벼랑 끝에서 한 선택 <벌거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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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혹은 가까이 들리는 폭탄 소리. 전쟁과 내전으로 점철된 아프가니스탄의 한 마을에서 군인과 반군은 밤낮으로 지배와 수복을 반복한다. 식물인간 상태의 남편(하미드 자바단)을 간호하는 여자(골쉬프테 파라하니)는 폭격 속에서도 남편을 떠날 수 없다. 사랑하는 방법도 이유도 모르는 남편에게 여자는 지난 결혼 10년간 그저 고깃덩어리였을 뿐. 사랑하지 못하는 남자는 전쟁도 못한다는 속담이 있듯 전쟁 영웅 출신 남편은 어이없는 다툼에 휘말려 식물인간이 되었고 모두 전쟁을 피해 떠나고 없다. 폭격과 강간의 위협을 느끼며 남편을 간병하던 여자는 누워 있는 남편을 ‘인내의 돌’로 삼기로 한다. 이모가 들려준 민담에 의하면 인내의 돌에 비밀을 털어놓으면 끝내 산산이 부서지면서 비밀을 가진 자의 고통을 해방시켜준다고 한다. 대담히 자신의 비밀과 바람을 말하던 여자는 처음에는 악령에 홀린 모양이라며 자기 검열을 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억눌린 감정과 분노, 욕망이 토로되자 점차 해방감을 느
진정한 예언자 <어떤 여인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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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린 사랑>으로 주목받았던 드니 빌뇌브의 신작 <프리즈너스>는 아동 유괴극과 그로 인해 망가져가는 사람들을 그린다.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도버(휴 잭맨)와 버치(테렌스 하워드)는 자신들의 딸이 실종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곧바로 형사 로키(제이크 질렌홀)와 함께 존스(폴 다노)를 용의자로 지목하지만 그에게서는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존스를 범인으로 믿는 도버는 그를 납치해 고문을 시작하고, 로키는 이 사실을 모른 채 새로운 용의자를 쫓기 시작한다. 과연 이 둘의 서로 다른 행보는 어떤 결과를 낳을까.
<프리즈너스>는 뒤로 갈수록 이야기에 힘이 붙는 영화다. 제각기 다른 장소에서 벌어지는 각각의 사건들은 처음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고, 그렇기 때문에 응집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직하게 제 갈 길을 걷던 사건들의 연관성이 점차 밝혀지면서 모든 이야기들은 뒤늦게 제 의미를 드러낸다. 그러
빠져나올 길 없는 어두움 <프리즈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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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을 등에 업은 남자가 있다면 그게 바로 깡철이(유아인)일 것이다. 깡철이는 몸이 성한 곳이 없어 ‘부산의 헬렌 켈러’라 불리는 엄마(김해숙)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는 매일 막노동을 하며 엄마의 병원치료비를 구해보려 하지만 이미 빌린 돈을 갚기에도 역부족이다. 치매에 걸린 엄마는 깡철이를 걸핏하면 남편으로 착각하고, 종종 사고를 친다. 그래도 깡철이에겐 하나뿐인 혈육인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 그러던 어느 날 깡철은 작업장 근처에서 조직폭력배의 살인 현장을 목격한다. 조직의 보스 상곤(김정태)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면 엄마의 치료비를 내주겠다며 깡철에게 제안한다.
여기저기 절박한 사람들 천지다. 유아인이 출연했던 과거 영화의 제목에 비유하자면 <깡철이>의 인물들에게 ‘내일’은 없다. 삶의 진창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이들의 고단한 삶을 영화는 조명한다. 대개의 경우 그들의 유일한 버팀목은 ‘가족’이다. 깡철이와 병약한
‘내일’은 없다 <깡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