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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대안공간 루프에서 범죄에 관한 전시(<죄악의 시대>)를 제안받은 것이 이 영화의 출발 지점이라고 들었다.
=그 전시에 참여하며 연쇄살인범들에 대한 일종의 아카이브 같은 책을 만들었다. 당시 자료를 조사하면서 지존파 연쇄살인사건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 그 사건이 상당히 인상적으로 마음에 와닿았다. 이후에 ‘지존파 사건’에 대한 작업을 따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사건 중 유독 지존파 연쇄살인사건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가 있을까.
=지존파보다 1990년대에 대한 관심이 컸다. <살인의 추억>을 보아도 알 수 있듯, 연쇄살인이라는 행위는 그 시대를 반영하는 바로미터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존파 연쇄살인사건을 통해 90년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다. 지존파 사건에 특히 흥미를 느낀 건, 원한 관계 같은 이유가 아닌, ‘자본주의’를 범행 동기로 내세운 최초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90년대에 대한
“연쇄살인은 그 시대를 반영하는 바로미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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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이런 일이 얼마든지 올 수 있어. 올 수 없다고 장담 못해요. 미리미리 방지해줬으면, 이런 일은 없었잖아요….”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절규한다. 눈물을 흘리고, 가슴속에서 터져나오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는다. 이건 2014년의 풍경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1994년 10월21일, 성수대교 붕괴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외침이었다. <논픽션 다이어리>에 삽입된 이 장면이 올해 재현되었다. 수백명의 생명을 앗아간 올해 4월16일 진도 앞바다의 그 사고 현장에서, 유가족이 전 국민을 향해 외치던 절규는 20년 전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외침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앞으로 얼마든지 발생 가능하다’고 누군가가 말했던 불행은 실현되었다. 2014년의 대한민국 사회는 1994년에 예견한 불행을 막는 데 실패했다.
21세기 비극의 뿌리
정윤석 감독의 다큐멘터리 <논픽션 다이어리>는 최근 몇년간 1990년대를 소환한 뭇 영화와 드라마가 미처
한국 사회라는 이름의 연쇄살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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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상반기, 죽음의 유령이 한국 사회를 배회했다. 학생들을 태운 배가 침몰했고, 버스터미널과 요양병원이 불탔으며 꽃다운 나이의 장병들이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모두가 이 상실감을 잊지 말자고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하는 영화가 있다. 7월17일 개봉하는 정윤석 감독의 <논픽션 다이어리>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연쇄살인과 대형사고가 난무했던 혼란스러운 1990년대 한국 사회의 한복판으로 보는 이들을 이끈다. 거대한 비극을 경험하고도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과거를 망각한 죗값이 어떤 것인지 상기시키는 이 작품은 수십년간 한국 사회 도처에 존재했던 죽음의 배후로 국가를 지목한다. 사회와 개인의 죽음의 구조적 상관관계를 탐구한 <논픽션 다이어리>의 개봉과 더불어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영화 속 연쇄살인범들을 다시금 소환했다. 당대의 사회상과 욕망을 밀접하게 반영하는 것이 영화라면, 우리는 연쇄살인마를 다룬 그때 그 영화들을 통해
망각을 먹고 다시 태어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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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친구들>의 이도윤 감독은 한양대에서 영화를 공부했고 단편 <우리, 여행자들>(2006)과 <이웃>(2008)으로 각각 부산국제단편영화제와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영화 속 세 친구와 비슷한 나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눈이 반짝거려 좀더 어려 보이는 인상이다. 같은 카페에서 인터뷰 중이던 대학 동문인 배우 지성이 휴식을 틈타 슬쩍 고개를 내밀고 “우리 과의 희망”이었다고 감독을 소개했다. 아주 농담만은 아닌 것 같았다.
-중국 설화집 <태평광기> 16권 ‘기의’ 편 중, ‘파경’(破鏡)의 어원을 그린 이야기를 모티브로 <좋은 친구들>을 구상했다고 들었다. 전란이 닥치자 부부가 반으로 나눈 거울을 정표로 나눠 갖고 헤어졌다 재회하는 일화인데 구체적으로 연관성을 설명한다면.
=‘파경’의 고사는 여러 판본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버전은 재회한 부부의 거울 조각이 어긋나는 이야기다. 남편은 전쟁을 치르는 동안에도 고스
‘취급주의’의 삶에서 인간이 인간으로 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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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인터뷰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국제영화제들이 먼저 발견한 독립영화 <한공주> <10분> <도희야>에 이어, 2014년 기억해둘 한국영화 데뷔작 목록에 충무로 상업영화 한편을 보태도 좋을 것 같다. 이도윤 감독의 <좋은 친구들>(제작 오퍼스 픽처스, 공동제작 초이스컷 픽처스)을 소개한다.
누구나 아는 영화사의 걸작에서 빌려온 제목, 훤칠한 세 남자배우가 폼나게 어우러진 검푸른 색조의 포스터. <좋은 친구들>은 1년이면 십수편 마주치는 충무로의 남성 주도 장르영화의 일원으로 보인다. 의리, 배신, 사기, 살인, 비리. <좋은 친구들>을 이루는 성분도 무엇 하나 새롭지 않다. 그러나 그 총합은 뜻밖이다. “아무도 손해 보지 않는 일”이라는 합리화에서 출발한 보험 사기가 엇나가며 빚어진 사태가 중심 사건인 범죄 드라마에 속하지만, <좋은 친구들>은 범인의 정체가 수수께끼인 스릴러도 아니고 이렇다 할 액
우정의 파경(破鏡), 불신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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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 다이어리] <더 시그널> 놀라운 싱크로
[헌즈 다이어리] <더 시그널> 놀라운 싱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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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 크리에이티브 랩
2014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 <무뢰한> <마담 뺑덕> <맨홀> <군도: 민란의 시대> <좋은 친구들> <남자가 사랑할 때> <피 끓는 청춘>
2013 <친구2> <공범> <설국열차> <변호인> 티저 예고편
2012 <타워> <이웃사람>
2011 <만추>
예고편 만드는 톰 아저씨. 탐 크리에이티브 랩(TOMM Creative Lab) 대표 황정현 예고편 감독의 별명이다. “탐스럽다 할 때의 탐인데 아무도 탐이라고 불러주지 않는다. 다들 톰 아저씨라고 부르지. (웃음)” 탐 크리에이티브 랩은 황정현 감독이 “영화하다 알게 된 후배” 김진석 예고편 감독과 의기투합해 차린 예고편 제작 회사다. 두 감독은 “학교 다니던 시절부터 영화하겠다고 홍대 인근을 들쑤시고 다니던” 콤비다. 영상제작을 전공한 황정
[STAFF 37.5] 예고편도, 연출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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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곳이 실제로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건 그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기 때문입니다. 어떤 연유로 영화가 그렇게 찍힌 것입니까 질문받을 때 감독 장률은 자주 그와 같이 답해왔다. <경계>의 카메라의 느린 패닝에 관해서는 사막이라는 대지의 성질을, <두만강> 인물들의 무표정에 대해서는 그들 삶에 밴 무표정한 상태를 근거로 들었다. 사막에서도 빠르게 움직이는 것들은 있을 것이고 두만강의 사람들이라고 울고 웃을 일이 전혀 없겠느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반박이 중요한 것 같진 않다. 중요한 건 장률이 구체적인 지역(몽골의 사막, 중경, 익산-이리, 두만강 등)을 결정하고 그 지역의 물리적이고 현실적인 풍속과 환경으로부터 핵심적인 무언가를 추출하여 영화의 공기와 리듬과 표정과 정서 등등을 총괄하는 핵심 층위로도 삼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장률의 영화는 ‘거기에 있는 것들’의 현존하는 성질과 상태를 전적으로 존중하고 따랐다.
<경주>에 관해
[신 전영객잔] 들끓는 정념과 고요한 명상의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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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한 수>에서 살수(이범수) 일당은 바둑알을 보자기에 싸 철퇴처럼 휘두르고, 바둑에 진 태석(정우성)의 형(김명수)에게 바닥의 바둑알을 몽땅 삼키게 한다. 그저 고상하고 우아한, 한편으로는 지루하다고 생각되던 바둑에 원시적인 ‘촉각’을 느끼게 만든 장면이다. 장편데뷔작 <양아치어조>(2004) 이후 <뚝방전설>(2006), <퀵>(2011)에 이은 조범구 감독의 네 번째 영화 <신의 한 수>는 바로 바둑을 소재로 한 액션누아르영화다. 물론 후자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는 장르의 컨벤션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필사적으로 그 안에 ‘인생’을 담으려 했다. 그것은 부끄러움으로 점철된 전작에 대한 깊은 회한과 장차 만들고 싶은 영화 사이의 거리감을 좁히려는 노력이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영화에 대한 감각을 새롭게 일깨우는 중이다. ‘순도 높은 내 영화’를 만들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는 조범구 감독을 만났다.
-전작 <
[조범구] 고수에겐 놀이터, 하수에겐 생지옥, 그게 세상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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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은 떠나지 않는다, 다만 판을 옮길 뿐이다. 90년대 <미학 오디세이>와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비롯한 책들을 발표하며 미학자로, 정치논객으로 명성을 얻은 진중권이라는 이름은 ‘동양대 교수’라는 부연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고유명사다. 한동안 <씨네21>에서 미학 칼럼을 연재하며 트위터로 쉬지 않고 정치적 멘션을 이어가던 그가, 최근 팟캐스트를 두개 시작했다. 문화계 인사를 초청해 대화하는 팟캐스트 <진중권의 문화다방>과 정의당에서 만든 정치평론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 신간 <이미지 인문학>도 두권으로 펴냈다. 매체 환경 변화와 정치판에 대해 묻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정작 그의 관심사는 여느 저자와 같았다. “책이 좀 잘 팔려야 하는데. 이번에는 야심 있게 쓴 건데….”
-SNS에는 진보 성향인 사람들이 주류를 이룬다. 대선 이후, 그게 결국 찻잔 속 태풍이 아닌가 하는 비판이 있어왔다. 꾸
[trans x cross] “디지털 시대의 독해력을 갖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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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작가의 <내 심장을 쏴라>에서 하늘로 날아오르기 전의 승민에게 수명은 말한다. “널 따라온 건 알고 싶어서야. 내가 뭘 원하는지, 뭘 할 수 있는지,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해서.” 여진구가 수명의 자취를 쫓기 시작한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자신의 “무지개 너머 세상”은 어떤 풍경을 품고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에. 한창 <내 심장을 쏴라>를 촬영 중인 여진구를 조금 일찍 불러냈다. 평범한 소년인 동시에 주목받는 젊은 배우의 일상과 비일상에 대해, 여진구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인터뷰 직전에 기말고사를 마치고 왔다고. 공부는 많이 했나.
=사실 많이 못했다. 아… 성적이 걱정된다.
-배우로서 인정받고 있으니 공부까지 욕심내지 않아도 될 텐데. (웃음) 전에 심리학을 전공하고 싶다고도 공공연히 이야기했다.
=공부를 놓치기는 싫다. 연기도, 공부도 할 땐 진지하게 한다. 심리학을 전공하겠다고 한 건 연기에 도움이 될 만한 공부를 하고 싶어서였다. 대학
[여진구] 무지개 넘어 소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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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뜻 (‘왜 그래?’와 함께 쓰여) 상대방의 상식적이지 못한 행동을 질책하는 말
속뜻 상대방이 보잘것없다고 무시하는 말
주석 “알 만한 사람이 왜 그래?” 선임이나 연장자가 훈계할 때 흔히 하는 말이다. 저 말이 따라붙으면 후임이나 젊은이는 엉뚱하거나 상식에 어긋난 행동을 한 사람이 된다. 저 말은 답변을 요구하는 말도 아니다. 질책이 아니라면 은근한 회유다. 회유일 때, 저 말 뒤에는 하여가(何如歌)가 따라붙는다. “세상 둥글게 살아야지. 젊은 사람이 그렇게 모가 나서야 쓰나.” 요컨대 둥글둥글하게 살라는 거다.
‘상식’이란 무엇일까? 사전에는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지식이나 판단력’이라고 나와 있다. 그럼 ‘일반적’이란? ‘일부에 한정되지 않고 전체에 널리 걸치는’이란다. 요컨대 상식이란 그 집단이나 공동체에 널리 퍼진 관습이나 행동을 따르려는 생각이다. 논문 표절이 일반화된 사회에선 스승이 제자 논문을 훔쳐서 자기 것으로 삼는 게 상식이고, 친일파가 권력
[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알 만한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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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인디포럼 영화제에서 고맙게도, 1990년대 필름영화를 회고하는 16mm 필름 특별전을 열었다. 그리고 더욱 고맙게도 필름영화 목록에는, 설화처럼 구전되어 내려오는 전설적 영화가 몇몇 있었다. 그중에서도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파업전야>(1990)! - 아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영화창작집단 ‘장산곶매’의 그 전설적 작품, 실제 노동자들의 현장에서 직접 그들과 함께 촬영했으며, 정부로부터 먹은 상영금지처분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대학가에서 순회 상영이 이어졌으며, 상영 시에는 이를 저지하려는 전경과 상영을 사수하려는 전투조 간의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던, 하지만 그 난리통 속에서도 전국 30만 관객을 동원했다던 바로 그 전설의 작품! 물론 나도 이 영화를 안 본 건 아니나, 비디오로 돌려보던 그 초라함을, 감히 16mm 필름이 투영되는 스크린에 비하랴. 얼른 달려가서 보리라.
결론은 명불허전! <파업전야>는 당시 87년 혁명의 기운을 고스란히
[곡사의 아수라장] 조직혐오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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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저지> The Judge
감독 데이비드 돕킨 / 출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레이튼 미스터, 로버트 듀발, 베라 파미가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러 오래만에 고향을 찾은 변호사 행크 파머는 그곳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판사로 일하던 아버지가 살인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것이다. 행크가 아버지의 변호를 맡으면서 냉랭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얽히고설킨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아들로, 로버트 듀발이 아버지로 출연하며 10월 북미 개봉예정이다.
[WHAT'S UP] <더 저지> The Judge