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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비행>은 작품에 대한 평가 면에서 단연 고공비행 중이다. “만든 사람 입장에서야 아쉬운 것이 많지만 보는 분들이 하나같이 좋아해주셔서 부담을 느낄 정도로 감사한 마음이다.” <야간비행>을 제작한 독립영화 제작 배급사 시네마달의 김일권 대표는 그렇게 인터뷰의 운을 뗐다. 초반부 흥행은 아직 저공비행 중이지만 “작품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고 있으니 더 좋아질 것 같다”고도 힘주어 말했다. <야간비행>은 교육 현실의 그릇됨과 성소수자 문제의 차별성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청춘영화라는 분위기 안에서 호소하고 있다. 우리는 감독을 인터뷰한 데 이어(<씨네21> 969호), <야간비행>의 또 한명의 조종사인 제작자 김일권 역시 만나고 싶어졌다.
-영화에 대한 평들이 좋다. 반면에 극장 상황은 어떤가.
=블록버스터 시즌이 끝나가는 시점에 개봉한 거라 그 시기를 피했던 작은 영화들이 많이 몰려 있다. 그런데 그 영화들이 상영될 수 있는 극
[김일권] 내가 넘어지더라도 현장은 넘어지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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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쇼가쿠칸(소학관) 출판사의 미팅룸에 두 남자가 함께 들어섰다. 설명을 듣지 않아도 어느 쪽이 만화가고 어느 쪽이 편집자인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자신이 그린 만화책의 네모칸에서 슬쩍 빠져나온 것 같은 인상이면서도 “생긴 것도 다르고 절대 내 이야기가 아니고 전부 상상이고 망상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며 웃음 짓는 아오노 슌주는, 인터뷰 내내 진담과 농담 사이에서 절묘하게 줄을 탔다. 그의 만화책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독자를 만화가에 대한 망상에 빠지게 만들 만큼.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제목이 재미있다. 고등학생 때 성적 안 나오면 부모님에게 하던 변명 같은 느낌도 들고.
=처음 이 아저씨 이야기를 생각했을 때는 제목이 달랐다. 연재가 결정되면서 처음 단편으로 선보였던 타이틀이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이었고 그걸 장편 전체 제목으로 삼았다. 까부는 제목이 좋겠다 싶어서. …
[trans x cross]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지금의 온도’로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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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훈은 가장 강한 모습과 가장 약한 모습이 공존하는 배우예요.” 조성희 감독이 말했다. 강약, 선악, 희비. 이제훈은 이 모든 상반된 것들을 한몸에 품고 있는 배우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현실의 이제훈은 평범하기 그지없다. 너무 평범해서 심심하다는 말을 곧잘 듣는 이제훈에게 첫인사로 변한 게 하나 없다는 말을 건넸다. 그는 다행이라며 웃었다. 다행인 건 우린데. 풋풋한 외모, 바른 청년의 분위기, 진지한 태도가 신인 때나 지금이나, 군대 가기 전이나 후나 변함이 없다. 딱 하나 변했다고 느낀 것은 말이 길어졌다는 것. 내뱉는 말에 더 많은 생각과 더 깊은 고민을 싣다보니 그럴 수밖에. 본인은 “그래서 제가 재미가 없어요”라며, 재미없는 자신의 모습이 유감이라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또래의 그 누구보다도 다작 레이스를 펼쳐온 이제훈이 군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다. 7월24일 제대한 이제훈은 복귀작으로 드라마 <비밀의 문>(9월22일 첫 방송)을 택했다. <늑대소년>
[이제훈] 냉정의 숲 열정의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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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뜻 안 알려주고 싶을 때 쓰는 말
속뜻 이미 알려주었을 때 쓰는 말
주석 한 여학생이 카카오스토리에 올린 짧은 글에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아무도 왜 내가 힘들다는 걸 몰라주지.” 이 혼잣말에 아홉명이 ‘힘내요’란 느낌을 남겼고 한명이 이런 댓글을 달았다. “먼일잇냐 ㅋ.” 그러자 여학생이 대답한다. “안알랴줌.” 차마 말할 수 없는 사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고 싶은 사연이 한데 얽힌 말이다. 내용으로는 알려주지 않겠다는 뜻이지만, 운을 맞춘 부드러운 발음은 입을 막아도 새어나오는 어떤 누설의 표현이다. 그 이후 엄청난 속도로 사람들에게 패러디물이 퍼졌다. 이 작품들에 카카오스토리식으로 느낌을 남겨보자.
먼저 ‘화나요’ 버전이 있다. 기상 캐스터가 나와서 말한다. “오늘의 날씨는… 안알랴줌.” 불쾌지수가 매우 높은 날씨라는 걸 직접 경험하게 해주는 버전이다. 사실은 기상 캐스터의 복장에서부터 사달이 났다. 하필이면 입고 나온 원피스가 파란색이어서, 블루 스크린 앞에서
[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안알랴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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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포드의 영화는 헨리 폰다와 존 웨인의 이야기다. 정의와 존엄을 지키기 위한 숭고한 용기(주로 헨리 폰다 주연의 작품들), 그리고 희생과 의무를 위한 불굴의 투지(주로 존 웨인 주연의 작품들)들이 전면에 나와 있다. 이런 ‘존 포드의 미덕’을 실현하는 두 남자, 곧 헨리 폰다와 존 웨인의 그림자가 너무 커서, 그의 영화에서 여성의 이미지를 기억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포드의 영화에선 여성 배우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고, 또 두 남자 배우처럼 연속하여 여러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도 거의 없다. 단 한명의 예외가 있는데, 그가 바로 모린 오하라다. 포드의 영화에서 다섯번 주연으로 나왔다. 만약 존 포드 영화가 여성의 이야기라면, 그것은 모린 오하라의 이야기다.
존 포드의 여성 스타
모린 오하라와 존 포드는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1941)에서 처음 만났다. 소위 ‘포드의 절정기’ 때 발표된 작품이다. 포드는 ‘경이의 연도’로 불리는 1939년에 <역마차>
[한창호의 오! 마돈나] 아일랜드의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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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시복식을 앞두고 있던 지난 8월15일 새벽, 청계천 세운상가 안쪽 골목길에 검은 양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들이 한 무더기 모여 있다. 각목부터 야구방망이까지 각양각색의 몽둥이를 손에 쥔 채 가로등 빛도 닿지 않는 으슥한 구석에 쭈그려 앉아 있는 모양새에 누구라도 흠칫 놀랄 수밖에 없다. 신고가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건만 현장 스탭들의 눈엔 그저 믿음직스러운 정의의 아군일 따름이다. 정두홍 무술감독이 <짝패> 이후 8년 만에 배우로 스크린 앞에 선 <흑산도>의 촬영현장은 액션스쿨을 그대로 옮겨왔다. 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현장 PD는 촬영 때마다 최소 열댓명씩 대기 중인 액션스쿨 스턴트맨들 덕분에 웬만한 일로는 시비 붙을 일이 없다며 너스레를 떤다. 아닌 게 아니라 촬영 시작을 알리는 구호와 함께 일사불란하게 뛰어가는 배우들의 뒷모습에 군기가 바짝 들어 있다. 한껏 집중한 정두홍 감독에게 피해가 갈까 카메라 뒤에서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조심
[씨네스코프] 하원준 감독의 <흑산도> 촬영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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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 살아 있다: 비밀의 무덤> Night at the Museum: Secret of the Tomb
감독 숀 레비 / 출연 벤 스틸러, 스카일러 지손도, 레벨 윌슨, 로빈 윌리엄스, 벤 킹슬리
뉴욕 박물관의 소심한 야간 경비원 래리(벤 스틸러)가 이번에는 런던 대영박물관으로 날아간다. 구체적인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위인들과 동물들이 살아 움직이면서 래리와 함께 런던 시내를 휘저을 예정이다. 1, 2편에 이어 숀 레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로빈 윌리엄스의 유작 중 하나다. 12월19일 북미 개봉한다.
[WHAT'S UP] <박물관이 살아 있다: 비밀의 무덤> Night at the Museum: Secret of the To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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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타짜-신의 손> 정열의 홍단!
[정훈이 만화] <타짜-신의 손> 정열의 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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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세대의 작가들은 물론 젊은 작가들의 최근 발표작까지 관통하는 한국문학평론집. 3부에 실린 소설가 김소진에 관한 짧은 글은 어디에도 발표된 적 없는 미발표작으로, 찾아 읽어볼 만하다. 4부에는 그가 창비주간논평 등에 써온 문학에 관한 글들과 <씨네21>에 발표한 영화평론 등을 담았다. 문학평론가 황종연은 “겉으로 털털하나 속으로는 끈끈한 문학자의 순정”이라고 정홍수의 글을 추천했다.
[도서] 한국문학평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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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부연하지 않아도, 당신은 이 문장이 무엇에 대해 말하는지 바로 눈치챘을 것이다. <문학동네 80호>는 ‘4·16 세월호를 생각하다’ 특집을 마련했다. 진은영•박민규, 황정은, 배명훈, 전규찬을 비롯한 시인/소설가/평자들이 세월호에 대해 썼다.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는 진은영 시인의 글 제목을 응시하는 것으로 이 묵직한 독서가 시작된다. ‘그날’을 절대 잊지 않기 위하여.
[도서] ‘4·16 세월호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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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주변에 쌓인 책이야말로 쓸모 있다. 살기 좋은 그 어떤 설계도 무시하고 주변에 책을 쌓아두어야 한다는 것인데,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쓸모 있는 책은 손이 닿는 범위에 놓아둔 책이다”. 책을 “쓴다”는 말은 일단 읽는다는 뜻일 테고 그다음에는 그 책에 대해서 글을 쓰거나 그 책을 자료로 삼거나 한다는 뜻일 것이다.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은 장서가, 저술가로 불리는 사람들의 지옥이자 천국인 장서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책(짐) 때문에 고생 좀 해본 사람이라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무릎을 치게 만드는 눈물겨운 사연이 한가득이다. 책상 주변에 필요한 책을 쌓아두라는 조언도 일견 그럴듯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책상 옆에 쌓은 책을 다 쓴 뒤 책장에 꽂아두고 다음 필요한 책을 다시 추려와 쌓아놓는 식으로 일을 하는 성인군자는 없다. 쌓아두어야 할 정도, 그러니까 일주일에 예닐곱권 한달에 스무권 정도의 책의 쓸모를 유지하는 나의 집은 거의 쓰레기통이다. 추리긴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500권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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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은 전주다. 동네 백반집만 가도 12첩 반상이 깔린다는 전설의 고장 전주(옛날엔 전설이 아니라 진짜였다), 전국에 널린 프랜차이즈도 여기에 발만 들였다 하면 미묘하게 맛있어진다는 신비의 고장 전주. 하지만 그곳에도 맛없는 집은 있었으니… 우리 집이다, 우리 집. 내가 20년 가까이 먹고 살았던 우리 집.
친정은 군산이요 시댁은 광양으로서 민어회나 서대회, 김국 같은 진미가 반찬이었던 엄마는 먹던 가락이 있어 장보기는 잘했지만 음식은 못했다. 그래서 갈치조림 대신 갈치구이를, 계란말이 대신 계란찜을, 닭볶음탕 대신 백숙을 만들었다. 한마디로 복잡한 음식은 하지 않았다. 그런 엄마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전라도 음식은 불행하게도 콩나물국밥이었다. 우리 집은 일요일 아침마다 삼백집 스타일로 뜨겁게 끓인 콩나물국밥을 먹었다. 스타일만 삼백집. 허영만의 <식객>을 보면 삼백집 콩나물국밥은 국밥 전용으로 담가 2년 이상 숙성한 썰이김치를 넣어야 한다는데, 그런 게 있을 리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그분도 착하게 보이게 만드는 마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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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24일 일기에 <드래곤 길들이기> 1, 2편과 <스타워즈 에피소드5: 제국의 역습>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로빈 윌리엄스가 영화를 두고 세상을 떠났다. <스토커>(One Hour Photo)의 고독한 사진현상소 직원 싸이는, <인썸니아> <스무치에게 죽음을>의 배역과 더불어 윌리엄스의 3대 악역이다. 아무 특징 없는 외모와 흔해빠진 옷, 교과서적인 말투를 통해 로빈 윌리엄스는 싸이를 철저한 ‘노바디’로 연기한다. 그러나 무색무취한 이 남자의 내면에는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로버트 드니로)와 통하는 분노가 도사리고 있다. 에너지를 제어하는 데에 막대한 에너지를 투여한 훌륭한 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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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 데블로이스 감독은 인터뷰에서 <드래곤 길들이기2>를 <스타워즈> 오리지널 3부작의 2편 <제국의 역습>에 비한 적이 있다. 1편의 주제를 심화하고 새로운 캐릭터의 도입으로 이야기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고통은 체감되길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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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학자 켄 댄시거는 “다큐멘터리가 오랫동안 살아남은 이유는 그 유연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표현을 ‘다큐멘터리는 자신의 경계를 넘나들 가능성이 큰 장르다’라고 바꿔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실험하는 경계선, 제6회 DMZ국제다큐영화제가 9월17일(수)부터 24일(수)까지 8일간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다. 올해는 ‘아시아 다큐의 빛’이라는 슬로건으로 30개국 111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개막작 <울보 권투부>는 일본 내 한인학교 권투부 학생의 이야기다. 정통 다큐멘터리 방식을 그대로 따르면서 그외 모든 것은 아이들의 땀과 눈물의 진실에 맡긴, 소박한 다큐멘터리다. “타격이 의도한 곳에 정확히 꽂혔을 때 기분이 좋다”라는 권투부 학생의 순수한 에너지가 일본 내에서 차별받는 상황의 답답함을 가뿐히 이긴다.
한국경쟁부문 상영작인 <쿼바디스>는 극영화적 요소와 다큐멘터리를 뒤섞는 최근의 다큐멘터리 경향을 고스란히 따르며 기독교 세습의 비리를
[영화제] 다큐 그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